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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부는 뇌가 2개나 있는 과학자”

인터뷰 - 김근일 숙명여대·백성희 서울대 교수

요즘 부부 과학자가 꽤 늘었다. 같은 분야에서 연구하는 커플도 드물지 않다. 김근일(45) 숙명여대 생명과학과 교수와 백성희(41)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는 그중에서도 손꼽히는 ‘잉꼬부부 과학자’다. 또 오랫동안 뛰어난 공동성과를 내고있는 최고의 파트너이다. 8월말 백 교수가 제 10회 한국 로레알-유네스코 여성생명과학상을 받으면서 김 교수의 외조도 한층 주목을 받았다.



“우리는 뇌가 2개나 있는 것과 같아요.”

김 교수와 백 교수는 자신들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인터뷰 내내 부부는 웃음과 상대방을 향한 칭찬이 끊이지 않았다. “제가 풀리지 않는 문제가 있으면 집으로 가져가서 김 박사에게 자꾸 들이밀어요. 이렇게 평생 같은 문제를 고민하고 해결책을 찾으니까 훨씬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었어요(백 교수).” “오히려 백 박사가 먼저 교수가 돼서 제가 도움을 더 많이 받았죠. 공동 연구를 많이 하면서 연구 과제도 장기적으로 할 수 있고 학생들을 교육하는 데도 장점이 많았어요(김 교수).”

“남편이 일등공신”

서울대에서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모두 받은 두 사람은 1993년 분자생물학과(현 생명과학부) 정진하 교수의 실험실에서 처음 만났다. 백 교수는 실험실에 막 들어간 4학년생, 김 교수는 ‘매우 무서운’ 박사 2년차 선배였다. “실험실에서 온갖 궂은 일 도맡아 하면서도 불평 하나없는, 그런 선배였어요. 처음 봤을 때 ‘아, 이 사람과 결혼하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죠(웃음).” “일을 가르쳐 주는데 뭐든 열심히 하려고 하고 실험도 잘하고 그러니까 예뻐 보였죠. 같이 다니다 보니 자연스럽게 좋아하게 됐습니다. 원래 잘 안 웃는 스타일인데 아내 만나면서 정말 많이 웃게 됐어요.”

캠퍼스 커플이 됐고, 결혼을 했고, 아이도 낳았다. 재미있는 것은 그 실험실에서 9~10쌍의 과학자 커플이 탄생했다는 것이다. 실험실에서 사랑의 묘약이라도 연구하는 걸까. 백 교수는 “실험실에만 오래 있다보니까 시간이 없어 안에서 찾는 것 같다”며 웃었다. 두 사람은 나란히 미국 샌디에이고로 떠나 박사후연구원(포닥) 생활을 했다(기자가 이 부부를 처음 만난 건 2003년 샌디에이고에서였다).

“여성 과학자들의 고비는 역시 출산과 육아예요. 뛰어난 성과를 내다가 출산과 육아라는 벽에 막히는 여성이 많아요. 그런 면에서 김 박사가 일등공신이에요. 아이 보는 것부터 살림 사는 것까지 정확히 절반씩 해줬어요.” 부부는 미국에서 돌아와 동생 하나를 더 낳았다. “한국에서는 장인 장모님과 같이 살면서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부모님 도움을 받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국가적으로는 시스템으로 풀어야 해요. 무엇보다 아내의 직장 가까이 보육 시설이 있어야 해요. 더 많은 여성이 과학자가 돼야 나라도 발전하지 않겠어요?”



새로운 분야의 개척자가 되고 싶다

두 사람은 암 발생과 유전자의 관계에 관심이 많다. 백 교수가 유전자 발현을 다룬다면 김 교수는 동물모델을 주로 연구한다. 두 사람이 지금까지 함께 발표한 논문만 30여 편에 달한다. 백 교수는 특히 2005년 암 전이를 억제하는 유전자를 밝혀내 학술지 ‘네이처’에 논문을 실었으며 2009년에는 젊은과학자상을 받았다.

과학자의 길을 걸으면서 가장 어려웠던 때를 물었다. 김 교수는 ‘박사 과정 막바지’를 꼽았다. “답답한 시기였어요. 결과는 당장 안 나오고. 아내는 참 빨리 했는데(웃음). 그저 묵묵히 하는 수밖에 없었죠. 한번 견디는 힘이 생긴 건지 그 이후에는 못 견딜 일이 없었어요.” 백 교수는 “서울대에 교수로 처음 부임했을 때”라고 말했다. “학생이나 포닥 때 결과가 빨리빨리 나왔어요. 그런데 막상 교수가 되니까 실험 외에도 할 건 많고, 연구비는 없고, 학생들은 안 따라 오고, 급한 마음에 답답했어요. 그때 정말 힘이 되어준 게 김 박사예요.” “아내가 뭍에 나온 물고기처럼 파닥파닥 뛴다고 할까, 그런 느낌이었어요. 잡아서 눌러줬죠. 길게 보라고, 급할 거 없다고요.” “시간이 지나니까 학생들이 성장하고 알아서 연구가 돌아가기 시작했어요. 성과도 잘 나왔고요.”

백 교수는 감정 표현도 잘 하고 빠르다. 한번 방향이 서면 어떻게 설계해야 할지 바로바로 답이 떠오른다고 한다. 반면 김 교수는 무겁고 길게 본다. 어떤 상황에서도 느긋하고 서두르지 않는다. 두 사람의 그런 성격이 서로를 보완하면서 최고의 파트너가 됐다. 그리고 함께 꿈을 꾸게 했다.

“작은 분야라도 정말 생명과학에 기여할 수 있는 것, 의미있는 발자취를 남길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어요. 그건 백 박사가 더 가능성이 있겠지만(웃음).” “동일한 고민을 해요. 이 이가 ‘이제 중요한 질문을 찾아라’ 자꾸 그래요. 한 획을 그을 수 있는 연구, 개척자와 같은 연구를 하고 싶어요. 그거 못하면 못 죽을 거 같아요(웃음).” “부부로서는 오래 살면서 서로 일도 잘 하고 아이들 잘 키우는 게 꿈이죠.”

2011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 김상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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