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저도시요? 만들 수는 있겠지만 누가 바다 속에서 살려고 할까요? 현실성이 없습니다.”
“사람은 햇빛 없이 살기 힘듭니다. 햇빛이 들지 않는 바다 속에서 산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됩니다. 어떤 나라가 막대한 예산을 들여 만들려고 할까요?”
기자가 해저도시에 대해 물어봤더니 해양 과학자들, 공학자들은 한결같은 반응이었다. 관광이나 연구가 아니라 진짜로 살기 위한 해저도시 건설은 비현실적이다. 얼마나 비용이 들지 예상하기도 힘들다. 그러나 몇 가지 조건을 달면 눈빛이 달라진다.
“만일 육지가 바다에 잠긴다면요? 괴바이러스 대유행으로 육지에서 살 수 없게 된다면요? 방사능 오염이 지구 대륙 전체에 퍼진다면요?”
잠시 머뭇거리는 연구자들. 이내 진지한 답이 돌아온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지만 충분히 발생할 수도 있겠네요. 그때는 비용이 문제가 아니죠. 그런 상황이라면 해저도시는 충분히 선택할 수 있는 옵션입니다.”
생각보다 저렴한 제2의 거주공간
누구도 미래를 예측할 순 없다. 지구, 정확히 말해 육지에서 더 이상 살 수 없게 된다면 우주의 한 행성이나 제2의 지구를 먼저 떠올린다. 그야말로 피난처다.
그러나 현재 정착 가능한 제2의 지구는 없다. 그렇다고 우주에서 사는 것이 가능할까. 쉽지 않다. 천문학적인 비용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국제우주정거장(ISS)에 든 비용을 살펴보자. 약 1500억 달러(약 200조 원)가 투입되고 있으며 승무원 한 명당 하루 체류 비용만 750만 달러(약 85억 원)다. 해저도시 건설에 필요한 비용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적다.
태평양 피지섬 부근에 존재하는 한 해저 리조트는 해저도시와 흡사한 형태다. 이곳의 6박 7일 숙박권은 1만5000 달러에 불과하다(리조트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88쪽 박스 기사 참고). 하루 숙박 비용이 2000달러(2200만 원)가 조금 넘는다. 750만 달러 대 2000달러… 비교가 되지 않는다. 해저 도시는 어쩌면 절박한 상황에서 가장 저렴하고 안전한 주거 공간이 될지도 모른다. 현재의 과학과 기술이 해저 도시를 만들 수 있을까. 한 단계씩 풀어나가 보자.
어디에 만들 수 있을까
해저도시를 만들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할 일은 장소를 정하는 것이다. 얼핏 드넓은 3대양(태평양, 대서양, 인도양) 이곳저곳에 자유롭게 건설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사람이 거주할 수 있는 첫 번째 조건은 햇빛의 투과 여부다. 빛이 들어오지 않는 곳에서 짧은 시간 동안 지낼 수는 있지만 거주는 불가능하다. 일반적으로 대륙붕인 수심 200m까지는 햇빛이 들어온다. 대륙붕 면적은 부속해를 포함해 태평양이 5.7%, 대서양이 13.3%, 인도양이 4.2%에 그친다. 바다 전체로 보면 7.6%에 불과하다. 육지에서 가까운 깊이 100m 전후인 ‘곡’까지는 빙하시대에 육지로 된 지역이지만 홈이 파인 해곡(海谷)이 많다. 대륙붕 중에서 해곡을 제외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서해는 해저도시 건설이 가능할까. 대답은 ‘No’다. 바닷물의 탁한 정도를 나타내는 ‘탁도’가 매우 높기 때문이다. 서해는 빛이 투과하는 수심이 3~5m 미만이다. 이런 탁도까지 고려하면 해저도시 건설이 가능한 입지는 더욱 줄어든다.
두 번째 조건은 각종 자연재해로부터 자유로운 곳이다. 태풍이나 파랑·바람·허리케인 등의 영향을 받지 않는 곳, 지진이나 지진해일 위험이 없는 곳이다. 태풍이나 바람, 파도 등은 세기에 따라 달라지지만 일반적으로 수심 30m 이상에서는 아무런 영향이 없다. 바다 수면 외부 기압과 내부 압력 등을 고려해 볼 때 30~100m가 해저도시 건설에 적합한 수심이다.
