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들산들한 바람이 마음에까지 부는 싱그러운 계절 봄이다. 봄바람 난 처녀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봄이 되면 이성을 그리는 마음이 커지기 마련이다. 결혼식장마다 넘치는 결혼 행렬을 봐도 인간의 짝짓기 계절이 시작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봄바람은 인간뿐 아니라 대부분의 동물에게 찾아온다. 가을이 지나면 먹이가 점점 줄어들고 환경이 나빠지기 때문에 동물은 대부분의 에너지를 자신의 몸을 지키는데 사용한다. 한겨울에 자식을 키우지 않기 위해 이성에 대한 관심을 중단하는 셈이다.
그렇게 힘든 계절을 넘기고 봄이 찾아오면 본격적으로 사랑을 찾는 일이 시작된다. 짝짓기에서 암수는 서로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노력한다. 우수한 배우자를 찾으려는 암컷과 자신의 씨만 퍼트리려는 수컷의 짝짓기에 대한 동상이몽을 알아보자.
사이좋은 원앙도 바람 핀다
모든 생물은 자손을 남기려고 많은 힘을 쏟아붓는다. 궁극적으로는 유전인자를 남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심혈을 기울여 그렇게 피나는 투쟁을 하는 것이다.
하등동물은 몸이 둘로 나뉘어 자손을 만드는 이분법이나 몸의 일부가 떨어져 나가 새끼가 되는 출아법으로 번식한다. 이것은 암수가 관여하는 양성생식에 비하면 유전자에 전연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생식방법이다. 유전정보가 똑같게 된다는 점에서 요즘 한창 논란이 되고 있는 복제인간과 비슷하다. 즉 복제인간은 이분법이나 출아법에 가까운 하등한 생식방법이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고등생물은 왜 암컷과 수컷이 있어 서로 유전자를 섞는 것일까. 암수의 유전자가 섞이면 서로 닮기도 하지만 아주 다른 특성을 가진 후손을 만든다. 즉 부모와 다른 변화된 환경에 잘 적응하는 자손을 가지려 하는 것이다. 여기서 변화된 환경에 대한 적응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자신보다 진화한 자식을 원한다는 말이다.
대부분의 동물은 암수가 따로 살다가 발정기에만 만나 새끼를 만들고 헤어져버린다. 암수가 영원히 같이 사는 일부일처제는 주로 새에 많고, 포유류에서는 사자나 영장류 등 약 3%만 가족생활을 한다. 그런데 가족생활을 하는 경우 흥미로운 일이 발생한다. 제 배우자는 놔두고 다른 배우자와 짝짓기를 하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금실 좋기로 이름난 원앙의 새끼들을 상대로 DNA 검사를 해봤다. 그 결과 40% 정도는 지아비의 것과 딴판이었다고 한다. 즉 암컷 원앙이 바람을 피웠기 때문이다. 미국에 사는 쥐로선 드물게 가족생활을 하는 집쥐의 일종(Microtus ochrogaster)도 비슷한 결과치를 보였다고 한다. 가족생활을 하면서도 제 짝이 아닌 다른 녀석의 유전인자를 받아들이는 암컷의 행태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건강한 유전자 선택하려는 전략
동물 중에서 멸종 직전에 놓인 종류는 보존을 위해 동물원 같은 곳에서 키운다. 예를 들어 침팬지의 경우 자연 상태에서는 암컷 한마리가 여러 수컷과 교미를 해 유전형질이 다른 새끼를 낳는다. 그러나 동물원의 암컷 침팬지는 수컷 한마리의 정자만 받기 때문에 같은 형질의 새끼들이 태어나게 되고, 따라서 어떤 병이 돌 때 잘못하면 모두 죽어버리는 일이 생길 수 있다. 여러 정자를 받았다면 그 병에 강한 놈이 있어 살아남을 텐데 말이다. 즉 원앙의 바람은 종족의 생존력을 키우려는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식물에서도 이와 비슷한 자연의 원리를 찾아볼 수 있다. 꽃을 피우는 현화식물(꽃식물)은 점잖은 체면에 꽃이라는 생식기를 버젓이 달고 있다. 그 생식기의 색깔이나 모양이 다 다른데, 그것을 모아 심어놓고 황홀하게 즐기는 이들이 바로 사람이다. 동물의 것이라면 얼마나 혐오스럽게 생각할 생식기가 아니던가.
