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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 이 기사는 미국에서 토네이도를 쫓아다니며 직접 연구를 했던 과학자들의 이야기를 가상으로 구성했습니다. 1990년대 미국 오클라호마대에서 토네이도를 추적, 연구했던 박선기 이화여대 국지재해기상예측기술센터 소장을 직접 만났고, 2009~2010년 토네이도헌터 프로젝트인 ‘볼텍스(VORTEX)2’에 참여했던 두 연구원,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 기상학과의 폴 마코스키 박사와 오클라호마대 키스 브루스터 박사를 이메일로 인터뷰했습니다.



눈부신 햇살이 달콤한 잠을 깨웠다. 여기는 미국 캔자스 주에서 네브래스카 주로 넘어가는 넓고 넓은 평원의 한 고속도로 위, 잔뜩 찌그러진 트럭 안이다. 기자와 함께 토네이도를 잡겠다는 일념으로 따라온 사진작가는 몇 시간째 트럭과 씨름 중이다. 아까 폭풍구름에서 우수수 쏟아지던 주먹만 한 얼음덩어리를 생각하니 소름이 돋는다.

지난 4~5월 미국 토네이도 앨리 에서는 1000개가 넘는 토네이도가 발생해 5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기자는 한국에서 보기 힘든 자연현상을 직접 취재하기 위해 무작정 미국에 왔다. 매일 몇 시간씩 비가 오고 검은 구름이 뜨고… 금방이라도 토네이도가 나타날 것 같았다. 그러다가 우박 떼를 만나 토네이도를 보기는커녕 애꿎은 차만 버렸다. 온몸을 두드려 맞은 차는 이제 시동도 잘 안 걸린다. 차를 더 고쳐보겠다는 사진작가를 남겨두고 도로변에 혼자 섰다. 토네이도를 향해 의지를 불태우는 기자를 태워줄 마음씨 좋은 운전자를 만나리라. 저 멀리 우스꽝스럽게 생긴 차가 한 대 온다. 외계인이랑 접선이라도 하는지 꼭대기에 안테나가 달려 있다. 가끔씩 쏟아지는 폭우 때문인지 이상한 우산도 걸어 놨다. 옆면에는 ‘볼텍스3’이라 적혀 있다. 수상해 보이지만 왠지 마음이 끌려 손을 들었다.

스톰 박사: 네브래스카 주요? 우리도 지금 거기로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마을에서 좀 동떨어진 평원으로 갈 예정인데요. 우리는 토네이도를 사냥하는 과학자, 토네이도 헌터거든요.

아, 이게 무슨 횡재! 이 사람들은 토네이도가 어디서 언제 어떻게 나타날지 불 보듯 빤히 알 것 같다. 아까처럼 괴물 우박이 내리고 폭우가 내려도, 토네이도가 머리 위에서 갑자기 나타나도 도망갈 방법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기에 안심이 된다.




#1. 도플러레이더로 무장하다


스톰 박사: 무작정 우박을 따라 갔다고요? 그러니까 차가 망가졌죠. 아마추어가 자주 저지르는 실수예요. 커다란 우박이나 시꺼먼 폭풍구름이 있다고 해서 토네이도가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레이더 장비와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잔뜩 갖고 있어도 찾기가 쉽지 않은데요.

오클라호마대에서 기상학을 가르치고 있는 스톰 교수는 폭풍 철이 되면 토네이도를 찾느라 강의도 쉴 만큼 열성적인 사냥꾼이다. 그는 기상학을 전공하던 대학 시절 우연히 피서지에서 본 토네이도에 매료돼 헌터가 됐다고 한다. 그옆에 빨갛고 파랗고 노란 그림이 움직이는 모니터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하늘 여기저기를 살펴보는 사람은 스톰예측센터에서 토네이도를 연구하는 스파우트 박사다. 두 사람은 토네이도의 비밀을 밝혀내기 위해 폭풍을 따라다니는 프로젝트팀 ‘볼텍스3’에 속해 있다.

