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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3. 2만4000년 전, 네안데르탈인 최후의 날


살금살금, 동굴 밖으로 나갑니다. 무서운 검치호랑이가 저를 따라오지는 않을 거예요. 이런 한낮에 동굴 밖을 돌아다니는 짐승은 많지 않거든요.

아, 제 소개부터 할게요. 우리는 언어가 없으니 이름도 당연히 없지만, 편의상 저를 ‘네안’이라고 불러 주세요. 네,네안데르탈인의 그 네안이에요. 나이는 8살. 아직 꿈 많은 소년이랍니다. 물론 우리들의 평균 수명이 35년으로 짧기 때문에 이 정도 나이도 아주 어린애는 아니에요. 더구나 2010년 하버드대 연구팀이 치아 화석으로 성장 패턴을 연구한 결과 우리가 호모 사피엔스보다 어릴 적 성장 속도가 더 빨랐다고 해요. 똑같은 어린애 취급은 하지 말아 주세요.

흔히 여러분은 우리가 원시인이라 온몸이 털로 뒤덮여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하지만 그건 오해예요. 우리는 호모 사피엔스와 거의 비슷하게 몸에 털이 없었거든요. 고인류학자들은 이미 160만 년 전, 그러니까 우리 조상인 호모 하빌리스나 호모 가우텐겐시스 시절부터 몸에 털이 거의 없어졌다고 보고 있어요. 정확히는 대부분의 털이 솜털처럼 작고 가늘어진 것뿐이지만요.

털 말고 사람들이 자주 착각하는 게 우리가 시커먼 피부를 지녔다는 거예요. 이거야말로 적반하장이 아니고 뭐겠어요? 진짜 시커먼 피부는 아프리카에서 진화한 호모 사피엔스 당신들이었거든요. 생각해 보세요. 햇빛 뜨거운 아프리카에서 피부에 해로운 자외선을 피하려면 어떻게 해야 했겠어요? 피부에 멜라닌을 가득 만들어야지요. 몸에 있는 ‘멜라노코르틴리셉터(MC1R)’ 유전자가 그 역할을 하지요. 하지만 우리 네안데르탈인은 유럽에서 진화했기 때문에 MC1R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있었고, 덕분에 일부는 피부가 하얘졌어요. 더구나 이 유전자의 돌연변이는 머리카락까지도 빨갛거나 금발로 만들어요. 흰 피부에 금발! 당신이 생각하는 미남 미녀의 조건 아닌가요. 그게 우리 네안데르탈인이에요.

 


[네안데르탈인에 대한 오해와 진실. 20C 초 프랑스의 고인류학자 불르는 라 샤펠 지역에서 발견한 화석을 근거로 네안데르탈인이 털이 많고 구부정한 모습일 거라고 추정했다(위). 하지만 실제로는 흰 피부에 털이 거의 없는 현생인류와 비슷한 모습이다(왼쪽).]



몸에 털도 없고 얼굴도 희니 당신들과 외모에서 별 차이가 없을 것 같지요? 하지만 그건 아니에요. 만약 우리가 이번 ‘과학동아’ 표지처럼 당신들이 입는 옷을 입고 거리를 걸으면 모두가 깜짝 놀라 눈을 비비고 다시 쳐다볼 거예요. 먼저 얼굴을 보세요. 코가 크고 광대뼈도 두툼하게 아래까지 내려와 있어요. 그리고 턱이 없어요. 입술을 잘 보세요. 입술 아래에 움푹 들어간 부분이 없이 입술 아래가 둥글게 이어져 있어요. 눈두덩이 위는 약간 두드러져 보이는데, 그렇다고 눈에 띄게 굵지는 않아요. 가느다란 반달 모양을 하고 있어서 눈이 깊어 보이죠. 마지막으로 머리를 봐 주세요. 이마가 높고 곧은 호모 사피엔스와 달리 낮고 뒤로 젖혀져 있어요. 그리고 뒤통수가 크죠. 실제로 뇌용량도 무척 컸어요. 1350cm3 정도인 호모 사피엔스보다 커서 남자는 무려 1600cm3에 이른답니다. 하지만 뇌가 크다고 다 머리가 좋은 건 아니에요. 동물의 뇌가 몸집에서 예측되는 수준보다 얼마나 더 큰지를 나타내는 수치를 ‘대뇌비율지수(EQ)’라고 해요. 네안데르탈인의 EQ는 4.8로 5.3인 호모 사피엔스보다 작답니다.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와 호모 사피엔스의 골격을 비교했다. 키는 영양 상태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비교 대상이 아니다.]

