시민과학프로젝트는 과학자가 아닌 대중이 컴퓨터 또는 스마트폰을 이용해 과학자의 연구에 참여하는 활동을 말합니다. 시민이 참여하는 연구는 과학의 최첨단에서 떨어져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 소개할 ‘그래비티 스파이’는 2017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에 빛나는 ‘중력파’를 연구하는 시민과학프로젝트거든요.
지금으로부터 104년 전이군요. 독일의 이론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1916년에 중력에 관한 방정식 하나를 세웠습니다. 별이 갑자기 폭발하는 것처럼 중력이 급격하게 변하는 상황을 방정식으로 만든 뒤 해를 구해 그런 상황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알아봤죠. 결과는 마치 잔잔한 수면에 돌을 던지면 동심원 모양의 물결이 퍼져나가는 것처럼, 중력의 변화가 사방으로 전파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이 현상에 ‘중력파’라는 이름을 붙였죠.
문제는 중력파의 세기가 너무 작아서 실제로 확인하기 어렵다는 것이었습니다. 계산 해보니 중력이 요동치는 크기 차이가 아무리 커도 10의 21승 분의 1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인슈타인은 중력파를 그저 수학적인 계산 결과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100년 뒤인 2016년에 아인슈타인도 깜짝 놀랄만한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세계 각국의 과학자들이 미국에 설치된 거대한 관측 장비를 이용해서 중력파를 측정하는 데 성공한 거죠. 분석 결과 블랙홀 두 개가 서로의 주위를 나선 모양으로 회전하며 점점 가까워지다가 충돌하면서 발생한 중력파였습니다. 2017년 노벨물리학상은 이 역사적인 관측을 주도한 세 명의 과학자에게 돌아갔습니다.
2016년부터 현재까지 11번의 중력파를 포착했는데요, 그 과정에 시민 천문학자도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중력파 관측을 돕는 시민과학프로젝트에 참여해 측정 데이터의 정확도를 높이는 데 공헌한 겁니다.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최첨단 과학 연구에서 시민천문학자가 활약했다는 사실은 많이 알려지지 않았는데요, 어떤 활약인지 지금부터 알아보겠습니다.
그래프 읽을 줄 알면 누구나 시민 천문학자!
‘그래비티 스파이’에서 시민 천문학자는 우주의 중력을 엿보는 스파이 같은 역할을 합니다. 중력을 어떻게 엿보냐고요? 중력파 관측 장치인 라이고의 관측 정보를 분석하는 방식으로 중력을 관찰합니다.
그래프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만 갖추고 있다면 누구나 쉽게 중력의 세계를 엿볼 수 있습니다.
라이고의 관측 장치가 포착한 신호는 시간에 따라 측정되는 레이저의 진동수입니다. x축을 시간, y축을 진동수로 두면 시간에 따라 측정되는 레이저의 진동수 변화를 그래프 형태로 나타낼 수 있죠. 중력파가 발생하면 그래프의 모양이 변하기 때문에 그 변화를 분석해서 어떤 이유로 중력파가 발생했는지 추적할 수 있습니다. 시민 천문학자의 역할은 과학자들이 우주에서 발생한 미세한 중력 변화를 정확히 포착할 수 있도록 측정 장치에 기록된 잡음을 분류하는 일입니다. 라이고는 시공간이 10-18m 수준으로 변하는 것까지 측정할 수 있는 정밀한 장치기 때문에 다양한 잡음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연의 일치로 관측 장치의 양쪽에서 동시에 잡음이 발생하면 우주에서 온 신호로 오해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중력파를 연구하는 과학자는 라이고의 방대한 측정 데이터를 그래프 형태로 제공해 시민 천문학자에게 잡음과 관련된 데이터의 분류를 요청했습니다.
시민 천문학자의 역할은 참고 그림을 보면서 그래프의 모양을 분류하는 겁니다. 대표적인 잡음 패턴은 유리에 맺힌 물방울이 길게 흘러내리는 듯한 모양과 사인파 모양입니다. 물방울 모양인지 사인파 모양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그래프도 있는데, 운영진은 시민천문학자가 최대한 잘 분류할 수 있도록 신호가 발생하는 과정을 동영상처럼 볼 수 있게 했습니다.
그래비티 스파이 프로젝트가 시작한 2016년부터 현재까지 1만 6000명 이상의 시민천문학자가 참여해 195만 7000개 이상의 신호에 대한 분류가 이뤄졌습니다. 최근에는 이탈리아에 설치된 중력파 관측 장치인 ‘버고’에서 발생하는 데이터까지 추가돼 시민 천문학자의 할 일이 더 많아졌습니다. 최첨단 천문학 연구에 동참하고 싶은 분들은 지금 바로 홈페이지를 방문해 보세요!
인공지능까지 접목한 최첨단 시민과학프로젝트
그래비티 스파이의 특징은 인공지능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시민 천문학자와 인공지능 이 협업한다는 점입니다. 우선 시민 천문학자는 수많은 관측 데이터를 관찰하면서 우주에서 온 신호가 아닌 것을 골라냅니다. 운영진은 시민 천문학자가 분류한 데이터로 잡음을 인식하는 인공지능을 학습시킵니다. 충분한 학습을 진행한 인공지능을 이용해 연구진은 관측 데이터에서 잡음에 의한 신호를 분류합니다. 그리고 인공지능이 분류하지 못한 그래프를 다시 시민 천문학자에게 보냅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연구진은 기존의 물방울과 사인파 모양 외에 잡음에 의해 발생하는 새로운 그래프 패턴을 찾아내 인공지능 알고리듬을 더욱 정교하게 학습시키기를 반복합니다. 그래비티 스파이 운영진은 “인간과 인공지능의 협업으로 라이고의 관측 데이터를 최대한 깨끗하게 만들면 중력파의 비밀을 밝히는 데 더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