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엔 상상보다 다채로운 현실이 있다. 그리고 상상은 자연보다 더 생생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서울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열리는 ‘지구상상전’에서는 지구가 곳곳에 숨겨둔 힘과 아픔, 현실과 가능성을 다채롭게 그려내고 있다. 전시 속 자연은 순수함을 잃지 않은 상상 속의 자연도 아니고, 피해자도 아니다. 전시에 참여한 10여 명의 작가들은 자연이 거대한 유기적 순환과정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지구상상전
아프리카의 증명사진
사진작가 닉 브랜트는 “지구의 모든 생명체는 인간과 마찬가지로 지구에서 살아갈 권리가 있다”고 말한다. 그의 작품에는 아프리카에서 살아가는 동물들의 초상이 섬세하고 아름답게 담겨 있다. 최근 20년동안 아프리카 야생동물의 수는 90%나 감소했는데, 상아나 가죽을 얻기 위해 마구잡이로 밀렵한 탓이 크다. 이런 일들이 계속 벌어진다면, 브랜트의 사진들은 장례식도 치르지 못한 이름 없는 동물의 영정사진이 될지도 모른다.
앉아있는 사자의 프로필 사진
2006, ⓒNick Brandt
바람에 갈기를 나부끼며 여유롭게 누워 있는 저 사자는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 걸까? 지평선 너머로 가라앉는 석양 아닐까? 아프리카 출신의 사자이지만, 카우보이 모자를 씌워 서부 영화에 등장시켜도 어울릴 만한 모습이다.
먼지를 피워내는 코끼리
2004, ⓒNick Brandt
사바나를 터벅터벅 걸어가는 코끼리 한 마리가 코로 흙먼지를 뿜어내고 있다. 잘게 자른 종이 대신 석영 입자를 꽃가루처럼 날리는 것일까, 귀찮게 구는 날벌레들을 쫓아 줄 천연 살충제를 뿌리는 것일까?
물 마시는 코끼리
2007, ⓒNick Brandt
여유롭게 물을 마시는 저 코끼리는 물웅덩이를 찾기 위해 아득히 먼 거리를 여행했을지도 모른다. 나무 등걸의 껍질처럼 겹겹이 새겨진 코의 주름은 코끼리가 살아온 시간의 나이테 같다.
우리 시대 인간의 자화상
지구의 모습을 담는다면 사람 또한 그 위의 거주자로 담길 것이다. 사람은 영적 신비를 간직한 우아한 모습으로부터 자연과 일체가 된 모습, 스스로의 삶을 위협하는 모습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한다. 그 중 어떤 것도 인류의 다면적인 성격을 담아내기 위해서는 빼놓을 수 없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 로이터
1986년 체르노빌에서 발생한 원전사고는 원자로에 전력 공급이 차단되었을 경우 얼마나 견딜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전기를 끊고 실험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인재(人災)다. 사진에는 사건 당시 방사능에 피폭된 우크라이나 여성이, 2006년 갑상선 암 제거 수술을 받은 뒤의 모습이 담겨 있다.
수잔
1986, ⓒJoyce Tenneson
저명한 사진작가 조이스 테네슨의 이 사진은 마치 유채화 같다. 피사체의 이면에 있는 보다 깊은 차원을 담아내려 하는 테네슨의 노력은, 한 사람의 여성을 찍은 사진조차 얼마나 깊은 인상을 남길 수 있는지 보여준다. 인간이 스스로를 아름답게 그려낼 수 있는 긍정적 자화상의 한 장면이 될 것이다.
2000년 포스터스 연못
2000, ⓒArno Rafael Minkkinen
나무 네 그루? 네발 동물 한 마리? 자세히 보니 허리를 굽히고 손발로 바닥을 디딘 사람 한 명의 모습이다. 어쩌면 물구나무를 선 사람과 똑바로 선 두 사람의 사진일지도 모른다. 숲 속 호숫가에서 아내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사진작가 아르노 라파엘 밍킨넨은 자연과 합일을 이룬 인간의 육체를 담백한 흑백으로 담아낸다.