 


우리 네안데르탈인의 EQ가 호모 사피엔스보다 작은 것은 몸집이 크기 때문이에요. 팔다리는 짧지만 굵고 몸통은 드럼통처럼 크고 튼튼했거든요. 호모 사피엔스 중 추운 북쪽 지방에 사는 이누이트를 떠올려 보면 조금 비슷해요. 둘 다 추운 곳에서 살기 위해 적응한 결과거든요. 같은 종의 동물들을 비교해 보면 추운 지방에 사는 동물이 체구가 더 커요. 이를 베르그만의 법칙이라고 하는데, 우리의 체구도 이런 법칙과 관련이 있을 거예요.

자, 이제 목적지에 도착했어요. 바로 연못이에요. 맑고 시원한 물이 있거든요…. 아! 기척을 지우려 조심했지만 멀리서 순록과 소(바이슨)가 달아나네요. 나무 뒤에 숨어 있었나 봐요. 지금은 그냥 물을 마시러 온 것이니 괜찮지만, 만약 사냥을 하러 온 것이었다면 엄마 아빠한테 혼날 뻔 했어요. 사냥 얘기는 좀 나중에 하기로 하고, 우선 저 물 좀 마실게요.



사냥 잘하지만 죽은 동물도 좋아

…꿀꺽꿀꺽.

아, 시원하다! 근데 물을 마시고 났더니 물에 비친 제 모습이 보이네요. 오른손을 드니 물에 비친 제 모습은 왼손을 들어요. 왼손을 드니 반대로 오른손을 들고요. 그런 것도 이해하냐고요? 제가 생각보다 지능이 높아요. 적어도 좌우가 대칭이라는 사실 정도는 이해하고 있다고요. 어떻게 알 수 있냐고요? 우리 네안데르탈인이 만든 도구를 보세요. 앞에서 봐도, 옆에서 봐도, 심지어 위에서 봐도 대칭을 이루고 있잖아요? 정교한 대칭을 이해하고 있다는 증거지요.
 


물론, 우리 네안데르탈인만의 특징은 아니에요. 주먹도끼는 이미 약 140만 년전 호모 가우텐겐시스나 하빌리스 시절의 유적에서도 발견되고, 50만 년 전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 유적에서도 아주 예쁜 눈물방울 모양의 대칭형 주먹도끼가 나오니까요.

우리는 25만 년 전부터 주먹도끼와는 다른 우리만의 석기를 만들어 썼답니다. 후세의 호모 사피엔스는 우리가 발전시킨 석기 기술을 ‘르발루아 기술’이라고 불렀어요. 이전과는 비교가 안 되는 복잡한 석기 문화였지요. 제가 설명을 한번 해 볼게요. 우선 거북이 등처럼 생긴 넓적한 돌을 하나 구해 보세요. 그런 다음 끝이 날카로운 돌멩이로 가장자리를 톡톡 쳐 손톱처럼 생긴 얇은 돌들을 떼어 내세요. 떼어낸 돌 조각을 ‘격지’라고 부르는데, 날카로운 도구로 이용할 수 있어요. 하지만 격지가 목표는 아니에요. 옆면과 윗면에서 격지를 다 떼어낸 뒤, 남아 있는 부분에서 가운데 부분만 조심스럽게 떼어내면 크고 날카로운 돌촉이 만들어지거든요. 이 돌촉을 고기 심줄로 나무 막대기 끝에 둘둘 감아 붙이면 훌륭한 창이 되죠. 우리는 이 도구로 사냥을 한답니다.

