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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이 군무를 추는 이유

'무리짓기'의 과학

거리에 모여 있는 비둘기 떼에 한발 다가가자 한꺼번에 푸드득 날아오른다. 약속이라도 한 듯 모두 같은 방향이다. 마치 전체가 한 마리의 거대한 새 같다. 낙동강 하구나 천수만에서 해질녘 일제히 날아오르는 수천 마리의 겨울 철새들. 노을을 뒤로한 채 근처 서식지까지 우아하면서도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복잡하면서도 섬세한 자연의 경이로움을 느끼게 한다. 그런데 이런 새의 ‘무리짓기’에도 과학적 비밀이 숨어 있다.
 






3무리를 지어 이동하는 모습은 새 말고도 물고기, 소, 메뚜기 등 여러 생물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다. 즉, 종에 관계 없이 비슷한 패턴을 보이는 생물이 많다는 뜻이다. 과학자 중 물리학자와 컴퓨터공학자들이 이러한 ‘패턴’에 주목했다. 복잡해 보이지만 의외로 간단한 몇 가지 규칙만 이해하면 새가 무리를 짓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1986년 미국의 컴퓨터공학자인 크레이그 레이놀즈는 동물의 집단행동을 컴퓨터로 재현하는 ‘바이오드(Biods)’라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이 프로그램은 무리짓기를 하는 가상의 컴퓨터 동물을 만든다. 레이놀즈는 여기에 세 가지 간단한 행동 규칙을 입력하면 자연에 존재하는 실제 새떼와 거의 비슷한 무리를 이룬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레이놀즈가 세운 세 가지 규칙은 모두 위치와 방향을 결정하는 방법에 대한 것이었다. 첫 번째는 ‘분리의 원칙’으로, 각 동물이 이웃과 충돌하거나 한 곳에 지나치게 모여 붐비는 현상을 피하도록 한다. 두 번째는 ‘정렬의 원칙’으로, 이웃한 동물이 향하는 방향의 가장 평균이 되는 방향으로 움직이도록 하는 규칙이다. 마지막은 ‘응집의 원칙’으로 근처에 있는 동물들의 위치를 분석한 뒤 그 평균 위치를 향해 움직이도록 한다(그림 참조).

무리짓기의 3원칙은 거리에 따라 각각 다르게 작용한다. 무리 중 하나의 개체 A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A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또다른 개체 B에는 ‘분리의 법칙’이 작동한다. 따라서 A와 B는 서로 밀어내게 된다. 하나의 바이오드가 근처에 있는 이웃과 충돌하거나 한 곳에 너무 복잡하게 모이는 일을 피하기 위해서다. 이는 실제 비둘기나 철새가 근처에 있는 다른 새와 너무 가깝지 않게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원리와 같다(그림 1).



거리가 좀더 떨어진 중간 영역에서는 두 번째 원칙인 정렬의 원칙이 작동한다. 이 원리는 주위에 있는 다른 개체들이 전체적으로 움직이는 방향과 같은 방향으로 A 개체가 움직이게 해 준다. 이는 비둘기들이 서로 눈치를 보며 다수의 비둘기가 날아가는 방향으로 함께 날아가는 원리를 표현한 것이다(그림 2).



마지막으로 가장 먼 곳에 있는 개체들 사이에는 근처에 있는 이웃과 서로 가까워지려는 인력이 작용한다. 이 성질은 멀리 떨어진 두 무리들이 서로 합쳐져 더 큰 무리를 이루도록 한다. 작은 무리가 커져서 철새나 메뚜기 떼와 같이 규모가 큰 무리가 태어나게 하는 원리다(그림 3).



3원칙은 대단히 단순하다. 하지만 실제로 이 원칙만을 이용해 프로그램을 작동시켜 보면 가상의 동물이 실제 새들과 거의 비슷한 방식으로 무리를 이루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새들도 이 3원칙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규칙에 따라 무리를 이루고 이동하는 셈이다. 다만 종에 따라 무리 규모가 약간씩 달라진다. 예를 들어 두루미보다는 거위가 좀 더 큰 무리를 이룬다. 이는 세 번째 원칙인 응집의 원칙에도 불구하고 무리의 크기는 종마다 다르다는 뜻이다. 새가 자신의 위치를 결정할 때 어느 정도 이웃한 새들을 고려하는지도 종 고유의 특징이다. 예를 들어 종달새는 거리와 관계없이 주변 6~7마리의 동료 위치만을 고려해 자신의 위치와 방향을 결정한다.


