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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더 테레사는 말했다. 남이 나를 원하지 않는 느낌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것이라고. 그런 불행을 피하고자 사람들은 사랑받고 인정받기 위해 안간힘을 다한다. 독일 철학자 악셀 호네트는 그와 같은 인정 욕구를 고찰한 책에 ‘인정 투쟁’이란 제목을 붙였다. 그만큼 인정 욕구가 치열하다는 의미다. 실제로 그런 상태가 지나쳐서 거부불안에 따른 신경증으로 고생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들은 남들이 자기를 싫어하는 것을 병적으로 참지 못한다. 남의 평가가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다. 덕분에 그들은 자신의 시간, 돈, 심지어 직업까지 희생하면서 남의 평가에 의존해서 살아간다. 정신과에서는 그들을 외적 자아가 두드러지는 타입으로 분류한다. 자기 행동의 옳고 그름을 평가하는 자아기능이 외부에 있다는 뜻이다. 그들의 가장 큰 특징은 잠자리에 누워서 하루 일과를 비디오처럼 재생한다는 것이다. 특히 그날 만난 사람들에 대해 강박적으로 필름을 돌려보곤 한다. 그 순간 그들의 생각은 오로지 사람들이 날 어떻게 생각했을까, 내가 그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였을까 하는 것에 집중되어 있다. 만에 하나 거부당한 것 같은 느낌이 들면 견디지 못하고 좌절과 우울 속으로 곤두박질친다.
 

남이 자기를 싫어하면 죽어도 못 견딘다

오래 전에 나온 할리우드 B급 영화 중에 ‘빅 히트’라는 것이 있다. 거부불안으로 인한 신경증으로 고생하는 킬러가 주인공인 영화다. 그의 신경증은 애처롭다 못해 희극적이다. 그는 일만 있으면 어디든 달려가 초전박살 내는 전문적인 킬러다. 친구가 맡긴 토막난 시신에서 냄새가 나자 여자친구 집에 가져가 태연히 물로 씻을 정도로 자기 일에 초연함(?)마저 갖추고 있는 위인이다. 그런 그에게도 한 가지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으니 바로 남들이 자기를 싫어하는 것만은 죽어도 못 견딘다는 점이다.

자신이 죽이는 인간들이야 어차피 형편없는 자들이니 굳이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 하지만 주변사람들로부터 거부당하는 것만큼은 너무나 참기 힘들다. 그래서 그는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 사정없이 끌려 다니면서도 희생자 역할을 그만두지 못한다. 그를 배신하는 것도 모자라 죽이려고 덤비는 동료들에게조차 그는 최선을 다한다. 이유는 한 가지, 그들이 자기를 싫어할까 봐서다. 그때마다 그가 보여주는 ‘깨알 같은’ 순진성에 관객은 웃음을 터뜨리지 않을 수 없다.

여자친구와 약혼녀가 요구하는 돈을 만들기 위해 그는 일본인 부자의 딸을 납치하는 데 가담한다. 그는 이번에도 인질로 잡혀 온 여자가 자기를 싫어할까 봐 노심초사한다. 그래서 아주 잘 대해 준다. 그 모양을 보다 못한, 순진함과는 거리가 한참 먼 인질이 한 마디 한다. “넌 아무래도 치료가 필요할 것 같아.” 물론 그는 인질의 빈정거림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의 생각은 오직 남들에게 거부당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정도는 아닐지라도 우리는 누구나 남들에게 거부당하는 것을 잘 견디지 못한다. 오죽하면 적에게조차 인정받고자 하는 것이 사람 마음이란 말이 있을까.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남의 평가에 민감하다. 이는 실용성보다는 겉치레를 중요하게 여겼던 유교 문화권과도 무관하지 않다. 우리는 아이들을 야단칠 때 그 행동이 왜 잘못됐는지를 말해주기보다 “남들이 보면 뭐라고 하겠니” 혹은 “남들 보기 창피해서 못살겠다”하는 말부터 앞세우곤 한다. 은연중에 남의 평가에 민감할 수밖에 없도록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것이다.



남에게 거부 당해도 ‘나는 나’

심리학자 매슬로우는 건강한 자아를 가지고 그것을 실현하는 사람들은 자기의 본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고 주장했다. 사람은 누구나 약점과 장점이 있다. 약점을 수치스러워할 필요도, 장점을 자랑스러워할 필요도 없다. 스스로를 왜곡할 필요도 없으며 변조할 필요는 더더욱 없다. 물이 흐르듯 본성을 거스르지 않고 자연스럽게 살아가면 된다.

하지만 거부불안으로 인한 신경증을 지닌 사람들에게 그런 자연스러운 삶을 주문할 수는 없다. 그들은 자신의 약점이나 실패에 지나치게 민감해 자주 수치감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남들도 자신의 수치스럽고 못난 모습만을 보고 자기를 싫어하고 거부할 것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상황이 그렇다 보니 앞서 예를 든 킬러처럼 어떻게 해서든 상대방에게 잘 보이려고 안간힘을 쓸 수밖에 없다. 그들은 남의 부탁을 절대 거절하지 못한다. 그랬다가 혹시라도 상대방에게 거부당하면 죽을 만큼 불행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들은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내게 관심을 갖고 있지 않다. 먼저 나 자신을 한 번 돌아보자. 과연 나는 남들한테 그만큼 큰 관심이 있는가? 아니다. 나 역시 내 문제에 집중하느라 남들 일에 세세하게 관심을 가질 여력이 없다. 물론 우리는 때때로 남의 이야기에 열을 올린다. 하지만 그건 정말로 그들에게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다. 대개는 관심을 갖는 척하고 그들을 비난하거나 이야깃거리로 삼을 때가 더 많다. 그렇게 하면 자신의 불안이나 두려움, 분노 등의 감정을 잠시라도 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만일 자신이 혹시라도 거부불안에 시달리는 면이 있다면 이제라도 “나는 나”라는 자세로 당당하게 맞설 것을 권유한다. 자기확신을 가질 때 비로소 우리는 남들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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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양창순 원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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