 

 

 


[르발루아 기법으로 만든 네안데르탈인 시대의 격지. 대단히 날카롭다.]

 

자, 그럼 본격적으로 사냥 이야기를 해 볼게요. 사람들은 우리 네안데르탈인이 사냥의 명수였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맨손으로 매머드라도 때려잡았다고 생각하는 거지요. 실상은 그렇지 않아요. 물론 우리도 사냥을 할 땐 아주 용감하고 적극적이에요. 하지만 일부러 어려운 사냥을 하지는 않았답니다. 제래드다이아몬드의 ‘제3의 침팬지’에는 호모 사피엔스 중 뉴질랜드 원주민의 사냥 모습이 묘사돼 있어요. 무장한 전사들이 밀림에서 호전적인 소리를 지르며 달려가 사냥한 것은 한 주먹거리밖에 안 돼 보이는 작은 새나 초식 들짐승이었다고 하죠. 저희도 마찬가지였어요. 일부러 먼 곳에서 큰 동물을 잡기보다는 가까운 곳에서 볼 수 있는 순한 동물을 사냥했지요. 먹을 만큼만 잡으면 되니까 그걸로도 충분했어요.
 

 

 

 

우리가 사는 동굴 유적에는 식량이 된 동물들의 뼈가 쌓여 있는데 순록과 사슴, 말, 그리고 소가 대부분이에요. 크긴 하지만 모두 순하디 순한 동물들이죠. 그나마 사냥으로 잡은 동물은 사슴과 순록이었어요. 소와 말은 머리뼈와 턱뼈만 볼 수 있는데, 다른 육식 동물이 먹고 남긴 것을 가져왔기 때문이에요. 이 말은 우리가 사냥도 했지만 하이에나처럼 죽은 동물의 시체도 먹었다는 뜻이랍니다.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마세요. 손쉽게 먹을 수 있는 시체가 있는데 가져오지 않을 이유가 없잖아요? 아무리 순한 초식동물이라도 사냥하기가 얼마나 힘들고 위험한데요.

우리의 사냥이 얼마나 힘들고 위험한지 들려 줄게요. 우리는 당신들 호모 사피엔스처럼 던지거나 쏘는 무기가 없었어요. 가장 발달한 무기는 바로 르발루아 기술로 만든 돌촉을 단 창이었지요. 창이라지만 길이가 별로 길지 않아서 우리는 덩치가 커다란 짐승들과 거의 육탄전을 벌여야 했답니다. 실제로 학자들이 화석으로 나온 우리 뼈를 연구해 보니 몸이 투우나 로데오(카우보이 말타기 경기)를 한 것처럼 큰 충격을 받은 상태였다고 해요. 그러니 사냥 한번 하려면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실제로 우리는 단백질의 70~80%를 사냥이 아닌 죽은 동물을 통해 얻었어요.

다행히 우리는 집단생활을 하고, 사냥도 함께했기 때문에 동물과 1대 1로 싸울 필요는 없었어요. 더구나 최근에는 성별로 역할 구분이 없었기 때문에 남자든 여자든 한꺼번에 사냥을 했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지요. 동물은 지나가다 우연히 만나는 것을 주로 사냥했어요. 하지만 가끔은 대규모 인원이 계획을 세워서 사냥을 하기도 했어요. 또 소떼를 우르르 몰아서 절벽에서 떨어뜨려 죽이기도 했죠. 우리가 호모 사피엔스보다 지능이 낮다고 하지만 이 정도 능력은 있었다는 걸 알아줬으면 해요.



빙하기 피해 동굴 속 집단생활

이렇게 발달된 도구를 쓰고 사냥을 했지만, 사람들은 우리의 지적 능력이 호모 사피엔스보다 한 수 아래라고 여기는 것 같아요. 분하지만 맞아요. 우리의 문화는 수십만 년 동안 정체됐고 그 동안 기술적인 발전이라고 할 만한 것이 전혀 없었어요. 호모 사피엔스가 20만 년이 채 안 되는 기간에 우주까지 간 것과 비교하면 정말 변화가 없었지요. 우리의 기술은 호모 사피엔스가 가지고 들어온 새로운 구석기 문화 를 일부 배우면서 조금 변했지만, 그건 거의 마지막 순간에야 일어난 일이지요.