 

 

 



 

 

생물 종류에 따른 생리학적 특징도 미세한 영향을 미친다. 새는 몸 뒤쪽을 볼 수 없다. 위치와 방향을 결정할 때 뒤따라오고 있는 동료의 움직임은 고려하지 못한다. 하지만 물고기는 몸 측면을 통해 물의 흐름 등 유체역학 신호도 감지할 수 있다. 따라서 전후좌우와 상하 모든 방향의 정보를 수집해 거리를 유지할 수 있고, 이동할 때도 새보다 패턴이 정교하다.



메뚜기나 벌, 호수파리와 같은 곤충은 새나 물고기보다 훨씬 많은 수가 무리를 이룬다. 새나 물고기가 이룬 무리(swarm)와 구별하기 위해 ‘거대무리(superswarm)’라고 불리는 이들 곤충은 무리를 이룰 때 세로토닌 같은 화학물질의 도움을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과학자들은 이런 화학물질이 무리짓기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무리지능이 똑똑한 이유

바이오드 모형에서 무리를 이루는 개체의 행동은 단순하다. 각 개체는 상호 협력을 통해 복잡하지만 잘 조직화된 집단행동을 보여준다. 이렇게 각 개체가 상호작용을 통해 스스로 새로운 패턴을 만들어 내는 현상을 ‘자기조직화’라고 부른다. 이는 복잡계의 대표적인 특징이다.
 


 
자기조직화를 통해 만들어진 동물 무리는 하나의 인공생명체라고도 할 수 있다. 일사불란하게 탐색, 이동, 추적, 회피 등의 동작을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복잡계 과학에서는 이 현상을 ‘무리지능(swarm intelligence)’이라고 부른다. 개미나 벌이 보이는 사회적 행태도 넓은 의미의 무리지능이다.



무리지능은 무리의 생존율을 높이는 데 효율적인 생존 전략이다. 천적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쉬워지기 때문이다. 혼자 있을 때보다 여럿이 무리를 이룰 때 적에 대한 정보나 환경에 대한 신호를 훨씬 더 많이 얻을 수 있다. ‘영리한 무리’라는 뜻의 ‘스마트 스웜’을 쓴 피터 밀러 박사는 “동물이 큰 집단을 이루면 개체가 저지르는 사소한 실수는 평균화된다”며 “집단 전체가 나쁜 정보에 반응하는 일을 막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전체는 부분의 합보다 크다”는 복잡계의 대표적 특성으로도 설명할 수 있다.



무리짓기는 인간 사회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사람들은 혈연, 지연, 학연 등 스스로 집단에 속하려 하는 경향이 있다. 다른 사람을 대할 때도 어느 집단의 일원으로서 파악한다. 패션, 민족주의, 부의 불평등, 금융 시장의 등락 등 유행과 쏠림 현상이 일어나는 것도 무리짓기의 특성 때문이다. 부츠가 유행하면 너도나도 유행에 동참하고, 같은 민족끼리 뭉치려 하며, 주가가 올라갈 때 모두가 주식을 사서 비정상적인 주가 폭등을 부추긴다.



인간의 이런 경향을 과학적인 시각에서 분석하려는 시도가 최근 부상하고 있는 ‘사회물리’다. 사회물리는 사회가 갖는 복잡성을 동물의 무리짓기처럼 단순한 원칙을 통해 이해하고 해결하려 한다.



무리짓기의 조직화와 변화의 원리를 근원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21세기의 새로운 도전이다. 그 동안 무리짓기 연구는 생물학자, 물리학자, 수학자, 사회학자 등 각각의 영역에서 진행돼 왔다. 하지만 최근에는 복잡계이론, 네트워크과학, 신경과학, 행동경제학, 진화심리학 등 여러 학문들이 서로 융합해 도전하고 있다. 자연과 사회 속의 무리짓기의 원리를 더욱 잘 이해하면 지역갈등, 빈부격차 등 심각한 사회적 문제들을 해결할 새로운 방안이 마련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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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윤신영 기자│김승환 포스텍 물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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