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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이 없었다면 진화론도 없었을까?

과학동아가 선정한 이달의 책



주사기를 든 손이 거칠게 떨린다. 크게 심호흡을 한 남자는 소에서 짠 고름을 어린 아이팔에 천천히 주사한다. 과연 천연두가 발생하지않을까, 진짜 백신이 효과를 발휘할까. 주위 사람들도 침을 삼키며 아이의 목숨을 위태롭게 할지도 모르는 이 위험한 실험을 지켜본다. 처음으로 천연두 균을 사람 몸에 집어넣는 장면을.

여기서 퀴즈. 위 이야기 속 남자는 누굴까. 속으로 ‘풋, 이런 쉬운 문제를’이라며 비웃을 지도 모르겠다. 에드워드 제너, 또는 지석영을 떠올리며.

하지만 아쉽게도 ‘땡’이다. 답은 ‘아무도 모름’이다. 처음으로 천연두 환자의 종기(또는 소의 종기)에서 고름을 짜내 건강한 사람의 몸속에 집어넣은 사람은 아시아나 아프리카에 있는 이름 모를 농부였을 가능성이 크다. 백신 접종은 민속 의료 속에 수 세기 동안 깊숙이 뿌리박고 있었기 때문이다(남자가 아닐 가능성도 높다). 에드워드 제너와 지석영은 민속 의료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처음으로 기록에 남긴 지식인일 뿐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종두법’이라고 하면 에드워드 제너와 지석영의 이름만 기억할까? 평범한 보통 사람들은 생각하지 못한 혁신을 마치 이들이 주도한 것처럼. 클리퍼드 코너가 쓴 ‘과학의 민중사’는 도발적으로 질문한다. 과학이 정말 천재적인 과학자 몇 명 덕분에 이렇게 발전했다고 믿는가.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없었으면 우리는 아직도 태양이 지구를 돈다고 믿고 있었을까. 아이작뉴턴과 찰스 다윈이 아니었으면 만유인력과 진화론은 등장하지 않았을 발견일까.

저자는 ‘위대한 과학자’가 아닌 ‘평범한 민중’이 과학의 진보에 훨씬 큰 영향을 미쳤다고 말한다.

교과서나 위인전기, 과학서적을 통해 읽은 과학자들의 영웅담은 단지 신화일 뿐이라고. “남들보다 멀리 볼 수 있었던 뉴턴의 능력은 자신의 주장처럼 그가 ‘거인들의 어깨 위에’ 앉아 있어서가 아니라, 밝혀지지 않은 수천 명의 글자도 모르는 장인의 등 위에 서 있었던 덕분”이라면서.

과학의 발전이 수많은 사람들에 의한 집단적인 성취라는 사실도 강조한다. 에너지 보존과 변환 법칙들은 “이론가들의 지적 호기심이 아니라 증기 기관의 효율성을 조금이라도 높여서 이윤을 얻기 위한 엔지니어들의 치열한 노력이 만들어낸 결과”라는 해석처럼 말이다. ‘미국 민중사’를 통해 원주민과 흑인의 입장에서 미국 역사를 새로 쓴 하워드 진이 이 책에서 극찬한 것도 이렇게 기존 관념을 삐딱하게 바라보는 시각이다.

평범한 민중들이 과학자보다 낫다니, 연구에 몰두해 평생을 바친 과학자가 들으면 참 억울할 말이다. 저자도 “물론 양자 이론이나 DNA 구조를 규명한 공로를 곧장 장인이나 농부에게 돌릴수 있다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이라며 과학자들의 노력을 폄하하려는 의도는 없다고 밝힌다. 단지 과학 지식의 생산과 전파에 당당히 한몫을 했지만, 역사 속에 드러나지 않았던 수많은 보통 사람들을 제대로 조명해보자는 취지에 가깝다.

과학에서 민중의 역할을 찾아냄으로써 우리 인류가 실생활에서 과학을 어떻게 발전시켜 나갔는지 돌아볼 수 있다는 설명이다. 고도로 전문화된 직업 과학자들만이 과학연구를 도맡아 하는 현대사회에서 풀어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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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변지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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