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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2. 마법의 양탄자, 차세대 도시의 공통점은?

차세대 도시의 공통점은?



“침대는 가구가 아닙니다. 과학입니다.”

1990년대 이 광고문구로 히트 쳤던 모 회사는 지금도 침대 공학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사람이 누웠을 때 각 부위별로 하중이 어떻게 분포하는지, 이때 진동이 어떠한 형태로 흡수되는지 등을 실험한다. 잠자는 자세에 따라 부위별로 압력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감지해 스스로 변화하는 기술까지 개발했다. 가장 편안한 잠을 선사하는 비결, 바로 쿠션(매트리스)에 있기 때문이다.

쿠션을 만들어 공기를 저장하거나, 이동을 하거나, 충격을 줄이는 자연의 지혜를 인류는 그대로 보고 배웠다. 시속 40km이상으로 달리던 자동차가 충격을 받았을 때 순식간에(약 0.06초) 부풀어 승객을 보호하는 ‘에어백’과 아스팔트에서 달릴 때 발과 다리에 가해지는 충격을 줄여주는 운동화의 ‘공기깔창’, 좀 더 풍만하고 아름답게 보이기 위해 공기를 채워 옷 안에 넣는 ‘보정속옷’ 등은 더이상 놀랍지 않다.

과학자들은 한걸음 더 나아가 쿠션을 사람이 들어갈 수 있을 만큼 커다랗게 만들어 바다를 건너거나 집을 짓거나, 공중도시를 만들려는 야심찬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이 중에는 이미 세상에 태어난 것도 있다.






땅, 물, 얼음 가리지 않는 쿠션 배

윙윙~ 바람소리와 함께 건물이 들썩거리며 일어났다. 건물 아래에서 거대한 풍선이 점점 커지다가 빵빵해졌다. 프로펠러가 휙휙 돌아가자 건물이 꿈틀꿈틀 기어가기 시작했다. 기이한 자동차가 다 있다는 생각이 들 무렵, 강변까지 도착한 자동차가 물로 들어갔다! 놀랍게도 ‘자동차’는 마치 배처럼 물 위를 유유히 떠다녔다(사실은 배에 속한다).

땅에서도, 물에서도 자유자재로 다닐 수 있는 이 자동차는 호버크래프트다. 호버크래프트는 배 아래쪽에 달린 부양팬이 하단부(스커트)에 바람을 불어넣어 빵빵한 쿠션을 만들면, 뒤에 달린 프로펠러가 돌아가면서 전진하거나 후진한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자체기술로 호버크래프트를 개발하고 있는 코리아호버크래프트의 김용재 사장은 “쿠션을 빵빵하게 만들어 부양력을 항상 유지하면 지면 또는 수면과의 마찰이 줄어든다”면서 “배를 밀고나가는 힘이 많이 들지 않기 때문에 작은 프로펠러로도 고속 주행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 회사에서 만든 호버크래프트는 물에서 시속 60km, 땅에서 시속 85~110km, 얼음 위에서 시속 90km로 상당히 빠르게 달린다(6인승인 KOREAHOV-6 기준).

바람으로 쿠션을 미는 방식이기 때문에 선박정박시설이 필요 없다. 아무데서나 출발, 도착할 수 있고, 일반 배와 달리 아주 얕은 곳이나 진흙 갯벌, 얼음이 둥둥 떠 있는 곳에서도 작동할 수 있다. 땅이나 물 어디서나 빠르게 달릴 수 있기 때문에 호버크래프트는 현재 소방서나 해양경찰청, 군부대에서 위급할 때 사용하고 있다. 해외에서는 일찍부터 관광용으로도 발달했다. 아직까지 프로펠러가 일으키는 소음에 익숙지 않은 국내에서는 일반인이 타기가 쉽지 않다. 김 사장은 “우리나라는 바다와 강, 넓고 얕은 하천이 많고 특히 서해엔 갯벌이 발달돼 있어 호버크래프트에겐 천국”이라고 기대했다.

