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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엣지 사이언스] 촉매로 만드는 친환경, 화학 산업이 푸르러 질 때

 

지난 3월 국내에서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이 시행됐다. 이로써 한국은 2050 탄소중립 비전을 법제화한 세계 14번째 국가가 됐다. 이제는 탄소중립 사회로의 이행이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최근 기업들은 친환경을 필두로 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탄소중립은 기업 경영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전기와 의류, 플라스틱 등을 포함해 가정과 사무실에 있는 여러 제품들 모두가 탄소중립과 관련이 깊다. 현재의 화학제품은 화석연료인 석유를 원료로 생산하고 있으며, 생산 단계에 필요한 에너지를 공급하는 데 이산화탄소가 배출된다. 폐기 과정에서도 지구 환경에 유해한 영향을 미친다. 이런 측면에서 탄소중립을 위해서는 화학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화학 산업은 거대한 설비와 장치로 대량생산 체계를 갖춘 장치산업으로, 오랜 기간 개발해 최적화된 공정으로 구성돼 있다. 그리고 그 핵심에는 촉매가 있다. 촉매는 화학반응에 필요한 에너지를 낮추고 동시에 화학제품의 생산성을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화학 산업의 미래 가치를 창출하고자 촉매 연구자들은 다양한 방면에서 노력을 하고 있다. 지난해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베냐민 리스트 교수와 데이비드 맥밀런 교수가 개발한 ‘비대칭 유기촉매’가 대표적인 사례다. 비대칭 유기촉매는 화학반응에서 만들어지는 두 가지 거울상 이성질체 중 한 가지만을 선택적으로 합성할 수 있는 촉매다. 생성물을 의약품으로 사용하기 전에 정제해야 했던 기존 촉매 반응과 달리 합성한 결과를 바로 사용할 수 있어 제약 산업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이처럼 탄소중립을 위한 다양한 해법을 제공하고자 많은 촉매 연구가 진행 중이다.

 

 

반응에너지 줄여 친환경 수소 만든다

 

탄소중립을 달성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은 이산화탄소 발생을 막는 것이다. 화학 산업에서는 다양한 부문에서 이산화탄소가 발생한다. 특히 공정 운영에 필요한 에너지를 만드는 과정에서 가장 많은 이산화탄소가 나온다.

 

최근 에너지원으로 주목받는 수소를 예로 들어보자. 수소는 생산 과정에 따라 그레이 수소, 블루 수소, 그린 수소 등으로 나뉜다. 가장 이상적인 수소의 종류는 물을 전기분해하는 그린 수소다. 이때 이산화탄소는 전혀 발생하지 않으나, 아직까지 기술적으로 극복해야 할 장애물이 있어 현실화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그레이 수소는 메테인을 원료로 수증기와 반응시켜 만드는데, 이 과정에서 이산화탄소가 발생한다.

 

현 시점의 수소 산업 또한 탄소중립 측면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래서 이산화탄소를 원료로 수소를 만드는 건식 개질 반응이 최근 주목을 받고 있다. 건식 개질 반응은 별도의 시약 없이 이산화탄소와 메테인만을 반응시켜 일산화탄소와 차세대 에너지원인 수소를 얻는 방법이다. 다만 반응물질로 쓰이는 이산화탄소와 메테인은 워낙 안정성이 커 높은 반응 온도가 필요하다. 친환경 공정을 운영하기 위해 오히려 많은 에너지가 쓰인다는 의미다.

 

 

이런 역설적인 문제의 해답은 촉매에서 찾을 수 있다. 건식 개질 반응에서 촉매는 높은 온도를 견디고, 오랜 기간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동안 값비싼 귀금속이 촉매 후보물질로 활용돼 왔지만, 최근에는 코발트나 니켈 등 합금을 활용한 촉매가 연구되는 추세다. 다만 합금 촉매의 경우 해결해야하는 문제가 있다. 건식 개질 반응에서 나타나는 현상 중 하나인 코킹(coking)이다. 반응이 진행되면서 적정 온도 아래로 떨어질 경우 촉매 표면에 탄소가 쌓여 반응성이 낮아지는 현상이다. 현재 촉매 연구자들은 촉매의 구조와 배열 등을 조절해 코킹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는 상황이다.

 

복잡한 화학반응, 촉매로 조절한다

 

에너지를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에너지를 사용하는 과정에서도 많은 양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된다. 자동차와 선박, 비행기 등 운송수단이 대표적이다.

 

2016년 10월 유엔(UN) 산하 국제민간항공기구(ICAO)는 국제항공 탄소 상쇄감축제도(CORSIA)를 채택했다. 국제 항공사들의 탄소 배출량을 2019년 수준으로 동결하고 초과량은 배출권을 구매해 상쇄해야 한다. 2027년부터는 의무적으로 감축 계획을 이행해야 하는 상황이다. 한국 또한 이 제도에 참여하고 있다. 현재 세계적으로 대체연료인 바이오항공유 연구개발이 진행 중인데, 원료로 식물성 기름과 저급 기름 등을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식재료와 관련된 식물성 기름보다는 저급 기름이 미래의 원료가 될 것이며, 대표적인 원료가 바로 폐식용유다.

