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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2. 오후 6시가 되면 마법사가 깨어난다

 

※ 편집자 주 - 본문에 나오는 ‘폭풍’은 ‘폭우와 우박을 동반한 폭풍 (사나운 바람)’을 말합니다. 전문가들은 ‘스톰’이라는 용어를 사용합니다.



올해 미국에서는 6월까지 1330여 개의 토네이도가 발생했고 520명 이상이 사망했다. 미주리 주의 한 도시에서만 130명 이상의 인명피해가 있었다. 지난 4월 27일 하루 동안 312개의 토네이도가 발생해 약 340명이 사망했다. 지난 10년 동안 연간 평균 발생 건수가 1274건인데, 반년 사이에 이를 훌쩍 넘어선 셈이다. 이는 1974년 4월 3~4일 이틀 동안 미국 13개 주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생긴 148개의 토네이도로 315명이 죽은 기록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그렇다면 역사상 가장 강력한 토네이도는 무엇이었을까. 1925년 3월 18일 미국 중서부에서 발생한 토네이도는 3개 주를 휩쓸면서 689명의 사망자를 냈다.

토네이도앨리에서 강한 토네이도가 자주 발생하는 지역은 텍사스 주 북부, 오클라호마 주, 캔자스 주, 네브래스카 주, 사우스다코타 주 동부, 콜로라도 주 동부 등이다. 봄에 이 지역은 남동쪽의 멕시코 만에서 불어오는 습하고 따뜻한 공기와 북서쪽의 로키 산맥에서 불어오는 차고 건조한 공기가 만나 대기가 매우 불안정해진다. 따라서 상승운동이 활발해지면서 깊은 대류성 구름을 가진 폭풍(스톰, storm)이 자주 발생한다. 회전하는 상승기류에 의해 폭풍구름이 매우 크게 발달하는 것을 ‘슈퍼셀(거대 세포) 폭풍’이라고 한다. 토네이도는 이 슈퍼셀의 맨 아랫부분에서 매우 작은 규모로 발생하는 소용돌이 기류다. 토네이도는 미국 중부 평원 지역에서 3~7월에 걸쳐 나타난다. 봄에 주로 남부지역에서 강하게 발달하다가 여름에 접어들면서 점점 북쪽에서 발생하고 세기도 감소한다.

슈퍼셀의 지름은 40~50km 정도인데, 토네이도는 지름이 수십~수백m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토네이도의 세기는 후지타 척도(Fujita scale)로 F0~F5 등급으로 분류한다. 최근에는 강화된 후지타 척도(Enhanced Fujita scale)로 분류하기도 한다. 가장 약한 등급의 토네이도는 풍속이 시속 105~137km이며, 가장 강한 토네이도는 시속 322km을 넘는다. 가장 강한 등급의 경우, 이동하는 경로의 너비가 1km를 넘기도 한다. 미국에서 토네이도의 평균 너비는 150m, 평균 경로 길이는 8km 정도다. 그러나 2004년 5월 22일 네브래스카 주에서 발생한 토네이도는 경로 너비가 4km에 달했다. 앞서 언급한 1925년의 토네이도는 지상에서 352km나 이동했다. 보통 이동거리가 160km를 넘으면 하나의 슈퍼셀 안에서 한 토네이도가 쇠퇴한 후 다른 토네이도가 연속적으로 발생하는 식이다. 당시 토네이도는 이에 대한 뚜렷한 증거가 없어 하나의 토네이도에 의한 것으로 추정된다.

토네이도가 생기려면 슈퍼셀이 가장 중요하다. 슈퍼셀이 발달하려면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우선 위에서 언급한 서로 다른 성질의 공기가 만나 불안정한 대기 상태가 형성돼야 한다. 폭풍 발달의 에너지가 되는 따뜻하고 습한 공기를 지속적으로 보급해 주는 하층 제트류도 있어야 한다. 또한 지상의 습윤한 공기를 상층으로 올려주는 대류 운동이 필요한데, 이는 주로 지표에 차등가열이 있을 때, 지형의 경사면에 공기가 부딪칠 때, 그리고 공기가 전선면을 타고 올라갈 때 나타난다.


