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저항이 0이 된다." 이 단순해 보이는 현상 하나가 세상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지난 100년 동안 초전도 현상을 실생활에 응용한 기술이 꾸준히 개발돼 왔다. 아직 초전도 현상을 이론적으로 완벽히 설명하지 못했는데도 새로운 초전도 소재를 만들었다는 소식은 꾸준히 들려온다. 응용이 이론을 앞서고 있는 셈이다. 그동안 초전도 기술은 우리 삶에 얼마나 깊숙이 들어왔을까.
초전도 기술은 병원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바로 자기공명영상장치(MRI)다. 미래의 에너지원으로 많은 이들이 기대하고 있는 핵융합 기술에도 초전도체가 쓰인다. 우주의 기원을 밝히는 유럽의 거대강입자충돌기(LHC)도 초전도체를 쓴다.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강한 자기장을 이용하는 장치다.
MRI는 환자를 강력한 자기장 안에 넣은 뒤 전자파를 쏘는 장치다. 이때 몸속의 수소 원자핵이 전자파에 공명하는 신호를 영상으로 만든다. 엑스선을 이용하는 장치와 달리 몸에 해롭지 않고, 뇌나 척수 같은 부드러운 조직도 관찰할 수 있다. 단면을 찍은 영상을 촘촘하게 겹치면 환자 몸 내부를 입체영상으로도 만들 수 있다.
핵융합로는 수소 원자가 융합해 헬륨 원자가 될 때 남는 질량을 에너지로 변환시키는 장치다. 연료로 중수소와 삼중수소를 이용하는데, 핵융합 반응이 일어날 때 생기는 플라스마의 온도는 3억℃까지 올라간다. 지구상의 어떤 재료로 플라스마를 가두더라도 닿는 순간 녹아버린다. 그래서 강력한 자기장으로 플라스마가 벽에 닿지 않도록 잡아 둔다. 이때 초전도 자석이 활약한다. 거대강입자충돌기도 비슷한 용도로 초전도 자석을 쓴다. 빛의 속도로 달리는 양성자를 가속기의 원형 궤도에 잡아 두거나 양성자가 정확하게 충돌하도록 유도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자기장이 필요하다. 거대강입자충돌기는 모두 1600개 이상의 초전도 자석을 쓴다. 무게로 치면 27톤이 넘는다.
한편 미세한 자기장을 측정하는 데도 초전도 기술을 쓴다. 1962년 영국 물리학자 브라이언 조셉슨은 두 개의 초전도 물질 사이에 전기가 통하지 않는 물질을 얇게 끼워 넣은 뒤 전류를 흐르게 하면 한쪽 초전도체의 쿠퍼쌍이 다른 초전도체로 움직일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후 조셉슨의 예측이 사실로 밝혀졌고, 이 현상을 ‘조셉슨 효과’라고 부른다. 조셉슨 효과를 이용하면 자기장이 전류에 끼치는 영향을 측정해 아주 약한 자기장도 감지할 수 있다. 동물의 몸에서 나오는 자기장도 감지할 수 있을 정도다.

한국표준연구원 뇌인지측정연구단이 개발한 ‘심자도 측정장치’가 대표적인 예다. 심자도 측정장치는 조셉슨 효과를 이용한 ‘초전도양자간섭장치(SQUID)’로 심장 근육에서 나오는 미세한 자기장을 측정한다. 심장의 상태를 미리 진단해 심장마비 같은 위급한 상황을 미리 예측할 수 있다. 이용호 표준연 뇌인지측정연구단장은 “자기장을 측정하면 거꾸로 심장에 흐르는 전류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며 “전류의 규칙성, 세기, 분포 등을 확인해 심장에 어떤 이상이 있는지 알아내는데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같은 원리로 뇌자기도 관측할 수 있다. 이 단장은 “뇌신경에 흐르는 전류를 측정해 간질 발생 부위를 찾거나 인지기능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확인할 수 있다”고 밝혔다.


초전도 기술로 스마트그리드를
전기저항이 0이라는 말은 전기에너지가 이동 중에 손실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손실되는 전기에너지는 보통 열에너지로 바뀐다. 즉, 초전도체를 자유롭게 쓸 수 있다면 오랫동안 전화하면 귀까지 뜨겁게 달아오르는 휴대전화나 ‘윙~’ 소리를 내며 컴퓨터를 시끄럽게 만드는 CPU쿨러는 과거의 유물이 된다.
