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➊ 화학무기가 첫 등장한 제1차 세계대전. 신경가스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해 방독면을 쓰고 있다. ➋ 1994년 도쿄 지하철에 사린가스 테러가 일어나 순식간에 13명이 죽고 6000명이 부상을 입었다. ➌ 사린가스 폭탄이 담겨 있는 미사일.]
1915년 4월 22일 제1차 세계대전 중이었다. 프랑스 솜에서 연합군을 상대로 힘겨운 싸움을 하던 독일군은 전세를 역전시키기 위해 염소를 이용하기로 결심했다. 바람이 연합군의 진영으로 불기 시작하자 독일군은 염소가스통을 열었다. 불과 10분만이었다. 연합군 군인들이 순식간에 쓰러졌다. 5000명이 사망하고 1만 5000명이 부상을 당했다. 같은 해 9월 25일 연합군도 똑같은 가스로 독일군을 보복 공격했다. 본격적인 화학무기의 등장이었다. 12월에는 질식작용제인 포스젠가스가, 1917년 7월에는 수포가스가 등장했다. 이 기간에만 화학 무기 희생자가 130만 명에 달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은 물론 만주 지역에 살던 한국인들이 일본 731부대의 화학무기 생체실험에 희생된 가슴 아픈 역사도 있다.
알면 얼마든지 더 강한 화학무기를 만들 수 있다. 살상뿐 아니라 순식간에 수천 명을 잠재울 수도, 마비시킬 수도 있다. 중독 후에는 생존자의 신체에 심각한 후유증까지 남긴다. 이처럼 강력한 화학무기를 무력화시키는 해독제를 만들 수는 없을까. 하지만 쉽게 만들 수 있는 화학무기에 비해 해독제는 만들기 어렵다. 만능도 없다. 이 때문에 여러 가지 해독제를 함께 사용한다.
신경작용제는 중독되기 전부터 해독한다
화학무기는 제2차 세계대전과 함께 빠르게 늘어났다. 이때만 해도 해독제는 치명적인 급성 중독에서 병사를 구해 생존율을 높이는 방향으로 연구됐다. 하지만 이미 중독된 뒤에 해독작용을 시작하기 때문에 효과가 빠르지 않았다. 또 중독되는 순간 몸이 입는 손상이 너무 커 지금은 생존율뿐 아니라 신체 손상을 최소화 하는 방향으로 해독제를 개발하고 있다.
가장 연구가 활발한 분야는 화학무기의 대표격인 신경작용제에 대한 해독제다. 대표적인 신경작용제인 사린과 VX가스, 타분, 소만 등은 대부분 인을 포함한 유기화합물이다. 몸속에 들어오면 아세틸콜린 같은 신경전달물질을 분해하는 효소와 결합해 신경을 지나치게 흥분시켜 독성 작용을 일으킨다. 특히 타분은 휘발성이 강해서 몇 초 만에 중독을 일으킨다. 사린은 공기보다 무거워 바닥으로 빠르게 확산된다. VX는 화학물질 중 가장 독하다. 사람들이 모인 곳에 작은 양이라도 VX가스가 담긴 용기를 열어놓거나 손이 많이 닿는 곳에 묻혀놓으면 사람들은 몇 분 안에 전신 경련을 일으키며 구토와 설사를 하다 결국 숨을 쉬지 못해 죽음에 이른다. 이런 신경작용제를 어떻게 해독할까.
해독 과정은 크게 3단계로 나눠진다. 중독 전에 먹는 전처제와 중독직후에 먹는 해독제, 발작에 따른 뇌손상을 막는 보호제다. 전처제로는 피리도스티그민이라는 알약이 있다. 1991년 걸프전 때 이라크 국경에 배치된 미군이 이 약을 8시간 간격으로 복용했다. 이 약은 몸 안에 들어오면 전체 아세틸콜린분해효소의 10~30%와 미리 결합한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효소를 숨겨두는 것이다. 신경가스가 몸속에 들어와 남은 효소와 결합하면 아세틸콜린이 급격하게 늘어난다. 이때 피리도스티그민은 미리 숨겨둔 효소를 풀어 중독속도를 늦춘다.
