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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인공태양, 세계의 태양으로 뜨다

차세대 초전도 핵융합 연구장치 KSTAR

‘인공태양’ 차세대 초전도 핵융합 연구장치(KSTAR)는 과학계에서 종종 골리앗을 이긴 다윗으로 비유된다. 선진국보다 30년이나 뒤늦게 개발을 시작했는데도 어느 곳보다 먼저, 가장 뛰어난 고성능 핵융합 연구장치를 완성했기 때문이다. KSTAR는 전 세계 핵융합학자들이 가장 실험해보고 싶은 실험장치로 손꼽힌다.



한국은 KSTAR를 설계하고 운용한 기술력을 인정받아 EU, 일본, 미국 등 핵융합 선진국들만 참여한다는 ‘국제핵융합실험로’(ITER) 개발 계획에 참여할 수 있었다. 핵융합 발전에서 파생된 다양한 기술은 신산업으로 이어지고 있다. KSTAR의 성공 신화에는 언제나 남다른 전략으로 돌파구를 찾으려 했던 국내 연구진의 꿈과 의지가 담겨 있다.




1995년 한국이 핵융합 연구장치를 만들겠다고 선언했을 때 세계는 ‘말도 안 되는 일’이라며 비웃었다. 미국과 유럽은 이미 1930년대부터 핵융합 재료인 중수소와 삼중수소를 발견하며 활발하게 연구해 오고 있었다. 1951년 구소련에서는 ‘토카막’이라는 도넛 모양의 핵융합장치를 개발했고, 1982년 미국은 대형 핵융합장치인 TFTR을 완공했다. 1990년대에는 자기장으로 초고온의 플라스마를 가두는 자기밀폐 장치에서 들어간 에너지만큼 핵융합에너지를 생산하는 핵융합 반응을 실험해 상용화 가능성까지 검증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원자력 발전으로 전기를 만들고는 있었지만 핵융합은 불모지나 다름없었다. 선진국들에 비해 한국은 늦어도 너무 늦은 듯 보였다.



바닷물 1L로 석유 300L 에너지 낸다

하지만 한국은 핵융합 개발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가 있었다. 바로 핵융합에서 나오는 엄청난 에너지다. 핵융합은 태양이 에너지를 내는 원리와 같다. 가벼운 수소(H) 원자핵들이 융합해 헬륨(He) 원자핵으로 변하면서 줄어든 질량이 막대한 양의 에너지(단위반응 당 17.6MeV)로 바뀐다. 게다가 원료인 중수소는 바닷물에 풍부하게 들어 있다. 바닷물 1L이면 석유 300L에 해당하는 에너지를 만들 수 있다.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우리나라로서는 탐나는 기술이 아닐 수 없다.



우리의 목표는 분명했다. 선진국들과 다른 방법으로 ‘퀀텀 점프’를 이루자는 것. 연구진들은 선진국이 하지 않았지만 앞으로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찾기 시작했다. 바로 대규모 초전도 전자석이었다.


 

[KSTAR의 주장치(토카막) 모습. 핵융합 반응이 일어나는 1억℃의 초고온 플라스마를 가둘 수 있다. 국내 기술로 만든 초전도체 전자석 30개가 달려 있어 KSTAR의 최종 목표 성능은 자기장 세기 3.5테슬라, 플라스마 지속시간 300초, 플라스마 온도 3억℃다.]


 

[2009년 12월 두 번째 실험을 마친 뒤 KSTAR는 외부 장치를 추가 연결하고 내부를 리모델링해 성능을 높였다. 그 결과 지난해 3차 실험에서 초전도 자석을 이용한 핵융합 연구장치로는 처음으로 중성자를 검출하고 플라스마 에너지 효율이 높은 D형, H-모드를 달성했다.]



토카막에서 자기장은 플라스마를 가두는 그물과 같은 역할을 한다. 온도를 높일수록 플라스마 입자들의 움직임이 격렬해지는데, 입자들 사이의 반발력이 줄면서 핵융합 반응이 일어날 확률이 높아진다. 하지만 이 움직임을 제대로 제어하지 않으면 입자들이 내부 벽에 부딪치면서 에너지를 잃고 낮은 에너지 상태인 중성 원자로 되돌아간다. 애써 만든 플라스마 상태가 금방 사라지는 것이다.



