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이소연이 만난 우주인] ‘금수저’ 색안경 벗겨낸 노력파 세르게이 볼코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차로 1시간 거리에 있는 즈뵤즈드늬 가라독(Zvyozdny gorodok·‘별의 도시’라는 뜻)은 내겐 고향 같은 곳이다. 이곳에는 가가린 우주인 훈련센터(GCTC·Gagarin Cosmonaut Training Center)가 있다. GCTC에서 보낸 1년은 물리적으로 짧지만 강렬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매년 눈 내리는 계절이 오면 2007년 별의 도시가 생각나고, GCTC에서 함께 훈련받던 사람들 얼굴이 하나둘씩 떠오른다.

 

2018년 여름, 나는 그토록 그리워하던 별의 도시를 오랜만에 방문했다. 그리고 2008년 우주비행을 함께 한, 소유스호의 지휘관이었던 세르게이 볼코프를 모스크바에서 다시 만났다. 사실 그는 다가가기가 어려운 사람이었다. ‘지휘관’이라는 직책을 떠나서 우주인으로도 한참 선배인데다, 훈련하고 비행하는 내내 단 한 번도 농담을 하는 법이 없는 진지한 사람이었다.

 

그가 아직까지 동일한 e메일 주소를 쓰고 있을까. 러시아 우주인들은 미국 우주인과 함께 훈련하고 임무를 수행할 때는 부여받은 e메일을 쓰지만, 임무가 끝나면 더 이상 쓰지 않는 경우가 많다. 반신반의하며 연락했다. 그러자 놀랍게도 곧바로 답장이 왔다. “지금 어디야, 만나자!”

 

 

 

규율에 엄격했던 지휘관

 

“요즘 모스크바 길이 엄청 막혀. 너 아마 많이 늦을 거야.”

 

그의 ‘예언’처럼 나는 약속 시간을 한참 넘겨 도착했다. 그는 아내 나딸랴, 아들 이고르와 함께 웃으며 나를 반겼다. 10년 전 무뚝뚝하고 엄격했던 이미지와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장난기는 ‘1도 없는’ 모범생 군인 같았다. 그런 그의 성격을 자명하게 보여주는, 지금도 기억나는 순간이 있다. 국제우주정거장(ISS)에서 나흘 간 우주비행을 마치고 지구로 귀환하기 전 짐을 정리할 때였다. 당시 러시아 우주청(지금은 해체되고 새로운 국영우주기업이 설립됐다)과 한국항공우주연구원과의 계약서에 따르면 내가 지구로 귀환할 때 가지고 올 수 있는 물건들은 지극히 제한적이었다. 실험결과를 기록한 데이터들과 분석해야 하는 시료 몇 점을 제외하고는 모두 소유스호의 생활모듈에 실어 연소하기로 돼 있었다. 생활모듈에 실어 태울 물건들을 챙기던 중, 함께 비행한 러시아 우주인 한 명이 내가 쓰던 소형 카메라에 관심을 보였다.

 

“이건 내가 개인 물건으로 가지고 있으면 안 될까? 어차피 태울 물건인데.”

 

그는 나와 달리 국제우주정거장에 6개월가량 체류하는 일정이었다. 개인적으로는 그의 말대로 해도 큰 문제가 될 것 같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는 상황도 아니고, 소소한 물건들은 그렇게 남겨두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들었다. 그러나 세르게이는 정색했다.

 

“여기 서류에 몇 월, 며칠, 어디에 넣으라고 적혀 있잖아.”

 

그의 말에 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졌다. 카메라를 챙기려던 러시아 우주인은 머쓱하게 돌아갔다.

 

 

 

 

우주인 아버지에게서 배운 점

 

세르게이가 다른 우주인들보다 규율에 엄격하고 진지한 성격을 가진 이유가 나는 아버지의 영향이 아닐까 추측한다. 많은 러시아의 젊은 우주인들은 세르게이를 부러워했다. 그의 아버지가 냉전시대 옛 소련의 우주영웅인 알렉산드르 볼코프(Aleksandr Volkov)이기 때문이다.

 

세르게이는 전투기 조종사 출신 우주인인 아버지를 따라 즈뵤즈드늬 가라독으로 이사를 왔고, 자연스럽게 가가린 우주인 훈련센터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정작 본인은 자신이 특별한 곳에 산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마당에서 놀다가 러시아의 전설적인 우주인인 발렌티나 테레시코바(Valentina Tereshikova·세계 최초 여성 우주인)나 알렉세이 레오노프(Alexey Leonov·세계 최초 선외 비행 성공)를 쉽게 만날 수 있었다. 심지어 레오노프가 삼촌처럼 함께 놀아준 적도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세르게이에게 “아버지의 직업이 우주인이어서 좋은 점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그는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그는 아버지를 따라 비행장에 놀러가고 모형 비행기를 타면서 자연스럽게 공군사관학교에 입학했지만, 졸업할 때까지 우주인이 될 생각은 크게 없었다. 아버지가 힘들게 우주비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날엔 더더욱 그랬다.

 

그는 “우주인에 지원할 때, 우주인이라는 직업에 대해 막연한 환상을 갖지 않았던 것이 (아버지가 우주인인) 거의 유일한 장점이었다”며 “우주인이 되고 보니, 아버지를 보면서 추측했던 것보다 힘든 일들이 훨씬 많더라”고 회상했다.

 

그가 우주인으로 선발돼 가가린 우주인 훈련센터로 돌아갔을 때, 그곳에는 어린 시절 아버지를 훈련하던 교관들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자연히 경험 많은 우주인인 아버지와 막 훈련을 시작한 아들을 비교하는 시선이 쏟아졌다. 훈련하는 내내 아버지를 쫓아가는 느낌이 들고, 눈앞에는 항상 깨야 할 아버지의 기록이 있었다고 회상했다. 다음에 러시아에 가면 세르게이의 아들인 이고르에게도 아버지가 우주인일 때의 장점이 무엇인지 물어봐야겠다.

