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도 처음으로 신종 슈퍼박테리아에 감염된 환자가 나오면서 의료계에 비상이 걸렸다. 이번에 발견된 슈퍼박테리아는 강력한 최신 항생제에도 죽지 않을뿐 아니라 확산 속도가 빨라 의학계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여러 종의 항생제에 듣지 않는 신종 다제내성균(일명 슈퍼박테리아) 감염 환자가 국내에서 처음 발견됐다. 우리나라가 더 이상 슈퍼박테리아의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사실이 새삼 확인된 셈이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달 수도권의 한 종합병원에 입원 중인 환자 4명에게서 ‘카바페넴’이라는 강력한 항생제에 내성이 생긴 장내세균을 분리했다고 발표했다. 세균을 분리했다는 말은 환자로부터 채집한 시료에서 균의 정체를 확인했다는 뜻이다.
이들은 모두 같은 병원에서 오랫동안 치료를 받고 있는 환자들로 밝혀졌다. 12월 9일에 감염이 확인된 환자 한 명은 간질성폐질환을 오래 앓고 있는 50대 남성으로 스테로이드를 장기 복용해 면역력이 떨어져 있는 상태였다. 70대 여자는 당뇨와 화농성척추염을 앓아 장기간 입원 중이었고 13일에 확인된 70대 남성은 척수골수염으로, 또 다른 60대 남성은 만성 간질환자로 3개월 이상 장기간 입원하고 있었다.
보건복지부는 “이번에 발견된 카바페넴 내성 장내세균(CRE)은 주로 중환자실에 장기 입원하거나 면역체계가 약해진 중증 환자에게 감염을 일으킨다”며 “감염이 되더라도 치료가 가능한 항생제(키게사이클린, 콜리스틴)가 있기 때문에 일상생활에서 감염되거나 전파될 가능성이 희박한 일반인은 과도하게 불안해 할 필요는 없다”고 당부했다. 하지만 CRE 외에 다른 종류의 슈퍼박테리아 감염 의심사례도 것계속 들어오고 있어 슈퍼박테리아에 대한 공포는 쉽게 사그라지지 않을 전망이다.
이번에 발견된 슈퍼박테리아는 NDM-1이라는 새로운 종류의 효소를 가지고 있다. 전파 속도가 무척 빨라 전 세계 의료계가 주목하고 있다. 용동은 세브란스병원 진단검사의학과 교수는 “일반 카바페넴 내성 세균은 5~6년 새 퍼지는 양상을 보이지만, 이번에 발견된 NDM-1형 세균은 1년 새 급속히 확산되는 특징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영국의 경우 첫 발견 이후 1년 만에 감염 건수가 6배 이상 크게 늘었다. 용 교수는 2009년 12월 NDM-1 효소를 세계최초로 발견해 저널 ‘항균물질-화학요법’에 발표했다.
1년 새 14개국 퍼진 슈퍼 세균
NDM-1 생성 카바페넴 내성 장내세균은 지난 2008년 인도와 파키스탄에서 처음 발견됐다. NDM-1 효소의 정식명칭은 발견된 지명의 이름을 따 ‘뉴델리 메탈로-베타락타마아제(New Delhi Metallo-beta lactamase)’다. 지금까지 영국, 미국, 캐나다, 벨기에, 중국, 일본 등 최소 14개국에서 감염환자가 발견됐다. 인도와 파키스탄이 170명, 영국이 70명이 넘는다. 지난해 8월에는 벨기에에서 첫 사망자가 나왔다.
이 효소는 베타락탐 계열의 항생제를 무력화시킨다. 베타락탐 계열에는 카바페넴 외에도 페니실린, 세파로스포린 등 우리에게 익숙한 항생제가 많이 속해 있다. 베타락탐계 항생제는 ‘베타락탐 고리’라는 특이한 구조를 갖고 있다. 세균은 세포벽을 합성할 때 PBP라는 효소를 사용한다. 그런데 베타락탐 고리가 아미노산보다 먼저 PBP와 결합해버려 세균이 세포벽을 합성하지 못하게 만든다. 세포벽을 만들지 못한 세균은 삼투압을 견디지 못하고 터져 죽는다. 사람의 세포에는 세포벽이 없기 때문에 사람에게는 영향을 미치지 않고 세균에만 작용하는 이점이 있다.
