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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잭슨 죽인 수면마취제 프로포폴의 비밀

검은 중절모 아래로 보이는 서늘한 흰 얼굴. 서정적인 목소리와 현란한 춤사위.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 그의 무대는 화려했지만 성형, 스캔들로 얼룩진 인생은 우울했다.

결국 그는 2009년 6월, 집에서 쓸쓸히 생을 마감했다. 그가 살던 미국 LA 카운티의 검시관은 “잭슨의 시체에서 치사량 수준인 엄청난 분량의 전신 마취제가 검출됐다”며 마이클 잭슨이 수면마취제 프로포폴 때문에 죽었다고 결론지었다. 경찰 조사 결과 마이클 잭슨의 주치의 콘라드 머리가 잭슨의 불면증을 치료한다는 목적으로 6개월간 프로포폴을 하루에 50mg씩 정맥주사로 투여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마이클 잭슨의 죽음 이후 프로포폴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그런데 일부에서는 프로포폴이 마취제 대신 마약 대용품으로 쓰이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국내 연예계와 유흥업계에서도 프로포폴을 사용했다. 이들 사이에서 프로포폴은 원기회복에 좋다고 입소문이 나 ‘비타
민 주사’로 불린다. 심지어 이 사람들에게 프로포폴을 직접 주사한 의사가 붙잡히기도 했다. 지난해 9월 19일 검찰은 성형외과 원장 우 모씨 등 의사 2명을 구속 기소했다. 이 외에 서울 강남 일대의 성형외과·산부인과 병원장 5명도 불구속 기속했다.

[혼자서 정맥주사를 놓는 모습.]


[프로포폴에서 세균이 번식할 수 있어 사용할 때 반드시 무균 상태로 만들어야 한다. 또 개봉한 약은 6시간 내에 사용해야 한다. 최근에는 세균 번식을 막기 위해 프로포폴안에 항생제를 넣는다. 사진 속 주사기 안에 든 하얀 액체가 프로포폴이다.]

프로포폴을 환각제로?
프로포폴은 1977년 영국의 화학회사인 ICI가 화학 합성으로 개발한 수면마취제다. 프로포폴은 페놀기가 붙어 있는 화합물로 물에 녹지 않는다. 따라서 ICI는 물 대신 대두유에 약품을 녹여 주사약으로 만들었다. 대두유 때문에 프로포폴은 아주 탁한 흰색으로 보여 ‘하얀 약’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또 프로포폴을 맞으면 환자가 단기적인 기억상실증상을 보이기 때문에 ‘건망증 우유’라고 불리기도 한다.

프로포폴을 맞으면 뇌 기능이 억제된다. 프로포폴이 뇌에서 ‘잠을 자라’는 신호를 주는 물질인 감마아미노뷰티르산(GABA) 수치를 높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프로포폴을 맞으면 잠이 온다. 이때 뇌의 도파민 조절 기능도 마비돼 도파민이 뿜어져 나온다. 도파민은 기분을 좋게 만드는 물질로 중독의 원인이다. 이때 나오는 도파민 양은 향정신성 의약품인 미다졸람을 맞았을 때보다 많다는 보고가 있다. 그러나 프로포폴은 몸 안에서 빨리 사라지기 때문에 분비되는 도파민 양이 많다고 해서 마약처럼 중독되지는 않는다. 또 프로포폴로 마취돼 잠이 든 경우에는 도파민이 주는 ‘도취감(euphoria)’을 느끼지 못한다. 따라서 내시경이나 성형수술을 받을 때 프로포폴에 중독될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이 도취감을 느끼려고 마취되지 않을 정도로 양을 줄여 맞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이 오랫동안 프로포폴을 쓰다가 결국 중독되고 마는 것이다. 프로포폴 중독자에 대한 연구는 1992년 미국 마취과학지에 최초로 실렸다. 이후 학계에 보고되는 남용사례는 꾸준히 늘어났다.



왜 환각제로 프로포폴을 선택한 걸까. 중독자로 밝혀진 한 마취과 의사는 세가지 이유를 들었다. 우선 의사용 편람에 프로포폴의 중독성에 대한 보고가 없다. 또 프로포폴이 체내에서 작용하는 시간이 짧아 부작용이 없다고 알려졌기 때문이다. 프로포폴을 사용할 때 관리와 감독을 받지 않아 쉽게 구할 수 있다는 것이 마지막 이유였다. 그는 “처음엔 조금씩 맞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양이 점점 늘어나 하루에 10~15번까지 맞았다”고 진술했다. 또 “나중에는 프로포폴을 끊고 싶었지만 강력한 충동과 갈망을 이기지 못하고 다시 사용해야 했다”고 했다. 이는 약물에 의존하는 사람들의 특징인 ‘강박, 갈망(compulsion, craving)’의 전형이다. 이 의사는 욕실에서 무의식상태로 발견돼 응급 치료를 받아 겨우 목숨을 건졌다.