그들은 들판에서 폭풍 근처의 온도와 습도, 수증기 입자의 크기와 포화상태, 기압, 바람이 부는 속도와 방향, 이슬점 등을 수집해 폭풍구름과 토네이도가 어떻게 형성되고 발달해 없어지는지 분석한다. 데이터로 아직 나타나지 않은 토네이도가 언제 어디서 형성될지 시뮬레이션을 만들기도 한다. 차 안에는 도플러레이더와 레이윈존데, 디스드로미터, 소형무인항공기 등 여러 장비가 갖춰져 있었다(장비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78p 참조). 가장 유용한 장비는 도플러레이더다. 레이더가 폭풍을 향해 빔을 쏘면 빗방울이나 수증기 입자, 얼음알갱이, 우박 등 여기저기에 부딪쳤다가 돌아온다. 어떤 것에 반사됐느냐에 따라 빔이 감소한 비율이 다르다. 그래서 감소율을 측정하면 폭풍구름 안에 어떤 물질이 얼마만큼 있는지 영상화 할 수 있다. 동시에 입자들이 멀어지면 주파수가 낮게, 가까워지면 높게 관측되기 때문에 바람이 부는 방향과 속도도 알 수 있다.

스파우트 박사: 우리처럼 장비를 잘 갖춘 채 토네이도를 추적하는 헌터들은 많지 않아요. 아마추어들은 사진이나 영상을 찍기 위해 카메라만 가지고 폭풍사냥에 나서기도 하죠. 토네이도를 보러 오는 관광객도 많습니다.

스톰 박사: 그들과 우린 토네이도를 찾는 목적이 다를 뿐 아니라 찾는 위치도 달라요. 우리는 토네이도가 잘 보이는 위치가 아니라, 데이터를 관측하기 좋은 장소에서 사냥하거든요. 지난 해 5월 10일 정말 엄청난 토네이도가 나타났었는데, 볼텍스 연구원 중에 이걸 제대로 본 사람이 아무도 없었답니다.





전에 봤던 영화 ‘트위스터’가 생각났다. 영화에서 과학자들은 관측 센서를 야구공만 한 캡슐로 만들어 드럼통 안에 가득 담았다. 그리고 센서들이 바람에 휩쓸려 들어갈 수 있도록 토네이도가 오는 길목에 놓았다.

스톰 박사: 영화에 나오는 ‘도로시’와 비슷한 관측센서 장비가 1970~1980년대에 ‘토토(TOTO)’라는 이름으로 실존했어요. 하지만 실제로는 실패했습니다. 토네이도가 지그재그로 움직이는 탓에 경로를 예측할 수 없었거든요. 우연히 토네이도가 지나가도 캡슐들이 바람에 튕겨나갔습니다.

스파우트 박사: 지금은 도플러레이더를 이용해 폭풍구름의 내부를 구체적으로 관측할 수 있어 굳이 성공 확률이 낮은 토토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타고 있는 이 트럭(DOW)에는 도플러레이더가 달려 있어 관측하는 동시에 데이터가 모니터에 영상으로 나타난다.



#2. 풍만한 구름, 빨간 고리, 깔때기 구름 찾아라
 
왜 토네이도 앨리에서 토네이도가 많이 발생할까. 북서쪽 동쪽 멕시코만 바다에서 불어오는 따뜻하고 습한 바람이 이 광활한 평원에서 부닥치기 때문이다. 서풍이 남풍에 비해 강한 까닭에 지표면을 따라 가로로 길게 회오리가 생긴다. 봄에 이런 현상이 많이 일어나며 이때 대기는 몹시 불안정해진다. 누워 있던 회오리는 어느 순간 벌떡 일어나고, 목화솜 같은 모양으로 여기저기에 구름을 터뜨린다.

상승기류가 된 회오리는 점차 발달하면서 강력한 상승기류(메조사이클론)가 되고 구름은 점점 커지면서 챙이 넓은 모자를 쓴 것처럼 생긴 적란운이 된다(슈퍼셀). 상승기류는 땅으로부터 공기를 빨아들이고 상승기류 기둥 옆으로 공기를 떨어뜨린다. 일부 상승기류가 길게 늘어져 땅까지 닿으면 땅 위에 있는 흙과 모래를 빨아들이고, 심하면 나무나 집을 뽑거나 기차와 자동차까지 날리는데, 바로 토네이도다.

햇볕이 쨍쨍 내리쬐던 하늘이 점점 어두워졌다. 외계하늘에나 있을 것처럼 괴상하게 울퉁불퉁한 구름이 하늘을 덮더니 시커먼 먹구름이 나타나면서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얼마 달린 것 같지 않은데 빗방울이 몽둥이처럼 굵어졌다. 트럭 천장을 뚫을 것 같은 엄청난 빗소리에 기자의 심장박동 소리도 쿵쾅쿵쾅 커졌다.