전력을 손실 없이 보낼 수 있는 초전도 케이블은 미국와 일본을 비롯한 선진국이 앞장서 개발했다. 우리나라도 현재 상용화를 눈앞에 두고 있다. 지난 2005년 한국전기연구원과 LS전선은 길이가 100m인 22.9kV(킬로볼트)급 고온 초전도 케이블을 공동개발해 2007년에는 실증 시험도 완료했다. 올해는 한국전력과 LS전선이 경기도 이천의 변전소에 길이 500m인 22.9kV급 고온 초전도 케이블을 설치해 실개통 적용 실증 시험을 실시할 예정이다.
조전욱 한국전기연구원 초전도연구센터 책임연구원은 “도시화에 따라 전력 수요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기존 지중 케이블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초전도 케이블의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고 밝혔다. 우리나라에서 개발한 초전도 케이블은 크기가 기존 구리 케이블의 3분의 1에 불과하면서 송전 용량은 5배 이상 크다. 초전도 케이블은 저항이 없어 낮은 전압으로 전류를 많이 보낼수도 있다. 현재 도시 근처에 있는 초고압 변전소나 고압선 철탑이 필요 없어진다.
초전도 케이블을 만들 때 가장 큰 걸림돌은 온도다. 현존하는 모든 초전도체는 아주 낮은 온도에서만 초전도 현상을 보이기 때문이다. 현재 개발하는 초전도 케이블은 고온초전도체를 이용한다. 덕분에 값비싼 액체헬륨 대신 생수보다 저렴한 액체질소를 냉매로 쓸 수 있다. 질소는 공기 중에 풍부하고 유출돼도 해롭지 않다. 다만 현재 기술로는 가정에서 쓰는 일반 전선을 초전도체로 바꿀 수 없다. 초전도 케이블은 발전소와 변전소 같은 전력 시설에 먼저 쓰일 예정이다.
조 책임연구원은 “미래에 수소 연료가 현재의 액화천연가스(LNG)처럼 각 가정에 공급된다면 액체수소를 냉매로 이용해 초전도 케이블을 가정까지 연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손실 없이 전기를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만 뽑아 쓸 수 있는 전력저장 장치도 만들 수 있다. 저항이 없어 효율이 대단히 높고 충·방전 속도가 빠르며 수명이 길다. 초전도 전력저장 장치는 순간적으로 전력 사용량이 급증하거나 낙뢰 사고가 났을 때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데 쓰인다. 정전이 되면 수백억 원의 손해를 입는 반도체 공장 같은 산업 시설에 긴요하게 쓰일 전망이다. 특히 태양광이나 풍력과 같은 친환경 발전에 이같은 저장 장치가 꼭 필요하다. 날씨 변화에 따라 전기 생산량이 들쑥날쑥해 전기를 모아 두었다가 일정하게 공급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기존 모터보다 3분의 1이상 작은 초전도 모터, 초전도 한류기 등이 초전도 기술을 활용한 장비다.
이처럼 전력 기반 시설을 초전도체로 바꾸면 효율이나 용량 측면에서 유리하다. 그래서 초전도 기술은 차세대 전력망인 ‘스마트그리드’의 기본 요소이기도 하다. 스마트그리드는 기존의 전력망에 정보기술(IT)을 접목한 고효율 전력망이다. 전력 공급자가 소비자와 양방향으로 정보를 교환해 필요한 때 필요한 만큼만 전기를 공급한다.

양자 컴퓨터와 자기부상열차
그러나 아직 초전도 기술이 우리 삶을 획기적으로 바꿔 놓지는 못했다. 고온초전도체 발견 이후 잠시 희망이 엿보였던 상온초전도체는 발견될 기미가 없고, 하늘을 날아다닐 것처럼 보였던 자기부양 장치는 SF영화 속에서나 볼 수 있다. 이론은 물론이거니와 응용 분야도 기대에는 못 미친다는 게 연구자들의 평가다.
