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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베이터에 탔는데 남녀가 진한 키스를 나누고 있다. 이 광경을 본 당신의 생각은?

➊ 지나치게 부적절함 ➋ 매우 부적절함 ➌ 다소 부적절함 ➍ 다소 적절함 ➎ 매우 적절함 ➏ 당연함

이 설문에 대한 답으로 1번이나 2번을 택했다면 생각이 ‘경직된’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우리나라 사람치고 부적절하다고 답하지 않을 사람이 몇 명이나 있겠나?” 그렇다. 우리나라 사람들 대다수는 이런 상황에 눈살을 찌푸린다.

그런데 같은 질문을 미국인에게 하면 부적절하다고 답하거나 우리나라 사람처럼 눈살을 찌푸리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인은 한국인에 비해 생각이 ‘유연하다’는 말인가.


미국 메릴랜드대 심리학과 미셸 겔판드 교수팀을 비롯한 33개국의 국제 공동 연구팀은 설문을 통해 자국민들의 ‘경직성 점수(tightness score)’를 산출하고 그 이유를 밝힌 논문을 과학저널 ‘사이언스’ 5월 27일자에 발표했다. 33개국 가운데는 우리나라도 포함돼 있다.

“경직성 점수가 높을수록 사회가 경직됐다고 보면 됩니다. 우리나라는 10.0으로 파키스탄(12.3), 말레이시아(11.8), 인도(11.0), 싱가포르(10.4)에 이어 다섯번째이지요.”

우리나라의 조사를 맡은 성균관대 사회과학부 김기범 연구교수의 말이다. 김교수는 겔판드 교수와 함께 이번 프로젝트를 설계했다.

한국은 5번째로 경직된 나라

경직도 점수의 33개국 평균은 6.5로 우리나라가 꽤 높음을 알 수 있다. 이웃인 일본과 중국도 각각 8.6(8위), 7.9(9위)로 높은 편이다. 반면 미국은 5.1(23위), 호주는 4.4(24위), 브라질은 3.5(28위)이고 우크라이나가 1.6으로 가장 ‘유연한’ 나라다.

경직성 점수는 설문 응답을 수학적으로 처리해 얻는다. 설문은 모두 180가지의 ‘행동-상황’에 대한 평가로 이뤄져 있다. 즉 특정 상황에서 특정 행동이 적절한가 여부를 묻고 있다. 설정한 행동이 12가지(논쟁, 엉엉 울기, 먹기, 입술에 키스하기, 큰 소리로 웃기, 헤드폰으로 음악 듣기, 신문 읽기, 대화하기, 욕설하기, 노래하기, 개인적 판매 행위, 헤헤거리기)이고 상황이 15가지(은행, 누군가의 침실, 버스, 병원, 엘리베이터, 면접시험, 극장, 공원, 직장, 교실, 장례식, 파티, 도서관, 시내, 음식점)이므로 가능한 행동-상황 조합은 180가지다. 앞에 예를 든 ‘엘리베이터에서 입술에 키스하기’도 그 가운데 하나다.

[각 나라 젊은 여성들의 다양한 사고방식을 보여주는 ‘미녀들의 수다’의 한 장면. 방송 초기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시청률도 꽤 높았다.]

설문 문항 180가지를 훑어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부적절하다(1~3번)는 방향으로 답을 할 수 밖에 없을 것 같은 행동-상황이 많다. 장례식장에서 신문을 보거나 도서관에서 엉엉 우는 장면에 눈살을 찌푸리지 않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런데 이런 질문들에 적절하다(4~6번)는 쪽으로 답을 한 나라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것일까. 이런 차이가 나는 원인은 무엇일까.

“이번 연구는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이 문화나 환경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는 걸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연구자들은 이번 조사 결과와 기존의 문화적, 생태·역사적 조사 결과가 서로 관련이 있는지 알아봤다. 그 결과 다양한 측면에서 상관관계가 밝혀졌다.

예를 들어 개인주의가 강한 사회일수록 사고가 유연했고 가족의 유대가 강할수록 사고가 경직됐다. 왼손을 쓰는 사람이 적은(오른손을 써야 정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라처럼 규범을 준수하는 사회일수록 생각이 경직됐다. 또 강력한 지도자나 군대가 통치하는 사회나 정부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사회일수록 경직성 점수가 높았다. 외국인에 대해 경계심이 크거나 자국의 문화에 대한 우월감이 높은 사회도 사고가 경직돼 있었다.

[지난 봄 대지진의 여파로 후쿠시마 원전의 방사능이 유출되면서 인근 주민들은 집을 버리고 대피해야 했다. 이번 사고 수습 과정에서 세계를 놀라게 한 일본인들의 인내심 역시 경직된 사고 경향으로 설명할 수 있다.]
 