하지만 세균도 질세라 대응책을 마련한다. 베타락탐 고리를 끊어낼 변종의 효소를 만들어 낸 것이다. 이런 효소를 베타라마네제라고 부르는데, NDM-1이 여기에 속한다.
문제는 이 NDM-1이 장내세균뿐 아니라 다른 종류의 세균에서도 발견된다는 점이다. 용 교수는 “NDM-1이 장내세균뿐 아니라 아시네토박터라는 세균에서도 발견됐다”며 “어떤 세균에 먼저 존재했는지 정확히 알 순 없지만 어쨌든 NDM-1 효소가 여러 세균에 퍼질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이 효소가 다른 세균으로 퍼지기 쉬운 이유는 이 효소의 유전자가 존재하는 곳이 염색체가 아니라 플라스미드이기 때문이다. 플라스미드는 유전물질을 담은 작은 고리 모양의 DNA 조각으로, 독자적으로 증식하면서 세균들 사이를 쉽게 옮겨 다닌다. 마치 포스트잇이 책상 위에도 붙었다, 노트 위에도 붙는 것처럼 플라스미드는 이 세균, 저 세균을 옮겨다니며 유전자를 옮긴다.
실제로 스웨덴에 거주하던 59세 인도인 남성은 2007년 12월에 인도에서 입원한 뒤 이듬해 1월에 스웨덴에서 검사를 받았는데, 이 유전자가 소변의 클레브시엘라 폐렴간균과 대변의 대장균에서 모두 발견됐다. 이런 특성을 감안한다면 이 효소가 살모넬라나 콜레라, 장티푸스처럼 일반인도 쉽게 접하는 세균으로 확대되지 말란 법도 없다. 이동건 가톨릭의대 내과학교실 교수는 “그런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그렇게 되면 상황은 정말 심각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용동은 교수는 “식중독 균처럼 다른 균으로 전이가 될 가능성이 충분히 있기에 사전 관리를 위해 국가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항생제 ‘최후의 보루’ 무너져
카바페넴은 베타락탐 계열 중에서도 가장 최근에 만든 항생제다. 적용 범위가 매우 넓은 데다 효과가 좋아 의사들 사이에 ‘마지막까지 아껴두고 써야 할(내성이 생길 수 있으므로) 최후의 보루’로 통했다. 하지만 2000대 초부터 카바페넴에 저항하는 균들이 생겨 세계적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NDM-1 생성 카바페넴 내성 다제내성균도 그 중 하나다. 페니실린 이후 계속된 세균과 항생제의 싸움에서 다시 세균이 승리한 셈이다.
카바페넴처럼 강력한 항생제에 내성이 생긴 것도 문제지만 내성이 장내세균에서 생긴 것도 문제다. 이동건 교수는 “(또 다른 다제내성균이었던) 포도상구균보다 대장균과 폐렴간균처럼 장내세균이 더 위험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 이유는 요로감염, 폐렴, 패혈증을 일으키는 대장균, 폐렴간균 같은 장내세균은 병원에서 특히 감염되기 쉽기 때문이다. 장내세균은 접촉에 의해 전파된다. 요로 감염은 병원내 감염 중 30~40%를 차지할 정도로 흔한 질병이며 폐렴은 15~20%로 두 번째로 높다.
물론 건강한 사람이라면 감염이 됐다고 해서 증상이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다. 다른 병균과 마찬가지로 슈퍼박테리아도 건강한 사람이라면 수년 째 보균하고 있어도 아무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다. 하지만 면역력이 떨어진 환자들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병원에서 오랫동안 치료를 받아온 환자거나 면역력이 크게 떨어진 중증환자들은 다제내성균에 취약하다.
위기 맞은 항생제의 미래는?