김동락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물성과학연구부장은 “초전도체는 학문적으로는 한계에 다다라 흥미를 못 끌고 있다”며 “세계적으로 응용 분야에서 조만간 상용화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게 초전도 케이블과 같은 전력 장비”라고 설명했다. 고온초전도체의 발견은 물리학자들의 마음을 들뜨게 했고, 값싼 액체질소를 냉매로 쓸 수 있다는 점도 혁신적이었다. 하지만 일상생활에 적용하기에는 여전히 너무 낮은 온도에서만 작동한다. 우리가 쓰는 전자제품의 부품이나 전선을 초전도체로 만들려면 상온초전도체가 필요하다.
상온초전도체는 여전히 초전도 연구자들의 꿈이지만 실현 가능성이 낮다. 고온초전도체 발견 이후 몇몇 연구팀이 상온초전도체를 발견했다고 주장했지만, 아직 어느 것도 검증되지 않았다. 김 부장은 “양자 현상을 상온에서 나타나게 한다는 건 힘들다”며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상온초전도체 연구는 드물어졌다”고 말했다. 김재완 고등과학원 계산과학부 교수도 “초전도 기술의 응용이 기대에 못 미치면서 최근 국내의 초전도 연구자 수가 줄어든 건 사실”이라고 밝혔다. 김동락 부장은 “일본과 같은 나라에서는 고온초전도체 소재를 개발하는 연구가 아직 활발하다”며 “당장 몇 년 안에 성과를 내야만 인정해 주는 우리나라 정책으로는 오랜 시간이 걸리는 소재 연구에 집중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하지만 세계적으로는 초전도 기술을 응용할 수 있는 분야를 찾는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그중 하나가 컴퓨터다. 김재완 교수는 “과거 초전도체를 이용해 슈퍼 컴퓨터의 소비 전력을 줄이려는 시도가 있었는데, 최근 초전도 연구자들은 양자 컴퓨터에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양자 컴퓨터는 중첩 과 같은 양자역학적 현상을 이용해 자료를 처리한다.

디지털 컴퓨터는 0과 1로 이뤄진 비트를 정보의 단위로 쓴다. 10비트라면 210인 1024개만큼의 정보를 나타내지만, 비트는 0 아니면 1이므로 한 번에 하나의 정보만 표현할 수 있다. 반면 양자 컴퓨터는 큐비트(양자비트)를 정보의 기본 단위로 쓴다. 큐비트는 0과 1의 중첩 상태에 있다. 양자 컴퓨터는 이 중첩 상태에 양자역학적인 상호작용을 가해 계산한다. 따라서 10큐비트라면 1024개만큼의 계산을 동시에 할 수 있다. 초전도체를 이용한 회로는 큐비트를 구현할 수 있는 유력한 후보다.
또한 초전도 기술이 가져다 줄 미래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응용 분야가 자기부상열차다. 자석의 다른 극이 서로 잡아당기고 같은 극은 서로 밀어낸다는 원리를 이용한 교통수단이다. 수백 톤이 넘는 열차를 자석의 힘으로 띄우려면 매우 강한 전자석이 필요하다. 강한 자기장을 만들기 위해 엄청난 양의 전기를 흘려보내면 뜨거운 열이 발생하고 에너지 손실도 많다. 그래서 초전도 전자석을 이용한다.
자기부상열차는 철로와 바퀴의 마찰이 없기 때문에 낮은 에너지로 빠른 속도를 낼 수 있고, 진동과 소음이 없다. 자기부상열차의 개발은 일본, 독일 등이 앞서 가고 있다. 현재 가장 빠른 기록은 2003년 일본이 세운 시속 581km다. 하지만 아직 가격을 비롯해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다.
