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만원대 가정용 저가팩스가 출현했지만 컴퓨터 소비자들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무선전화기 등에 비해 구매욕구가 덜하기 때문
'홈팩스시대'는 도래할 것인가. 첨단사무기기로 각광받는 팩시밀리를 가정용 전자제품으로 전환시키기 위해 앞다투어 경쟁하던 팩스업체들이 요즘 다시 생각해보는 물음이다. 매년 50% 이상 신장돼오던 국내 팩스시장이 지난해 15만대를 정점으로 처음으로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멀리 떨어진 곳에 그림이나 자료를 보내는데 편리한 첨단사무기기 팩시밀리는 80년대 후반 들어 국내에 급속도로 보급됐다. 86년 아시안게임이 벌어질 때만 해도 연간 2,3만 대 수준에 불과하던 국내 팩스시장은 88올림픽이 열릴 무렵 중소기업까지 보급이 확산돼 연간 5만대 수준으로 늘어났고 90년대 들어 저가보급품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순식간에 10만대를 넘어섰다. 가격도 86년경에는 2,3백만원 주어야 살 정도로 고가에 속했으나 80년대말 1백만원대 제품이 나왔고 최근에는 홈팩스를 표방한 40만~60만원의 저가품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문제는 업계에서 예상한 것보다 홈팩스시장이 활발하지 않다는 데 있다. 중산층 가정을 대상으로 홈팩스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예상하고 업체들은 신규투자를 했지만 시장 상황은 기대 이하였다. 아직 50만원이나 들여 집에 팩스를 놓을 정도로 필요성을 느끼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 비슷한 가격대의 컴퓨터나 무선전화기 VCR 등에 비해 소비자들의 구매욕구가 덜하다고 한다. 이와 함께 웬만한 기업이나 사무실에는 팩스보급이 일반화돼 국내 시장은 한계에 도달한 것으로 업계에서는 보고 있다. 따라서 삼성 금성 신도리코 코리아제록스 등 10여개 팩스업체들은 기존 시장을 지키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A4 한장에 10초 내외
팩시밀리는 지극히 동양적인 전자제품이다. 일찍부터 타자문화가 발달된 서양에서 발명된 타자기 텔렉스 텔레그래프(전신) 등이 서양문화의 산물이라면 손으로 글씨를 쓰는데 익숙한 동양권에서 팩시밀리가 널리 인기를 모으는 것은 당연하다. 일본의 경우 세계 팩스시장의 80% 이상을 장악하고 있고 공중팩스망 차세대팩스 팩시밀리신문 등에 관한 연구도 무척 활발하다.
팩시밀리는 전화선을 통해 자료를 주고받는다. 전화가 음성을 전달하듯이 같은 전화선으로 팩스는 문자나 그림을 전달한다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최근에는 컴퓨터를 이용한 데이터통신도 활발하다. 컴퓨터에서 보내는 데이터도 역시 전화선을 통해 전달된다.
그러면 데이터통신과 팩스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음성이 아닌 문자나 그림자료를 주고받는다는 점은 똑같다. 그러나 데이터통신은 모든 자료를 코드화한 파일 형식으로 교환하는데 비해 팩스는 자료를 흑백의 점들로 된 디지털 데이터로 인식해 송수신한다. 가령 '사나이'라는 단어를 전송할 때 데이터통신에서는 이 단어를 '0100101010101000' 같은 이진법 코드로 변환해 보내지만, 팩스에서는 '사나이'가 써진 평면을 가로 세로 수많은 점들의 집합으로 이해하고 각각의 점들이 흑이냐 백이냐에 따라 구분해 전송한다.
팩시밀리는 전송시간에 따라 G1 G2 G3 G4 네단계로 구분된다. A4용지 한 장을 전송하는데 걸리는 시간을 기준으로 이은 G1은 6분, G2는 3분, G3는 1분 이내, G4는 3~4초 소요된다. 요즘 나오는 팩시밀리는 대부분 A4 한 장에 10초 정도 걸리니까 G3에 해당된다. G4급 팩시밀리는 현재 개발 중이고 G1, G2급은 사라진 지 오래다.
