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소는 우주에서 수소와 헬륨 다음으로 흔한 원소로 각종 원소와 반응해 다양한 산화물을 생성한다. 그만큼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고,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원소 중 하나다.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잊지 말자’는 문구는 어쩌면 산소를 위한 말일지도 모른다.
"산소의 발견은 과학의 역사에서
가장 극적인 사건 중 하나였다.
화학을 연금술이라는 미신의 영역에서
과학의 한 축으로 재탄생시킨 ‘화학 혁명’이었다"
‘화학 혁명’의 열쇠
우리 주변에서 산소의 존재는 너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우선 산소는 무게를 기준으로 인간이 딛고 사는 지각의 절반가량을 차지한다. 드넓은 바다와 강을 이루는 물 또한 수소의 산화물로, 그 무게의 89%가 산소의 몫이다. 우리가 숨 쉬는 공기 속에도 이원자 분자인 산소(O₂) 기체가 부피 기준 20.8%나 포함돼있다.
산소는 생명체와도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지구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생명체는 산소를 이용해 호흡하며, 이를 통해 생존을 위한 에너지를 얻는다. 호흡을 통해 생성되는 부산물 또한 탄소의 산화물인 이산화탄소(CO₂)다. 식물이나 미생물은 이산화탄소를 이용해 광합성을 하며, 이때 다시 산소 분자가 생성된다. 이런 거대한 산소 순환 과정 속에서 지난 수십억 년 동안 생명체가 지구에서 번성할 수 있었다.
지구의 대기는 다른 행성보다 산소 농도가 매우 높다. 약 25억 년 전 원시 지구에서 혐기성 세균이 번성하며 광합성 등을 통해 산소 분자를 대량으로 생성했기 때문이다. 지구 역사를 통틀어 볼 때, 대기 중 산소 농도는 지금과 다른 경우가 많았다. 3억 년 전인 석탄기 끝 무렵에는 대기 중 산소 농도가 무려 35%에 이르렀고, 그 덕분에 석탄기 곤충이나 양서류는 거대한 몸집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인류가 하나의 원소로 산소를 발견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산소의 발견과 연소에 관한 탐구는 화학이 중세시대의 연금술에서 벗어나 근대 과학의 핵심으로 새롭게 탄생하는 계기가 됐다. 그만큼 산소의 발견은 과학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이었다. 지금까지도 스웨덴, 영국, 프랑스, 미국 등이 산소 최초 발견과 화학 혁명의 종주국 자리를 놓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17세기 중반 스웨덴의 화학자인 칼 빌헬름 셸레는 상한 우유의 신맛이 젖산의 생성 때문임을 발견했고, 계속된 실험을 통해 젖산 외에도 다양한 유기산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셸레는 실험 중 돋보기를 이용해 산화은(AgO)을 가열하면 특정한 기체가 생성되고, 이 기체를 모은 용기에 불타는 성냥을 넣으면 불길이 커지는 현상을 발견해 이 기체를 ‘불 공기(fire air)’라고 명명했다.
이와 비슷한 시기에 영국의 성직자 조지프 프리스틀리도 비슷한 실험을 통해 산소의 존재를 발견했다. 하지만 당시 유행하던 플로지스톤* 이론의 신봉자였던 프리스틀리는 이 결과를 붉은색의 산화수은(HgO)이 가열돼 수은으로 변하는 동안 공기에 존재하던 플로지스톤이 소모된 것이라고 여겼고, 남아있는 공기를 플로지스톤이 없는 공기로 해석했다.
이 두 발견자는 공교롭게도 자신들의 발견을 한 사람의 위대한 과학자와 공유했다. 그가 바로 앙투안 라부아지에였다. 라부아지에는 당시 프랑스 과학의 대표주자로, 유능한 관료로서도 명성이 높았던 인물이다.
그는 직접 제작한 실험 장비를 이용해 화학 반응 전후의 반응물과 생성물의 무게 변화를 정교하게 측정했다. 이어 계량을 통해 가열한 산화수은이 수은으로 변할 때 수은의 질량이 산화수은보다 줄어들며, 줄어든 질량만큼의 기체가 생성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라부아지에는 이 기체를 ‘산을 생성시키는 것’이라는 뜻의 ‘oxygen’(oxy는 고대 그리스어로 날카로움, 신맛을 뜻함)이라고 이름 붙였다. 최초로 원소로서의 산소를 발견한 것이다.
또한 라부아지에는 실험 과정에서 화학 반응 전후로 질량 변화가 없다는 ‘질량보존의 법칙’도 발견했다. 이는 화학이 연금술이라는 미신의 영역에서 과학의 한 축으로 재탄생하는 계기가 됐다. 이 사건은 과학의 역사에서 가장 극적인 사건 중 하나로 ‘화학 혁명’이라고도 부른다.
질량보존의 법칙은 유기화학의 발전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유기화합물과 산소의 연소반응을 통해 형성된 이산화탄소와 물의 무게를 측정함으로써 구조를 추정하는 연소 분석법은 분광학적 분석법이 등장하기 전까지 가장 효과적인 분석법으로 초기 유기화학에 큰 힘이 됐다.
O₂, O₃에 이어 O₄도 발견돼
산소는 다양한 물질과 산화물을 이루는데, 그중 가장 대표적인 물질이 바로 물(H₂O)이다. 산소의 발견과 연소반응에 관한 탐구로 근대 화학이 시작됐다면, 물의 분자 구조에 대한 이해는 화학의 발전 과정을 함축한다.
