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창업 이후 매년 2배 정도 급속한 성장을 해온 델컴퓨터사.이곳은 컴퓨터 제조와 판매,인터넷 전자상거래를 하는 기업이다.델컴퓨터의 성공열쇠는 간단하지만 아무나 쉽게 실천하지 못하는 사업전략에 있다는데 그것은 무엇일까.
미국 청소년들의 우상이었던 제임스 딘과 세기의 미녀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 주연의 ‘자이언트’란 영화에서 제임스 딘은 무일푼이며 하는 일마다 제대로 되는 일 없는 반항아로 지낸다. 그러다 어느날 자신의 척박한 땅에서 석유가 펑펑 쏟아져 나와 갑자기 텍사스에서 최고의 갑부가 된다.
벤처기업가 마이클 델도 대학 1학년때 1천달러로 회사를 창업해 35살의 나이에 텍사스 제일의 부자가 된 사나이다. 그가 제임스 딘과 다른 점은 우연히 쏟아진 ‘오일달러’가 아니라 남들과 다른 방식으로 컴퓨터를 제조해 판매하는 사업을 벌여 자신의 노력을 통해 돈을 벌었다는 점이다.
10년동안 주가가 3백50배로 껑충
먼저 마이클 델이 세운 델컴퓨터가 어떤 회사인지 알아보자. 경제주간지 ‘비즈니스위크’는 1998년 11월 정보기술(IT)분야 주요 기업들의 수입과 성장률, 그리고 주식배당금 등을 조사했다. 여기서 1백대 우량기업을 선정한 결과 델컴퓨터가 1위를 차지했다. 마이크로소프트, 인텔, 컴팩 등 쟁쟁한 기업들을 제치고 델컴퓨터가 가장 우량한 기업으로 꼽힌 것이다. 작년초 ‘월스트리트저널’이 미국내 1천개 기업을 대상으로 주식투자 수익률을 조사한 결과에서도 델컴퓨터는 1위에 올랐다. 델컴퓨터의 주식투자 수익률은 무려 79.7%에 달했다. 1988년에 델컴퓨터에 투자한 1천달러(약 1백10만원)가 10년후인 1998년에는 35만달러(약 3억9천2백만원)로 늘어났다는 얘기다. 10년동안 주가가 3백50배나 뛰었고 같은 기간 회사 매출규모는 역시 1억5천만달러(약 1천7백억원)에서 1백80억달러(약 20조원)로 수직상승했다.
델컴퓨터는 PC시장에서 컴팩 다음인 세계 2위 업체다. 작년에는 2백53억달러의 매출을 올렸고 ‘포천’지가 선정한 5백대 기업중 78위에 올라 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이 회사의 인터넷 전자상거래 분야가 세계에서 가장 많은 매출을 올리고 있다는 점이다. 하루 2백만명 이상의 고객이 이 회사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접속해 매일 2천만달러 어치의 컴퓨터 제품을 온라인으로 구입한다. 세계 최대의 인터넷서점인 아마존이나 포탈사이트 야후, 경매사이트인 e베이나 바이닷컴 등이 전자상거래 사업을 벌이고 있지만 판매량에서 델컴퓨터를 도저히 따라올 수 없는 지경이다.
델컴퓨터를 창업한 마이클 델은 재산이 2백10억달러(약 23조5천억원)로 미국에서 다섯손가락 안에 드는 부자다. 포천지가 선정한 5백대 기업의 최고경영자(CEO) 가운데 가장 젊으며 컴덱스 같은 전시회때마다 단골 연설자로 초청되는 미국 정보통신업계를 이끌어 가는 영향력 있는 인물로 손꼽힌다. 그가 1998년 1년간 받은 보수는 봉급과 보너스, 스톡옵션을 합쳐 무려 14억달러(약 1조7천억원)나 된다. 물론 이중에는 서류상으로만 잡혀있는 스톡옵션도 포함돼 있지만. 그는 “하는 일에 비해서 수입이 너무 많은 것이 아니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내가 만약 컴팩의 CEO라면 더 많이 받았을 것”이라고 익살을 떨었다. 아무튼 그는 텍사스주 오스틴의 3만3천평방피트(약 1천평)나 되는 대저택에서 아내 수잔, 그리고 네 아이와 함께 행복하게 살고 있다.