이렇게 문화나 기술이 정체된 것을 언어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보는 학자들이 많아요. 언어는 지적 교류를 가능하게 하는 수단이에요. 그런데 언어가 없으면 교류는 확실히 줄어들고 문화나 기술의 획기적인 발전도 줄어들 수밖에 없어요. 그럼 우리는 말을 아예 하지 못했던 걸까요? 그건 아니에요. 고인류학자들은 아, 에, 이, 오, 우처럼 대략 5개 정도의 모음을 발음할 수 있었다고 보고 있어요. 화석을 살펴봐도 후두의 위치를 알 수 있는데, 호모 사피엔스와 비슷하게 후두의 위치가 낮았다고 해요. 후두가 낮으면 기도와 식도가 교차해 질식사의 위험이 있는 대신 발음이 다양해져요.

우리는 그저 짐승 같은 괴성을 지르는 수준보다는 훨씬 정교한 발음을 했어요. 하지만 발음을 몇 개 할 수 있다고 그게 곧 언어가 되는 것은 아니지요. 문법을 이루거나, 최소한 단어를 나열해서 의미를 전달할 수 있어야 하는데 언어학자와 고인류학자들은 우리에게 그런 능력이 없다고 추정하고 있어요.

 

 

 



 


현생인류보다 훨씬 적은 할머니

자, 이제 우리 집으로 함께 가요. 바로 저기 보이는 야트막한 동굴이 제가 사는 곳이랍니다. 우리 네안데르탈인은 주로 동굴에서 생활했어요. 그래서 ‘혈거인(穴居人)’이라는 말로도 불리고 있죠. 동굴에서 산 것은 일단 빙하기의 추위를 피하기 위해서였어요. 또 위험한 동물을 피할 수도 있었지요. 깜깜하니까 그 속에서 불도 피웠답니다. 캠프파이어하듯 그럴듯한 화덕을 만들고 피운 것은 아니고 그냥 불 피울 자리를 정해 모닥불을 피운 정도예요. 일부 학자들은 우리가 불 피우고 동굴 안에서 노래하고 춤을 췄다고도 주장하는데, 정확한 건 연구를 더 기다려 봐야 알겠지요.

사실은 우리가 동굴에서 생활한 것도 우리의 지능이 호모 사피엔스보다 낮다는 증거래요. 호모 사피엔스는 주의력이 뛰어나고 환경 적응력이 우리보다 높기 때문에 허허벌판에서 움막을 짓고 살 수 있다는 거죠. 하지만 우리는 그렇지 못했어요. 어떻게 매머드와 검치호랑이가 뛰어 노는 벌판에서 살 수 있는지 저는 도통 모르겠어요. 호모 사피엔스도 검치호랑이 못지 않게 무서운 것 같아요. 만약 나타나기라도 한다면 얼른 동굴로 가서 숨어야겠어요.





[❶ 동굴 속 네안데르탈인의 생활 모습을 묘사한 모형. 어른과 아이 25~30명이 집단생활을 했다.]


 





[❷ 실제 네안데르탈인이 거주했던 동굴. 네안데르탈인 게놈 프로젝트에 이용된 유골이 발굴된 크로아티아 빈디야 동굴이다. 약 5만~3만 8000년 전의 거주지다.]


 





[죽은 동물의 시체를 확인하는 네안데르탈인의 모형.]


 




우리는 동굴 하나에 25~30명 정도가 집단을 이뤄서 살았어요. 여기에는 남자와 여자 어른, 아이들이 모두 포함되 지요. 남녀가 일부일처를 이루지 않고 뒤섞여 살았다는 주장도 있지만, 한편 으로는 호모 사피엔스와 비슷하게 가족을 이뤘다는 연구 결과도 있어요. 올해 1월 ‘미국립과학원회보(PNAS)’에 실린 연구는 심지어 며느리가 남편 집으로 시집을 온 게 아닌가 추측하게 도 하는 유전자 분석 결과가 나오기도 했어요.