지난해 9월, 미국 과학자들은 호버크래프트를 응용해 애니메이션에서 나오는 마법의 양탄자를 탄생시켰다. 프로펠러가 땅을 향해 강한 바람을 일으키면 선체가 붕 뜨는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미국 프린스턴대 전기공학과 노아 재프리스 박사팀은 이런 원리를 이용해 두께 30μm의 얇은 플라스틱 쿠션(폴리플루오린화비닐리덴과 에폭시)으로 마법의 양탄자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양탄자 안에 전류를 물결처럼 흘려보내면 공기파도가 앞에서 뒤로 흘러가면서 양탄자가 앞으로 나아간다. 아직까지 이 양탄자는 초당 1cm 정도 나아가는, 제자리에서 공중에 떠 고도를 유지하는 수준이다. 이 연구 결과는 ‘응용물리학회저널(APL)’ 2011년 9월 13일자에 실렸다. 연구팀은 배터리 대신 태양전지를 이용하면 더 빨리 움직이는 양탄자를 개발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호버크래프트를 해양경찰이 사용하고 있다. 어디든 빠르게 다닐 수 있기 때문에 긴급 상황에 효율적이다.]

지진 흔들림 먹고 따뜻함 유지하는 쿠션빌딩

최근에 지은 놀이터와 공원에서는 모래밭을 보기가 힘들다. 오래 걸어도 발이 아프지 않고 어린이가 넘어져도 크게 다치지 않도록 푹신푹신한 폴리우레탄 소재로 바닥을 깐 곳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폴리우레탄은 분자사슬 안에 우레탄결합(-OCONH-)이 있는 중합체를 말한다. 폴리우레탄은 고무처럼 늘어났다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갈 수 있으며, 고무보다 훨씬 가볍고 튼튼하다. 소리나 진동, 충격을 흡수하거나 온도를 유지할 수도 있다. 그래서 신축성이 뛰어난 합성섬유(스판덱스)나 스펀지처럼 기포를 넣어 푹신한 침대 매트리스(우레탄폼), 바닥재, 주택 단열재까지 여러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두발로 서서 걷는 일은 사람에게 가장 기본적인 동작이지만 몸무게를 버텨야 하는 만큼 발에 무리를 준다. 게다가 한 발씩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뒤꿈치가 땅에 가장 먼저 닿으면서 몸무게보다 약 1.1배 큰 충격이 가해진다. 이런 충격이 지속되면 뒤꿈치와 발바닥까지 펼쳐진 근육(족저근)에 염증을 일으키기도 한다(2011년 6월호 ‘건강한 신발 찾아라’ 참조). 그래서 바닥을 푹신푹신한 폴리우레탄 소재로 깔면 발바닥과 지면 사이의 충격을 최대한 빨아들여 무리를 줄일 수 있다. 온 동네 길을 폴리우레탄 소재로 깔기에는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주로 어린이들이 뛰어다니는 놀이터나 사람들이 걷기운동을 많이 하는 운동장과 공원의 트랙으로 깐다.



[오래 걸어도 힘들지 않도록 푹신푹신하게 깔아놓은 트랙의 재질은 폴리우레탄이다. 단면에 구멍이 송송 뚫려 있는 쿠션 형태다.]

땅에 충격을 완화하는 쿠션을 심으면 지진 피해도 줄일 수 있다. 지진이 잦은 일본에서는 땅이 흔들리면 책상 밑이나 화장실에 숨어 쿠션으로 머리와 목을 보호하라고 권고한다. 건물이 무너지거나 무거운 물건이 떨어졌을 때 쿠션이 충격을 흡수하기 위해서다. 이와 마찬가지로 건물 주변을 쿠션으로 감싸면 지진으로 건물이 흔들리는 현상을 줄일 수 있다.