그동안 인간은 세균과의 싸움에서 내성이 생기면 더 강력한 항생제를 만들어 위기에 대처해 왔다. 그러나 향후 등장할 다제내성균에 대처할 신규 항생제는 전 세계적으로 연구가 부진한 상황이다. 이동건 교수는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허가를 받는 항생제가 1970~1980년대에는 1년에 10개 정도 됐지만 이후 급속히 줄어 1990년대부터는 1년에 1개나 받을까 말까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가장 큰 이유는 제약시장이 급성질환에서 만성질환으로 돈벌이를 옮겼기 때문이다. 1970, 1980년대만 해도 급성질환을 위한 항생제는 매우 큰 시장이었지만 지금은 심장병, 뇌혈관 질환, 당뇨병처럼 만성질환용 약 쪽으로 변하고 있다. 비만과 운동부족으로 만성질환자가 크게 늘고 있고 한 번 먹기 시작하면 오랫동안 먹어야 하는 약의 특성상 지속적인 수입원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항생제를 뽑아낼 자연물질의 후보군이 한계에 다다르면서 합성비용이 늘어났다. 이마저도 개발비가 많이 든다는 이유로 거대 제약회사에서는 관심을 쏟지 않고 있다. 이 교수는 “현재 항생제 개발 연구는 대학과 벤처기업을 중심으로 진행하는 편”이라면서 “항생제를 만들더라도 암 환자들이 잘 걸리는 진균류(곰팡이) 질환을 치료하는 데로 집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의료관광이 슈퍼세균 키운다
끊임없이 항생제 내성균이 나오는 가장 큰 이유는 항생제의 오남용 탓이다. 항생제는 세균을 사멸하는 약이다. 따라서 바이러스 질환에는 효과가 없다. 하지만 의약분업이 일어나기 전까지 국내 의료계에서는 감기에 항생제를 처방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바이러스가 감기의 원인일 확률이 90%가 넘는데도 말이다. 이동건 교수는 “10% 미만의 감기가 세균성 원인을 갖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항생제 처방을 하지 않으면 세균에 의한 폐렴 발병을 막을 수 없기 때문에 많은 의사들이 어쩔 수 없이 처방하곤 했다”고 설명했다.
이런 현상을 뒷받침 하듯 보건복지부의 ‘2009년도 의약품 소비량 및 판매액 통계조사’에 따르면 국내 항생제·항진균제·항바이러스제 등을 포함하는 항감염약의 1000명당 1일 소비량은 OECD 국가 중 1위에 올라 있다. 항생제 내성균이 발생할 환경이 어느 나라보다 잘 마련돼 있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항생제는 사용에 이득이 있을 때, 감염질환의 원인균에 딱 맞는 항생제를 선택해 정확한 투약 기간과 양을 지켜 사용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리고 “일단 항생제를 쓰면 병원균을 모두 사멸할 때까지 사용해야지, 중단하거나 너무 적은 양을 복용하면 남아 있는 균들에 의해 내성이 생긴다”고 말했다.
병원에서는 수술기구를 소독하고 손을 씻는 등 위생관리에 철저해야한다. 일본의 한 병원에서만 9명이 다제내성균에 감염돼 사망한 것은 감염 자체가 아니라 감염 환자를 방치한 것이 문제였음을 기억해야한다.
의료 관리가 허술한 지역에서 성형수술을 받는 원정 의료 행위도 자제해야 한다. 저널 ‘병원감염’에서 영국 위크셔대의 뮈르 박사는 “시스템이 다른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의료 서비스를 받는 이른바 의료관광이 NDM-1을 빠르게 확산시키는 원인이 되고 있다”고 경고했다. NDM-1 생성 다제내성균이 처음 발생했던 2008년 3월 한 유럽인(인도 출생)의 경우 인도에서 항생제 처방을 받은 후 감염을 확인했다. 2010년 5월 영국에서 발생한 환자도, 2010년 6월 미국에서 발생한 감염 환자 3명도 모두 인도에 머물면서 의료 치료를 받았다. 이에 ‘란셋 전염병’ 8월호는 인도를 ‘NDM-1 발병의 진원지’로 지목했다. 하지만 인도의료당국은 ‘악의적인 선전’이라며 부인하고 있는 상황이다.
국내 보건당국은 슈퍼바이러스의 확산을 조기에 차단하기 위해 감염대책위원회 설치 의무 병원을 현재 150곳에서 1100여 곳으로 확대해 감시체계를 강화하기로 했다. 감염 전문가들은 “일반인들은 손을 자주 씻고 의료 기구에 접촉할 때는 조심하는 것이 슈퍼 세균 감염을 예방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일이자 중요한 대책”이라고 조언했다.