이를 막기 위해 토카막 안에 자기력을 걸어준다. 플라스마는 자기력선을 따라 벽에 부딪치지 않고 계속해서 이동해 간다. 그전까지는 자기장을 만들기 위해 구리로 된 전자석을 사용했다. 하지만 전류가 많이 흐를수록 구리의 전기저항 때문에 엄청난 열이 발생했다. 이 열을 식히려면 핵융합에서 나오는 에너지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써야 했다. 핵융합의 상용화를 방해하는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세계 최고 초전도 전자석 토카막 KSTAR

국내 연구진은 바로 이 점을 돌파구로 삼았다. 만일 구리 전자석 대신 초전도 자석을 사용하면 저항이 0이므로 아무리 전류를 높여도 열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영하 268.5℃인 액체 헬륨을 흘리는 냉각시스템을 가동시키는데 3000kW 내외의 전력이 필요하지만 이는 상전도 자석을 쓸 때 예상되는 값에 비하면 수백분의 1에 불과하다.



아이디어는 좋았다. 하지만 세계 어느 곳에서도 초전도체를 사용해 토카막을 만들어본 적이 없었다. 권면 국가핵융합연구소 KSTAR운영사업단장은 “초전도 자석에 대한 이해도 부족했던 당시 핵융합에 필요한 대규모의 초전도 자석을 만든다고 하자 논란이 많았다”며 “모든 사활을 초전도 자석을 만드는 데 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며 당시 상황을 전했다.



1997년 외환위기를 맞았을 때는 나라도 어려운데 성과가 불확실한 연구에 돈을 많이 쓴다는 이유로 비난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연구를 멈출 수는 없었다. 더 이상 지구에게 빌려 쓰지 않고 더 이상 지구를 훼손하지 않으려면 핵융합 발전이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성공만이 이 모든 논란을 불식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 위기가 있을수록 연구진들은 더더욱 거대한 초전도 자석을 만드는 데 몰두했다.



이런 마음가짐 덕분이었을까. 국내 연구진은 결국 지구자기장의 7만 배에 이르는 3.5테슬라의 강력한 자기장을 만들어내는 초전도 전자석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2007년 8월, 1995년부터 11년 8개월 동안 총 3090억 원을 투입한 KSTAR를 완공했다. 세계에서 두 번째 초전도 핵융합 연구장치이자(중국의 EAST가 최초임) 세계 최고 성능의 핵융합장치였다.



플라스마 성능 2배, 응용과학도 활발

완공 이후 ‘슈퍼루키’ KSTAR는 실험마다 성공신화를 써내려갔다. KSTAR는 완공 이듬해인 2008년 7월 첫 시도에 플라스마 발생을 성공시켰다. 지난해 10월 3차 실험에서는 초전도 자석을 이용한 핵융합 연구장치로는 처음으로 중성자를 검출하는 데 성공했다. 중성자 검출은 핵융합 반응이 일어났다는 가장 확실한 물증이다. 중수소 두 개가 핵융합 반응을 일으킬 때 나타나는 중수소의 에너지 크기가 꼭 2.45MeV인데, KSTAR에서 정확히 에너지 크기가 2.45MeV인 중수소가 발견됐다. 저널 ‘사이언스’는 2009년 2월호에 'KSTAR가 한국을 핵융합 연구의 선두주자로 끌어올렸다‘고 표현했다.



최근엔 외부 장치를 추가 설치하고 내부를 리모델링해 성능을 더 높였다. 지난해 말 기체 상태의 중수소를 빠르게 가속해 토카막 안에 투입하는 장치인 중성입자빔가열장치를 달았다. 진공용기 내부 모든 면에 고순도 탄소블록을 붙여 고온의 플라스마가 진공용기에 직접적으로 부딪쳐 성능이 떨어지는 현상을 줄였다. 또 진공용기 내부에 제어코일을 설치해 플라스마의 위치와 불안전성을 제어했다. 진공용기 하단 깊숙이 파인 부분에는 다이버터를 설치해 플라스마를 에너지 효율이 높은 D형 모양으로 만들고 생성되는 불순물을 효과적으로 제거했다. 이렇게 한 덕분에 지난해 11월에는 토카막 안에서 플라스마의 성능이 약 2배로 증가하는 H-모드(High confinement Mode) 현상을 달성했다. 쉽게 말해 보통 핵융합장치를 운전할 때 기대되는 것보다 두세 배의 에너지를 내는 데 성공한 셈이다. 국가핵융합연구소는 내년에는 내부 온도를 1억℃ 가까이 높이겠다는 다짐이다. 그리고 2013년부터는 핵융합 에너지 상용화에 필수적인 운전 기술인 플라스마 온도 3억℃, 시간 300초에 도달하기 위한 실험을 수행한다.