중국 홍콩대 도시기술대학 힝호 창 교수팀은 2001년 항저우에서 열린 멀티미디어 테크놀로지 국제컨퍼런스에서 ‘지진쿠션(Earthquake Cushion)’을 소개했다. 폐타이어로 만든 커다란 주머니에 흙을 가득 채운 것인데, 새 건물을 지을 때 건물 바로 아래와 주변에 넣을 수 있다. 연구팀은 2008년 지진쿠션이 에너지를 얼마나 흡수하는지 실험했다. 그 결과 지진이 일어났을 때 건물이 흔들리는 현상을 50% 가량 줄일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눈에 보이는 부분도 쿠션으로 지은 건물이 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와 네덜란드 로테르담 등지에 ‘쿠션빌
딩’을 짓는 벡터 포일텍은 벌집 모양으로 철골을 미리 짠 뒤, 플루오르 고분자(ETFE) 필름에 공기를 넣은 쿠션을 끼워 넣는 방식으로 건물 지붕이나 돔, 외벽 등을 짓는다. 두께가 0.1~0.3mm밖에 되지 않는 ETFE 필름은 가볍고 잘 휘어져 여러 모양으로 만들 수 있다. 또 햇빛(자외선)이나 공기 중 오염물에도 영향을 받지 않고, 표면이 매끄러워 비가 오면 자정 세척을 한다.


[2008년 중국 베이징올림픽을 치렀던 워터큐브는 대표적인 쿠션빌딩이다. 벌집처럼 생긴 철골에 공기쿠션 634개를 끼워 넣어 지었다. 수영장 내부(왼쪽사진)에서도 쿠션이 보인다.]

쿠션빌딩으로 가장 잘 알려진 곳이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치른 국립수영경기장(워터큐브)이다. 워터큐브는 비눗방울 여러 개가 뽀글뽀글 올라오는 것 같은 외관과 10만m2나 되는 크기로 올림픽이 열리기 전부터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ETFE 쿠션빌딩 중 세계에서 가장 크다). 건물 외벽과 지붕을 짓는 데 쿠션이 634개나 들어갔고, 공기공급장치 18대로 항상 빵빵하게 유지한다. 전문가들은 “투명한 쿠션에 LED조명을 설치해 미적으로 아름다울 뿐 아니라, ETFE 쿠션의 특성상 열을 외부로 뺏기지 않아 따뜻하다”고 설명했다. 워터큐브가 있는 지역은 겨울이 특히 춥다. 쿠션 표면에는 여러 크기의 점이 그려져 있어 햇빛이 투과하는 양이 자연스럽게 조절된다.


[쿠션빌딩을 짓는 벡터 포일텍은 플루오르 고분자(ETFE) 필름으로 만든 쿠션으로 건물을 짓는다. 두께가 얇아 가볍고 잘 휘어질 뿐 아니라, 햇빛을 잘 받아들여 내부를 따뜻하게 유지한다. 사진은 영국에 있는 쿠션빌딩 에덴프로젝트.]

쿠션도시 뜨는 날 올까

2008년, 쿠션을 이용한 가장 기가 막힌 아이디어가 전 세계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다. 땅덩어리는 좁고 인구는 많은 두바이에서 공중에 도시를 띄우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는 기사였다. 한 디자이너가 2007년 ‘광저우 국제 디자인 위크 박람회’에 냈던 것으로 알려진 이 아이디어는 특수 강화 유리로 만든구에 거대한 헬륨풍선 2개와 프로펠러를 달아 200m 공중에 띄우는 ‘쿠션도시’다. 여기에 산소를 주기적으로 넣으면 유리구를 탄탄하게 유지할 수 있고 대기가 조성될 수 있다는 것이다. 유리를 투과한 햇빛을 모으면 자체 전력을 생산할 수 있어 학교나 도서관, 공원 등을 지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당시 한 언론에서 이 프로젝트를 보도하면서 전 세계에 알려졌다. 땅이 모자라 바다에 인공섬까지 지은 두바이에서 쿠션도시는 공간도 넓히고 관광상품으로도 유명해질 것으로 기대됐다. 하지만 기술의 한계로(?) 진척되지 못했다. 그래서 아랍지역의 소식을 영어로 전하는 걸프뉴스는 이 프로젝트를 ‘세계적인 만우절 거짓말’이라고 비꼬기도 했다.

아직까지 실현되지 못한 프로젝트이지만, 마법의 양탄자처럼 언젠가는 쿠션도시에도 한 걸음씩 가까워질 날이 오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관련기사를 계속 보시려면?

Intro. 쿠션 테크놀로지
Part1. 자연 쿠션의 비결3
Part2. 마법의 양탄자, 차세대 도시의 공통점은?

2012년 3월 과학동아 정보

  • 이정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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