여러 종의 항생제에 듣지 않는 신종 다제내성균(일명 슈퍼박테리아) 감염 환자가 국내에서 처음 발견됐다. 우리나라가 더 이상 슈퍼박테리아의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사실이 새삼 확인된 셈이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달 수도권의 한 종합병원에 입원 중인 환자 4명에게서 ‘카바페넴’이라는 강력한 항생제에 내성이 생긴 장내세균을 분리했다고 발표했다. 세균을 분리했다는 말은 환자로부터 채집한 시료에서 균의 정체를 확인했다는 뜻이다.
이들은 모두 같은 병원에서 오랫동안 치료를 받고 있는 환자들로 밝혀졌다. 12월 9일에 감염이 확인된 환자 한 명은 간질성폐질환을 오래 앓고 있는 50대 남성으로 스테로이드를 장기 복용해 면역력이 떨어져 있는 상태였다. 70대 여자는 당뇨와 화농성척추염을 앓아 장기간 입원 중이었고 13일에 확인된 70대 남성은 척수골수염으로, 또 다른 60대 남성은 만성 간질환자로 3개월 이상 장기간 입원하고 있었다.
보건복지부는 “이번에 발견된 카바페넴 내성 장내세균(CRE)은 주로 중환자실에 장기 입원하거나 면역체계가 약해진 중증 환자에게 감염을 일으킨다”며 “감염이 되더라도 치료가 가능한 항생제(키게사이클린, 콜리스틴)가 있기 때문에 일상생활에서 감염되거나 전파될 가능성이 희박한 일반인은 과도하게 불안해 할 필요는 없다”고 당부했다. 하지만 CRE 외에 다른 종류의 슈퍼박테리아 감염 의심사례도 것계속 들어오고 있어 슈퍼박테리아에 대한 공포는 쉽게 사그라지지 않을 전망이다.
이번에 발견된 슈퍼박테리아는 NDM-1이라는 새로운 종류의 효소를 가지고 있다. 전파 속도가 무척 빨라 전 세계 의료계가 주목하고 있다. 용동은 세브란스병원 진단검사의학과 교수는 “일반 카바페넴 내성 세균은 5~6년 새 퍼지는 양상을 보이지만, 이번에 발견된 NDM-1형 세균은 1년 새 급속히 확산되는 특징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영국의 경우 첫 발견 이후 1년 만에 감염 건수가 6배 이상 크게 늘었다. 용 교수는 2009년 12월 NDM-1 효소를 세계최초로 발견해 저널 ‘항균물질-화학요법’에 발표했다.
1년 새 14개국 퍼진 슈퍼 세균
NDM-1 생성 카바페넴 내성 장내세균은 지난 2008년 인도와 파키스탄에서 처음 발견됐다. NDM-1 효소의 정식명칭은 발견된 지명의 이름을 따 ‘뉴델리 메탈로-베타락타마아제(New Delhi Metallo-beta lactamase)’다. 지금까지 영국, 미국, 캐나다, 벨기에, 중국, 일본 등 최소 14개국에서 감염환자가 발견됐다. 인도와 파키스탄이 170명, 영국이 70명이 넘는다. 지난해 8월에는 벨기에에서 첫 사망자가 나왔다.
이 효소는 베타락탐 계열의 항생제를 무력화시킨다. 베타락탐 계열에는 카바페넴 외에도 페니실린, 세파로스포린 등 우리에게 익숙한 항생제가 많이 속해 있다. 베타락탐계 항생제는 ‘베타락탐 고리’라는 특이한 구조를 갖고 있다. 세균은 세포벽을 합성할 때 PBP라는 효소를 사용한다. 그런데 베타락탐 고리가 아미노산보다 먼저 PBP와 결합해버려 세균이 세포벽을 합성하지 못하게 만든다. 세포벽을 만들지 못한 세균은 삼투압을 견디지 못하고 터져 죽는다. 사람의 세포에는 세포벽이 없기 때문에 사람에게는 영향을 미치지 않고 세균에만 작용하는 이점이 있다.