한편 역사적으로 외침이 많았거나 기근이나 자연재해에 시달린 경험이 많은 사회일수록 사고의 경직도가 높았다. 또 종교를 신실하게 믿는 사람이 많은 사회일수록 경직도가 높았다. 경직도 점수가 높은 사회는 대체로 언론의 자유가 낮았고 언론을 규제하는 각종 법규가 많았다. 반면 유연한 사회일수록 어떤 사안에 대한 서명에 참여하는 사람의 비율이나 파업, 데모에 참여하는 사람의 수가 많았다. 그렇다고 경직도가 높으면 나쁘고 낮으면 좋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유연할 사회일수록 범죄율이 높고 술 소비량도 많기 때문이다. 물론 33개국 모두가 일률적으로 같은 패턴을 보이는 건 아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는 경직도가 매우 높지만 술 소비량도 꽤 많은 나라이기 때문이다.

일본인 인내심의 비밀

“우리나라 사람들이 사고의 경직도가 높은 건 외침이 잦았고 단일민족이라는 배타성이 주요 원인으로 보입니다. 또 유교로 상징되는 기존 질서를 옹호하는 보수적 사고방식도 기여했겠죠.”

김 교수는 강의를 할 때 보면 우리나라 학생들은 대체로 ‘학생처럼’ 앉아있는 반면 미국 학생들은 수업을 들으며 껌을 씹고 있거나 책상에 발을 올려놓는 등 자유분방한 모습을 보면서 왜 이런 차이가 생기게 됐는지 궁금증이 생겨 연구를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최근 우리나라 젊은이들의 사고방식이 서구화가 됐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사람의 생각이나 행동의 규범이 그렇게 쉽게 바뀌는 게 아니거든요.”

김 교수는 대학생들과 대화를 통해 여전히 우리나라 젊은이들 대다수는 부모가 찬성하지 않는 결혼은 하지 않겠다고 생각하고 있고, 친한 친구와 끼리끼리 어울리는 집단 문화에 익숙하다는 걸 발견했다. 김 교수는 최근 펴낸 ‘문화심리학’(공저자인 중앙대 심리학과 최상진 교수는 지난 1월 작고했다)에서 “우리나라에서 친구란 동창의 다른 이름”이라며 “동창회, 향우회가 끈끈한 이유는 그것이 일종의 배타적 속성을 띠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지난 봄 발생한 일본 쓰나미와 원자력발전소 방사능 유출사고 과정에서 일본인들이 보여준 ‘경이로운’ 인내심도 문화의 경직성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말했다. 즉 일본처럼 자연재해가 많은 사회는 규범과 질서에 따라 참고 견디는 게 결국은 개인의 생존에도 유리하다는 것을 역사적으로 체험해왔기 때문에 이번 사태에서도 침착하게 대응했다는 것.

한편 싱가포르가 경직도가 높은 건 좁은 땅덩어리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극단적으로 높은 인구밀도가 주요한 요인이 될 수 있다. 길거리에 붙어 있는 껌 하나도 그냥 지나치지 않을 정도의 수많은 규제가 이 사회의 안정을 유지하는 비결이 된 셈이다.
 
[여성들의 사회활동으로 인한 출산율 저하는 문화가 유전자(본능)를 누른 대표적인 예다. 여성들은 직업에서 성공하고 명성을 얻기 위해 육아에 빼앗기는 시간을 최소화하는 선택을 한다.]

이런 사고와 행동의 경직도는 사회의 변화에도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지난 10여 년 사이 외국인의 유입이 급증한 우리나라의 경우 국내 거주 외국인에 대한 편견이나 차별이 문제가 되고 있다. 힘이 드는 3D업종은 기피하면서 이런 일을 하러 온 외국인들이 우리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까 염려하는 게 우리나라 사람 심리다.

김 교수는 “사람의 사고나 행동에 미치는 유전자의 영향은 기껏해야 40%”라며 “문화나 생태 같은 환경 요인도 그만큼의 영향은 갖고 있
다”고 설명했다. 한국에서 태어났어도 어린 나이에 미국으로 입양돼 정상 가정에서 자랐다면 그 사람의 사고나 행동은 전형적인 미국인의 모습이지 한국인의 모습은 아니라는 것.

심지어 문화는 사람들이 유전자의 명령을 거스르게 하는 강력한 힘도 갖고 있다. 인류학자인 미국 캘리포니아대(데이비스) 피터 리처슨 교수와 캘리포니아대(LA) 로버트 보이드 교수는 지난 2005년 펴낸 책 ‘유전자만이 아니다’에서 “문화는 진화의 경로를 바꿀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현대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출산율의 붕괴와 같은 놀라운 부적응이 발생했다”고 쓰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점차 심각해지고 있는 낮은 출산율은 종족보존이란 생명체의 본능을 거스르는 일인데 이는 여성들이 학교 교육을 통해 현대적인 직업을 갖게 되면서 생긴 현상이라는 것. 즉 직업에서 성공하고 명성을 얻기 위해서는 육아에 뺏기는 시간을 최소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도시 사람들은 시골 사람들보다 스트레스에 민감하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산수 문제를 풀게 하면서 스트레스를 줄 경우 도시인들은 편도체(밝은 부분)가 더 강하게 반응했다. 사진은 도시 사람들의 뇌. 왼쪽은 뇌의 가로 단면이고 오른쪽은 세로 단면이다.]