산불
2002, ⓒPipo Nguyen-duy
소년이 산불을 바라보고 있다. 어쩌면 언덕 위에 있던 시가지에 폭탄이 떨어진 것인지도 모른다. 베트남 출신의 작가 피포 누옌-두이의 ‘에덴의 동쪽’ 시리즈의 한 작품이다. 누옌-두이는 베트남 전쟁을 피해 1975년 미국으로 망명했는데, 9·11 테러를 보면서 전쟁의 공포를 다시 한 번 느꼈다고 한다.
문명, 이후
인류가 살기 위해 만든 문명이 오히려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는 경고를 심심찮게 듣게 된다. 그래서일까. 인류가 사라진 가상의 미래를 그려낸 작품들도 그다지 낯설지 않다. 전시된 몇몇 작품은 문명이 붕괴된 이후의 세계는 어떤 모습이 될지, 놀라운 상상력을 발휘해 그렸다.
아레나, n.1
2010, ⓒGiacomo Costa
폐허가 된 오렌지색 원형경기장과 시가지를 나무들이 조금씩 좁혀 들어오고 있다. 콘크리트에게 빼앗겼던 자리를 다시 찾으려고 하는 것 같다. 빌딩숲은 사람들의 활동이 멈추면 조만간 폐허가 되지만, 나무의 숲은 씨앗을 떨구고 뻗어 나가면서 자신들의 영역을 계속 개척해 나간다.
브라운 데이
2004, ⓒMary Mattingly
두 사람이 SF 영화에 등장할 법한 옷을 입고 허리까지 차오른 물속에 서 있다. 하늘과 바다는 옷감과 마찬가지로 회갈색 빛이다. 물과 대기 속의 오염물질이 침투하지 못하도록 흡수하며 막아주는 특수 섬유로 제작한 옷일까? 사진작가 메리 매팅리는 ‘세컨드 네이처’라는 연작에서, 문명이 붕괴된 후 생존하는데 필요할 장비들을 고안해 보여준다.
물, n.10
2011, ⓒGiacomo Costa
지아코모 코스타는 문명 붕괴 뒤의 세계를 3D 기술을 통해 그려낸다. 그가 인류 생존의 위협으로 지목한 요소는 혜성 충돌 같은 외부 요인이 아니라, 인구증가, 자연자원의 남용, 지구온난화와 같은 지구 내부의 요인이다. 물에 잠겨 폐허가 된 이 도시에서 수면 위로 고개를 내민 것은 높은 빌딩의 옥상과 고가도로, 아주 키가 큰 나무들 뿐이다. 물에 잠긴 아틀란티스 대륙을 생각해 보면, 이런 일은 지구의 관점에선 이따금 벌어지는 일일 뿐이다.
햄 랜드로부터 출발
2007, ⓒJohn Goto
영국의 사진작가 존 고토는 연작 ‘플러드스케이프’로, 미래의 대홍수 이후 생존자들이 살아갈 세계를 그려낸다. 런던은 어떤 모습이 될까. 쇼핑을 마친 젊은이들이 화려한 옷을 입고 장난을 치면서, 범람한 템즈강을 따라 모터보트로 이동하고 있다. 바다의 신 ‘넵튠’을 닮은 조각상이 강을 내려다보고 있는 뒤편에서는, 17세기에 저택이 침수되기 일보 직전이다. 영국 런던 히드로 공항에서 이착륙하는 비행기들은 잿빛 구름 사이로 날아다닌다.
녹색과 회색
녹색의 사물로 합성해낼 수 있는 세계와 회색의 사물로 합성해 낼 수 있는 세계는 어떻게 다를까? 회색과 녹색은 서로 보색은 아니지만, 두 빛깔이 각각 이루어낸 세계는 정반대라는 느낌을 준다. 하지만 회색 기계가 초록빛 생태계의 적일 필요는 없다. 한 가지 색으로 이뤄진 그림보다 여러 색이 어울린 그림이 말 그대로 더 다채롭기 때문이다. 회색빛의 사물들에게 다른 색깔의 사물들과 잘 어울릴 수 있는 자리를 찾아 주자.