하지만 세균도 질세라 대응책을 마련한다. 베타락탐 고리를 끊어낼 변종의 효소를 만들어 낸 것이다. 이런 효소를 베타라마네제라고 부르는데, NDM-1이 여기에 속한다.
문제는 이 NDM-1이 장내세균뿐 아니라 다른 종류의 세균에서도 발견된다는 점이다. 용 교수는 “NDM-1이 장내세균뿐 아니라 아시네토박터라는 세균에서도 발견됐다”며 “어떤 세균에 먼저 존재했는지 정확히 알 순 없지만 어쨌든 NDM-1 효소가 여러 세균에 퍼질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이 효소가 다른 세균으로 퍼지기 쉬운 이유는 이 효소의 유전자가 존재하는 곳이 염색체가 아니라 플라스미드이기 때문이다. 플라스미드는 유전물질을 담은 작은 고리 모양의 DNA 조각으로, 독자적으로 증식하면서 세균들 사이를 쉽게 옮겨 다닌다. 마치 포스트잇이 책상 위에도 붙었다, 노트 위에도 붙는 것처럼 플라스미드는 이 세균, 저 세균을 옮겨다니며 유전자를 옮긴다.
실제로 스웨덴에 거주하던 59세 인도인 남성은 2007년 12월에 인도에서 입원한 뒤 이듬해 1월에 스웨덴에서 검사를 받았는데, 이 유전자가 소변의 클레브시엘라 폐렴간균과 대변의 대장균에서 모두 발견됐다. 이런 특성을 감안한다면 이 효소가 살모넬라나 콜레라, 장티푸스처럼 일반인도 쉽게 접하는 세균으로 확대되지 말란 법도 없다. 이동건 가톨릭의대 내과학교실 교수는 “그런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그렇게 되면 상황은 정말 심각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용동은 교수는 “식중독 균처럼 다른 균으로 전이가 될 가능성이 충분히 있기에 사전 관리를 위해 국가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항생제 ‘최후의 보루’ 무너져
카바페넴은 베타락탐 계열 중에서도 가장 최근에 만든 항생제다. 적용 범위가 매우 넓은 데다 효과가 좋아 의사들 사이에 ‘마지막까지 아껴두고 써야 할(내성이 생길 수 있으므로) 최후의 보루’로 통했다. 하지만 2000대 초부터 카바페넴에 저항하는 균들이 생겨 세계적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NDM-1 생성 카바페넴 내성 다제내성균도 그 중 하나다. 페니실린 이후 계속된 세균과 항생제의 싸움에서 다시 세균이 승리한 셈이다.
카바페넴처럼 강력한 항생제에 내성이 생긴 것도 문제지만 내성이 장내세균에서 생긴 것도 문제다. 이동건 교수는 “(또 다른 다제내성균이었던) 포도상구균보다 대장균과 폐렴간균처럼 장내세균이 더 위험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 이유는 요로감염, 폐렴, 패혈증을 일으키는 대장균, 폐렴간균 같은 장내세균은 병원에서 특히 감염되기 쉽기 때문이다. 장내세균은 접촉에 의해 전파된다. 요로 감염은 병원내 감염 중 30~40%를 차지할 정도로 흔한 질병이며 폐렴은 15~20%로 두 번째로 높다.
물론 건강한 사람이라면 감염이 됐다고 해서 증상이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다. 다른 병균과 마찬가지로 슈퍼박테리아도 건강한 사람이라면 수년 째 보균하고 있어도 아무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다. 하지만 면역력이 떨어진 환자들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병원에서 오랫동안 치료를 받아온 환자거나 면역력이 크게 떨어진 중증환자들은 다제내성균에 취약하다.
위기 맞은 항생제의 미래는?
