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고등학생이 개발한 수화번역장갑

국제 과학기술 공모전, 인텔 ISEF

세계 40여개 국가의 미래 과학도 1천2백명이 5월 8일 미국 IT업계의 심장인 실리콘밸리에 모여들었다. 지난 1년여에 걸쳐 이뤄진 연구 성과를 두고 서로의 기량을 겨루기 위해서다. 직접 그 뜨거운 경쟁의 현장을 찾아갔다.

세상에는 선천적으로 또는 질병이나 사고로 인해 말을 못하는 사람이 많다. 그래서 청각장애인들 대다수는 의사소통방법으로 수화를 사용해야 한다. 그러나 일반인은 수화를 알아듣지 못한다. 때문에 청각장애인과 일반인과의 대화는 쉽지 않다.

그런데 만약 청각장애인의 수화를 글로 변환할 수 있는 장치가 있다면 어떨까. 그리고 이런 생각으로 연구에 나선 사람이 고등학생이라면?
17살의 미국인 라이안 패터슨이 그 주인공이다. 금발머리에 날카로운 눈매의 소유자인 그는 수화를 문자로 변환하는 장치를 고안해냈다. 이 장치의 이름은‘사인 변환기’(sign translator).

패터슨은 골프장갑에 센서를 부착해서 손가락의 구부림 동작을 포착하는 첨단장치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마이크로프로세서와 프로그래밍 언어를 통해 장갑과 컴퓨터를 연결했다. 그 결과 장갑을 끼고 수화로 알파벳을 표현하면 모니터에 문자로 나타난다.

패터슨은 자신의 놀라운 연구를 미국 IT업계의 심장부 실리콘밸리가 위치한 캘리포니아주 산호세에서 5월 8-11일 열린 올해 인텔 과학기술경연대회(인텔 ISEF,International Science & Engineering Fair)에 소개했다. 그의 연구는 올해 인텔 ISEF에서 가장 주목받았다.
인텔ISEF가어떤대회이기에 17살의 소년이 수행했다고 하기에는 놀라운 수준의 연구가 등장하는 것일까.

미국인 참가자가 80%

인텔 ISEF는 올해로 52회를 맞은 국제 학생연구발표대회다. 미국의 비영리교육기관으로 출판과 교육프로그램을 통해 과학에 대한 대중의 이해를 선도해가는 사이언스서비스가 1950년부터 주관해오고 있다. 그리고 인텔이 1992년부터 최대 후원사가 되고 있다.

전세계 40여개 국가에서 9-12학년(중3-고3)의학생1천2백여명이총14개 과학기술 분야에 참가하는 명실공히‘청소년 과학기술올림픽’이다. 분야는행동∙사회과학, 생화학, 식물학, 동물학, 화학, 컴퓨터과학, 지구∙우주과학, 공학, 환경과학, 노인학, 수학,의학과 건강, 미생물학, 물리학 등이다.

여기에 참가하는 학생들은 짧게는2-3개월 길게는 8년 동안 스스로 수행한 연구결과로 지역 또는 국가별 예선을 거쳐 최종 결승전(매년 5월에 개최)에 진출한다. 대학입학 전에 과학적 호기심을 길러 과학자의 길을 미리 맛보는 것이다.

그러나 국제대회라는 명칭에 무색하게도 미국 중심적이다. 지역별로 참가자의 비율을 살펴보면, 미국이 무려 80%를 차지한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경우는 약 5%에 불과하다.

인텔사는 지난 5년간 미국 외 국가의 최종 진출자 수가 두배로, 올해의 경우 20% 증가했다고 보도했다. 그나마 최근에 증가했다는 말이다. 인텔의 교육담당 이사인 칼린 엘리스는“앞으로 인텔은 미국 외 학생들의 참여 비율을 더욱 높일방침”이라고 한국 기자단과의 인터뷰에서 입장을 밝혔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이 대회에 얼마나 참여할까. 고작 0.17%에 그친다. 참가국 중 가장 저조한 참가율이다. 우리나라는 1999년부터 컴퓨터과학 분야만 해마다 두명씩 참가하고 있다.

올해는 서울 세종고의 신해수군, 부산 대동고 박영준군이 그 주인공이다. 모두 고3 수험생인 이들은 지난해 열린 한국정보올림피아드 공모부분에서 고등부 수상을 통해 인텔 ISEF 한국대표로 선발됐다.

