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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운 인터넷' 이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면서 세계의 가전사들은 컴퓨터보다 훨씬 친근한 기계인 텔레비전이나 게임기를 통해 인터넷에 접근하는 방법을 찾고 있다. 바야흐로 방송과 컴퓨터, 그리고 통신의 구분이 사라지는 순간이다.

아직도 컴퓨터를 다루는 것조차 어려워 하는 사람이 적지 않은 게 현실이긴 하지만, 지난 1-2년 사이 컴퓨터를 둘러싼 최대의 화두는 인터넷으로 옮겨왔다. 컴퓨터 제조사들이 자사의 제품 광고에 ‘쉬운 컴퓨터’ 대신 ‘쉬운 인터넷’을 앞에 내세우고 있는 것은 이같은 무게중심의 이동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웹을 앞세운 인터넷이 놀랄 만한 기세로 세력을 키워낸 것이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쉬운 컴퓨터’ 에 대한 요구가 대개 운영체제를 비롯한 소프트웨어적 접근법을 사용했다면, ‘쉬운 인터넷’의 경우는 다분히 하드웨어적이라 할 수 있다. ‘쉬운 인터넷’을 위한 대표적 아이디어인 네트워크 컴퓨터(NC,network computer)는 컴퓨터를 몰라도 인터넷에 들어갈 수 있는 장치다.

이미 잘 알려져 있듯이 미국의 소프트웨어업체인 오라클의 래리 엘리슨 회장이 내놓은 NC 개념은 일반 PC의 ‘복잡하고 불필요한 기능’을 모두 제외시키는 대신 네트워킹 기능만을 특화시킨다. 응용 프로그램은 고사하고 운영체제조차 인터넷에 들어 있는 것을 가져와 쓴다.

하지만 NC처럼 인터넷에 접근하기 위한 또다른 기계의 등장이 과연 수많은 ‘넷맹’들로부터 박수를 받을 수 있을까. 이미 인터넷을 자유자재로 사용하고 있는 이들에겐 호평을 얻을 가능성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겁주는 기계’가 또하나 늘어난 것에 불과할 것이다.

이런 지적 탓일까? 최근 들어 여러 회사에서는 좀더 친근한 접근 방식을 시도하고 있다. 바로 텔레비전과 인터넷을 결합시키려는 것이다. 텔레비전은 현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가장 친숙한 기계다. 노소를 막론하고 켜고 끄고 채널을 선택하는 사용법을 몰라 텔레비전을 보지 못하는 사람은 없다. 게다가 집집마다 1대 이상씩 보급돼 있다. 한 조사에 의하면 미국의 경우 인터넷을 쓰지 않는 가정은 85-90%에 달하지만, TV는 대부분의 가정에 보급돼 있다. 우리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것은 인터넷 TV 시장의 잠재력을 입증하는 사례다.
 

선마이크로시스템스가 올해 세빗 전시회에서 발표한 네트워크 컴퓨터


올 연말에는 봇물처럼 등장

이미 세계 각국의 내로라 하는 가전사와 컴퓨터회사들은 인터넷TV, 혹은 웹TV의 개발에 사활을 건 개발전쟁을 벌이고 있다. 지금까지 나타난 이들의 움직임은 기존 텔레비전에 네트워크 기능이 첨가된 새로운 장치를 연결해 사용하는 방법과, 아예 텔레비전 안에 인터넷 접속 장치를 붙여넣는 방법 크게 두 가지다.

전자의 대표적인 예는 셋톱박스를 이용해 인터넷 정보를 텔레비전에서 보려는 것이다. 셋톱박스란 상이한 언어(프로토콜)를 사용하는 두 장치가 서로의 정보를 알아들을 수 있도록 신호를 변환시키는 장치. 마쓰시타, 소니 등 이름만 들어도 아는 가전회사들이 이미 셋톱박스의 개발을 거의 완료하고 ‘늦어도’ 올 연말까지 시장에 선보일 계획이다.

이들 회사가 발표시점을 올해 안으로 잡은 이유는 올 봄 애플사가 일본의 장난감 회사인 밴다이사와 함께 내놓은 피핀과의 경쟁 때문이다. 피핀은 원래 게임기로 고안됐던 것에 웹브라우저와 14.4kpbs 모뎀을 장착,인터넷 접속기능을 부가한 장치. 자사의 매킨토시에 사용되는 파워PC칩과 CD롬 드라이브를 탑재한 피핀은 TV와 연결시켜 TV도 보고 게임도 하면서, 전화선을 이용해 인터넷까지 검색할 수 있다.

게임기를 바탕으로 인터넷에 접근하려는 시도는 피핀 외에도 소니, 닌텐도, 세가 등 게임기 회사들 대부분이 개발에 돌입해 역시 올 연말까지 선보일 예정.