핵융합 발전에서 파생된 기술을 다양하게 응용하는 연구도 활발하다. KSTAR를 운영하며 얻은 초전도자석과 플라스마 기술을 활용해 자기공명영상(MRI) 장치, 탄화규소(SiC) 나노분말, 플라스마를 활용한 선박평형수 정화장치 등에 관한 원천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초전도 자석은 MRI의 핵심부품이다. 국가핵융합연구소는 국내 MRI 영상처리 기술을 가진 국내 벤처기업과 공동 개발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국산 MRI의 개발과 상용화에 뛰어들었다. SiC 나노분말은 2000℃ 이상의 고온을 견딜 만큼 내구성이 뛰어난 물질로, 비행기나 고속철도의 제동장치, 군수분야의 방탄재, 로켓이나 인공위성의 고온내열재 등 여러 첨단 산업에 활용될 수 있다. 국가핵융합연구소는 지난해 6월 국내 벤처기업에 기술을 이전해 SiC 나노분말의 상용화를 추진하고 있다.


 

[ITER 건설을 위한 우리나라 조달품목 우리나라는 KSTAR를 제작한 기술력을 인정받아 ITER 전체 건설비의 약 9%에 해당하는 품목 9개를 제작해 조달할 예정이다. 오른쪽 9개는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라고 여겨지는 기술들이다. 아래는 KSTAR의 내부모습이다. ITER의 20분의 1 크기로 규모만 다를뿐 기능과 성능이 매우 유사하다.]


 

[2020년 후반 우리나라에 제작할 실험용 핵융합 발전소의 모습. 세계에서 가장 먼저 핵융합 발전소를 짓는 것이 꿈만은 아니다.]


 

[◀토카막 내부의 변화 모습. 토카막 내부에 고순도 탄소블록을 붙여 고온의 플라스마가 진공용기에 직접 부딪쳐 성능이 떨어지는 현상을 줄였다. 진공용기 하단 깊숙이 파인 부분이 다이버터다. 플라스마 모양을 에너지 효율이 높은 모양으로 만들고 불순물을 제거한다.]


 

[▶플라스마가 D형으로 완벽하게 제어된 모습. 탄소블록에 플라스마가 직접적으로 닿지 않기 때문에 열에너지 손실을 최소화해 더 높은 온도를 만들 수 있다.]





핵융합은 청소년을 위한 과학


현재 우리나라는 EU, 일본, 러시아, 미국, 중국, 인도와 함께 국제핵융합실험로(ITER)를 건설하고 있다. 이 사업은 지난 40년간 세계 핵융합실험 장치들이 이뤄낸 실험결과를 종합해 공학적으로 점검해보는 대규모 실험이다. 우리나라는 ITER 전체 건설비의 9.09%에 해당하는 품목 9개를 제작하며 핵심 멤버로 활약하고 있다.



ITER도 KSTAR와 똑같은 니오븀주석합금(Nb3Sn)으로 초전도 전자석을 만든다. 권 단장은 “ITER가 KSTAR보다 약 20배 크다”며 “같은 크기라고 생각하고 비교하면 똑같은 성능으로 봐도 무방하다”고 말했다. 따라서 KSTAR가 내놓는 모든 연구 결과는 ITER를 검증하는 기준으로 활용되고 있다.



국내 연구진들은 ITER가 완성되는 2019년 전까지 설계와 운영 등 각종 노하우를 열심히 쌓아가고 있는 중이다. 권 단장은 “초전도 자석을 절대 온도에 가깝게 냉각시키는 것에서부터 이 온도를 유지하며 여러 현상들을 제어하는 기술까지 한두 번 실험해서는 얻을 수 없는 노하우들이 많다”며 “KSTAR를 가진 것만으로도 ITER 공동 연구에서 한국은 기술적으로 우위에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2019년이 되면 ITER가 본격적으로 가동을 시작한다. 핵융합 학계 동향을 살펴보면 2020년대 후반부터는 각 나라별로 시험용 핵융합 발전소가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ITER는 공동연구의 성격이 강하지만 일단 시험용 발전소를 짓기 시작하면 지적 재산권 확보를 위해 각 나라가 첨예하게 대립하게 된다. 비밀리에 가지고 있던 핵융합 기술이 중요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KSTAR를 진행하면서 초고진공, 극저온, 초전도 등 첨단극한기술 관련 10여 가지의 핵심기술을 확보했다. 국내외에 200개가 넘는 특허를 취득하는 성과도 거뒀다. 한국이 세계에서 처음으로 핵융합 발전소를 짓는 것이 꿈만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미래의 무한 핵융합 경쟁을 대비하려면 많은 인력이 필요하다. 권 단장은 “핵융합은 바로 청소년을 위한 과학”이라고 말한다. 그는 “핵융합발전소가 본격적으로 건설되고 상용화되는 시기는 21세기 중반이므로 지금부터 학생들이 준비한다면 세계의 주인이 될 수 있다”며 많은 참여를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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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김윤미 기자│이미지 출처│국가핵융합연구소,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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