지진의 경우 상식적으로도 조산대 지역을 제외한 곳이 안전하다. 정회수 한국해양연구원 박사는 “환태평양조산대를 이루는 태평양판은 북아메리카에서 상승 이동해 일본 부근 조산대로 들어가는 구조”라며 “마셜 제도에 있는 미크로네시아 같은 지역은 지자기 분석을 통해 1억 년 가량 안정된 지반을 갖고 있어 최적의 입지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100가구 사는 해저 도시…최적의 구조물과 재질은
수심 100m의 평탄한 지반인 북서태평양 지역에 100가구가 사는 해저도시를 짓는다면 가장 먼저 만나는 장벽은 수압이다. 바다에서는 수심 10m마다 1기압이 증가한다. 해수면의 기압이 1기압이므로 100m 수심이면 11기압이다. 1기압은 단위면적 1㎡당 10t의 무게로 가하는 압력이다. 11기압은 1m2당 110t의 무게로 어마어마한 압력이다. 결국 해저도시의 구조물은 외부 11기압의 압력을 버티는 동시에 도시 내부는 1기압의 압력을 유지해야 한다.
이같은 압력을 버틸 수 있는 최적의 형태는 돔 모양의 쉘(shell) 구조다. 이필승 KAIST 해양시스템공학전공 교수는 “돔 구조는 구조물의 하중을 지탱하기 위한 내벽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최소의 건설 재료로 최대한 공간 활용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무게와 압력을 곡면을 따라 균등하게 분할해 지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건설할 수 있는 돔 구조물이 비약적으로 커졌다. 석재로만 만들던 것을 철골 및 콘크리트로 만들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채광을 고려해 유리를 외벽으로 사용해도 철골 구조가 하중을 떠받칠 수 있다. 해저도시 역시 외벽을 구성할 수 있는 재료는 흔한 철골과 유리다. 철골은 염분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특수 코팅 처리한 티타늄 합금 재질이 가장 유력한 후보다. 유리는 고압을 버티기 위해 심해잠수정에 사용되는 고강도 플라스틱 수지인 ‘메타크릴 수지 글래스’를 이용하는 게 적절하다.
110t의 무게를 버틸 수 있는 완벽하게 안전한 유리벽 두께는 얼마일까. 일본의 심해 잠수정 ‘신카이6500’과 명품 시계 제조사 ‘롤렉스’에 해답이 있다. 신카이6500은 수심6500m의 해저 탐사가 가능한 유인 잠수정으로 전방과 측면의 관측창에 7cm 두께의 메타크릴 수지 글래스가 두 겹으로 끼워져 있다. 글래스 두 겹만으로 6500m 심해저의 압력을 버틸 수 있다는 의미다.
롤렉스는 지난 3월말 화제가 됐던 영화감독 제임스 캐머런의 심해저 탐사에 실험용 시계를 내려보냈다. 캐머런 감독은 수심 1만 900m에 달하는 마리아나 해구(지구에서 가장 깊은 해구)를 1인 잠수정을 타고 내려갔다. 롤렉스는 특수 제작된 실험용 시계 ‘딥씨 챌린지(Deepsea Challenge)’를 잠수정의 로봇팔에 달았다. 해저 1만2000m 수압에도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된 딥씨 챌린지는 2008년 출시된 롤렉스 딥씨(3900m 방수)의 후속 모델로 엄청난 수압에도 정상적으로 작동됐다. 11기압을 버티는 소재 기술과 구조적 설계, 결코 불가능하지 않다.
[일본의 심해 잠수정 신카이6500은 수심 6500m의 해저 지역을 탐사할 수 있다. 수심 100m 해저도시 구조물은 설계할 때 참고할 만하다.]
해저 도시, 어떻게 지을 수 있나
이제 사람이 거주하는 데 필요한 설비를 고민할 차례다. 기본적인 요소는 물, 산소, 에너지다. 물은 해수담수화 설비를, 산소는 담수를 전기분해해 산소를 발생시키는 장치를, 에너지는 조력·파력·풍력 등 해양청정에너지 설비를 갖추면 된다. 개별 가구가 거주하는 해저주택 모듈도 필요하다. 이들은 모두 지상에서 건조된 뒤 해저로 옮겨 조립한다.
