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대의 숲과 사막의 고원에 숨어 살던 도마뱀들이 집안으로 들어왔다. 개와 고양이 같은 애완동물과는 또 다른 매력을 지닌 도마뱀. 이들과 함께하는 생활은 어떤 모습일까. 오랫동안 도마뱀을 길러온 전문가에게 도마뱀 사육기를 들어보자.
1994년 어느 날 대학생이던 필자는 자료를 찾기 위해 헌책방에 들렀다. 이것저것 살피던 중 한 일본잡지의 표지에 눈길이 멈췄다. 어떤 사람이 도마뱀을 들고 포즈를 취한 사진이었다. 호기심에 잡지를 펼쳤다. 일본의 연예인과 유명인이 기르는 애완동물을 소개하는 기사였다. 개, 고양이뿐 아니라 뱀, 페럿 같은 특이한 동물도 많았다. 이런 동물도 집에서 함께 살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그중 필자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여자 프로레슬러와 도마뱀이 함께 혀를 쭉 내밀고 찍은 사진이었다. 도마뱀의 새파란 혀가 레슬러의 진한 화장과 화려한 레슬러 복을 압도했다. 사진의 분위기 때문이었을까. 도마뱀은 굉장히 위협적이고 사납게 보였다. 이 도마뱀의 이름은 블루텅스킨크. 파란 혀를 가진 도마뱀이라는 뜻이다.
블루텅스킨크 한 마리를 데려오다
8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친구와 함께 파충류를 판매하는 업체에 우연히 들렀다가 블루텅스킨크를 다시 보게 됐다. 커다란 머리와 뭉툭한 몸. 여기에 짧은 앞다리와 뒷다리가 대롱대롱 달렸다. 발은 아기 발처럼 앙증맞게 작다. 신체 부위에서 일관성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모두 합쳐놓으면 비정상적이고 괴기한 모습이다. 뭔가에 홀린 듯 나도 모르게 한 마리를 구입하겠다고 말했다. 충동적으로 내린 결정이었다.
어떤 것을 살까, 여러 블루텅스킨크를 자세히 들여다봤다. 필자는 애완동물을 선택할 때 수컷을 선호한다. 대부분의 생물에서 수컷이 더 화려하고 종의 특성을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블루텅스킨크는 수컷이 암컷보다 머리가 크고 꼬리가 길다. 하지만 개체마다 차이가 있어 외형으로는 암수를 구분하기는 힘들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성기를 압박해 몸 밖으로 튀어나오게 한 뒤 확인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잘못하면 도마뱀에게 무리를 줄 수 있어 이 방법을 쓰지는 않는다. 필자는 가장 덩치가 큰 것을 골랐다. 밝은 색과 활달한 성격을 가진 블루텅스킨크로, 틀림없이 수컷이라고 생각했다.
‘돌돌이’. 친한 친구가 이름을 추천했다. 나름 귀엽고 친근해 그렇게 부르기로 했다. 하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친구는 이렇다 할 특징이 없어 이름을 짓기 애매한 동물을 다 돌돌이라고 했다. 친구는 이미 돌돌이1, 돌돌이2 같이 돌돌이를 여러 마리 가지고 있었다.
돌돌이의 새집 장만기
돌돌이를 집으로 데려오자마자 문제를 깨달았다. 충동적으로 사오는 바람에 당장 기를 곳이 없는 것이었다. 필자뿐 아니라 도마뱀을 처음 기르는 사람들이 주로 저지르는 실수다. 도마뱀은 강아지나 고양이처럼 그냥 방에 둘 수 있는 동물이 아니다. 반드시 사육장을 먼저 만든 후에 분양받아야 한다.
돌돌이는 어쩔 수 없이 며칠 동안 플라스틱 옷 정리함 안에서 생활해야 했다. 주말에 청계천에 나가 파충류 사육장을 사왔다. 가로 60cm, 세로 45cm, 높이 45cm 크기로 돌돌이가 슬슬 기어 다니기에 적당했다. 바닥에는 물에 적신바크(나무껍질을 잘게 조각낸 것)를 깔아줬다. 폭신폭신한 느낌을 주기에도 그만이지만 습도를 맞추는 기능도 있다. 여기에 하루 한 번씩 사육장에 분무를 해 60~70%로 습도를 맞춰줬다. 특히 허물을 벗을 때는 습도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한다. 습도가 낮으면 허물을 깨끗이 벗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높은 습도 때문에 바닥에 곰팡이가 생길 수 있으므로 바닥재는 자주 갈아줘야 한다.