전략은 하나 ‘직접 팔아라’
델컴퓨터의 성공비결은 한마디로 ‘직접 판다’(Be Direct)는 것이다. 중간도매상이나 소매상을 거치지 않고 PC제조업체가 고객으로부터 직접 주문을 받고 물건을 만들어 납품한다. 전세계에 흩어져있는 델컴퓨터의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면 직원들이 친절하게 제품을 안내해주고 주문을 받는다. 인터넷 온라인주문도 직접판매방식의 주요한 수단이 된다. 따라서 유통업체의 마진을 없애고 고객의 취향에 맞게 물건을 제조할 수 있으며 부품에 대한 재고도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다. 또한 유통비용이나 마케팅비용, 재고관리비용을 줄일 수 있으므로 가격을 싸게 해 고객 만족도를 높일 수 있다. 애프터서비스와 제품 신뢰도가 관건인데 델컴퓨터는 처음부터 이 부분에 신경을 써서 고객들로부터 신용을 얻었다. 막상 알고 보면 별로 대단한 전략이 아닌 것 같지만 이것이 PC업계에서 성공하도록 한 핵심이다. 델컴퓨터의 성공에 자극받아 다른 업체들이 이 방식을 모방했지만 아무도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전략은 간단해도 실천하기는 무척 어려운 모양이다.
델은 그의 저서 ‘직접 팔아라’(Direct from Dell)에서 “나는 어릴 때부터 불필요한 단계를 없애는 것에 관심이 많았다”고 말한다. 8살이던 초등학교 3학년 시절 그는 “간단한 시험만 통과하면 고등학교 졸업장을 딸 수 있다”는 잡지 광고를 보고 9년간의 학교생활을 건너뛰기 위해 시험을 보기도 했다. 12살 때는 동네사람들이 우표를 수집하는 것을 보고 우표중개인을 거치지 않고 직접 우표잡지에 광고를 실어 판매함으로써 2천달러의 수입을 올렸다. 델의 ‘다이렉트사업’이 처음 성공하는 순간이었다. 이때 그는 아이디어만 좋으면 얼마든지 돈벌이가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16살 때는 보다 지능적인 사업수완을 발휘했다. 여름방학 아르바이트로 신문구독예약을 받았는데 다른 사람들은 전화번호부를 뒤져 아무에게나 구독을 권유한데 비해 그는 ‘어떤 사람들이 신문구독을 신청하는지’ 분석했다. 그는 갓 결혼한 사람이나 새집에 입주한 사람이 주로 신문을 구독한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그래서 친구들을 고용해 법원마다 다니면서 신혼부부들의 주소를 알아냈고 주택융자를 신청한 사람들의 명단도 파악했다. 남들보다 훨씬 많은 구독예약을 받은 것은 물론이다. 그는 여름방학과 몇달간의 주말 아르바이트로 1만8천달러나 벌어 BMW 승용차를 샀다. 이 돈은 델이 다니던 고등학교의 교사 1년치 월급보다 많았다.
델컴퓨터의 종자돈, 1천달러
델은 어릴 적부터 컴퓨터 마니아였다. 15살 때 생일선물로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애플컴퓨터를 우체국에서 소포로 찾아오자마자 그는 자기 방에 들어가 PC를 분해했다. 컴퓨터 내부가 어떻게 생겼는지 너무나 궁금했기 때문이다. IBM이 PC를 생산하자 그는 곧바로 IBM으로 교체했고 디스크드라이브, 모뎀, 모니터 등 새로운 부품이 나올 때마다 자신의 PC에 붙였다. 자동차를 개조하듯이 PC를 업그레이드시켰고 가끔씩 약간의 이익을 남기고 주위에 팔기도 했다. 또한 비용을 줄이기 위해 컴퓨터 가게들을 다니면서 부품을 직접 구입하고 컴퓨터를 뜯어고치다 보니 웬만한 컴퓨터 제조공정을 저절로 익히게 됐다. 그의 방은 기계공구점처럼 어지러웠다.
그는 컴퓨터가게를 다니면서 커다란 의문을 가졌다. 당시 IBM PC는 3천달러에 팔렸는데 부품가격은 6백-7백달러에 불과했다. 판매상들은 보통 2천달러에 PC를 구입해 소비자들에게 1천달러를 남기고 팔았다. 부품들은 대기업의 독점이 아니어서 얼마든지 구할 수 있었다. 델은 무수히 많은 컴퓨터를 뜯어보고 업그레이드 해왔기 때문에 부품을 별도로 구해서 중간판매상을 거치지 않고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한다면 엄청난 이익을 남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와! 엄청난 돈벌이가 있네.” 그러나 아쉽게도 델의 부모는 자식이 의사가 되기를 원했기 때문에 그는 텍사스대학으로 의학공부를 하러 떠나는 수밖에 없었다.