2007년 미국 콜로라도대 의대 위시마이어 교수팀은 마취통증의학과가 있는 병원 126개의 의료진을 대상으로 프로포폴의 남용 빈도를 조사했다. 그 결과 지난 10년간 전체의 18%에 해당하는 병원에서 프로포폴을 남용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남용자 25명 중 7명은 사망했다.

그런데 왜 프로포폴을 남용하다 사망하는 걸까. 프로포폴이 ‘무호흡증’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기존에 쓰던 수면마취제인 치오펜탈도 프로포폴처럼 무호흡증을 일으키는데, 빈도는 25~35%로 비슷하지만 무호흡이 지속되는 시간은 프로포폴이 더 길다. 게다가 투여기간, 용량, 속도 및 함께 사용한 약 등에 따라 무호흡의 빈도가 더 높아진다. 프로포폴은 호흡을 억제하기 때문에 마취를 할 경우에도 의사는 환자가 호흡을 하는지 주의 깊게 관찰하도록 돼 있다. 프로포폴을 투여할 때 산소, 기도유지에 필요한 장비, 응급약은 필수다. 병원에서 의사가 환자에게 사용할 경우에는 안전하지만 남용자나 중독자들은 주로 프로포폴을 몰래 혼자 맞기 때문에 갑작스런 무호흡증으로 사망하는 것이다.


[프로포폴의 단점은 주사 맞을 때 통증이 있다는 것이다. 이 통증을 줄이기 위해 국소마취제인 리도카인을 함께 사용하기도 한다.]

우리나라 병원도 안전지대 아니다
국내 마취과에도 프로포폴을 남용한 마취과 의사가 있을까. 필자는 국내 의료진을 대상으로 프로포폴을 환각제로 쓴 적이 있는지 직접 알아봤다. 1998년부터 2008년까지 10년간 61개 병원에서 근무하는 마취과 의사 95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다. 이 중 72명만이 응답했는데 7명의 프로포폴 중독자를 발견했다. 프로포폴 중독자는 총 9명으로 이 중 2명은 이미 사망했다. 사망자 2명 모두 마취통증의학과 전공의였다. 대부분 1년 이내에 병원을 그만뒀고 이 중 2명은 재발방지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이 연구에서 남용자들은 병원에 보관된 프로포폴을 직접 가져와 썼다고 대답했다. 아편, 대마, 코카인 같은 마약이나 향정신성 의약품은 생산, 보관 과정을 철저히 관리하지만 프로포폴은 전문의약품으로 분류돼 쉽게 구할 수 있다. 또 이들은 자신에게 정맥주사를 직접 놓을 수 있어 일반인보다 프로포폴을 쓰기 쉬웠다. 필자는 이 연구 결과를 지난해 11월 8일 ‘대한법의학회지’에 발표했다.

한편 프로포폴 남용자는 주로 종합병원에 근무하고 있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조사 결과 2000년부터 지금까지 프로포폴 관련 사망자는 모두 29명이고, 의료사고 사망자를 제외한 15명 중 의료관계자가 11명이었다.

프로포폴 남용, 꼼짝 마!
프로포폴은 많이 쓰이는 수면마취제다. 수면내시경 시술 때 주로 주사하는 마취약이 바로 프로포폴이다. 이 약의 특징은 마취가 빠르고 마취에서 회복되는 시간도 짧다는 점이다. 프로포폴로 마취하면 보통 2~8분 만에 깰 수 있다. 또 프로포폴은 간에서 대사돼 소변으로 모두 빠져 나와 몸에 남지 않는다. 게다가 다른 마취제를 사용할 때처럼 구역질을 일으키지 않는다.
프로포폴의 장점을 대신할 새로운 마취약이 개발되지 않는 한 병원에서 쓰는 마취제 중 프로포폴이 차지하는 비율은 점점 증가할 것이다. 프로포폴 사용이 많아지면 쉽게 구할 수 있는 의료인 남용자도 늘어나고 이에 따라 일반인도 프로포폴을 구하기 쉬워져 중독자가 덩달아 늘어나지 않을까.

다행히도 식약청은 올해부터 프로포폴을 마약류로 지정해 관리하기 시작했다. 프로포폴이 의존성을 일으켜 남용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건강한 사람에게 프로포폴을 마취 용량 이하로 투여했을 때 의존성을 보인다는 임상시험 결과도 이를 뒷받침 한다.
미국에서 2009년에 프로포폴을 통제물질로 지정한 적은 있지만 마약류로 지정한 것은 우리나라가 처음이다. 현재 시점에서 프로포폴을 마약류로 정해 관리 감독을 강화하는 것은 경제적, 시간적 낭비라는 비판도 있지만 향후 이 약물의 남용자를 막기 위한 좋은 방법이라 생각한다. 프로포폴 관리시스템은 프로포폴 중독자 발생을 낮출 수 있는 강력한 도구다. 새로운 프로포폴 의존성 환자가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한 정책도 연구해야 한다.


[프로포폴을 대신할 새로운 마취제가 나오지 않는다면 병원에서는 점점 프로포폴을 많이 쓰게 될 것이다. 덩달아 중독자도 늘어날 위험이 있다.]

2011년 05월 과학동아 정보

  • 이순애 국립암센터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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