아트로핀은 중독된 뒤에 몸 안에 넣는다. 군대에서 화생방훈련을 할 때 병사들에게 주는 주사가 바로 아트로핀이다. 겉보기에는 보통 주사기처럼 보이지만 근육이 많은 엉덩이나 허벅지에 꽂으면 바늘이 나오면서 물질이 바로 혈관으로 침투한다. 신경가스는 신경전달물질인 아세틸콜린의 분해를 막아 결과적으로 아세틸콜린의 양을 늘린다.
아세틸콜린은 내장, 소화관, 혈관 등에 많은 평활근과 심장 근육, 또 분비물을 조절하는 선세포 등에 있는 수용체에 달라붙어 신경 신호를 전달한다. 따라서 아세틸콜린이 많아지면 분비물이 늘고 근육이 수축하며 심장이 빨리 뛴다. 아트로핀은 아세틸콜린 수용체(무스카린성 수용체)와 미리 결합해 이곳으로 가는 신호를 차단해 몸을 지킨다.
해독제에 넣는 또다른 물질이 옥심이다. 이는 아세틸콜린분해효소에서 신경가스를 떼어내고 자신이 대신 결합한다. 옥심이 신경가스보다 효소에 더 잘 달라붙기 때문이다. 짝을 잃은 신경가스가 방황하다 몸속의 철분 등과 결합해 독성을 잃으면 옥심은 효소의 손을 놓아 제 역할을 하게 한다.
마지막으로 넣는 것이 뇌 보호제인 다이제팜이다. 신경가스로 인해 과도하게 늘어난 아세틸콜린은 뇌로 들어가 중추신경계를 흥분시켜 발작을 일으킨다. 이 때 글루타민산같은 흥분성 아미노산이 많이 나와 세포의 칼슘 통로를 망가뜨려 세포를 죽게 한다. 뇌세포를 죽이는 것이다. 다이제팜은 뇌에 있는 GABA 신경계를 활성화한다. GABA 신경계는 흥분된 신경을 진정시켜 발작을 멈추게 하고 뇌를 보호한다.
소만에 대응할 완벽한 옥심을 찾아
하지만 완벽한 해독제는 없다. 피리도스티그민도 아세틸콜린분해효소의 작용을 30% 정도 막기 때문에 메스꺼움을 느끼고 설사를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옥심의 경우, 신경가스인 소만이 들어오면 효력이 급격하게 떨어진다. 옥심이 소만과 결합하고 있는 효소를 잡아끌면 소만이 그 손을 가차없이 잘라버리기 때문이다. 신경가스가 효소를 안 놔주는 셈이다.
이 때문에 미국과 체코 등 세계의 국방과학연구소는 옥심의 단점을 보완하고 기능을 강화하는 데 연구를 집중하고 있다. 미국은 옥심과 효소와의 친화력을 2배나 높인 TMB-4와 MMB-4라는 물질을 개발했다. 체코도 HI-6라는 물질을 선보였는데 기존의 옥심보다 효소와의 결합력을 높였다. 하지만 아직까지 소만의 칼부림에 대응해 옥심의 팔을 보호할 해독제는 개발되지 않았다.
최근에는 아세틸콜린분해효소와 유사한 구조를 가진 물질을 혈관에 직접 주사하는 방법이 연구되고 있다. 이 물질이 혈관을 타고 돌아다니다가 과도하게 늘어난 아세틸콜린을 직접 분해하는 방법이다. 이 물질은 부티릴콜린분해효소다. 간에 많기 때문에 몸속에 넣어도 부작용이 없다.
우리나라는 피부에 붙이는 패치형 해독제를 개발 중이다. 패치형은 몸안에서 아세틸콜린의 양이 일정하게 유지되도록 적당하게 약물을 넣는다. 따라서 해독제를 먹은 뒤 아세틸콜린의 양이 갑자기 늘고 줄면서 생기는 부작용이 없다. 여러 약물을 합쳐 하나의 패치로 만들기 때문에 사용도 간편하다. 현재 전기가오리로부터 아세틸콜린분해효소를 분리 정제해 동물실험을 마치고 임상시험을 준비 중이다.
