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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3. ‘가장 완벽한 이론’을 꿈꾸다

양자역학의 미래




“닥치고 방정식이나 푸시지!(Shut up and calculate!)”

이유는 묻지 말고 계산이나 하라는 이 비아냥은 놀랍게도 양자역학이 간혹 듣는 비판이다. 20세기 가장 성공적인 이론 중 하나지만, 양자역학은 결점이 없는 이론이 아니다. 오히려 너무나 뻔한 결점이 있어서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무엇이 현대물리학의 최전선이자 가장 정교한 이론인 양자역학을 불완전하게 만드는 걸까. 전문가라면 모두가 아는, 하지만 입 밖에는 내지 않는 ‘불편한 진실’이 있다. 바로 “왜 이런 기묘한 일이 일어나는지”를 설명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너무나 정교한, 하지만 이유는 몰라

양자역학의 핵심은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와 파동함수를 푸는 ‘슈뢰딩거 방정식’이다. 이들을 이용해 완성된 정교한 수학 모형은 물질 세계의 모습을 거의 완벽하게 계산하고 예측한다. 하지만 이를 위해 양자역학은 상식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기묘한 성질을 도입해야 했다. 파트1에 나온 성질들이 그것이다. 이순칠 KAIST 물리학과 교수는 “양자역학의 해석은 항상 옳다. 물리학자들은 양자역학이 적용되지 않는 경우란 없다고 생각한다”며 “하지만 양자역학의 체계는 매우 이상한 가설로 채워져 있다”고 말했다. 박병철 대진대 물리학과 초빙교수는 “관측을 하기전에는 양자가 ‘파동함수(양자의 상태를 설명하는 특수한 함수)’의 형태로 공존하고 있다가 (여러 상태가 겹쳐 있는 ‘중첩’) 관측을 하는 순간 파동함수가 깨지며 양자의 특성이 하나로 결정된다”며 “하지만 그렇다는 사실을 알 뿐 이유는 모른다”고 말했다.

‘관측’의 정의에 대해서도 논란이 많다. 박병철 교수는 “쥐 한 마리가 봤다고 세상이 그토록 격렬하게 반응할 수는 없다”는 아인슈타인의 말을 인용했다. 사람이 관측(측정)을 해서 슈뢰딩거 고양이의 생사를 결정할 수 있다면, ‘만약 사람이 아니라 쥐나 벼룩, 혹은 무생물이 봐도 파동함수가 붕괴할까’라는 문제가 남는다는 말이다. 관측의 범위 역시 문제다. 박교수는 “슈뢰딩거 고양이의 삶과 죽음을 결정하는 것이 관측자라면, 그 관측자를 바라보는 더 바깥의 관측자가 있을 가능성도 있다”며 “계속해서 관측자의 한계를 늘려가다 보면 신학 등 과학의 범위를 벗어나는 이야기가 나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사실은 양자역학적 계산 결과를 다르게 해석해야 한다는 주장을 낳았다. 현재 양자역학적 해석 가운데 가장 많이 받아들여지는 것은 닐스 보어와 베르너 하이젠베르크가 제기한 ‘코펜하겐 해석’이다. 앞서 설명한 ‘관측이 파동함수를 붕괴시켜 중첩된 양자의 상태를 하나의 상태로 결정한다’가 코펜하겐 해석의 핵심이다. 슈뢰딩거의 고양이를 예로 들면, 고양이는 생과 사가 ‘중첩’된 상태(확률적으로 겹쳐 있는 상태)다. 즉 살아 있기도 하고 죽어 있기도 한 상태다. 하지만 고양이는 살았으면 살았지 ‘살면서 죽어있을’ 수는 없다. 슈뢰딩거는 이 사실을 통해 양자역학이 불완전하다고 주장했다.

코펜하겐 해석에 따르면 이는 모순이 아니다. ‘고양이가 살아 있을 확률과 죽어 있을 확률이 반반’이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이런 명쾌함 때문에 현재 코펜하겐 해석은 양자역학 이론가들 사이에서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하지만 비판도 있다.

약한상호작용과 전자기력을 통합한 ‘대통일이론’으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스티븐 와인 버그 미국 텍사스대 물리학과 교수는 2005년 ‘미국물리연구소저널(피직스 투데이)’에 쓴 칼럼에서 “코펜하겐 해석은 양자역학 속 관측이 어떤 결과를 내는지를 다루면서 관측자와 측정 행위 자체는 비양자역학적인 방식으로 다루고 있다”며 “파동함수는 결과론적인 설명”이라고 비판했다.


[“양자예측의 예측은 언제나 옳다” 입자가속기에서 입자의 붕괴를 관찰하고 예측하는 일(왼쪽)이나 초전도 현상(아래) 모두 양자역학으로 계산과 예측이 가능하다.]

가장 큰 난제는 중력과의 통합

‘주류’인 코펜하겐 해석에 비판이 제기되자 물리학자들은 여러 가지 대안 해석을 냈다. 가장 많은 지지를 받는 것은 ‘다중세계’ 해석이다. 이 이론은 관측 행위가 파동함수를 깨뜨려 양자의 상태를 결정짓는 것이 아니라 관측과 동시에 각각의 사건이 존재하는 세계로 세계 자체가 갈라진다는 해석이다. 다시 말하면 관측을 하는 순간 세계는 ‘슈뢰딩거의 고양이가 살아 있는 세계’와 ‘죽은 세계’로 갈라진다. 이 해석은 우주론에도 영향을 미쳐 현재 우주도 매 순간 무수히 많은 우주로 갈라지고 있다는 ‘다우주 해석’을 낳기도 했다.