도시는 뇌 구조도 바꾼다

‘인류의 문명화가 낳은 가장 대표적인 인공물’이라고 할 수 있는 도시 역시 인간의 사고와 행동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현재 지구촌 사람들의 절반 이상이 도시에 살고 있고 2050년에는 70%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이미 인구의 81.5%가 도시에서 살고 있는 초도시화 사회다.


 
[도시 거주자들은 우울증에 걸릴 가능성이 39% 더 높고 정신분열증에 걸릴 가능성이 2배나 된다. 도시 거주자의 비율이 갈수록 높아지는 현대사회에서 정신질환이 심각한 문제로 인식되는 이유다.]

 
도시의 가장 큰 특징은 좁은 지역에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고 자연 환경에 비해 인공 환경이 많다는 것. 한마디로 우리 몸(유전자)이 적응해 있는 구석기 시대와는 전혀 다른 환경이다. 그렇다면 도시의 삶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독일 하이델베르크대 정신건강중앙연구소 안드레아스 메이어-린덴베르크 교수팀은 기능성자기공명영상(fMRI)으로 도시 사람과 시골 사람에게 미치는 스트레스의 영향력을 조사한 결과 도시 사람이 스트레스에 민감하다는 연구 결과를 과학저널 ‘네이처’ 6월 23일자에 발표했다.

연구자들은 어려운 산수 문제를 풀게 하면서 “평균보다 못 한다”거나 “너무 느리게 푼다” 같은 말을 함으로써 피험자에게 스트레스를 줬다. 그 결과 도시에 사는 사람에게서만 스트레스의 정서를 반영하는 편도체가 활성화됐다. 한편 도시에서 자란 사람의 경우 편도체의 활동을 조절하고 부정적인 감정을 처리하는 대상피질이 더 강하게 반응했다.

연구자들은 “도시 거주자들은 우울증에 걸릴 가능성이 39% 더 높고 특히 정신분열증에 걸릴 가능성은 2배나 된다”며 “이런 경향은 유전적 요인으로만은 설명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도시의 어떤 환경이 뇌가 스트레스에 반응하는 패턴을 바꿔 놓았을까. 이에 대해서는 추가 연구가 필요하지만 무엇보다도 도시의 인구과밀이 주요인일 가능성이 크다. 2009년 신경과학 분야의 저널 ‘네이처 뉴로사이언스’에 발표된 논문은 이와 관련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미국 캘리포니아공대 인문사회과학부 다니엘 케네디 박사팀은 편도체가 완전히 파괴된 S.M.이라는 여성을 대상으로 타인과의 거리에 따른 쾌적도를 조사했다. 보통 사람 같으면 낯선 사람이 다가올수록 불쾌감이 커졌지만 S.M.은
바로 코앞까지 다가와도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 그렇다면 타인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데 편도체가 관여하는 것일까. 연구자들은 정상인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타인이 가까이 다가올수록 편도체의 활성이 높아진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렇다면 만원 버스나 지하철처럼 낯선 사람들과 코를 맞댈 정도로 가까이 있어야 하는 상황이 많은 도시인들은 편도체가 과도화게 활성화 돼 있는 건 아닐까.

미국 노스웨스턴대 인류학과 에드워드 홀 교수는 공간과 인간행동의 관계를 다룬, 1966년 펴낸 기념비적인 저서 ‘숨겨진 차원(The Hidden Dimension)’에서 타인과의 거리를 4단계로 구분했다. 즉 45cm 이내를 밀접한 거리, 45~120cm를 개인적 거리, 1.2~3.6m를 사회적 거리, 3.6m 이상을 공적인 거리라고 불렀다.

사람들은 타인이 개인적 거리를 침범했을 때 불편함을 느끼고 친밀한 거리까지 무너지면 굉장히 불쾌해진다고 한다. 개인적 거리는 물론 친밀한 거리까지 종종 침범되는 도시생활에서 사람들의 스트레스가 클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 책에서 홀 교수는 “도시의 많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도시설계자나 건축가, 경제학자 같은 통상적인 전문가 집단뿐 아니라 심리학자, 인류학자, 동물행동학자 같은 새로운 전문가들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도시인들을 대상으로 한 최근의 연구결과는 그의 선견지명을 다시 한 번 확인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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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8월 과학동아 정보

  • 강석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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