이들을 처음 만난 것은 5월 8일에 열린 개회행사 때다. 이날 저녁 산호세 기술박물관(techmuseum)은 결선 진출자, 지도교사 또는 교수, 학부모, 그리고 기자단으로 가득 메워져 있었다. 서로 인사를 나누면서 각자가 준비해온 자그마한 선물, 예를 들어 배지, 동전 등을 교환하는 자리였다.

여기서 도수가 높은 안경에 자그마한 얼굴이 인상적인 신해수군과 굵은 눈썹이 매력적인 박영준군을 첫 대면했다. 다음날에 있을 평가에 약간은 초조해하는 눈치다. 신군과 박군은 미리 며칠 전에 도착해서 자신들의 연구프로젝트를 심사받기 위한 전시를 준비해 왔다.

신군은 시각 장애인이 모바일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도록 점자입력이 가능한 장치, 박군은 지능형영상인식프로그램, i-Com을개발해 인텔ISEF에 출전했다.

지난 2년간 인텔 ISEF 출전 학생을 지도한 한국과학기술원 전산학과의 배두환 교수는“작년보다 학생들의 수준이 높아졌다”며“대학에서 연구하는 주제에 보다 더 가까워졌다”고 평가했다.
 

인텔의 교육담당 이사 칼린 엘리스.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과학적 사고력 우선

인텔 ISEF는 연구 프로젝트를 전시상태에서 평가한다. 연구에 대한 의도, 과정, 그리고 결과에 대해 학생들은 일정한 공간에 글, 사진, 또는 개발 장치로 선보인다.

대회 이튿날에 심사가 이뤄졌다. 결선 진출자와 심사관, 그리고 대회 진행요원 외에는 그 누구도 심사장으로의 진입이 허용되지 않는다. 어떤 과정으로 평가가 이뤄지는지에 대한 궁금증을 눌러야만 했다.

인텔 ISEF는 1천2백여명의 학생을 평가하는 심사관만도 6백명 이상. 이들은 과학기술, 또는 교육 분야의 박사학위 소지자나 그 분야에서 8년 이상 근무한 전문가다. 이들 중에는 노벨상 수상자도 포함돼 있다.

심사관은 저녁 9시까지 하루종일 세차례에 걸쳐 학생의 연구를 평가한다. 평가방식은 질의응답. 학생은 각자의 부스에 배치돼 있고, 심사관이 학생에게 찾아와 면담을 통해 평가한다.

평가요소는 창의성, 과학적 사고력, 완성도, 기술, 결론의 명쾌성 등이다. 이 중에서 가장 비율이 높은 요소는 창의성과 과학적 사고력이다. 문제를 얼마나 스스로 독창적으로 해결했는지, 그리고 결론을 내리기까지 과학적으로 사고했는지가 각각 30%를 차지한다.

이는 인텔ISEF 참가학생을 뽑는 국내대회인 정보올림피아드 공모부문과는 다른 특성이다. 정보올림피아드의 공모부분의 경우 작품결과를 중요하게 평가한다. 그러나 인텔 ISEF는 독창성과 과학적 사고력, 그리고 과정상에서의 기술을 중점적으로 심사관이 살펴본다.
이런 차이 때문에 신해수군과 박영준군은 정보올림피아드에 출품한 작품과 별도로 올 초부터 인텔 ISEF를 위한 연구를 수행해야 했다. 기간은 고작 2개월 정도였다.

그러나 인텔 ISEF에는 무려 8년에 걸쳐 연구를 수행한 학생도 있고, 하나의 연구로 이번까지 네번 참가한 학생도 있었다. 참가대상이 되는 9학년부터 12학년까지 매년 빠지지 않고 참가한 것이다. 대회 참가자 중 18%가 올해 이전에도 참가했던 경험이 있다.

심사를 마친 중국인 과학자를 만나보았다. 그는 두차례에 걸쳐 인텔 ISEF 심사관으로 학생의 연구를 평가했다. 그의 심사소감은 한마디로“미국이나 캐나다의 연구환경이 뛰어나다”는 것이었다.

“아시아 지역의 학생들은 고등학교 수준의 환경에서 연구를 수행한다. 그러나 미국이나 캐나다의 경우 대학교 수준의 환경에서 수행하기 때문에 환경 차이가 심하다.”

