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의 종류는 3000여종으로 독사는 비페리데과에 속하는 살모사와 방울뱀, 앨라피데과에 속하는 코브라, 맘바 및 바다뱀이 있다. 뱀독에는 50~60종의 성분이 있는데 이들은 주로 단백질 또는 펩타이드다. 뱀독 성분은 종에 따라 차이가 나며, 심지어 같은 종이라도 성장하
는 지역에 따라, 채취하는 시기에 따라 차이가 있다.
이들 뱀독은 주로 신경계에 영향을 미치는 신경독, 혈관과 혈구를 파괴하는 용혈독, 근육을 죽이는 독으로 나눈다. 살모사에 물리면 뱀독이
혈관을 타고 몸에 퍼지게 되는데 이 독성분을 중화시키는 것이 항독소다. 항독소는 단백질인 뱀독을 말이나 양에 주사한 후 뱀독에 대한 항체를 분리 정제해 만든다. 이를 발견한 사람이 알리스테어 레이드박사다.
1952년 말레이시아 페낭 종합병원에서 근무하면서 바다뱀과 말레이시아 살모사에 물린 환자들을 대상으로 항독소를 연구해 세계적인 학자로 떠올랐다. 그는 1961년 페낭에 뱀독연구소를 설립하고, 1962년 뱀독에 대해 관심 있는 과학자와 의사들이 참여하는 국제독성학회를 창립했다. 1963년에는 영국 리버풀 열대의과대학에 다시 뱀독연구소를 만들어 뱀독 성분을 분석하는 효소면역분석법을 개발했다. 이 공로로 이 연구소는 세계보건기구(WHO)의 항뱀독 연구센터로 지정되었으며, 연구소 이름도 알리스테어 레이드 뱀독연구소로 바꾸었다.
뱀독, 혈전치료제로 각광받다
당시 뱀독에는 피떡인 혈전을 녹이는 물질이 있다고 알려져 있었다. 뱀에 물린 사람은 죽어도 피가 응고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레이드 박사는 이를 이용해 살모사로부터 항응고제인 알빈을 정제해 혈전으로 정맥이 막혔을 때 쓰는 혈전증 치료제를 만들었다. 우리 몸은 상처가 나면 상처부위에 혈소판이 붙고 섬유소원(피브리노겐)이 트롬빈의 작용을 받아 섬유소(피브린)를 만든다. 이 섬유소는 혈소판 사이를 채워 혈전을 만들고 혈액을 응고시켜 더 이상의 출혈을 막는다. 하지만 뇌나 심장으로 가는 혈관이 혈전에 의해 막히면 뇌졸중이나 심장마비를 일으킬 수 있는데 이때 알빈 같은 혈전용해제를 쓰게 된다.
뱀독을 이용해 혈전용해제를 만드는 연구는 비페리데과와 앨라피데과에 속하는 독사들의 독을 중심으로 1970년대부터 활발히 진행됐다. 이 독에는 혈전과 혈소판이 생기는 것을 막고 혈액의 응고를 막으며 섬유소원을 분해하는 효소가 많다. 이 때문에 이 효소들은 혈전과 혈소판으로 막힌 혈관을 치료하는 약으로, 혈장섬유소원으로 뇌의 모세혈관이 막혀 생기는 급성뇌일혈 치료제로 주목받고 있다. 효소는 트롬빈유사효소, 섬유소원 분해효소, 프라스미노젠 활성효소가 있는데 이 중트롬빈 유사효소에 대한 연구가 가장 많다. 앞서 말한 알빈과 브라질 살모사로부터 분리한 바트록신, 미국 방울뱀에서 분리한 크로탈라제 모두 트롬빈 유사효소다. 이미 뇌졸중, 정맥 혈전증, 뇌경색, 심근경색, 말초동맥혈전증의 치료제로 연구하고 있다.