그동안 인간은 세균과의 싸움에서 내성이 생기면 더 강력한 항생제를 만들어 위기에 대처해 왔다. 그러나 향후 등장할 다제내성균에 대처할 신규 항생제는 전 세계적으로 연구가 부진한 상황이다. 이동건 교수는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허가를 받는 항생제가 1970~1980년대에는 1년에 10개 정도 됐지만 이후 급속히 줄어 1990년대부터는 1년에 1개나 받을까 말까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가장 큰 이유는 제약시장이 급성질환에서 만성질환으로 돈벌이를 옮겼기 때문이다. 1970, 1980년대만 해도 급성질환을 위한 항생제는 매우 큰 시장이었지만 지금은 심장병, 뇌혈관 질환, 당뇨병처럼 만성질환용 약 쪽으로 변하고 있다. 비만과 운동부족으로 만성질환자가 크게 늘고 있고 한 번 먹기 시작하면 오랫동안 먹어야 하는 약의 특성상 지속적인 수입원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항생제를 뽑아낼 자연물질의 후보군이 한계에 다다르면서 합성비용이 늘어났다. 이마저도 개발비가 많이 든다는 이유로 거대 제약회사에서는 관심을 쏟지 않고 있다. 이 교수는 “현재 항생제 개발 연구는 대학과 벤처기업을 중심으로 진행하는 편”이라면서 “항생제를 만들더라도 암 환자들이 잘 걸리는 진균류(곰팡이) 질환을 치료하는 데로 집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의료관광이 슈퍼세균 키운다
끊임없이 항생제 내성균이 나오는 가장 큰 이유는 항생제의 오남용 탓이다. 항생제는 세균을 사멸하는 약이다. 따라서 바이러스 질환에는 효과가 없다. 하지만 의약분업이 일어나기 전까지 국내 의료계에서는 감기에 항생제를 처방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바이러스가 감기의 원인일 확률이 90%가 넘는데도 말이다. 이동건 교수는 “10% 미만의 감기가 세균성 원인을 갖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항생제 처방을 하지 않으면 세균에 의한 폐렴 발병을 막을 수 없기 때문에 많은 의사들이 어쩔 수 없이 처방하곤 했다”고 설명했다.
이런 현상을 뒷받침 하듯 보건복지부의 ‘2009년도 의약품 소비량 및 판매액 통계조사’에 따르면 국내 항생제·항진균제·항바이러스제 등을 포함하는 항감염약의 1000명당 1일 소비량은 OECD 국가 중 1위에 올라 있다. 항생제 내성균이 발생할 환경이 어느 나라보다 잘 마련돼 있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항생제는 사용에 이득이 있을 때, 감염질환의 원인균에 딱 맞는 항생제를 선택해 정확한 투약 기간과 양을 지켜 사용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리고 “일단 항생제를 쓰면 병원균을 모두 사멸할 때까지 사용해야지, 중단하거나 너무 적은 양을 복용하면 남아 있는 균들에 의해 내성이 생긴다”고 말했다.
병원에서는 수술기구를 소독하고 손을 씻는 등 위생관리에 철저해야한다. 일본의 한 병원에서만 9명이 다제내성균에 감염돼 사망한 것은 감염 자체가 아니라 감염 환자를 방치한 것이 문제였음을 기억해야한다.
의료 관리가 허술한 지역에서 성형수술을 받는 원정 의료 행위도 자제해야 한다. 저널 ‘병원감염’에서 영국 위크셔대의 뮈르 박사는 “시스템이 다른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의료 서비스를 받는 이른바 의료관광이 NDM-1을 빠르게 확산시키는 원인이 되고 있다”고 경고했다. NDM-1 생성 다제내성균이 처음 발생했던 2008년 3월 한 유럽인(인도 출생)의 경우 인도에서 항생제 처방을 받은 후 감염을 확인했다. 2010년 5월 영국에서 발생한 환자도, 2010년 6월 미국에서 발생한 감염 환자 3명도 모두 인도에 머물면서 의료 치료를 받았다. 이에 ‘란셋 전염병’ 8월호는 인도를 ‘NDM-1 발병의 진원지’로 지목했다. 하지만 인도의료당국은 ‘악의적인 선전’이라며 부인하고 있는 상황이다.
국내 보건당국은 슈퍼바이러스의 확산을 조기에 차단하기 위해 감염대책위원회 설치 의무 병원을 현재 150곳에서 1100여 곳으로 확대해 감시체계를 강화하기로 했다. 감염 전문가들은 “일반인들은 손을 자주 씻고 의료 기구에 접촉할 때는 조심하는 것이 슈퍼 세균 감염을 예방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일이자 중요한 대책”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