아, 저기 우리 할머니가 보이네요. 저를 키워주셨어요. 별로 놀라지 않네요? 호모 사피엔스에게는 흔한 일이라고요? 그렇군요. 우리 네안데르탈인에게는 꽤 드문 일이거든요. 가임 기간이 끝난 여성이 직접 자손을 낳지 못하게 되자 손자를 돌봐서 종족의 생존률을 높이는 데 도움이 준다는 인류학 가설이 있어요. 이것을 ‘할머니 가설’이라고 부르는데, 여성이 다른 동물의 암컷과 달리 폐경기 이후에도 오래 사는 이유를 설명해 준답니다. 그런데 이상희 미국 리버사이드 캘리포니아대 교수와 라파엘 카스파리 미시건대 교수가 2004년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우리 네안데르탈인은 수명이 짧아서 30세 이상의 인구(우리의 평균 수명이 35살이니 30세면 할머니예요!)가 이보다 젊은 층의 39%에 불과했다고 해요.

반면 3만~1만 8000년 전 살던 호모 사피엔스는 30세 이상 인구가 젊은 층보다 두 배 이상(208%) 됐지요. 할머니가 많아야 손자도 많이 키울 텐데 아쉬운 일이지요. 그나마 저는 할머니가 있으니 행운아인 셈이에요.



스페인 지브롤터 고람동굴, 마지막 네안데르탈인

자, 여기 모닥불 근처로 와 주세요. 식사라도 대접해 드리겠습니다.

…그런데 놀라는 눈치네요. 먹는 음식 때문에 그러세요? 아까 사냥 이야기를 했는데 고기가 없다고요? 물론 우리는 고기를 많이 먹습니다. 호모 에렉투스 때부터의 식성이지요. 내장의 길이가 상대적으로 짧아지고 몸통이 작아진 것이 바로 육식을 했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우리는 고기 말고 곡식과 채소도 많이 먹었다는 사실이 2010년 미국 스미소니언박물관 연구팀에 의해 밝혀졌답니다.

 


 

 



[영국 브리스톨대 연구팀이 작년 1월 스페인 남부 해안에서 발견한 네안데르탈인의 목걸이. 색이 칠해져 있어 이들이 치장을 했다는 증거로 제시된다. 하지만 대부분의 고인류학자들은 네안데르탈인은 치장을 하거나 그림을 그리지 못했다고 본다.]

 

우리는 채소와 곡식을 먹을 수 있었고, 실제로 먹었습니다. 특히 대추야자나 콩과 식물, 그리고 목초 씨앗을 좋아했지요. 때로는 불로 익혀먹기도 했어요. 저기 흩어져 있는 곡식 낱알을 잘 보면 불에 그을린 흔적이 보일 거예요. 비록 뻥튀기는 못 만들었지만 구워는 먹을 수 있었어요.

예전에는 저희가 대부분의 음식을 동물을 통해 섭취했다고 봤어요. 그래서 기후 변화나 호모 사피엔스와의 경쟁이 일어나면서 식량이 부족해졌고, 결국 멸종의 원인이 됐다는 추측이 있었어요. 하지만 식물을 조리해 먹었다는 이번 결과 때문에 이 추측도 약간 의문에 휩싸이게 됐답니다.

그럼 우리가 점점 줄어든 까닭은 무엇일까요. 5만 년 전까지 유럽 전역과 멀리 시베리아 남부에까지 퍼져서 잘 살던 우리는 3만 년 전부터 급격히 줄기 시작해 2만 6000년쯤에는 거의 멸종했어요. 이곳 이베리아 반도 끝 지브롤터에만 2만 4000년 정도까지 아주 일부가 살아남았지요. 바로 우리요….