[➊ 살모사 뱀독에서 분리한 섬유소분해효소를 농도별로 나눠 섬유소가 얼마나 분해되었는지를 비교했다. (A)0.5 (B)0.4 (C)0.3 (D)0.2 (E)0.1 (F)0.05mg/ml. 농도가 가장 높은 A가 섬유소를 가장 많이 분해한 것을 알 수 있다. ➋ 살모사 뱀독에서 분리한 섬유소분해효소를 생쥐에 주사하자 피부 안쪽의 혈관 조직이 파괴됐다.]
특히, 알빈은 뉴로바이올로지컬 테크놀로지사에서 개발한 비프릭스(안코드)라는 이름으로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임상연구 허가를 받은 상태다. 국내 살모사는 비페리데과에 속하는 까치살 모사, 살모사 및 쇠살모사 3종류로 이들 뱀독에는 출혈독, 용혈독, 괴사독 및 신경독을 비롯한 여러 효소와 생물활성 물질이 존재한다. 특히 살모사의 독은 다른 뱀독과 비교해 섬유소와 섬유소원의 분해 능력이 뛰어나다. 그 중에서도 출혈독은 금속 단백분해효소를 가지고 있는데 모두 트롬빈유사 효소로 혈전과 혈소판이 생기는 것을 막는다. 우리 연구실도 중국 양쯔강 지역에서 서식하는 살모사의 뱀독에서 혈전을 용해하는 금속단백분해효소를 분리 정제해 그 특성을 조사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흑색종, 유방암, 난소암 등에 효과
최근 뱀독은 암을 비롯한 여러 가지 질병을 치료하는 새로운 신약으로도 연구 개발되고 있다. 인도코브라 뱀독에서 분리한 포스포리파제A2라는 효소는 피부에 발생하는 흑색종을 죽인다. 흑색종은 멜라닌 색소를 만들어 내는 피부 세포인 멜라노사이트에 암이 생기는 병인데 이 효소가 암세포의 세포막 인지질을 파괴해 종양을 죽인다.
또 서던 코퍼헤드로 불리는 미국텍사스살모사의 독에서 추출한 단백질은 동물실험 결과 유방암 세포의 성장을 70%나 억제시키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 난소암이나 방광암, 흑색종에도 적용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종양이 수를 늘리고 다른 기관으로 퍼지기 위해서는 혈액을 통해 산소와 영양분을 공급받아야 한다. 따라서 그 통로인 혈관을 만드는 작업은 필수다. 이 때 혈관을 만드는 것을 돕는 물질이 인테그린이라는 단백질이다. 텍사스살모사에서 분리한 단백질은 인테그린 단백질과 수용체가 만나는 것을 방해해 혈관형성을 억제한다. 이를 통해 종양의 수가 늘어나는 것을 막고 전이도 차단하는 것이다.
또 코브라 뱀독에서 분리한 단백질은 백혈구의 면역 활동에 보조적인 역할을 하는 물질을 일시적으로 고갈시켜 급성염증을 지연시키는 효과가 있다.
진통작용도 탁월하다. 남미에 서식하는 살모사의 독에서 분리한 니록신은 엔돌핀을 활성화킨다. 코브라 독에서 신경을 마비시키는 코브로톡신 역시 통증을 마비시키는 효과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두 종류 모두 1970년 미국식품의약청에서 감염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나 판매가 금지됐다. 최근 킹코브라 뱀독에서 분리한 하날제식은 부작용 없이 사용할 수 있는 새로운 진통제로 모르핀보다 효과가 2700배 좋은 것으로 알려졌다.
뱀독은 심장질환, 혈관질환, 통증 및 암 등 여러 질병에 새로운 치료제로 사용할 수 있는 매력적인 물질이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임상연구가 많지 않아 현재 이용가능성이 높지 않다. 뱀독에 대한 집중적인 연구가 진행된다면 신약개발의 중요한 소재가 될 수 있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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