넓은 들판에 발달한 슈퍼셀.



토네이도 터치다운

수증기를 잔뜩 머금은 지상의 공기덩어리가 이런 요인들에 의해 상승하게 되면 점점 냉각되면서 어떤 고도에서 구름이 형성된다. 이 공기덩어리가 계속 상승하면 구름이 깊게 발달한다. 공기덩어리는 얼마나 높이 올라갈까. 만일 상승기류가 공기덩어리를 일정 높이(대기의 온도가 공기덩어리의 온도보다 낮아지는 지점)까지 강제로 올려 보내면 그때부터는 공기덩어리가 자력으로 상승해 연직으로 높게 발달한 구름을 만든다. 구름 속에서는 구름입자들이 충돌·병합과정을 거쳐 빗방울로 커지고, 영하의 구름 내부에서는 얼음알갱이가 성장해 강수가 시작된다. 강수가 강한 지역에서는 하강기류도 동시에 발달한다. 어떤 얼음알갱이는 0℃ 근처의 고도에서 상승과 하강을 되풀이 하면서 얼었다가 녹고 다시 어는 과정을 반복해 골프공 정도 크기의 우박으로 성장한다.

상층 바람은 하층 바람에 비해 강하게 부는데 이런 차이를 연직 방향의 ‘바람시어(wind shear)’ 라고 한다. 이로 인해 상층의 모멘텀이 하층으로 전달되는데, 이 과정에서 회전력이 발생하고 지상 근처에 수평으로 누운 회전원통이 형성된다. 폭풍 내부에는 상승운동이 존재한다. 이 에너지는 강할 때는 시속 160km 정도의 속도로 지상의 공기덩어리를 순식간에 16km 이상의 상공으로 올린다. 수평으로 누운 회전원통이 이런 상승기류를 만나면 들려 올라가 슈퍼셀 내부에 회전상승기류를 형성하는 메조사이클론이 된다. 이 메조사이클론 아래에 회전하는 원기둥 같은 벽구름이 발달하고, 지표면과 연결되면 토네이도가 발생한다.

토네이도는 주로 슈퍼셀의 후면에서 발생한다. 이때 토네이도가 ‘터치다운’했다고 말한다. 오후 6시쯤에 터치다운이 많이 일어나 토네이도헌터들은 ‘6시의 마법(6 o’clock magic)’이라고도 부른다. 이렇게 메조사이클론은 토네이도 발생의 필요조건이다. 메조사이클론이 형성됐다고 해서 반드시 토네이도가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약 50% 정도의 발생률을 보인다. 일반적으로 메조사이클론이 토네이도가 터치다운되기 약 20분 전에 형성되므로 메조사이클론을 일찍 감지하면 토네이도 예보에 큰 도움이 된다.



지난 4월 27일, 미국 앨라배마 주 서부에 있는 도시 터스컬루사에서 토네이도가 휩쓸기 전(왼쪽)과 휩쓸고 지나간 뒤의 모습을 위성으로 촬영했다.

 


슈퍼컴으로 토네이도 예보한다

슈퍼셀의 발달은 기상위성으로 상공에서 감지할 수 있다. 슈퍼셀은 통상적으로 매우 깊은 대류성 구름의 성장을 동반하기 때문에 다른 지역의 구름에 비해 꼭대기의 온도가 매우 낮아 적외선 영상으로 쉽게 파악할 수 있다. 깊게 발달한 구름은 햇빛의 반사도가 높아 가시광선 영상에서도 잘 나타나는 편이다. 그러나 위성관측으로는 폭풍 내부의 강수 현상이나 기류의 특성을 알 수 없다. 이를 위해 도플러레이더를 이용한다. 레이더에서 발사된 빔이 폭풍 내부의 강수 입자들에 부딪쳐 되돌아오면서 생기는 감쇠 효과를 계산해 강수 입자들의 특성을 보여주는 영상을 만든다(반사도 또는 에코). 또 도플러 효과를 이용해 폭풍 내부의 상대적인 기류 특성을 파악한다. 이러한 레이더 영상에서 특히 갈고리 형태의 훅에코가 발달한 지역에서 토네이도가 발생하는 경향이 높아 예보에 많이 활용된다.