응용 분야 가운데 가장 큰 난제는 양자중력이론과 양자장 이론이다. 이강영 건국대 물리학과 연구교수는 “강한상호작용을 계산하고자 할 때 양자역학적 효과가 너무 커서 제대로 계산하기가 불가능하다”며 “원리도 알고 방정식도 아는데 불확실성이 커서 해(결과)를 구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유럽입자물리학연구소(CERN)의 거대강입자가속기(LHC)만 해도 양성자끼리 충돌을 하기 때문에 강한상호작용의 효과가 크고, 불확실성도 커서 연구에 애를 먹는다”고 말했다. 중력 이론은 더 큰 난제다. 고든 베임 미국 일리노이대 물리학과 석좌교수는 “중력과 양자역학을 결합시키면 우리가 아는 시공간은 붕괴될 수 있다”며 “중력과 양자역학의 결합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물론 이런 이유에도 양자역학의 의의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이관수 동국대 교양교육원 교수는 “더 좋은 예측을 하는 계산 모형으로 수학이 바뀔 수는 있다”며 “하지만 양자역학 자체를 부정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 아인슈타인이나 슈뢰딩거 등이 주장했던 것처럼 양자역학 자체가 잘못된 이론체계로 판명될 가능성은 적다는 뜻이다. 무라오 미오 일본 도쿄대 물리학과 교수(나노양자정보
전자연구소 교수)는 “양자역학에 오류가 있는지 실험을 통해 수없이 검증해 봤지만 양자역학과 일치하는 실험결과가 나오고 있다”며 “미시적인 계에서는 양자역학을 이용한 설명이 가장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미국 GNP의 30% 이상은 휴대전화, 컴퓨터, 레이저 기기 등 양자역학과 관련한 산업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비중이 더 높을거예요. IT 산업의 비중이 높으니까요.”

고든 베임 미국 일리노이대 물리학과 석좌교수는 양자역학의 응용 범위를 묻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오늘날의 첨단 산업은 전부 양자역학과 관련돼 있다는 말이다.

베임 교수는 유명한 양자역학 교과서인 ‘양자역학 강의(Lectures on Quantum Mechanics)’의 저자. 1969년에 처음 나온 이후 개정을 거듭하며 42년이 지난 지금까지 쓰이고 있다. 현대 양자역학 역사의 산 증인인 셈이다. 8월 26일 낮 12시, 서울 명동의 한 음식점에서 베임 교수를 만났다. 포스텍에서 열린 학술대회를 마치고 오후 비행기로 출국하기 직전이었다. 해설과 통역을 위해 금용연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연구교수가 함께했다.

“42년 동안 양자역학계에 일어난 가장 큰 변화요? 실험의 비중이 늘었다는 점이에요. 제가 책을 쓸 때만 해도 이론물리학 연구주제는 대부분 사고실험이었어요. EPR 패러독스처럼요. 하지만 지금은 실험이 보편화됐지요. 입자가속기를 이용한 연구가 대표적이에요. 한국도 중이온가속기를 건설하려고 하죠. 기대가 큽니다.”

베임 교수는 자신의 연구 주제인 물질 분야에서도 발전이 많았다고 밝혔다. 새로운 물질이 많이 발견돼 베임 교수가 개정판을 낼 때는 여럿 추가해야 했다. 연구 주제도 훨씬 다양해졌다.

“눈부시게 변한 것은 응용 분야입니다. 1930년대만 해도 휴대전화 같이 작은 전자시스템이 가능할 거라 생각하지 못했어요. 하지만 트랜지스터를 거쳐 양자역학을 응용한 반도체가 개발되면서 불가능은 현실이 됐습니다.”

양자역학은 이미 완성된 것 아닌가라는 질문에는 “절대 아니다”라고 말했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부분이 많습니다. 중력이론과 양자역학의 결합이 대표적이지요. 입자를 연구하는 이론인 양자장론도 아직 완전히 성공적이라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양자암호, 양자컴퓨터와 정보학은 지금 한창 연구가 진행 중이지요. ‘홀로그래피’라는, 차원과 관련한 시공간론도 최근 연구 중입니다. 중성자별, 쿼크의 결합 원리 등 아직 모르는 것 투성이랍니다. 사실 우리는 우리에게 친숙한 물질에 대해서도 잘 모릅니다. 철보다 무거운 원소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도 명확하게 알지 못하거든요.”

베임 교수는 양자역학을 잘 응용하려면 순수과학도 놓쳐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같은 학교 동료이자 노벨상 수상자인 고(故) 폴로터버 교수를 예로 들었다.

“양자역학을 이용한 실험장비 중에 핵자기공명장치(NMR)가 있어요. 1960년대까지만 해도 물질의 구조를 연구하는 실험실용 장치였지요. 그런데 로터버 교수는 이걸 의학용인 MRI로 개조해서 노벨상을 받았어요. 순수과학용 실험이 아니었다면 태어날 수 없었을 겁니다.”

베임 교수는 “양자역학의 미래는 나도 예측하기 힘들다”며 “더 많은 전파 정보를 확보할 수 있는 천체물리학, 핵물리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큰 활약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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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 윤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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