미국 특허청에 근무하며 인텔 ISEF 심사관으로 참여한 김홍종 박사는“학생의 수준은 천차만별”이라면서“어떤 학생의 경우 박사논문 수준에 이른다”고 말한다. 그러면서“대개 미국의 학생들은 대학이나 연구기관의 박사와 연구를 함께 수행한다”며“미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의 학생들이 밀릴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IBM 과학자로부터 도움 받아
 

화학분야에서 산호세 대표로 출전한 재 미교포 허우영군. 그는 IBM의 과학자 로부터 연구과정에서 도움을 받았다.


한국에서 3년전 미국으로 이민간 허우영군에게서 미국 사회가 얼마나 연구환경이 잘 발달돼 있는지를 또한번 확인했다. 허군은 화학분야로 인텔ISEF에 산호세 대표로 출전했다. 그의 연구주제는‘고글과 안경에 적합한 투명 보호막 개발’이었다. 왜 이런 장치를 개발했느냐고 질문하자 그에게서 기특한 대답이 나왔다.

“아버지가 페인트 일을 하세요. 그런데 매번 아버지가 끼시는 고글에 페인트가 잘 벗겨지지 않아서 애를 먹으시는 거예요. 그래서 고글에 씌울 수있는일회용보호막을만들려고시작했어요.”

허군에게 학교로부터 이 연구를 하는데 어떤 도움을 얻었는지를 물었다. 여기서 미국의 일반학교에서 연구과목이 보편화돼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학교과정 중에는 연구과목이 있어요. 이 과목은 한반에 대략 13명의 학생이 수강하는데, 저는 이 과목을 이수하는 과정에서 고글의 보호막을 연구했어요. 이결과로 인텔 ISEF 대회에 참가하게된거구요.”

우리로서는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연구과목이 과학고에서나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연이어 연구과목을 담당하는 교사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허군에게 물었다. 이에 대해“선생님은 학생들이 수업 중 교실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합니다. 그리고 학생이 연구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해결하기 힘든 문제가 생겼을 때 도움을 주세요”라면서“저는 우선 시중에 판매하는 여러 종류의 본드로 고글에 적합한 투명 보호막을 만들었어요. 그런데 이를 과학적으로 설명하기에는 저의 기초지식이 부족했어요. 그래서 선생님께 도움을 요청했습니다”라고 답한다.

구체적으로 어떤 도움을 선생님으로부터 받았는지를되물었다.“ IBM 연구소의화학자를 소개해 주시더군요. 그로부터 기초지식 과제가 했던 실험에대한 여러가지 조언을 받았습니다. 많은 도움이 됐죠.”

단지 교사만이 학생들의 연구활동을 장려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미국 과학기술계가 학생연구활동에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는 것이다.
미국의 풍성한 연구풍토가 인텔 ISEF의 심사결과에서 어떤결과를 가져올지는 불 보듯뻔했다. 미국의참가비율이 80%인데, 수상비율은 90%를 육박한 것이다. 특히 최고상은 거의 다 휩쓸었다.


시상은 특별상과 본상으로 나뉜다. 상의 수 만도 9백여개에 이르며, 한 학생이 중복수 상할 수 있다. 많게는 8개를 수상한 경우도 있다


우리나라 특별상 두개와 본상 4위 획득

시상은 본상과 특별상, 두종류로 나뉜다. 특별상은 본상보다 하루 일찍 발표하는데 50여개의 각종 과학기술관련 학회, 협회, 또는 기관으로부터 상금, 상패, 또는 그 기관의 과학자와 연구해볼 기회가 학생에게 주어진다. 올해는 총 2백40여명에게 특별상이 돌아갔다.

그러나 기관마다 제각각 수상자를 선발하기 때문에, 중복해서 수상하는 경우가 종종 보인다. 무려 4개 기관으로부터 지목받은 이도 있다. 바로 올 최고의 관심사를 받았던 라이안 패터슨으로, 그는 상금 3천5백달러와 유명기관의 과학자 밑에서 연구하는 인턴십을 거머줬다.

우리나라의 박영준군도 특별상 두개를 획득했다. 국제 전기전자공학(International Electric and Electronics Engineers)와미국인공지능협회(American Association for Artificial Intelligence)로부터총상금1천5백달러를받았다.