기상위성이나 레이더 등의 원격탐사 관측 외에도 슈퍼셀의 내부를 관측하기 위해 폭풍이 발달하는 근처까지 가서 하는 현장관측도 있다. 토네이도헌터들은 이동식 레이더를 차량에 싣고 가서 폭풍 근처에 설치하거나, 도플러레이더를 고정한 트럭(DOW)을 폭풍 근처까지 몰고 가 토네이도와 폭풍 내부를 관측한다. 간이 백엽상을 설치한 차량 수십 대가 슈퍼셀을 에워싸 폭풍 주변의 모든 기상 상태를 관측하기도 한다. 그들은 토네이도가 터치다운하면 즉시 방송국과 현업예보센터에 알려주고, 방송국에서는 일반인들에게 실시간으로 수집된 정보를 알려준다.



토네이도 예보에서 선행시간은 인명 피해를 줄이는 데 매우 중요하다.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토네이도의 예보 선행시간이 10분 정도여서 주민들이 대피하기가 매우 촉박했다. 오클라호마대에서는 미국 과학재단의 지원을 받아 폭풍분석예측센터(CAPS)를 설립하고 토네이도를 예측하는 수치예보모델 개발에 주력해 왔다.

필자도 이 센터 소속의 박사과정 학생으로 모델 개발에 참여한 바 있다. 대기를 지배하는 여러 방정식을 동시에 풀어 미래의 기상 변수들의 값을 바둑판 눈금처럼 잘게 나눈 격자점에서 계산해 폭풍과 토네이도를 예측할 수 있다. 슈퍼컴퓨터의 발달로 엄청난 양의 계산을 소화하게 되면서 2000년대 중반에는 실제 토네이도와 유사한 현상을 모델에서 재현할 수 있게 됐다. 향후 컴퓨터가 더욱 빨라지면 실제 예보에도 활용이 가능해서 토네이도 예보선행시간을 더 늘릴 수 있을 것이다.

토네이도 예보와 경보를 사람들이 제대로 인식하고 대피하는 재난대응체계도 원활하게 운영돼야 할 것이다. 이번에 미국에서 수백 개의 토네이도로 인한 대형 인명피해를 토네이도 경보에 대한 주민들의 위기의식 결핍, 즉 일종의 인재로 보는 전문가들도 많다. 과학자들이 토네이도에 대한 무수한 비밀을 풀어 인명피해를 줄이고, 나아가 과학적으로 이용할 수 있게 될 날을 기대해본다.


 

 

 특집 기자수첩 

 

1980년 경남 사천, 1989년 제주국제공항, 1993년 김제평야, 1994년 지리산, 1997년 전남 여천 앞바다와 서해 태안반도, 1988년과 2001년, 2003년, 2005년 울릉도…. 한국에서 토네이도가 일어났다고 알려진 사례들이다. 이 중에는 외양간에 있던 황소가 20m나 공중에 떴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미국이나 호주처럼 광활한 평지에서만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진 토네이도가 우리나라에서도 일어날 수 있을까. 혹시 태풍을 착각한 것은 아닐까.

태풍과 토네이도는 엄연히 다르다. 제주 서귀포시에 있는 국가태풍센터의 김태룡 센터장은 “폭풍구름의 메조사이클론에서 하강기류가 내려와 발생하는 토네이도와 달리 태풍은 해수면 온도가 27℃ 이상, 남·북위 5° 이상인 열대 바다에서 발생한다”며 “토네이도는 좁게 발달해 빠르게 움직이는 반면, 태풍은 넓게 발달해 비교적 천천히 움직인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토네이도는 물에 닿으면, 태풍은 육지에 닿으면 빠르게 소멸한다. 또 토네이도는 빠른 상승기류로 땅 위에 있는 것들을 빨아들이지만, 태풍은 가운데 부분(눈)에서 건조한 공기가 하강해 날씨가 맑다는 것도 차이점이다. 태풍은 평균적으로 1년에 27개가 발생하며, 그중 3개 정도가 한국에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국가 태풍센터는 북서태평양지역에서 태풍이 발생한 위치와 시각, 경로 등을 체크하고 3일 뒤의 경로와 위치를 예보한다.