대학생활은 그에게 따분함만 안겨주었다. 그는 수업을 팽개치고 학교 기숙사에서 PC를 조립해 친구나 다른 고객들에게 판매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기숙사가 좁아서 더 이상 사업하기 힘들게 되자 그는 친구와 함께 사무실을 얻어 독립했다. 부모님의 반대가 있었지만 그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그는 1년도 마치지 못하고 대학을 자퇴했다. 1984년 5월 당시 텍사스주에서는 회사를 세우려면 초기자본금 1천달러가 필요했다. 동료들이 학기말시험을 준비하고 있던 그때 그는 단돈 1천달러로 델컴퓨터를 창업했다.
처음에는 3명이 전화로 주문을 받아가면서 드라이버를 들고 탁자에 앉아 컴퓨터를 조립했다. 당시 PC업계는 수요와 공급이 불균형을 이뤄 이 사업을 하기엔 최적의 시기였다. 공급이 넘쳐 재고가 쌓이면 싸게 물건을 사두었다가 PC공급이 딸릴 때 재고컴퓨터에 드라이브나 메모리만 추가해 업그레이드시킨 다음 비싸게 판매하는 수입이 쏠쏠했다. 첫해 매출은 6백만달러. 그러나 회사를 세운지 1년만에 델은 자신의 회사에서 직접 컴퓨터를 설계해 만드는 편이 전망이 밝다는 사실을 알았다. “IBM보다 더 성능이 뛰어난 컴퓨터를 싼 가격에 만든다”는 것이 그의 목표였다. 그러자면 중간유통비용이나 재고부담을 철저히 줄이는 다이렉트방식으로 승부하는 수밖에 없다.
델컴퓨터는 창업부터 16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매년 2배 가까운 고속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마치 가속이 붙은 자전거가 내리막길을 질주하는 것처럼. 지난해 매출액이 2백억달러를 넘어섰고 전세계에서 수만명의 직원이 근무하는 회사로 성장했지만 델컴퓨터의 사훈 ‘정상을 향해 질주하라’(Direct to the Top)는 여전히 변함없다.
성장 비결은 역시 다이렉트판매방식. 고객이 인터넷이나 전화로 중앙처리장치, 메모리, 디스크드라이브, 모니터 등을 원하는 사양대로 주문하면 1주일 내에 제품이 집이나 사무실로 배달된다. 고객이 주문한 제품은 아시아의 경우 말레이지아 페낭, 미주지역은 미국 오스틴, 유럽 중동은 아일랜드 리메릭공장에서 제품이 만들어진다. 제품모델이 몇가지로 제한된 다른 회사에 비해 고객의 선택폭이 넓다는 것이 델컴퓨터의 장점. 다이렉트 판매로 이뤄지기 때문에 매장이 따로 필요 없어서 절감된 유통비용은 고스란히 고객들에게 돌아간다. 델컴퓨터가 경쟁사에 비해 12% 가량 저렴한 이유다.
1994년부터 인터넷에 주목
델컴퓨터는 다른 회사들이 인터넷에 무관심했던 1994년에 자체 홈페이지(www.dell.com)를 개설할 정도로 일찍부터 인터넷에 주목했다. 인터넷을 통해 고객들의 제품에 대한 선호도를 조사하고 무엇을 불만으로 생각하는지를 파악해 제품생산에 반영했다. 그리고 마침내 1996년 6월 인터넷상으로 데스크탑과 노트북 판매를 개시했다.
인터넷 전자상거래를 시작한 처음부터 주문이 쏟아져 들어온 것은 아니었다. 문제는 내부에 있었다. 직원들조차 인터넷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고 “온라인으로 누가 비싼 PC를 살까”하는 의심을 가졌다. 그래서 델은 전사적인 인터넷 캠페인을 벌였다. “이제부터 우리가 생산하는 모든 것, 가령 명함이나 박스 편지 등에 모두 www.dell.com이 찍혀 있어야 한다.” 사원 전체가 인터넷을 능숙하게 다루도록 인터넷대회를 열었고 부서장들에게는 인터넷으로 물건을 구입하라고 권했다. 사원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에는 어디나 “마이클이 원하는 것은 여러분이 인터넷을 아는 것이다”란 포스터를 붙였다. 이렇게 사내에서부터 인터넷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면서 고객들에 대한 자세가 변화되고 매출도 오르기 시작했다.
다이렉트전략의 핵심은 철저한 재고관리에 있다. 델컴퓨터는 평균 8일치 이하의 재고만 갖고 있다고 한다. 다른 PC업체들이 부품업체에 “열흘에 한번 1만개씩 부품을 배달해주세요”라고 말한다면 델은 “내일 아침에 우리가 필요한 부품은 9천7백62개입니다. 오전7시까지 7번문으로 배달해주세요”라고 말한다. 이처럼 정확한 재고관리는 주문형PC 생산에 따른 수요의 정확한 파악과 고객들의 취향에 대한 제대로 된 정보를 전제로 하고 있다.