월드 #21
ⓒRuud van Empel
연보랏빛 옷을 입은 소녀가 숲 속에 서서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엠펠이 가꿔낸 정글 속으로 우리를 안내해 줄, 사이버 세계의 앨리스다. 넓은 잎사귀를 제치면 사진 오른쪽 귀퉁이에 있는 잎을 붉은 페인트로 칠한 하트 여왕의 카드 병사들이 보일 것이다.
월드 #23
ⓒRuud van Empel
사진작가 루드 반 엠펠은 수백 장의 사진들을 찍은 후 컴퓨터로 합성해 현실에는 없는 세계를 만들어 낸다. 그는 이 작업이 씨를 뿌리고 싹을 틔워 가꾸는 농부의 일과 비슷하다고 한다. 초록빛의 식물과 달리 생명이라고는 없는 듯 보이는 회색빛 기계들은, 엠펠의 작업을 통해 가상의 세계를 길러낸 텃밭이 된다. 소년이 들여다보는 잔잔한 호수는 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전자장비를 가동시키는 투명한 액체 에너지로 이루어진 것인지도 모른다.
스톰 크라운 메커니즘
2009, ⓒDavid Trautrimas
데이비드 트라우트리마스는 ‘스파이프로스트 프로젝트’에서, 고물이 된 가전제품의 부품을 냉전시대의 건축물 사진과 합성해 가상 설비를 만들어 낸다. 그의 작품들은 한결같이 단조로운 회색빛 톤으로 이루어져 있다. ‘폭풍 발생 장치(위)’라는 이 설비는 적진을 휩쓸기 위한 허리케인을 제조하는 장치 같다. 그리고 ‘미세 폭동유도기(왼쪽)’는 노란색 유리에서 음파가 나와 사람들의 마음을 흥분시킬 것 같다. 작가는 냉전의 종식과 더불어 핵전쟁과 첩보전의 위협은 줄어들었을지도 모르지만, 이제는 현대의 소비주의 문화가 우리를 전면적으로 공습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고 있다.
미세 폭동유도기
2009, ⓒDavid Trautrimas
지구상상전
아프리카의 증명사진
사진작가 닉 브랜트는 “지구의 모든 생명체는 인간과 마찬가지로 지구에서 살아갈 권리가 있다”고 말한다. 그의 작품에는 아프리카에서 살아가는 동물들의 초상이 섬세하고 아름답게 담겨 있다. 최근 20년동안 아프리카 야생동물의 수는 90%나 감소했는데, 상아나 가죽을 얻기 위해 마구잡이로 밀렵한 탓이 크다. 이런 일들이 계속 벌어진다면, 브랜트의 사진들은 장례식도 치르지 못한 이름 없는 동물의 영정사진이 될지도 모른다.
앉아있는 사자의 프로필 사진
2006, ⓒNick Brandt
바람에 갈기를 나부끼며 여유롭게 누워 있는 저 사자는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 걸까? 지평선 너머로 가라앉는 석양 아닐까? 아프리카 출신의 사자이지만, 카우보이 모자를 씌워 서부 영화에 등장시켜도 어울릴 만한 모습이다.
먼지를 피워내는 코끼리
2004, ⓒNick Brandt
사바나를 터벅터벅 걸어가는 코끼리 한 마리가 코로 흙먼지를 뿜어내고 있다. 잘게 자른 종이 대신 석영 입자를 꽃가루처럼 날리는 것일까, 귀찮게 구는 날벌레들을 쫓아 줄 천연 살충제를 뿌리는 것일까?
물 마시는 코끼리
2007, ⓒNick Brandt
여유롭게 물을 마시는 저 코끼리는 물웅덩이를 찾기 위해 아득히 먼 거리를 여행했을지도 모른다. 나무 등걸의 껍질처럼 겹겹이 새겨진 코의 주름은 코끼리가 살아온 시간의 나이테 같다.