한국에서 발생했다는 토네이도 사례를 보면 공통점이 하나 있다. 대부분 바다에서 일어났다는 것이다. 이무기가 1000년을 기다린 끝에 하늘로 올라가 용이 된다는 전설을 믿은 옛날 사람들은 이 현상을 보고 ‘용오름(waterspout)’이라고 불렀다. 한국에서 일어난 토네이도 현상은 대부분 용오름 현상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용오름과 토네이도를 엄연히 다른 현상으로 구분하며, 토네이도가 자주 발생하는 미국에서는 용오름을 공식적인 토네이도 사례에 포함 시키지 않는다. 용오름과 토네이도의 원인이 다르기 때문이다.

미국 국립해양대기청(NOAA)에서 밝힌 내용에 따르면 용오름은 늦은 오후나 초저녁 쯤, 바닷물은 여전히 따뜻한데 공기는 점점 차가워지면서 생기기 쉽다. 이때 바닷물에서는 하늘을 향해물 입자가 날아가기 시작하며, 해수면에 검은 점이 떠 있는 것처럼 보이게 된다. 수증기가 반지 모양으로 증발하기 때문이다. ‘수증기 반지’가 연속적으로 증발하면 곧 회오리가 되면서 하늘에 떠 있는 적운(뭉게구름)과 이어진다. 용오름은 멀리서 보면 물이 하늘을 향해 솟구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수증기가 증발하는 것으로, 물로 따지면 양은 그리 많지 않다. 용오름이 회전하는 속도는 초속 30m로 비교적 느리며 20분 이내에 소멸한다. 드물게 토네이도가 바다에서 발생할 때가 있는데, 이것이 용오름처럼 보일 때도 있다.

바다와 대기의 온도차가 19℃가 넘는 날엔 수증기가 증발하면서 얼어붙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나기도 한다. 캐나다 온타리오에서 발생한 것이 가장 잘 알려져 있으며 ‘눈 용오름’이라 부른다. 육지에서 발생하는 용오름도 있다. 육지용오름(landspout)은 지표면과 공중에 있는 공기의 온도차로 생긴다. 대부분 15분 안에 소멸하며 강력한 것은 토네이도의 F3 등급에 해당할 만큼 피해를 주기도 한다.

돌풍용오름이라고 부르는 거스트나도(gustnado)는 천둥번개를 동반한 폭풍에서 생긴다. 폭풍에서 세찬 기류가 하강할 때 다른 편에서는 상승하는 기류가 나타나는데, 가끔은 이 상승기류가 하강기류보다 더 강해지면서 거스트나도가 된다. 나쁜 날씨에 발생하기 때문에 생성원인이 다르고 회전속도도 느리지만 토네이도로 오인하기 쉽다.

호주에서 ‘윌리윌리’라고 부르는 더스트데블(dust devil)은 날씨가 쾌청한 날에 일어난다. 햇볕이 지표면을 달구면 따뜻한 공기가 빠르게 대기 중 압력이 낮은 부분을 뚫고 올라간다. 땅 위의 더운 공기가 같은 부분에서 연달아 상승하면서 먼지와 모래알을 실은 회오리가 된다. 더스트데블은 대개 지름이 90cm보다 작고 발생한 지 1분 내에 소멸한다.

이외에도 화재현장에서 연기와 불이 약 20분간 시속 160km로 빠르게 솟구치는 파이어휠(fire whirl)이나 화산이 폭발할 때 나오는 뜨거운 공기가 빠르게 상승하면서 생기는 화산성 돌풍 같은 이색적인 회오리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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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 토네이도 vs 토네이도 헌터
Part 1. 회오리 뒤쫓는 '바람사냥꾼' (인포그래픽)
Part 2. 오후 6시가 되면 마법사가 깨어난다
Part 3. 과학이 만든 '착한 토네이도'

2011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 박선기 이화여대 교수, 국지재해기상예측기술센터 소장 / 기자수첩 이정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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