 

 

 

 

우주에 가고자했던 간절함

 

모든 일을 완벽하게 준비하고, 모든 규칙을 교과서처럼 지키는 그에게 내가 스트레스로 느껴지지 않았을까. 잘 알려진 것처럼, 2008년 소유스호 발사를 한 달 남짓 앞두고 탑승 우주인이 나로 바뀌는 해프닝이 있었다. 이 글을 핑계로 10년 만에 그에게 물었다. 훈련을 함께 많이 하지 못했던 우주인과 비행을 하게 돼서 달갑지 않았다는 말을 들을 마음의 준비를 했었다.

 

그러나 그의 대답은 의외였다. 듣곤 왈칵 눈물이 났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2008년 1월, 비행을 세 달 앞두고 기자회견을 했을 때 너의 간절했던 표정을 기억해. 그때 너의 표정은 2005년 내 표정을 보는 것 같았지. 그땐 참 아쉽고 안타깝다고 생각했어. 당분간 한국이 우주인을 배출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렇게 교체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으니까. 교체 소식을 들었을 때 너무 놀랐고 또 반가웠지. 훈련 받는 모습을 유심히 지켜봤었기 때문에 의심 없이 잘 해낼 것이라고 믿었어.”

 

 

소유스호에 탑승하는 우주인을 총괄하느라 바쁜 지휘관이 예비우주인 훈련까지 주의 깊게 봤을 것이라곤 미처 생각 못했다. 그리고 그제야 실마리가 풀렸다. 카자흐스탄 바이코누르 우주기지에서 훈련을 할 때 그가 나에게 왜 그런 말을 했는지를. 당시 우주인들이 이동하는 버스 맨 앞자리 유리판에는 우주비행 임무들을 상징하는 스티커가 수없이 붙어 있었다. 같이 탄 선배 우주인들이 너도나도 본인들의 비행 스티커를 설명해 주는데, 마지막에 세르게이도 한 장을 가리켰다.

 

그는 2005년 첫 우주비행을 준비하던 중 행정적인 이유로 비행 직전에 갑자기 미션(임무)에서 빠지게 된 적이 있다며, 이 스티커가 그 비행의 미션 패치라고 했다. 미션 패치의 왼쪽에 커다란 태양이 그려져 있었는데, 원래는 그 자리에 세르게이의 이름이 있었다고. 본인의 자리에 다른 우주인을 태운 로켓이 발사하는 장면을 지켜봐야만 했던 그가, 예비우주인인 나의 마음을 공감했던 것이다. 

 

세르게이는 언제 다시 비행을 할 수 있을지 막막하기만 했던 그 때, 비로소 본인이 얼마나 우주인이 되고 싶었는지 알게 됐다고 했다. 2008년 4월, 우주복을 입고 함께 발사장으로 향하는 버스에서 세르게이는 가족들의 응원 영상 메시지를 보며 눈물을 흘렸다.

 

 

 

탄광의 ‘지휘관’으로 제2의 삶 시작

 

그는 2017년 우주인에서 은퇴하고 러시아에서 가장 큰 석탄회사에서 또 한 번 지휘관이 됐다. ‘SUEK’라는 회사에서 석탄을 개발하고 생산하는 인력 3만 명을 책임지는 임무를 맡았다. 그는 지금 일이 우주가 아닌 지상에서 이뤄진다는 점만 다를 뿐, 많은 사람들이 함께 일을 하고 채굴자들의 안전이 아주 큰 사안이라는 점에서 우주인이 하는 일과 비슷한 점이 많다고 말했다.

 

자신이 좋아하고 성과도 훌륭했던 우주인이라는 직업을 내려놓기가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세르게이는 “스포츠 선수들이나 다른 유명인들이 힘들지만 가장 빛날 때 떠난다고 말하는 것처럼, 열정과 에너지를 모두 쏟아 부었기에 그 결과에 만족하고 떠나기로 했다”며 “우주 비행을 기다리는 후배들에게 기회를 더 주고 싶기도 했다”고 말했다. 보통 첫 비행까지 10~15년을 기다리는데, 그 시간이 얼마나 힘든지 잘 알기에 내린 결정이었다.

 

그런 그에게 비현실적인 줄은 알지만 농담처럼 물었다. 다시 우주 비행을 할 수 있다면 나랑 같이 갈 생각이 있느냐고. 그리고 내가 지난번보다 좀 더 나은 우주인이 되려면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도 궁금했다.

 

세르게이는 고맙게도 “다시 갈 기회가 있다면 당연히 다시 갈 것이고, 너와 함께 갈 생각도 있다”고 답해줬다. 그리고 이내 그다운 진지한 설명을 이어나갔다. 지난 번 나의 우주 비행이 너무 짧았기 때문에 우주를 완전히 경험하려면 최소 두 달 이상 머물러야 한다는 등 말이다.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함께 우주 비행을 했던 우주인들끼리는 뭔가 특별한 느낌이 있는지 궁금해 한다.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항상 서로를 좀 더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고, 오랜만에 만나도 함께 훈련받던 때처럼 가까워지는 묘한 관계라고 하면 대답이 될지 모르겠다. 지금 나와 세르게이처럼 말이다.

 

2019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이소연 로프트 오비탈(Loft Orbital) 전략기획 및 국제협력 담당
  • 에디터

    이영혜 기자

🎓️ 진로 추천

  • 항공·우주공학
  • 노어노문·러시아학
  • 국제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