지난 9월 CD-I를 통해 인터넷에 접속하는 방법을 선보인 LG전자의 ‘보라넷 TV 서비스’ 역시 텔레비전을 활용한다. 필립스와 소니가 공동으로 개발한 CD-I는 음향을 들을 수 있으며, 자체 내에 달린 자그마한 액정화면을 통하거나 텔레비전과 연결해 화면을 볼 수 있어 교육용으로 주로 활용되고 있다.

이번에 선보인 보라넷 TV서비스는 가정의 일반 텔레비전에 CD-I 플레이어와 모뎀을 연결하고, 인터넷 접속세트에 포함된 CD-I를 삽입한 뒤 단 몇번의 버튼 조작만으로 데이콤의 인터넷망에 접속할 수 있다. 결국 인터넷에 접근하기 위해 굳이 PC조작법을 배울 필요도 없고, 아예 PC가 없어도 되는 것이다.

그러나 업체들이 굳이 셋톱박스나 또다른 모습의 부가장치만을 고집하는 것은 아니다. 아예 ‘바보상자’를 ‘인터넷 머신’으로 만드려는 시도가 앞서 언급된 회사를 포함한 많은 업체들에서 벌어지고 있다.

가전사들이 인터넷TV 개발에 적극성을 띠는 이유는 이 분야가 오는 2천년까지 전세계 5억달러 규모의 새로운 황금시장을 형성할 것이라는 전망 때문이다. 게다가 차세대 TV로서 인터넷 TV는 TV와 PC가 결합해 만들어낼 쌍방향 TV의 기반 기술 성격을 띠고 있다.

제니스와 필립스, 미쓰비시, 소니, 히타치 등이 개발 의욕을 불태우고 있는 가운데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삼성전자가 인터넷 TV의 개발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기존 29인치 TV에 33.6kbps 모뎀과 웹 브라우저를 장착해 인터넷은 물론 PC통신 서비스까지 TV화면으로 불러 볼 수 있는 이 제품은 TV기술을 중심으로 여기에 PC의 네트워킹 기능을 대폭 채용한 것이다. 삼성전자는 올 연말에 이를 판매할 예정이다.

이 제품의 기능 중 특히 주목할 점은 웹 검색뿐만 아니라 전자우편까지 송수신이 가능하다는 점. 사용자가 인터넷 TV 리모컨에 장착된 ‘인터넷/PC통신’ 버튼을 누르면 자동으로 인터넷 검색을 할 것인지, 전자우편을 이용할 것인지를 선택하는 화면이 나타난다. 여기서 사용자는 TV 스크린에 내장된 키보드를 리모컨으로 조정해 글자를 입력하거나, 별도의 무선 키보드를 이용해 편지를 주고받을 수 있다.
 

TV에 셋톱박스를 장착해 인터넷을 즐기고 있는 가족. 올 연말까지 이같은 제품은 봇물으 이룰 것으로 보인다.


CNN보다 빠르다

이미 웹의 폭발적인 성장과 함께 온라인을 통한 출판은 이미 광고와 독자 확보 측면에서 종래의 인쇄매체를 위협하고 있다. 이와 함께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온라인 멀티미디어 기술은 인터넷과 방송의 결합이 그리 멀지 않음을 예고한다. 인터넷으로 TV를 보려는 시도는 TV로 인터넷을 보려는 것 못지 않게 중요한 이슈다.

미국의 경우 NBC, ABC, CBS, CNN 등 굵직한 방송사들이 기존 영역을 벗어나 온라인상에 새로운 입지를 다지고자 혈투를 벌이고 있다. 최근 CNN은 1분 안에 독파할 수 있는 새로운 웹뉴스 포맷을 개발해 기사뿐만 아니라, 사진, 비디오클립 등을 자사의 홈페이지에서 서비스중이다. 이에 대항해 마이크로소프트사는 NBC와 합작, MSNBC란 벤처기업을 만들었다.

기업들의 이같은 움직임은 TV 시청 대신 웹을 이용하는 빈도가 늘어나고 있는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 지난 4월 웹 상에서 벌어진 한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36%가 TV 시청 대신 웹을 이용한다고 대답했고, 약 65%는 적어도 일주일에 한번은 TV보다 웹을 이용하는 편이 낫다고 답변했다.

인터넷이 기존 방송사를 위협하는 새로운 방송매체로 떠오르고 있는 것은 지난해부터 등장한 음성과 동화상을 실시간으로 보낼 수 있는 멀티미디어 신기술에 힘 입은 바 크다. 화상전송 기술로는 싱테크놀로지사의 ‘스트림워크’나 VDO네트사의 ‘VDO라이브’ 등이 유명하다. PC에서 동화상을 실시간에 재생하는 기술로 주목받고 있는 이들 기술을 이용하면 방송사가 전송한 화면을 초당 15프레임 화면으로 재생할 수 있다.