우리 시대 인간의 자화상
지구의 모습을 담는다면 사람 또한 그 위의 거주자로 담길 것이다. 사람은 영적 신비를 간직한 우아한 모습으로부터 자연과 일체가 된 모습, 스스로의 삶을 위협하는 모습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한다. 그 중 어떤 것도 인류의 다면적인 성격을 담아내기 위해서는 빼놓을 수 없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 로이터
1986년 체르노빌에서 발생한 원전사고는 원자로에 전력 공급이 차단되었을 경우 얼마나 견딜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전기를 끊고 실험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인재(人災)다. 사진에는 사건 당시 방사능에 피폭된 우크라이나 여성이, 2006년 갑상선 암 제거 수술을 받은 뒤의 모습이 담겨 있다.
수잔
1986, ⓒJoyce Tenneson
저명한 사진작가 조이스 테네슨의 이 사진은 마치 유채화 같다. 피사체의 이면에 있는 보다 깊은 차원을 담아내려 하는 테네슨의 노력은, 한 사람의 여성을 찍은 사진조차 얼마나 깊은 인상을 남길 수 있는지 보여준다. 인간이 스스로를 아름답게 그려낼 수 있는 긍정적 자화상의 한 장면이 될 것이다.
2000년 포스터스 연못
2000, ⓒArno Rafael Minkkinen
나무 네 그루? 네발 동물 한 마리? 자세히 보니 허리를 굽히고 손발로 바닥을 디딘 사람 한 명의 모습이다. 어쩌면 물구나무를 선 사람과 똑바로 선 두 사람의 사진일지도 모른다. 숲 속 호숫가에서 아내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사진작가 아르노 라파엘 밍킨넨은 자연과 합일을 이룬 인간의 육체를 담백한 흑백으로 담아낸다.
산불
2002, ⓒPipo Nguyen-duy
소년이 산불을 바라보고 있다. 어쩌면 언덕 위에 있던 시가지에 폭탄이 떨어진 것인지도 모른다. 베트남 출신의 작가 피포 누옌-두이의 ‘에덴의 동쪽’ 시리즈의 한 작품이다. 누옌-두이는 베트남 전쟁을 피해 1975년 미국으로 망명했는데, 9·11 테러를 보면서 전쟁의 공포를 다시 한 번 느꼈다고 한다.
문명, 이후
인류가 살기 위해 만든 문명이 오히려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는 경고를 심심찮게 듣게 된다. 그래서일까. 인류가 사라진 가상의 미래를 그려낸 작품들도 그다지 낯설지 않다. 전시된 몇몇 작품은 문명이 붕괴된 이후의 세계는 어떤 모습이 될지, 놀라운 상상력을 발휘해 그렸다.
아레나, n.1
2010, ⓒGiacomo Costa
폐허가 된 오렌지색 원형경기장과 시가지를 나무들이 조금씩 좁혀 들어오고 있다. 콘크리트에게 빼앗겼던 자리를 다시 찾으려고 하는 것 같다. 빌딩숲은 사람들의 활동이 멈추면 조만간 폐허가 되지만, 나무의 숲은 씨앗을 떨구고 뻗어 나가면서 자신들의 영역을 계속 개척해 나간다.
브라운 데이
2004, ⓒMary Mattingly
두 사람이 SF 영화에 등장할 법한 옷을 입고 허리까지 차오른 물속에 서 있다. 하늘과 바다는 옷감과 마찬가지로 회갈색 빛이다. 물과 대기 속의 오염물질이 침투하지 못하도록 흡수하며 막아주는 특수 섬유로 제작한 옷일까? 사진작가 메리 매팅리는 ‘세컨드 네이처’라는 연작에서, 문명이 붕괴된 후 생존하는데 필요할 장비들을 고안해 보여준다.