전반적인 환경 변화가 우리의 멸종 원인이라는 게 학자들의 공통적인 주장입니다. 1만 8000년부터 시작되는 빙하기가 다가오고 있었어요. 그것도 전에 없이 강력한 추위를 동반한 빙하기였죠. 우리는 호모 사피엔스에 비해 추운 지역에서 살기 좋은 체형을 지니고 있어요. 하지만 아무리 추워도 항상 잘 적응한다는 뜻은 아니에요. 게다가 날씨가 추워지면서 주변 산림은 점차 목초지로, 황무지로 변해갔어요. 사냥할 동물도 사라져갔지요.

우리 신체가 추위에 강하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라는 연구가 있어요. 우리의 큰 코가 추운 공기를 데워서 추위를 이기게 해 준다는 기존 학설이 잘못됐다는 연구 결과가 지난 2월 ‘인간진화저널’에 발표되기도 했죠. 우리의 출산률이 낮다는 연구가 2007년에, 호모 사피엔스에 비해 하루 100~350kcal 에너지를 더 많이 소모한다는 연구 결과와 이 시기 우리의 숫자가 수천 명에 불과해 더 이상 인구가 늘 여력이 없었다는 연구 결과가 2009년 각각 나왔어요. 모두 우리가 호모 사피엔스에 비해 생존능력이 떨어진다는 내용뿐이었죠. 실제로 호모 사피엔스는 우리 네안데르탈인이 멸종한 지역에서도 잘만 살고 있었어요. 아프리카에서 태어났지만 가장 추운 지역까지 진출해 살다니 정말 신기하죠.

 

[오늘날 스텝 지형 (남아메리카 파타고니아). 마지막 네안데르탈인은 이런 풍경을 봤는지도 모른다.]
 

[네안데르탈인이 멸종해 가던 5만~1만 2000년 전 사이 유럽의 생태를 지도에 표시했다. 빨간색으로 표시한 곳이 네안데르탈인의 유적이 발견된 곳이다. 주로 스텝(온대 초원 지형)과 사바나, 습지 지역에 많고 툰드라가 일부 포함돼 있다. 이 시기에는 이미 산림이 많이 사라졌다.]




호모 사피엔스와의 만남

아! 저기 멀리 검은 피부를 한 사람들이 보이는군요! 말로만 듣던 호모 사피엔스가 드디어 이곳 이베리아 반도 끝까지 찾아왔어요. 바늘질을 해서 만든 정교하고 따뜻해 보이는 옷을 입고, 우리는 상상도 해 본 적 없는 무기인 활과 길고 긴 창을 둘러 매고 있습니다. 목에는 색칠한 조개 껍질을 달고 있군요. 우리 네안데르탈인은 색을 칠하거나 무늬를 만드는 일이 없습니다.

호모 사피엔스는 우리를 공격할까요? 저들은 사냥꾼 종족이고 우리도 사냥꾼이니까 그럴지도 몰라요…. 아니면 혹시 친구가 될 수 있을까요. 일부 네안데르탈인들은 호모 사피엔스의 발달한 후기 구석기 기술을 배웠잖아요. 어쩌면 우리가 서로 결혼하는 일도 가능할지도 모르겠어요.

이제 우리 사이가 아주 가까워졌습니다.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2만 4000년 전 이베리아 반도 서쪽 끝에 살던 우리가 바로 역사 속 마지막 네안데르탈인이라는 걸. 우리의 시대는 끝났고 호모 사피엔스의 시대가 열린다는 걸. 우리의 마지막 모습이 어땠을지 당신이 밝혀 주세요. 2만 4000년 뒤의 호모 사피엔스, 아시아 대륙의 가장 동쪽 끝에 사는 당신의 몸속에도 우리 네안데르탈인의 피가 아주 조금이지만 섞여 있을 가능성이 있으니까요.

 



▼관련기사를 계속 보시려면?

Intro. 안녕! 네안데르탈인
Part1. 당신은 호모 사피엔스 100%인가
Part2. 다시 쓰는 인류의 진화
Part3. 2만4000년 전, 네안데르탈인 최후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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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윤신영 기자 | 도움 박선주 충북대 교수, 배기동 한양대 교수, 이상희 캘리포니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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