1993년 델컴퓨터의 매출은 29억달러였고 재고는 2억2천만달러였는데 4년후 매출은 1백23억달러로 성장했지만 재고는 여전히 2억3천만달러에 머물렀다. 부품이나 완제품의 재고가 적을수록 기업의 재정상황은 건전해진다. 또 컴퓨터 부품은 시간이 지날수록 가격이 하락하기 때문에 재고를 줄이면 원가를 절감할 수 있다. 가령 8일치 재고만 갖고 있는 델에 비해 경쟁업체들은 25일치 재고와 유통망에서 30일을 허비하고 있어 재고부담이 47일이나 차이가 난다. 이것만으로도 제품가격을 6%나 떨어뜨릴 수 있다고 한다. 또 비슷한 시기에 신제품을 개발한 경우 재고부담이 없다면 경쟁업체보다 한달반이나 먼저 신제품을 출시할 수 있다.
델컴퓨터는 직접판매방식의 허점을 보완하고 고객의 신뢰감을 높이기 위해 제품을 사용해보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한달 이내에 반품할 수 있는 환불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또 애프터서비스는 전화만 하면 24시간 안에 기술자가 직접 고객을 방문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이와 함께 모든 판매사원에게 자신의 PC는 직접 설치하도록 지침을 내려 고객들의 질문에 막히지 않고 답변하도록 경험을 길러주었다.
고객이 OK하는 것, 쉽고 실용적인 것
지금은 세계적인 업체로 성장했지만 델컴퓨터도 창업 후 10년동안 몇차례 위기가 닥쳐왔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이런 위기들 모두가 다이렉트방식을 무시하고 경쟁업체들을 따라가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었다.
1989년 델컴퓨터는 메모리칩 재고 때문에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PC주문이 밀려들자 미리 많은 양의 메모리칩을 확보한 것인데 얼마 안가 칩가격이 폭락하고 제품이 256K에서 1M로 향상되자 256K는 쓰레기가 되고 말았다. 하는 수없이 15센트에 산 메모리칩을 고작 1센트만 받고 팔아 넘겼다.
두번째 시련은 고객의 요구를 무시하고 기술자들 위주로 신제품을 개발한 것이 화근이었다. 1989년 델컴퓨터는 ‘올림픽’이란 암호명으로 비밀리에 신제품을 개발했는데 여기에는 디스크나 그래픽 같은 뛰어난 기술이 있었지만 고객들의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고객들은 “그래서요? 우린 그런 고급기술보다 훨씬 쉽고 실용적인 것을 원하는데요”라고 말했다. 결국 델컴퓨터는 올림픽이 세상에서 빛도 보기 전에 제품생산을 포기하고 말았다.
1993년에 델컴퓨터는 ‘컴USA’나 ‘서킷시티’ 같은 전자제품 슈퍼스토어와 손잡고 소매시장에 진출했다. 초창기부터 표방했던 다이렉트판매방식을 무시한 것인데, 델은 1년후 그 잘못을 인정하고 소매시장에서 철수했다. 연말연시를 맞아 ‘월마트에서 델PC를 판매한다’고 대대적인 광고를 한지 몇달만이었다. 델은 이후 다이렉트방식에 역행하는 사업전략은 절대로 채택하지 않고 있다.
벤처기업이 훌륭한 기술과 좋은 아이디어로 화려한 출발을 하는 경우는 종종 있다. 그러나 회사가 커지고 매출이 늘어나고 조직이 복잡해지면 창업자가 더 이상 감당하지 못하고 물러나거나 급작스럽게 회사경영이 악화되는 사례를 흔히 본다. 마이클 델은 대학 기숙사에서 친구와 함께 회사를 창업하던 초기부터 매출 2백억달러가 넘는 대기업이 될 때까지 16년간 변함없이 최고경영자로서 델컴퓨터의 고속성장을 이끌어왔다. 이것은 델이 시대의 변화에 발빠르게 적응하고 시대를 앞서서 변화를 주도해올 정도로 능력을 지닌 사람이었다는 것을 증명해준다.
델은 “고등학교에서는 사업을 어떻게 시작하고 기업체를 어떻게 운영하는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나는 회사를 세운 후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친 후에야 그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어떤 기자가 "델이 앞으로 언제까지 고속성장을 계속할 것이냐"고 물어보자 그는 "전세계적으로 PC사용률과 보급률은 아직 낮은 수준" 이라며 "우리가 만약 코카콜라처럼 50%의 시장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면 몰라도 아직은 9%에 불과하다"고 답변했다.순박하게 보이는 텍사스 출신이지만 배짱과 야심만은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뒤질게 없는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