개별 모듈의 육상 건조는 어렵지 않다. 문제는 수중 조립이다. 숙련된 기술을 지닌 잠수부가 수심 100m로 내려가서 장시간 조립 작업을 할 수 있을까. 가능하다. 잠수병만 조심하면 된다. 잠수병은 외부 압력이 갑자기 줄어들면서 생기는 병으로 체내 질소가 혈관이나 신경, 조직에서 기포로 변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고압실에 들어가 작업했던 곳의 고압을 유지시킨 상태에서 서서히 대기압까지 줄여주는 것이 치료법이다. 쉽게 말해 신체가 압력에 서서히 적응할 수 있도록 해준다.
문제는 해저도시 구축에 필요한 수백 명의 잠수부가 100m 수심 환경에서 적응해 작업하는 시간이다. 작업 시간이 길어지면 감압 시간도 길어진다. 잠수부들은 또 헬륨과 산소를 섞은 혼합기체를 호흡하는데 한번 잠수할 때 장착할 수 있는 혼합기체의 양은 기껏해야 몇 시간 분량이다.
때문에 사람이 해야만 하는 고난도 작업 외에는 수중로봇이 해야 한다. 건축에 필요한 수중로봇은 유선장비인 ROV(Remotely-Operated Vehicle)와 무선장비인 AUV(Autonomous Underwater Vehicle)로 나뉜다. AUV는 음파나 초음파를 이용해 해저 지형 등을 측량한다. 해저도시 건설에 필요한 것은 ROV다. 조종 설비를 갖춘 선박을 통해 광통신으로 조종, 바다 속에서도 정밀하게 작업할 수 있다. 절단, 수송, 용접 등 다양한 작업에 사용한다.
수중로봇과 잠수부가 수년간 작업해 해저도시를 건설한다. 도시의 뼈대인 철골을 수중에서 먼저 구축하고 구조물 사이로 메타크릴 수지 글래스를 덮는다. 주거 공간, 발전 시설 등 개별 모듈을 조립한 뒤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는 현상을 막기 위한 작업도 필요하다. 해저 바닥에 고정하거나 물탱크를 하부에 설치하면 이를 막을 수 있다. 배수 장치와 1기압 유지를 위한 압력 조절기를 설치하면 해저도시는 제 모습을 갖출 수 있다.
사람이 살기 위한 환경을 만들려면
우선 물과 산소, 에너지가 필수적이다. 이를 육지에서 공급받을 수 있는지 여부가 중요하다. 식수와 생활수는 해수담수화 설비를 주변에 설치하면 된다. 산소는 전기분해 설비를 설치하거나 녹조류의 광합성을 활용한다.
전기에너지는 100가구가 사는 데 하루 약 300만Wh가 필요하다. 해저 케이블을 연결해 육상에서 생산된 에너지를 공급하는 방식이 현실적이다. 그러나 복수 에너지원을 사용하는 게 훨씬 안정적이다. 에너지 자급 시설을 갖춰야 한다는 얘기다. 육상 에너지를 공급받기 위한 해저케이블과 파력 및 풍력 발전 설비, 해류를 이용한 터빈 발전기 등을 고려한다.
100인 가구가 살 수 있는 해저도시는 얼마나 클까. 해저도시의 입지와 설비 조건, 기술적 요인 등에 따라 천차만별이겠지만 해저도시에 가장 근접한 시스템인 핵잠수함에서 힌트를 얻어 예상해 볼 수 있다. 핵잠수함은 160명의 승조원이 최대 6개월을 잠항해야 한다.
최근 공개된 핵잠수함 USS 미시간호는 길이 170m, 폭 12.8m로 4층의 구조로 설계됐다. 대략 면적을 8000m2라고 본다면 2400평에 해당된다. 축구장 1개의 크기다. 160명의 승조원을 40가구(1가족 4인 기준)로 가정하면 100가구는 이보다 2.5배 큰 공간이 필요하다. 약 6000평(약 2만m2)이 산술적으로 도출된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계산일 뿐이다. 적어도 실제 거주 공간의 5배 이상이 필요하다. 발전소, 생명유지장치 등 유틸리티 공간이 별도로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또 육상과 해저를 연결하는 터미널과 잠수함 정박지 등을 고려하면 더욱 많은 공간이 필요하다. 이제 해저 도시가 완성됐다. 해저 도시에서의 생활, 과연 어떨지 눈을 감고 상상해 보자.
▼관련기사를 계속 보시려면?
Intro. 해양 미션 임파서블
Part1. 해저도시 건축학
Part2. 말도 안되는 배들 4S
Part3. 바다 속으로 태평양을 건너다
Fun 2012 여수세계박람회 100배 즐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