동물이 생식기를 몸의 아래쪽에 달고 있는 것과 달리 식물은 나비나 벌을 유혹하기 위해 몸뚱어리의 제일 꼭대기에 대롱 매달아놨다. 동물의 난소에 해당하는 암술을 가운데 놓고 그 둘레에 정소인 수술들이 싸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가 잘못 생각하기 쉬운 것이 있다. 대부분의 식물은 제꽃가루받이(자가수분)를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암술 둘레를 싼 제 수술의 꽃가루와는 꽃가루받이를 피한다는 얘기다. 식물은 제 꽃의 꽃가루와 수분을 하면, 동물이 근친결혼을 했을 때 나쁜 형질의 자손이 생기는 것처럼 우생학적으로 좋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사실 어느 생물이나 좋지 못한 형질을 결정하는 열성유전자를 갖고 있다. 따라서 자가수정이나 근친결혼을 하면 열성인자의 짝이 생기고, 결국 잠재됐던 형질이 표현형질로 나타난다. 그래서 가능한 한 멀리, 다른 유전자를 가진 짝을 찾으려든다. 식물의 짝짓기도 동물과 하나도 다름 없이, 건강한 인자가 결합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래야 경쟁자를 이길 수 있고, 병에 걸리지 않은 튼튼한 후손을 남길 수 있다.
맥가이버칼 사용하는 꾀보 벼룩
암컷이 건강한 유전자를 선택하려고 노력하는 반면, 수컷은 자신만의 유전자를 남기겠다는 강한 본능을 갖고 있다. 곤충들의 사랑이야기를 들어보자.
따스한 봄이 돼 번데기에서 갓 태어난 수컷 나비는 언덕배기 양지 바른 곳에 날아올라 몸을 데우면서 암컷이 깨어나길 기다린다. 물론 텃세를 부려 다른 수컷이 가까이 오면 쫓아 내몬다. 암컷 나비는 교미기에 단 한번만 짝짓기를 하기에 상대를 고르는데 아주 신중하다.
짝짓기를 할 때 수컷은 자기 몸무게의 6-10%나 되는 정자가 들어있는 영양덩어리인 정포를 암컷의 자궁에 집어넣는다. 암컷은 이를 영양분으로 삼아 튼튼한 알을 낳는데, 놀랍게도 영양분 속에 든 물질이 암컷의 짝짓기 욕구를 감소시킨다. 결과적으로 딴 놈의 정자를 받지 못하게 한다는 말이다.
수컷들이 자기 씨만 더 많이 퍼뜨리려는 신비스런 메커니즘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모시나비, 사향제비나비, 애호랑나비 등에서는 반투명한 정포가 굳어져 수태낭이 된다. 이는 암컷의 생식관을 틀어막는 마개 역할을 한다. 중세시대 바람을 피지 못하게 하기 위해 인간이 만든 정조대라는 기구와 다를 게 없다.
지중해에 사는 벼룩의 일종은 암컷의 정절을 강요하는 수컷의 이기적이고 공격적인 씨 퍼뜨리기 작전의 전형을 보여준다. 교미하는 수컷은 딴 수컷이 집어넣은 정자 덩어리를 끄집어내버리고 제 씨를 넣는다. 수컷의 교미기는 흔히 맥가이버칼이라 불리는 스위스 군대칼처럼 갈고리, 지레, 가시철사, 용수철 등이 달려 있어서 암컷의 생식기를 깨끗이 청소하고 제 정자를 넣는다. 잠자리의 일종은 교미기가 암컷의 몸 속에서 부풀어 경쟁자의 정자를 밀어내버린다. 하찮다고 무시하기 어려운 요술쟁이 꾀보 벌레들이다.
밀림의 왕자 사자의 짝짓기도 마찬가지다. 호랑이가 외톨이 생활을 하는데 비해, 사자는 할머니에서 손자 대까지 보통 열대여섯마리가 모여 사는 가족생활을 한다. 그런데 이 집안의 힘센 한두마리 대장 수컷은 딴 집안에서 들어온 녀석들이다. 태어난 수컷 새끼는 어느 정도 자라면 집안에서 모두 내보내버린다. 어느 집안이나 모두 다 그렇다.
세월이 흘러 떠돌이 생활을 하던 어린 수컷들이 자라면, 늙다리 수컷이 대장인 집안에 침입한다. 결국 온 들판에 피비린내를 풍기며 그들을 몰아내고 대장이 된다. 그런데 새로 대장이 된 수컷들은 새끼 사자들을 물어죽이는 무참한 살상을 벌인다. 젖먹이들을 없애버려야 암컷들이 다시 발정하고, 그래야 제 씨를 퍼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냉혹하고 무참한 살상은 자연계의 본성으로 영장류에서도 벌어지는 일이다.
암컷 앞에서만 용감해지는 수컷
수컷이 이렇게 무자비하게 자신의 씨가 아닌 새끼를 밸 정자를 없애버리는데는 뭔가 믿는 구석이 있어서다. 열대어 굿비는 흥미로운 짝짓기 현상을 보여준다. 여러마리 굿비가 들어있는 큰 어항에 다른 물고기를 집어넣었다. 이때 반드시 몸집이 크고 체색이 아주 밝은 수컷이 앞으로 나가 그 물고기와 맞선다. 그 결과 그 수컷이 대장짓을 하고, 암컷을 거의 다 차지한다. 아니 암컷들이 그 수컷을 따르고 짝으로 선택한다.