패치에 들어가는 약물은 1987년 미국이 개발한 MARK-1 주사형 해독제와 비슷하다. MARK-1은 아트로핀과 다이제팜을 주사기 안에 함께 넣었는데, 따로 넣었을 때보다 아트로핀의 흡수가 적게 된다는 단점이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연구도 진행 중이다. 이스라엘도 피소스티그민과 스코폴아민을 이용한 패치형 해독제를 연구하고 있다. 피소스티그민은 피리도스티그민과 같은 역할을 한다. 스코폴아민은 멀미약 성분과 같다. 아세틸콜린 수용체에 결합해 다른 세포로 신호를 전달하는 것을 막는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멀미 패치를 붙이면 당시의 기억이 잘나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아세틸콜린이 기억력을 유지시켜 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 패치는 약효가 24시간 지속돼 반감기가 짧은 약물에 효과적이다. 현재는 임상시험을 끝내고 독일계 제약회사에 특허를 넘긴 상태다.
해독제가 없는 수포작용제
수포가스는 온 몸에 커다란 물집을 낸다. 황색을 띠고 겨자냄새를 낸다고 해서 겨자가스라고도 부른다. 수포가스는 폐를 손상시키고 피부에 심한 화상을 일으킨다. 면역기능이 떨어져 수 시간 내지 수일내에 사망한다. 생존한다 하더라도 피부암 등 심각한 부작용을 남긴다. 1980년에서 1988년까지 이어진 이란과 이라크전쟁에서 이라크가 사용해 이란과 이라크 병사 3000명이 사망하고 현재까지 최소 5만 5000명이 치료를 받고 있다. 그 때 사용한 수포가스만 1만 8000t, 사린 종류의 가스가 740t으로 알려졌다.
수포가스의 화학 구조를 보면 양 손에 염소기(Cl-)가 있다. 염소기는 물속에 들어가면 두 개의 칼이 돼 피부세포를 죽인다. 이 때 피부세포의 DNA는 모든 에너지를 끌어당겨 세포를 복구하다 결국 힘을 다 써 죽고 만다. 세포가 죽어가면서 이온통로에 문제가 생겨 물이 차고 피부의 각질과 표피, 표피와 진피사이에 수포가 생긴다. 세포가 죽고 나면 마치 딱지가 앉듯이 수포 자리가 까맣게 변한다. 세포가 죽지 않았다 하더라도 DNA에 손상을 입었기 때문에 피부암으로 변하는 경우가 많다.
불행히도 수포작용제는 해독제가 없다. 이미 칼로 세포를 베어버린 뒤라 잘린 세포를 다시 붙일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화상치료제인 플람마진 크림이 유일하다. 하지만 이 크림 역시 2차 감염방지를 위한 항생제일 뿐 치료효과는 거의 없다. 캐나다에서는 아르기닌이라는 치료용 아미노산을 포함한 크림을 만들고 있다. 아르기닌은 평소에는 양이 충분하다가 감염이나 화상 등 상처를 입으면 그 수가 줄어든다. 세포를 보호하는 데 효과가 뛰어난 것으로 밝혀져 최근 수포가스치료제로 주목받고 있다. 미국이 개발한 TPFPAE는 차외선차단제같이 피부에 보호막을 씌운다. 수포작용제뿐 아니라 피부 침투를 통해 독성을 낼 수 있는 신경가스를 차단한다. 하지만 병사들이 흘린 땀에 의해 보호막이 손상될 수 있다.
[질식가스인 포스젠에 노출된 군인.]