사육장 외에도 돌돌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여러 장치가 필요했다. 도마뱀은 변온동물이기 때문에 온도를 잘 맞춰줘야 한다. 사육장 한쪽 끝에 자외선(UVA) 램프(스팟램프)를 설치하면 여기서 나오는 자외선이 열을 내 램프의 빛이 비치는 곳은 32~35℃ 정도가 된다. 반대편으로 갈수록 자연스럽게 온도 편차가 생겨 빛이 미치지 않는 쪽 구석은 26℃다. 돌돌이는 춥다고 느끼면 빛이 비치는 곳으로 기어간다. 반대로 덥다 싶으면 빛이 들어오지 않는 찬 구석으로가 웅크린다. 알아서 체온을 맞추는 것이다.
온도만 잘 맞추면 도마뱀 사육장을 만드는 데 큰 무리는 없다. 인테리어 소품은 오히려 어항보다 간단하다. 빛이 가장 잘 들어오는 곳에는 평평한 돌을 놓아줬다. 돌돌이의 일광욕 장소다. 숨을 수 있는 은신처도 필요하다. 은신처는 따로 팔기도 하지만 나무판, 깨진 기왓장, 화분 조각 등을 이용해도 된다. 이렇게 돌돌이의 러브하우스가 완성됐다.
바나나가 가장 좋아!
돌돌이는 뭐든 가리지 않고 잘 먹는다. 대부분의 도마뱀은 움직이는 것을 먹이로 생각하기 때문에 먹이를 살아 있는 채로 줘야 한다. 예를 들어 카멜레온은 살아 있는 귀뚜라미만 먹는다. 따라서 카멜레온을 기를 때는 귀뚜라미도 같이 길러야한다. 하지만 귀뚜라미를 기르는 것은 여간 곤혹스러운 것이 아니다. 악취가 나고 여기저기 뛰어다녀 관리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블루텅스킨크는 냄새로 먹이를 찾기 때문에 굳이 살아 있는 먹이를 줄 필요가 없다. 냉동한 달팽이, 귀뚜라미, 밀웜, 슈퍼웜, 핑키 등을 사서 식사시간마다 해동해 주면 잘 먹는다. 개나 고양이 캔 푸드나 마른 사료를 물에 불려줘도 먹기 때문에 이렇게 주는 사람도 많다.
돌돌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따로 있다. 입안에서 살살 녹는 바나나다. 험상궂은 외모와는 달리 달콤하고 부드러운 맛을 즐긴다. 돌돌이뿐 아니라 모든 블루텅스킨크는 바나나를 가장 좋아한다. 인도네시아에서는 블루텅스킨크를 ‘바나나도마뱀’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돌돌이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 마음에 바나나를 양껏 주고 싶지만 그럴 수는 없다. 도마뱀은 굶주림에 맞춰 진화했기 때문에 다른 동물보다 신진대사가 늦다. 그만큼 살찌기 쉬운 것이다. 도마뱀은 살이 찌면 지방간 같은 병으로 갑자기 죽을 수가 있다. 비만이 도마뱀에게는 가장 무서운 질병이다.
문제는 사육주가 자신이 기르는 도마뱀의 비만도를 정확히 모른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보통 도마뱀이 통통해지면 건강하다고 생각한다. 필자 또한 같은 실수를 저지른 경험이 있다. 사바나모니터를 기를 때였다. 그 도마뱀은 하루 종일 멍하니 있지만 생쥐를 사냥할 때는 민첩하게 움직인다. 필자는 이 모습을 자주 보기 위해 생쥐를 아끼지 않고 줬다. 도마뱀은 통통하게 살이 오르더니 어느 날 갑자기 죽어버렸다. 특별한 증상도 없었다. 해부를 통해 알아낸 사인은 비만. 지방으로 가득 둘러싸인 장기를 보며 비만이 도마뱀에게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새삼 느꼈다.
특히 블루텅스킨크는 운동량이 적다. 슬슬 기어 바위에 올랐다, 은신처에 들어갔다 하는 정도다. 따라서 다른 도마뱀보다도 더 적게 먹여야 한다. 필자는 돌돌이에게 하루걸러 한 끼만 먹였다. 한 번 먹이를 줄 때는 딱 머리 크기 만큼만 줬다. 이렇게 조금씩 먹였기 때문에 10년이 흐른 지금도 돌돌이와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
돌돌이의 성 정체성
얼마 전 돌돌이는 다른 블루텅스킨크들과 합사를 하게 됐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무리 중에 있던 수컷이 돌돌이에게 계속 구애행동을 하는 것이다. 더 황당한 것은 그의 구애를 받아들이고 있는 돌돌이의 행동이었다. 그것도 아주 소심하게 말이다.