그런데 암컷이 없는 어항에서 물고기를 넣었을 때는 그 대장 굿비는 나서지 않고 피하기 바쁘다. 수컷이 암컷을 차지하기 위해서 생명을 걸었다는 얘기다. 또 이런 현상도 발견된다. 어항에다 못난이 굿비 수컷을 넣고 포식자에게 맞닥뜨려 달려들게 했더니, 암컷들이 그 수컷을 짝으로 삼더라는 것이다. 암컷은 외모와 관계없이 용감한 수컷을 좋아한다.
뉴기니아에 사는 극락조는 성공한 수컷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산란 시기가 오면 아침 일찍 수컷들은 한 장소에 모여든다. 수컷은 온갖 치장을 다하고 나무 위에 앉아 암컷들이 오기를 기다린다. 암컷이 떼지어 나타나면 수컷은 몇시간 동안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면서 현란한 춤을 춘다. 모두가 건강미와 강한 유전인자의 소유자라는 것을 과시하는 행위다.
상대를 고르는데는 암컷이 짝의 선택권을 가진다. 암컷은 수컷들 중에서 마음에 드는 놈과 교미를 하고 느릿느릿 사라진다. 나중에 혼자서 집을 짓고 알 낳고 새끼를 친다. 이와 상관없이 다음날에도 수컷의 무도회가 벌어지고 그렇게 짝짓기를 계속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전체 암컷의 80%가 수컷 중에서 아주 크고 건강한 한마리와 사랑을 한다. 새들도 뭘 알기는 아는 모양이다.
못생겨도 제짝이 있다
못생기고 밉상인 힘 약한 수컷들은 전혀 제씨를 퍼뜨리지 못하는 것일까. 강하고 멋진 놈보다는 덜하지만 그래도 제 유전자를 남긴다. 극락조의 예에서 20%의 의미가 아주 큰 것이다. 원칙적으로 한마리의 강자가 100% 암컷을 차지할 수 있지만 약자들도 순간적으로 암컷과 짝을 지으니 모두를 차지하지는 못한다. 염소 집단에서도 대장이 암컷을 거의 다 차지하지만 못난이들도 대장의 눈을 피해 재빠르게 교미하고 도망친다.
물고기에서는 더 교묘한, 못난이 수컷들의 씨뿌리기 수법을 발견할 수 있다. 큰입우럭 무리의 일종(bluegill sunfish)은 성의태라는 행위를 한다. 성의태란 자신의 성을 숨기고 다른 성을 흉내내는 행위를 말한다.
이 물고기의 수컷에는 세 부류가 있다. 첫째 종류는 아주 덩치가 크고 몸 색깔도 좋아 제 영역을 지키면서 여러 암컷을 차지한다. 둘째 종류는 첫째 놈의 둘레를 빙빙 돌면서 눈치를 보며 몰래 교미를 한다. 물고기는 체외수정을 하기 때문에 여기서 교미란 알을 낳은 곳에 정자를 뿌린다는 의미다.
세번째 종류가 아주 흥미를 끈다. 이 종류는 첫째 수컷과 암컷의 중간 몸 크기에다 체색도 그들의 중간 색깔을 갖고 있는데, 되레 암컷 행세를 한다. 암컷과 가까이 지내다가 슬그머니 제 유전자를 뿌리는 것이다. 오묘한 짝짓기 행위가 아닌가.
미국산 뱀의 일종(red-sided garter snake)은 이 물고기 뺨치는 전략을 구사한다. 이 뱀은 교미 때 암수가 커다란 공처럼 뒤엉킨다. 그런데 수컷 중에서 16% 정도는 암컷의 탈을 쓰고 다른 수컷들을 딴 곳으로 유인한다. 그리고 나서 암컷을 차지한다니 기막힌 작전이라 할 수 있다. 암컷 시늉을 하는 이런 수컷을 쉬 메일(she-male)이라 하는데, 정상적인 수컷이면서도 교미 시기에는 암컷의 성페로몬과 똑같은 물질을 뿌려 수컷을 밖으로 끌고가는 것이다.
인간 여성 역시 일반적으로 힘세고, 멋 부리며, 용감한 남성을 좋아한다. 그 바탕에는 이런 남자의 유전자를 받아 자식을 낳으면 그 자식이 세상살이에 유리할 것이라는 심리가 작용하고 있다. 반면 남성은 애인이나 배우자가 딴눈을 팔면 참지를 못한다. 자신만의 유전자를 남기겠다는 강한 본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과 다른 생물의 짝짓기가 똑같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인간도 동물의 한 종이고 보면 같은 공식 안에 들어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