원자설을 주창한 영국 화학자 존 돌턴은 산소와 수소는 단 하나의 화합물을 구성하며, 이때 원자들은 최대한 단순한 정수비로 결합한다고 가정해 물이 수소 원자 하나와 산소 원자 하나로 이뤄져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후 많은 화학자들이 연소 분석을 통해 물의 구조에 관한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했다. 프랑스 화학자 조제프 게이뤼삭은 기체 상태인 수소와 산소를 반응시키면 기체 상태의 물이 생성되며, 이때 반응하는 수소와 산소 그리고 생성된 증기의 부피 비가 2:1:2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탈리아 화학자 아메데오 아보가드로는 게이뤼삭의 실험을 해석하기 위해 같은 부피의 기체는 종류와 무관하게 같은 수의 기체 입자를 지닌다는 아보가드로 가설을 주장했다. 하지만 이 경우 하나의 산소 원자로 두 개의 물 원자를 생성해야 하므로 ‘원자는 더 쪼갤 수 없는 작은 입자’라는 원자설에 어긋났다.
이에 아보가드로는 하나의 가설을 더 내세우는데, 수소와 산소 기체 분자가 두 원자의 결합으로 이뤄진 이원자 분자라는 것이다. 이 경우 물의 화학식은 H₂O가 된다. 이 가설들은 이후 이탈리아 화학자 스타니슬라오 카니차로에 의해 증명돼 사실로 인정받았다.
산소 원자는 일부 동위원소를 제외하면 8개의 양성자와 8개의 중성자로 이뤄져 있으며, 원자 구조가 매우 안정적이다. 그러나 산소 원자가 이원자 분자인 O₂를 형성하면 O₂의 독특한 전자배치로 인해 특유의 반응성을 나타낸다. 가령 산소 분자는 자성을 띠는데, 액화된 산소는 자석에 붙을 정도로 자성이 강하다. 또한 극저온에서 고체화된 산소는 전기전도성을 지니며, 심지어 초전도성을 띠기도 한다. doi:10.1038/31656
산소 분자는 자외선을 흡수해 동소체*인 오존(O₃)을 형성하기도 한다. 주로 지구 대기의 성층권에서 이런 반응이 일어나며, 형성된 오존은 지구를 향해 내리쬐는 태양광 속 자외선을 흡수하는 역할을 한다. 이를 오존층이라고 한다. 만일 오존층이 없었다면 생명체는 육상으로 진출할 수 없었을 것이다. 2001년에는 이탈리아 연구팀이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던 산소의 새로운 동소체 O₄도 발견했다. doi:10.1002/1521-3773
(20011105)40:21<;4062::AID-ANIE4062>;3.0.CO;2-X.
우주 도시 책임질 인공 광합성
산소는 산업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인류는 매년 약 100만t(톤)의 산소 분자를 공기 중에서 포집해 기체나 액화된 상태로 이용하고 있다. 그동안 조선 강국인 우리나라를 포함해 많은 나라에서 용접에 산소를 썼다.
생존이 필요한 분야에서는 산소가 필수품이었다. 지금도 산소호흡기는 수많은 응급환자를 살려내고 있으며, 바닷속을 오랫동안 운행해야 하는 잠수함 승무원들의 생존 또한 잠수함에 저장된 산소가 책임지고 있다.
우주를 향한 인간의 꿈 또한 산소와 함께해왔다. 액체 상태의 산소 분자는 대기 중에서는 영하 182도에서 끓지만, 높은 압력을 가하면 액체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산소가 없어 연소를 일으킬 수 없는 우주 공간에서 로켓 엔진을 점화하는 데 이 액화 산소가 이용된다. 산소의 도움이 없었다면 인간에게 우주는 허락되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잠수함과 마찬가지로 우주선에 탑승한 우주인의 생존 또한 우주선에 저장된 산소가 책임진다.
현대 화학에서 산소에 관한 가장 중요한 도전 과제는 인공적으로 산소를 생성할 수 있는 인공 광합성이다. 일반적으로 산화물을 분리해 산소를 얻기 위해서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하지만 식물의 광합성 과정을 이용하면 가시광선만 있어도 물을 분해해 산소를 얻을 수 있다.
현재 전 세계 연구자들이 충분한 양의 산소를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인공 광합성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앞으로 지구 밖 행성에 우주 도시를 만들기 위해서라도 인공 광합성을 통해 안정적으로 산소를 공급하는 일이 핵심 과제가 될 것이다.
이처럼 산소는 생명을 탄생시켰을 뿐만 아니라 이를 유지시키고 있으며, 또한 지구의 지각과 대기와 바다를 우리에게 제공했다. 자외선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며, 호흡을 통해 에너지를 얻어 생명을 영위하게 한다. 그리고 인간에게 화학이라는 학문을 선물했으며, 해저와 우주도 허락했다. 산소야말로 생명과 인류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 세상을 바꾼 위대한 원소라고 할 수 있겠다.
글. 김경택
인하대 고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캐나다 토론토대에서 고분자화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삼성전자, 네덜란드 네이메헌대를 거쳐 울산과학기술원(UNIST)에서 교수로 재직했다. 현재는 서울대에서 고분자화학을 연구하고 있다.
ktkim72@snu.ac.kr
*플로지스톤(phlogiston)
물질이 연소할 때 가상의 입자인 플로지스톤이 빠져나간다는 이론으로, 연소 반응을 설명하기 위해 18세기 초 만들어졌다.
*동소체(allotrope)
같은 원소로 돼 있으나 모양과 성질이 다른 홑원소 물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