 

유방운의 모습. 폭풍에서 기류가 내려오는 부분에 생긴다. 대개 토네이도의 징조로 여겨진다.



기자: 왠지 으스스한데요? 토네이도가 곧 나타날 건가요?

스톰 박사: 네, 먹구름이 점차 깊어지는데다 앞쪽에 휘감겨올라가는 듯한 거대 폭풍구름도 보이네요. 아까 오다가 울룩불룩 하게 생긴 구름(유방운) 보셨죠? 슈퍼셀에서 상승기류가 없는 부분에서 잘 나타납니다. 공기가 구름을 아래로 밀면서 튀어나오게 만드는 거죠. 장대 같은 폭우와 주먹만 한 우박도 슈퍼셀에서 자주 나타나는 기상현상이고요. 깔때기 모양으로 내려온 벽구름도 토네이도가 나타날 징조입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나타나도 토네이도가 생기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만큼 토네이도는 변화 무쌍하죠.

스파우트 박사: 그 대신 토네이도를 확실하게 잡을 만한 증거가 있습니다. 도플러레이더 영상에 고리처럼 휘어진 붉은색 부분 보이시죠? ‘훅에코’라고 하는데, 우리 머리 위에 있는 폭풍구름 안에 강력하게 회전하는 상승기류가 있다는 증거예요.

물방울 입자가 크고 회전력이 강한 부분은 영상에서 붉게 나타난다. 훅에코는 폭풍구름 안에 강력한 메조사이클론이 있음을 뜻한다. 훅에코가 나타나면 토네이도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기자: 토네이도를 빨리 만나고 싶네요. 아, 우박 떼는 더 이상 만나고 싶지 않지만요.

스톰 박사: 하하, 슈퍼셀에서 쏟아지는 우박이 왜 거대한지 아세요? 슈퍼셀 중간에는 0℃ 라인이 있는데요. 얼음알갱이가 상승기류와 하강기류를 타고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이 경계를 넘나듭니다. 녹았다가 얼었다가를 반복하면서 점차 부피가 커지죠. 그래서 슈퍼셀에서 쏟아진 우박을 반으로 갈라보면 나무 나이테처럼 수많은 얼음 층을 볼 수 있답니다.

스파우트 박사: 전 우박이나 비보다도 토네이도 소리가 더 무서워요. 기자님, 아직 못 들어보셨죠. 귀 바로 옆에서 거대한 야구방망이가 아주 빠른 속도로 휙휙 돌아가는 것 같기도 하고, 그 안에 건물 파편이나 벽돌 같은 게 돌아가고 있을 땐 말로 형용할 수도 없을 만큼 끔찍한 소리가 나요.





#3. 경이로운 바람쇼 1시간 전에 경고?

트럭이 멈춰 섰다. 굵은 빗줄기는 여전히 창을 내리치고 물이 줄줄 흐르는 창밖으로 나무들이 뒤흔들리는 게 보였다. 윙윙거리는 폭풍소리와 스산한 분위기에 정신을 놓을 때쯤 모두들 넓은 대지의 한 곳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저 멀리 시커먼 구름 아래에 말로만 듣던 깔때기 모양을 한 벽구름이 보였고, 그 아래로 땅까지 길게 늘어진 ‘구름밧줄’이 보였다. 아니, 늘어진 게 아니라 꼿꼿이 서서 갈팡질팡 움직이고 있었다. 하늘에는 짙은 회색빛의 두꺼운 이불이 덮여 있었고 땅에는 풀들이 강아지 털처럼 무성하게 자라 있었다. 그런데 하늘에서 내려온 구름은 이상하게도 검었다.

스파우트 박사: 가깝게 보여도 사실 몇 km 떨어져 있어요. 멀리서는 뭉게뭉게 솜뭉치가 길게 늘어진 것처럼 다정하게 보이지만 사실 엄청 무시무시한 거 아시죠? 토네이도 등급에 따라 모래와 풀만 빨아들이는 것도 있지만, 나무로 지은 집 파편이나 벽돌 조각, 사람, 자동차를 빨아들이는 것도 있으니까요. 파편들이 엄청난 속도로 바람과 함께 회전하고 있어서 검게 보이는 겁니다. 사람이 토네이도에 빨려 들어가면 멀리 내팽개쳐지기 전에 빠르게 날아드는 파편에 맞아 죽는 경우가 더 많아요.