초전도 현상은 한 세기나 나이를 먹었으면서도 여전히 물리학의 수수께끼로, 매력적인 본모습을 감추고 있다. 앞으로 초전도 현상 발견 110주년, 120주년이 됐을 때는 어떤 모습을 보여 주고 있을까. 상온초전도체란 영원히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밝혀져 여전히 냉각 장치 없이는 쓰지도 못하고 있을까, 아니면 첨단 과학은 물론 우리의 생활을 속속들이 바꿔 놓을 획기적인 발견이 이뤄져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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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PAS사업의 목표는 2011년까지 초전도 전력기기의 실용화 기반을 구축하는 것입니다. 우리 독자 기술로 세계 최대 용량의 선로변경식 하이브리드형 22.9kV/3000A 초전도 한류기 개발에 성공해 핵심원천기술을 확보했습니다. 22.9kV/50MVA 초전도 케이블을 고창전력시험센터에 설치해 국제공인시험기관의 입회시험을 성공적으로 완료해 실용화에 다가섰고, 세계 최초로 초전도 케이블 분야의 국가 규격을 제정했습니다. 세계 최고 전압인 154kV급 초전도 케이블도 개발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의료, 수송 등 다양한 분야에 쓸 수 있는 초전도선과 국내 최고 용량의 초전도 모터를 만들었으며, 초전도 전력기기의 운용과 성능평가를 위한 154kV급 극저온 고전압 전기절연 평가 설비를 구축했습니다.
현재 상용화 수준은 어느 정도입니까?
초전도 케이블과 초전도 한류기는 한국전력공사와 공동으로 개발 및 실용화를 추진해 초전도 전력기기의 실용화 기반을 구축했습니다. 초전도 모터와 초전도 한류기는 해군과 포스코, 한국전력과 실용화 사업이 진행중이며, 초전도선은 참여기업인 (주)서남이 두산중공업에 공급해 시장에 진입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나라의 초전도 기술은 어느 분야에서 강점이 있습니까?
지난 10년 동안 우리나라는 초전도 케이블과 초전도 한류기 분야에서 세계를 선도할 수준으로 성장했습니다. 초전도 케이블의 경우 미국이 138kV/574MVA급인데 비해 우리는 154kV/1GVA급을 개발했지요. 초전도선은 미국이 1km급의 초전도선을 시간당 0.5m로 제작하는 데 비해 우리는 길이는 200m급이지만 시간당 300m의 속도를 낼 수 있어 사실상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초전도 기술이 다른 분야의 첨단 기술에 어떤 파급 효과를 끼치고 있습니까?
꿈의 에너지로 불리는 핵융합발전이나 원자력발전, 화력발전을 대체할 수 있는 해상풍력발전단지에 초전도 기술을 쓸 수 있습니다. 부산에서 서울까지 1시간밖에 안 걸리는 초고속 자기부상열차, 단백질 구조를 분석해 신약 개발에 쓸 수 있는 핵자기공명장치(NMR) 등이 초전도 기술이 만들 수 있는 첨단 장치입니다.
언제쯤 초전도 기술을 이용한 제품이 일상적으로 쓰이게 될까요?
DAPAS사업에서 개발한 초전도 전력기기의 검증이 끝난 뒤에는 수요가 급속히 증가할거라고 예상하고 있습니다. 향후 5년 뒤부터 시작돼 10년 뒤에는 본격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국도 고품질의 전력을 공급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고, 네덜란드도 기존의 지중 케이블을 초전도 케이블로 바꾸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외국에서도 2020년경에는 본격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예측하고 있습니다.
초전도 기술이 기대만큼 빨리 상용화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있는데요….
상용화를 앞당기기 위해서는 경제성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저희도 DAPAS사업을 통해 비용을 절감함으로써 초전도 기술 상용화를 앞당기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또한 초전도 전력기기를 시장에 진입시키는 시도도 하고 있습니다. 이 결과 지난해 한국전력공사는 LS전선과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미국의 초전도 DC케이블 사업에 우선협상대상기관으로 선정돼 미국 시장 진출이 확실시되고 있습니다.
초전도 기술의 미래를 어떻게 보십니까?
초전도 전력기기가 널리 쓰이면 고전압 송전에 따른 주민 불만도 해소할 수 있고, 급격한 수요 증가에도 쉽게 대응할 수 있습니다. 고품질의 친환경 녹색전력망을 구축하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지요. 또한 지금보다 가볍고 성능이 좋은 초전도 모터와 초전도 발전기는 부가가치가 높은 선박의 핵심 기술로 쓰일 전망입니다. 중국 같은 신흥 선박수출국에게 위협받고 있는 상황에서 초전도 기술을 이용하면 새로운 활로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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