기록방식에 따라 분류하면 감열기록방식과 보통용지방식 두가지가 있다. 감열기록방식은 두루마리 휴지처럼 둘둘 말린 팩시밀리 전용용지를 쓴다. 제조원가가 싸고 메커니즘이 단순하기 때문에 시중에 팔리는 팩스제품의 97% 이상을 차지한다. 대신 선명도가 떨어지고 수신자료를 그대로 공식문건화하기 어려운 단점이 있다.
보통용지방식은 열전사기록방식과 레이저기록방식 두가지로 다시 구분된다. 국내에는 이미 86년에 보통용지 팩스가 발표됐으나 가격이 2, 3백만원대로 비싸 그동안 법률사무소 등 한정된 수요에 국한됐다.
선명도는 감열기록방식이 주주사선 8도트(dot)/㎜이고 열전사기록방식이 12도트/㎜, 레이저방식이 16도트/㎜ 정도다. 대충 열전사방식은 24핀 도트프린터로 찍은 자료의 선명도와 비슷하고, 레이저방식은 3백dpi(dot per inch) 레이저프린터의 선명도와 비슷하다고 보면 알기 쉽다.
팩스는 송수신 양쪽의 프로토콜이 맞아야 하는데 속도가 느리고 선명도가 낮은 쪽에 맞추어 자료를 보내고 받는다. 팩스를 보낼 때 전화번호를 누르고 나서 한동안 팩스가 불을 깜박거리는 것은 바로 상대방과 프로토콜을 맞추는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팩스로 보낼 수 있는 용지의 규격은 1백만원 이하 저가제품의 경우 최대 크기가 A4, 2백만원 이하 보급형은 B4, 그 이상 고급제품은 A3까지 가능하다.
팩스의 성능은 속도 선명도 용지규격 등 기본기능 이외에 자동응답기능 메모리기능 동보기능 등 서비스기능들에 의해서도 좌우된다. 전화기와 일체형으로 만들어져 부재중에 자동응답과 녹음을 하거나, 많이 쓰이는 전화번호를 기억해두었다가 한가지 자료를 한꺼번에 여러 군데로 보내는 동보기능이 팩스의 첨단기능으로 부각되고 있다.
복사기 팩스레이저프린터를 하나로
차세대팩스로 불리는 G4급 팩시밀리는 일본을 중심으로 한창 개발중이다. 우리나라도 생산기술연구원을 중심으로 업체들이 연구 조합을 결성해 이 제품을 개발하고 있으나, G4 팩스가 실용화되려면 고속회선의 전용망이 깔리고 ISDN(종합정보통신망)이 먼저 실현돼야 하는 등 어려움이 있어 수년내로 상품화되기는 힘든 실정이다.
일본에서는 복사기와 팩시밀리 레이저프린터가 일체화된 첨단제품도 이미 3,4년전에 선을 보였다. MF(Multi Function)이라 불리는 이 제품은 모든 데이터를 디지털로 처리하는데 가격은 1백만엔 정도라고 한다.
최근에는 개인용 컴퓨터에 내장하는 팩스 모뎀카드가 출현해 인기를 모으고 있다. 데이터통신과 팩스통신 두가지를 겸용할 수 있는 이 카드는 가격이 12만~20만원으로 기존 팩스에 비해 매우 저렴하다. 그러나 사용방법이 어렵고 많이 알려지지 않아 판매량은 그다지 많지 않다.
전문가들은 팩스제품을 선택할 때 "자신이 원하는 목적을 분명히 하라"고 강조한다. A4 이하 크기의 자료만을 송수신한다면 저가형도 무난하지만 도면 같은 선명도가 높은 자료를 주고받는다든가 결재용 서류를 송수신할 때는 보통용지 팩스를 구입해야 한다. 또 한꺼번에 여러 군데 자료를 보내는 일이 많다면 메모리기능이 있는지 필히 살펴봐야 한다. 또 팩스가 하루라도 고장나 중요한 자료를 못받을 수 있으므로 애프터서비스가 신속한지도 미리 점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