과학자들은 일반인들에게 토네이도를 만났을 때 가까이 다가가기보다는 일단 몸을 피하라고 강조하며, 토네이도가 발생할 것을 몇 분이라도 더 빨리 예보하기 위해 수치예보시스템을 발전시키고 있다.

스톰 박사: 저희 오클라호마대 연구팀은 이미 슈퍼셀 폭풍에 대한 공식을 완성해 수치예보시스템을 만들었습니다. 토네이도가 만들어지는 시뮬레이션 프로그램도 완성했죠. 지금은 토네이도가 발생하기 20분 전에 예보할 수 있는 수준인데, 이 시스템을 상용화하면 1시간 전에 예보하는 일도 가능해질 거예요.

광활한 대지를 가로, 세로, 높이가 일정한 3차원 격자로 나눈 뒤, 격자점마다 다양한 변수 값을 측정해 공식에 넣으면 미래 값들이 나온다. 변수는 온도와 습도, 바람의 속도와 방향, 대기밀도, 구름입자, 빗방울, 수증기, 우박 등이다. 격자를 작게 할수록 해상도가 좋아진다. 격자의 변 길이가 수km면 슈퍼셀의 구조를 어느 정도 분석할 수 있다. 수십~수백m 정도로 짧아지면 슈퍼셀뿐 아니라 토네이도도 분석할 수 있다.

문제는 격자가 작아지면 계산할 양이 많아져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점이었다. 토네이도가 출현할지 계산하는 동안 토네이도가 나타날 수 있다는 얘기다. 오클라호마대 과학자들은 이 문제를 슈퍼컴퓨터로 해결했다. 아직까지 연구용으로만 활용하고 있지만 과학자들은 몇 년 내에 예보용으로 상용화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엄청난 모래폭풍을 빨아들이며 올라가는 토네이도를 보고 있으니 사람이 제어할 수 없는 거대한 자연의 힘이 느껴진다. 하지만 아주 작은 부분일 뿐, 토네이도 위에는 그보다 더 크고 강력한 슈퍼셀이 꿈틀거리고 있다. 지금 보고 있는 저 토네이도는 곧 소멸하고 말겠지만, 몇 시간 뒤에, 아니 몇 분 뒤에 더 엄청나고 무시무시한 토네이도가 나타날지도 모른다. 하나의 슈퍼셀에서 여러 개의 토네이도가 한꺼번에 나타날 수도 있다고 하니 우리 머리 위에서 갑자기 나타날지도 모른다.

스톰 박사: 해질 때가 됐네요. 이제 돌아가죠. 토네이도 잔치 뒤에는 엄청난 쇼가 우릴 기다리고 있으니 긴장 늦추지 마세요!

토네이도는 색이 없고 빛을 발하지 않기 때문에(눈에 보이는 것은 파편들이다) 관찰하려면 항상 햇빛이 있어야 한다. 밤에는 어디에서 토네이도가 나타날지 알 수 없어 레이더를 주시해야 한다. 폭풍을 등진 채 트럭이 한참 달리니, 하늘에서 눈부신 쇼가 시작됐다. 목숨 걸고(?) 토네이도를 추적한 우리들에게 주는 선물처럼 눈부시게 밝은 번개들이 어두운 하늘을 쩍쩍 가르며 떨어졌다. 차가 뚫릴 듯이 세찬 폭우도, 나이테를 품고 있다는 주먹만 한 우박도, 땅으로 내리꽂는 번개도, 거의 모든 것을 빨아들이며 갈팡질팡 움직이는 토네이도도 모두 거대하고 무섭다. 그래서 사람들에게는 거대한 에너지를 품은 슈퍼셀이 더욱 경이롭고 알고 싶은 존재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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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 토네이도 vs 토네이도 헌터
Part 1. 회오리 뒤쫓는 '바람사냥꾼' (인포그래픽)
Part 2. 오후 6시가 되면 마법사가 깨어난다
Part 3. 과학이 만든 '착한 토네이도'

2011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 이정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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