본상 시상식은 행사 마지막날에 열렸다. 본상 시상식이 열리는 산호세 대학의 이벤트센터에 학생들은 마치 축제에라도 온 듯 정장이나 화려한 옷을 입고 등장했다. 본상은 14개의 분야별 4위부터 1위 순서로 발표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각 등수에 한명씩 선정되는 것은 아니다. 등수마다 여러 학생이 동시에 선발된다. 그리고 1등상이 분야별 최고상도 아니다. 1등 수상자 중에 서 다시 분야별 최고상이 선발된다. 분야별 최고상에는 5천달러, 1위 3천달러, 2위 1천5백달러, 3위1천달러, 그리고 4위 5백달러의 상금이 걸려 있다.

이후 분야와 상관없이 여러 종류의 상이 계속 시상됐다. 시간이 갈수록 시상식의 열기는 점점 뜨거워지고 과연 이 대회의 최고상이 무엇인지가 궁금해졌다. 참가 학생들은 시상이 끝나갈수록 더욱 들떴고, 수상자들에게 기립박수를 보냈다.

특별상에서 이미 4차례나 수상했던 라이언 패터슨은 이날도 역시 주인공이었다. 그는 본상 시상식에서도 4차례 수상해 상금만도 5만8천달러를 손에 넣었다. 특히 인텔 ISEF의 최고상으로 꼽히는 노벨상 수상식 방문상, 그리고 5만달러의 상금과 최고급 컴퓨터가 수상되는 인텔 젊은 과학자상 두개를 모두 거머줬다. 시상대에 여러 차례 불려가면서 그는 연신“와우”하며 기쁨을 표현했다.

본상 시상에서 우리나라의 박영준군은 공학분야의 4등상을 따냈다. 그는“너무 빨리 불려져서 아쉬웠어요”라며 수상소감을 표현했다. ‘좀더 시간적 여유를 두고 준비를 철저히 했더라면’하는 아쉬움을 계속 감추지 못했다.

연구결과가 특허출원으로 이어져

학생들의연구중인상적인것들이여럿있다. 특히 생활 주변에서 찾을 수 있는 문제가 눈에 띤다.

환경과학에 출전한 한 친구는 환경친화적인 모기 제거법을 소개했다. 미국 코네티컷에서 온 나이버그가 그 주인공이다. 그가 내세운 방법은 무엇일까. 바로 음파를 이용하는 것.

그는 모기의 유충단계부터 성충까지 음파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조사했다. 이 과정에서 모기의 유충이 16-32kHz 범위의 음파영역에 노출되면 내부조직이 파괴되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왜 그런지를 이론적으로 밝혀내기까지 했다. 그리고 이 사실을 특허출원까지 해놓은상태였다. 이 학생뿐만 아니라 인텔ISEF에 참가한 학생 중 20%가 자신의 연구결과를 특허출원한다. 학생차원의 연구에서 머무르지 않다는 말이다.

대회 일정 중에 인텔 창립자 앤디 그로브의 연설이 있었다. 그는‘인생은 정해진 길을 가는 것이아니다’(Life is like a random walk)라는제목으로 참가학생들에게 연설했다. 여기에서 그는 자신의 성장과정을 빗대어 학생들이 살아가는데 열린 마음으로 여러 갈래의 인생길을 바라보라고 말한다.

그로브의 어린 시절 꿈은 오페라 가수였다. 그런데 자신이 오페라 가수로서의 소질이 없음을 발견하고는 꿈을 저널리스트로 변경한다. 하지만 고등학교 시절에 이 또한 좌절을 겪고 완전히 새로운 길로 수정한다. 이때 그가 선택한 길은 화학자. 이후 대학시절에 화학의 여러 갈래길 중에서 진정으로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그리고 그는반도체기술과 관련된 실리콘 연구를 선택했다. 이후 그가 인생에서 접한 절호의 기회는 인텔과의 만남이었다. 그로브도 역시 방황의 시절을 보낸 것이다. 그가 연설에서 강조한 것은‘여러 인생의 방황길에서 자신의 열정을 따르라’는 것. 젊은이에게 참으로 귀감이 되는 말이었다.

2001년 06월 과학동아 정보

  • 박미용 기자

🎓️ 진로 추천

  • 전자공학
  • 컴퓨터공학
  • 소프트웨어공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