무심한 내 성격 탓일까? 단지 외모가 우락부락하고 건장하다는 이유로 당연히 수컷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껏 그렇게 믿고 살았다. 하지만 돌돌이는 암컷이었다. 단지 늠름할 뿐이다. 돌돌이는 10년이 지나서야 주인에게 성정체성을 확인 받았다. 돌돌이 아닌 돌순이가 되는 건가. 하지만 그냥 그대로 돌돌이로 부르며 기르고 있다.
안타깝게도 우리 돌돌이의 사랑은 이뤄지지 못했다. 필자가 번식에 대한 욕심이 없기 때문이다. 필자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여러 동물을 길러왔는데, 난산이나 산후 후유증으로 죽은 경우가 있었다.
따라서 동물이 번식하기보다는 그저 곁에서 오래 살아주기를 바란다. 특히 12년이나 같이 동고동락한 개와 고양이가 모두 난산으로 필자를 깜짝 놀라게 한 기억 때문에 더더욱 번식을 피한다.
하지만 사육하는 도중 동물이 번식을 하면 그때 느끼는 기쁨은 크다. 블루텅스킨크를 번식시키려면 배란을 촉진하기 위한 ‘쿨링’ 과정이 필요하다. 쿨링은 이들이 서식하는 열대의 우기를 재현해 주는 것이다. 열대기후라도 우기에는 비가 잦아 낮의 평균 온도가 낮아지고 일조량이 줄어든다. 이 현상을 감안해 일조량을 하루 8시간으로 줄이고 온도를 16~18℃로 낮게 설정해준다. 습도는 오히려 높여준다. 여기서 두 달을 보내고 다시 온도를 높여준 상태에서 암수 두 마리를 합사시킨다. 보통 쿨링은 11월이 좋다. 블루텅스킨크가 임신을 했다면 90~110일 후 알이 아닌 새끼를 낳는다(난태생). 보통 8~12마리 정도다. 출산한 뒤 어미가 새끼를 잡아먹지 않으므로 얼마동안 같이 사육해도 된다.
무뚝뚝한 매력의 그녀, 돌돌이
도마뱀은 개나 고양이처럼 주인을 반갑게 맞이하거나 애교를 떨지 않는다. 하지만 도마뱀에게도 소심한 애정표현법이 있다. 이는 주인만 느낄 수 있는 것이라 더욱 귀엽고 각별하다. 대형종인 이구아나나 왕도마뱀은 주인을 구분할 수도 있다. 필자가 대학시절부터 6년간 길렀던 이구아나는 필자뿐 아니라 같이 기르던 개와 고양이도 구분했다. 이구아나가 커져 마땅히 기를 만한 사육장이 없는 바람에 그냥 개, 고양이와 함께 방에 풀어놨다. 이구아나는 이미 사육장 밖에서 둘을 늘 봐와서인지 이들을 공격하지 않았다. 셋이 사이좋게 밥을 먹기도 하고, 나란히 쉬기도 했다. 컴퓨터 위에서 나른하게 낮잠을 자다가도 필자가 부엌에서 야채를 썰고 있으면 칼질 소리를 듣고 달려와 먹이를 달라고 보채기도 했다. 필자에게는 귀엽고 순한 이구아나지만 낯선 사람을 보면 180° 달라졌다. 입을 벌려 겁을 주고 꼬리를 휘두르며 공격을 했다.
도마뱀 중에서도 블루텅스킨크는 특히 무뚝뚝하다. 돌돌이도 마찬가지다. 10년 가까이 필자와 같이 살며 돌돌이가 하는 행동은 그저 짙은 갈색 눈을 꿈뻑거리는 것뿐이었다. 이런 단조로움 때문일까? 많은 사람들이 블루텅스킨크를 오래 사육하지 못하고 재분양한다. 게다가 심술궂어 보이는 외모 때문인지 사람마다 평가는 제각각이다.
하지만 필자가 다양한 파충류를 길러오며 가장 애착이 갔던 도마뱀은 바로 우리 돌돌이, 블루텅스킨크였다. 아마도 익숙한 것에 편안함을
느끼고 오래된 것들에 애착을 느끼는 필자의 성격과 잘 맞았던 것 같다. 이사를 하거나 상황이 좋지 않아 기르던 동물을 분양할 때도 돌돌이만큼은 꼭 챙겼다. 늘 한결같은 모습으로 곁을 지켜주는 돌돌이는 필자에게 충실하고 든든한 존재다. 모든 것이 빨리 변하는 세상에서 언제나 같은 모습으로 곁에 머무르는 것이 몇이나 될까. 블루텅스킨크의 매력은 바로 이런 무미 건조한 성격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