독성은 없애면서 재빠르게 반응하는 혈액해독제
혈액작용제로 대표적인 것이 청산가리로 많이 알려진 청산이다. 청산가리인 시안화칼륨이 산과 반응하면 시안화수소를 만든다. 이 가스는 방독면을 통과하기 때문에 조금만 노출시켜도 수분 내 사람들을 사망에 이르게 한다. 시안화수소는 체내에서 치토크롬옥시다아제라는 효소와 결합한다. 이 효소는 세포 내에서 에너지를 만드는 미토콘드리아에 산소를 전달하는데, 청산과 결합하게 되면 세포에 산소를 공급하지 못한다.
해독제로는 아초산나트륨과 티오황산나트륨을 쓴다. 아초산나트륨은 시안화수소보다 효소와 더 빨리 결합해 독의 작용을 방해한다. 티오황산나트륨은 시안화수소를 티오시안산이라는 해가 없는 물질로 바꾼다. 이 물질은 배설이 잘 되기 때문에 독성을 몸 밖으로 빼내는 역할도 한다. 문제는 해독제를 정맥에 주사해야 한다는 점이다. 시안화수소의 반응 속도는 화학무기 중 가장 빠르다. 중독 작용 역시 빠르기 때문에 해독제도 빨라야 한다. 하지만 전쟁터에서 정맥을 찾아 주사하기란 쉽지 않다.
이 때문에 최근에는 메타오글로빈 형성체를 주사하는 방법을 개발하고 있다. 혈액 속에서 산소를 운반하는 헤모글로빈의 10~20%를 메타오글로빈으로 바꿔 유지하는 방법이다. 산소를 풍부하게 머금은 헤모글로빈에는 철이온이 2가(Fe2+, 전자가 2개 빠져나간 상태)로 붙어 있다. 메타오글로빈은 헤모글로빈의 철이온이 3가(Fe3+)로 존재하는 상태다. 이 상태가 되면 산소를 운반하지 못한다.
시안화수소가 몸에 침입했을 때 해독제를 주사하면 산소가 풍부한 헤모글로빈을 메타오글로빈 상태로 만들어 숨겨둔다. 독이 다른 물질과 모두 반응하고 나면 메타오글로빈을 다시 헤모글로빈으로 바꿔 숨을 쉴 수 있게 한다. 근육주사로도 방어율이 높기 때문에 긴박한 상황에서 활약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10~20%라 할지라도 메타오글로빈이 생기는 순간 정상적인 산소 공급이 줄기 때문에 호흡곤란이나 청색증이 생길 수 있다.
질식가스에 노출됐을 때는 기도를 확보하는 해독제를
대표적인 질식가스인 포스젠과 PFIB는 눈과 기도를 자극하고 폐에 물을 가득 차게 해 호흡을 마비시켜서 ‘지상의 익사자’라고 부른다. 포스젠은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군이 사용해 전쟁 희생자의 80%가 이 가스로 죽었다. PFIB는 최근에 알려진 질식가스로 같은 시간내 독성물질이 포스젠보다 10배나 더 많이 나온다. 따라서 극히 적은 양으로도 사람을 무력화시키는데다 방독면을 통과하기 때문에 더욱 위협적이다. 질식가스 역시 해독제는 없지만 응급처치를 위한 약은 있다. 질식가스에 중독되었을 때는 기본적으로 기도를 확보하고 호흡할 수 있게 돕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따라서 기관지 확장제와 경련억제제를 사용한다.
화학무기는 ‘가난한 나라의 핵무기’라 불린다. 그만큼 짧은 시간 내에 많은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살상무기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또 핵무기에 비해 대량생산하는 비용이 적고 만들기 쉽다. 이 때문에 세계 각국은 더 세고 치명적인 화학무기에 대한 연구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있다. 최근 러시아에서는 ‘초크노블’이라는 화학가스를 개발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방독면을 뚫고 순식간에 목을 죄는 듯 호흡곤란을 일으킨다고 한다. 각국은 이에 발 빠르게 해독제 연구에 착수했다. 더 강한 화학무기를 만들고 그 화학무기를 무력화시키는 해독제의 뜨거운 전쟁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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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dge. 뇌출혈부터 암까지 뱀독으로 정복한다
Part3. 독과 해독제의 뜨거운 전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