물, n.10
2011, ⓒGiacomo Costa
지아코모 코스타는 문명 붕괴 뒤의 세계를 3D 기술을 통해 그려낸다. 그가 인류 생존의 위협으로 지목한 요소는 혜성 충돌 같은 외부 요인이 아니라, 인구증가, 자연자원의 남용, 지구온난화와 같은 지구 내부의 요인이다. 물에 잠겨 폐허가 된 이 도시에서 수면 위로 고개를 내민 것은 높은 빌딩의 옥상과 고가도로, 아주 키가 큰 나무들 뿐이다. 물에 잠긴 아틀란티스 대륙을 생각해 보면, 이런 일은 지구의 관점에선 이따금 벌어지는 일일 뿐이다.
햄 랜드로부터 출발
2007, ⓒJohn Goto
영국의 사진작가 존 고토는 연작 ‘플러드스케이프’로, 미래의 대홍수 이후 생존자들이 살아갈 세계를 그려낸다. 런던은 어떤 모습이 될까. 쇼핑을 마친 젊은이들이 화려한 옷을 입고 장난을 치면서, 범람한 템즈강을 따라 모터보트로 이동하고 있다. 바다의 신 ‘넵튠’을 닮은 조각상이 강을 내려다보고 있는 뒤편에서는, 17세기에 저택이 침수되기 일보 직전이다. 영국 런던 히드로 공항에서 이착륙하는 비행기들은 잿빛 구름 사이로 날아다닌다.
녹색과 회색
녹색의 사물로 합성해낼 수 있는 세계와 회색의 사물로 합성해 낼 수 있는 세계는 어떻게 다를까? 회색과 녹색은 서로 보색은 아니지만, 두 빛깔이 각각 이루어낸 세계는 정반대라는 느낌을 준다. 하지만 회색 기계가 초록빛 생태계의 적일 필요는 없다. 한 가지 색으로 이뤄진 그림보다 여러 색이 어울린 그림이 말 그대로 더 다채롭기 때문이다. 회색빛의 사물들에게 다른 색깔의 사물들과 잘 어울릴 수 있는 자리를 찾아 주자.
월드 #21
ⓒRuud van Empel
연보랏빛 옷을 입은 소녀가 숲 속에 서서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엠펠이 가꿔낸 정글 속으로 우리를 안내해 줄, 사이버 세계의 앨리스다. 넓은 잎사귀를 제치면 사진 오른쪽 귀퉁이에 있는 잎을 붉은 페인트로 칠한 하트 여왕의 카드 병사들이 보일 것이다.
월드 #23
ⓒRuud van Empel
사진작가 루드 반 엠펠은 수백 장의 사진들을 찍은 후 컴퓨터로 합성해 현실에는 없는 세계를 만들어 낸다. 그는 이 작업이 씨를 뿌리고 싹을 틔워 가꾸는 농부의 일과 비슷하다고 한다. 초록빛의 식물과 달리 생명이라고는 없는 듯 보이는 회색빛 기계들은, 엠펠의 작업을 통해 가상의 세계를 길러낸 텃밭이 된다. 소년이 들여다보는 잔잔한 호수는 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전자장비를 가동시키는 투명한 액체 에너지로 이루어진 것인지도 모른다.
스톰 크라운 메커니즘
2009, ⓒDavid Trautrimas
데이비드 트라우트리마스는 ‘스파이프로스트 프로젝트’에서, 고물이 된 가전제품의 부품을 냉전시대의 건축물 사진과 합성해 가상 설비를 만들어 낸다. 그의 작품들은 한결같이 단조로운 회색빛 톤으로 이루어져 있다. ‘폭풍 발생 장치(위)’라는 이 설비는 적진을 휩쓸기 위한 허리케인을 제조하는 장치 같다. 그리고 ‘미세 폭동유도기(왼쪽)’는 노란색 유리에서 음파가 나와 사람들의 마음을 흥분시킬 것 같다. 작가는 냉전의 종식과 더불어 핵전쟁과 첩보전의 위협은 줄어들었을지도 모르지만, 이제는 현대의 소비주의 문화가 우리를 전면적으로 공습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고 있다.
미세 폭동유도기
2009, ⓒDavid Trautrima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