소리도 마찬가지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인터넷에서 음성을 들으려면 파일을 전송받은 뒤 별도의 프로그램으로 재생해야 했다. 그러나 프로그레시브 네트워크사의 ‘리얼오디오’는 전송과 동시에 소리를 재생해냄으로써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했다.

물론 현재의 동화상 재생률은 비디오(30프레임)나 영화(24프레임)에 비해 매우 뒤떨어지며, 재생되는 음질의 수준도 낮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최근에 이루어진 대역폭의 증가로 전송 속도 문제가 해결의 실마리를 보이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적어도 현재 텔레비전이 전달하는 음질과 동화상에 육박하는 기술의 등장은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방송과 통신, 컴퓨터 기술이 하나로 통합되는 추세가 지속된다면 방송사가 현재 누리고 있는 매체시장에서의 독점적 지위는 무의미해진다. 프로그램을 확보하고 전송서버만 있으면 누구나 인터넷에 방송사를 차릴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쇄매체와 전파매체로 양분된 현재의 미디어 개념은 어떤 식으로든 바뀔 수밖에 없다.

방송사들이 인터넷을 공중파 버금가는 새로운 매체로 인식하고 있는 것은 인터넷이 그만한 비교 우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은 속보성에서 CNN을 능가하는 실시간 전달을 보장하며, 전달 영역도 지역을 벗어나 전세계다. 따라서 정보를 전달하는 방법에 있어서 인터넷은 방송보다 앞선다. 게다가 방송사는 프로그램 제작능력과 프로그램 확보면에서 가장 앞서 있어 이 사업을 위해 따로 큰 돈을 들이지 않아도 된다.
 

삼성전자가 최근 발표한 인터넷 TV. 29인치 텔레비전에서 웹 검색과 전자우편을 주고받을 수 있다.


두 마리 토끼 한번에 잡기

컴퓨터의 양방향성, TV의 다양한 프로그램, 인터넷의 풍부한 정보를 통합하려는 본격적인 움직임은 인텔사가 주도하는 인터캐스트 그룹에서 읽을 수 있다. 이름부터 인터넷과 방송의 결합을 의미하는 이 그룹에는 인텔 외에도 CNN, NBC 등의 방송사와 넷스케이프, 게이트웨이2000, 팩커드 벨, 아메리카 온라인 등 컴퓨터 회사, 통신사 등이 망라돼 참여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가산전자도 이 그룹 일원이다.

이들의 목표는 PC를 기반으로 인터넷과 텔레비전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새로운 방송 규격을 제정하는 것이다. 이는 앞서 살펴본 웹TV와 비슷한 개념이다. 그러나 텔레비전에서 인터넷을 보는 ‘웹TV’와 달리 인터캐스트는 고성능 PC의 디지털 처리 능력을 십분 활용한다.

원리는 간단하다. 이를 테면 공중파 방송 전파는 모두 10을 전송할 수 있지만, 이 가운데 2 정도는 여유분으로 비워둔다. 현재 비워둔 부분은 문자 방송 등으로 활용되고 있다. 인터캐스트는 바로 여기에 인터넷 정보를 실어 함께 발사하고, 인터캐스트 PC를 통해 TV와 인터넷을 동시에 받아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PC 모니터 위쪽의 화면을 통해 우주왕복선이 발사되는 장면이 나오고, 아래쪽 창에는 미국 항공우주국의 홈페이지를 비롯한 관련 사이트가 나와 하이퍼텍스트 방식으로 인터넷 정보를 검색할 수 있는 것이다. 하드디스크가 달려 있으니 텔레비전 화면을 포함해 원하는 정보는 즉시 저장할 수 있다. 인터캐스트는 한쪽 방향으로만 전달되는 TV의 한계를 넘기 때문에 앞으로 주문형 비디오나 홈쇼핑 등 차세대 서비스로도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

지난 60년대를 풍미했던 미래학자 마샬 맥루한은 ‘미디어는 메시지다’ 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이는 미디어가 전달하는 것은 내용과 관계없이 바로 미디어 자체이자 본질이란 의미다. 이와 함께 그는 “미디어의 영향력이란 메시지를 전달받기 위해 동원되는 감각의 종류와 방법에 따라 결정된다”며 “눈과 귀의 감각을 연장해준 텔레비전은 인쇄매체나 라디오가 감히 덤빌 수 없는 총감각적인 존재”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제 세상은 그가 그렇게도 추앙했던 텔레비전마저 인터넷에 항복하기 직전의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맥루한이 다시 살아난다면 인터넷을 어떻게 정의내릴지 궁금하다.
 

1996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 이강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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