 

폐식용유로부터 항공유를 생산하기 위해서도 역시 높은 효율의 촉매가 필수적이다. 촉매가 가진 화학반응을 조절하는 능력 때문이다. 항공유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폐식용유를 다양한 탄소 수를 가지는 포화 탄화수소로 바꿔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산소 제거, 수소 첨가, 탄화수소 분해 등의 여러 공정을 거쳐야 한다. 이는 곧 에너지와 비용의 상승을 뜻한다. 하지만 적절히 디자인된 촉매를 활용한다면 공정에 필요한 에너지를 줄이는 것은 물론 과정까지 단축할 수 있다.

 

최근 상용화 수준의 촉매 개발이 진행되는 상황이다. 일례로 2015년 중국에서는 바이오항공유를 이용한 상용비행에 처음 성공했고, 국내 항공사와 정유사도 바이오항공유 도입을 목표로 연구개발에 나선 상황이다. 이들의 노력이 성공한다면 머지않아 탄소중립 항공기가 하늘에서 비행할 것이다.

 

친환경 일상 속에 숨어있는 촉매 과학

 

우리 일상생활에서 필요한 다양한 제품도 화학 산업으로부터 생산된다. 탄소중립을 위해서는 석유가 아닌 다른 친환경 원료를 사용하거나, 이산화탄소를 직접 사용하는 방법도 생각해 볼만하다.

 

최근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바이오 밸런스드’ 제품이 바로 친환경 원료를 사용한 사례다. 자연계에 존재하는 자원을 이용해 플라스틱 원료를 생산하는 연구도 진행되고 있다. 그중 원유에서 추출해 페트병을 만드는 데 사용되는 테레프탈산을 천연 화합물인 2,5-푸란디카르복실산(FDCA)으로 대체하는 기술이 상용화에 가장 앞서있다. 2,5-FDCA는 식물이 갖고있는 탄수화물을 재료로 만들어지는 물질로, 대표적인 바이오플라스틱 재료 중 하나다. 이 물질 또한 촉매 반응을 통해 생산되는데, 반응에 필요한 산소를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촉매의 개발이 시급한 상황이다.

 

이산화탄소를 직접 이용해 화학제품을 생산하는 방식도 있다. 아직 제품을 대량 생산하는 데는 한계가 있지만, 가장 근본적인 접근법이면서 기술개발 성공 시 가장 파급력이 클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이산화탄소에 있는 산소 덕에 여러 개의 수산화기(-OH)를 갖는 폴리올 제품에 대한 연구가 한창 진행 중이다.

 

폴리올의 품질은 분자를 합성하는 데 얼마나 많은 이산화탄소가 활용되는지, 분자구조에 붙은 수산화기의 비율이 얼마나 되는지가 결정한다. 이를 조절하기 위해서는 촉매의 역할이 다시 한 번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이산화탄소 유래 폴리올을 개발하는 데 성공한다면, 가정집과 건물 내에 많이 사용되는 폴리우레탄의 원료를 대체할 수 있다.

 

촉매는 자신은 그대로 있으면서 화학반응의 속도를 높이는 마치 마법 지팡이와 같은 물질이다. 해리포터와 같은 마법사가 아닌 이상 자연의 돌을 마음껏 가지고 놀 수는 없다. 하지만 촉매는 한 세기가 넘는 연구개발을 통해 마법 이상의 능력을 보여 왔다. 화석연료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해 촉매는 화학이라는 터전에서 마법을 부려왔다.

 

이외에도 친환경 탄소중립을 위한 촉매 연구는 매우 다양하게 진행되고 있다. 단순해 보이지만 새로운 원료를 사용하면서 생기는 반응 효율의 저하, 목적 생성물이 아닌 다른 물질은 분리하고 정제하는 어려움 등이 있어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촉매는 어려움을 돌파하면서 지금까지 성장해 왔고 앞으로도 성장해 갈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의 많은 촉매 연구자들이 불철주야 탄소중립을 위한 초석을 마련하는 연구들을 수행하고 있으며, 관련 제품들 또한 발표되고 있다. 대량 생산이라는 마지막 관문을 돌파하기까지는 보다 더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르겠으나, 탄소중립 실현은 앞으로 가능할 것으로 내다본다.

 

최근 친환경 제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그 밑바탕에 촉매의 도움이 있다는 것을 알아주는 이들은 많지 않다. 앞으로 다가올 친환경 사회를 위해 많은 촉매 연구자들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주길 바란다.

 

 

2022년 5월 과학동아 정보

  • 서영웅 한양대 화학공학과 교수
  • 에디터

    이병철 기자 기자
  • 디자인

    이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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