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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3. 모노폴_극이 하나뿐인 자석

N극, S극은 쪼갤수 없는가?




“N극이나 S극으로만 이뤄진 자석은 없을까?”



이런 황당한 질문에 “반으로 쪼개면 되지” 하고 대수롭지 않게 대꾸하는 이가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석이 N극과 S극 두 극을 언제나 한 몸으로 갖고 있음을 알고 있다면, “그런 게 있을 수 있나?” 하고 반문할 것이다. 자석은쪼개고 또 쪼개 아무리 작게 해도 두 극을 나누지 못한다.



그런데 물리학자들이 지난 수십 년 동안 그런 자석을 찾아왔다고 한다. “뭐야, 교과서에서 배운 게 거짓이었다는 거야?” 하고 너무 흥분하진 말자. 교과서는 거짓을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단서가 붙는다. “아직까지는” 이란 말이.



극이 하나인 자석을 ‘모노폴(monopole)’이라고 부른다. 물리학자들은 아직까지 모노폴을 찾아내지 못했다. 하지만 최근 모노폴에 대한 연구들이 학계의 주목을 끌고 있다. 과학저널 ‘사이언스’는 2009년 10대 과학 성과 중 하나로 모노폴에 대한 연구를 선정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조만간 모노폴이 진짜 발견될 가능성이 있는 걸까? 그보다도 존재할지 안할지도 모르는 모노폴을 물리학자들은 왜 찾기 시작한 걸까? 만약 모노폴이 발견된다면 어떤 의미가 있을까?



모노폴의 존재이유



우선 모노폴이 처음 등장한 얘기부터 해보자. 영국의 천재 물리학자 폴 디랙은 물리학을 수식으로 표현하면서 아인슈타인만큼이나 미적 아름다움을 추구했다. 그는 자신의 학생들에게 물리수식의 의미에 대해 염려하지 말고 그 속의 아름다움을 봐야 한다는 말을 했다. 이런 디랙이 바로 모노폴의 창시자다.



디랙이 모노폴을 내놓게 된 배경도 미적 아름다움에 있었다. 전기와 자기는 서로 다른 현상이 아니라 얼굴만 다른 한 종류의 물리현상이다. 하지만 전기는 양을 띠는 전하(電荷)와 음을 띠는 전하가 독립적으로 행동한다. 반면 자기는 N극과 S극이 쌍으로 꽁꽁 묶여있다.


 



이런 비대칭성이 마음에 걸린 디랙은 1931년 모노폴을 등장시켰다. 그는 전하처럼 자유로운 N극과 S극이 따로 노는 자하(磁荷)에 대한 이론을 발표했다. 이 논문에 따르면 양자이론은 모노폴의 존재를 부인하지 않는다. 게다가 전기의 전하량이 항상 일정한 값의 정수배만 갖게 되는 이유를 설명하려면 모노폴이 필요하다.



디랙은 모노폴을 내놓기 전 1928년에 반입자의 존재를 예측했었다. 그리고 1932년 실제로 반입자인 양전자가 발견되면서 디랙은 물리학계의 유명인사가 됐다. 하지만 모노폴은 호기심 차원에 불과했다. 흥미롭긴 했지만 찾아 나설 용기가 있는 이들이 거의 없었다.



그러던 게 1960년대 분위기가 달라졌다. 우주가 대폭발로 시작됐다는 빅뱅이론이 널리 받아들여지면서다. 모노폴과 빅뱅이론은 무슨 연관이 있는 걸까. 빅뱅이론에 따르면 우주는 처음엔 하나의 힘에서 출발했다. 그러다 현재의 4가지 힘, 즉 중력, 전자기력, 강력, 약력으로 나눠졌다고 한다. 이제 물리학자들은 시간을 거슬러 이 4가지 힘을 통합하는 이론을 세워야 했다.



물리학자들이 4가지 힘을 통합하기 위해 여러 접근을 시도했다. 흥미롭게도 이 과정에서 거의 대부분의 이론들이 모노폴은 존재했었다고 얘기했다. 우주가 탄생하고 찰나와 같은 엄청 짧은 시간 동안에 막대한 양의 모노폴이 생겨났어야만 했다고 말이다. 그런데 이론들마다 모노폴이란 게 좀 달랐다. 어떤 이론은 모노폴이 양성자보다 1016배나 질량이 무겁다고 하는가 하면 어떤 이론은 양성자의 수천 배쯤 된다고 했다. 워낙 차이가 커서 진짜 발견된다면 모노폴은 어느 한 쪽 이론의 손을 들어줄 것이다.



해저바닥, 달 암석, 우주선(線) 찾아봐도 허사



모노폴의 존재가 구체적으로 예측되자 모노폴 추적자들이 생겨났다. 어떤 과학자는 아주 옛날 모노폴이 깊은 바다에 가라앉지 않았을까 싶어서 해저바닥을 뒤졌다. 어떤 이는 아폴로호가 가져온 달 암석에 기대를 걸었다. 그러나 모두 허사였다. 다음에는 하늘로 눈을 돌려 커다란 풍선을 하늘 높이 띄웠다. 우주로부터 들어오는 우주선(우주 인자)에 모노폴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이 역시 꽝이었다.



한번은 꽤 기대를 걸게 했던 일도 있었다. 1982년 2월 14일 발렌타인데이에 우주로부터 들어오는 모노폴을 감지하는 실험장치가 반응을 보인 것이었다. 연구자는 몹시 흥분한 상태로 물리학계에 ‘발렌타인데이 모노폴’을 발표했다. 하지만 흥분은 오래가지 못했다. 그 뒤 한 번도 이런 결과가 재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노폴 추적이 허사일지도 모른다는 주장도 등장했다. 1980년대 초 등장한 급팽창 이론에 따르면 빅뱅 직후 우주가 기하급수적으로 팽창한 시기가 있었다. 이 이론 역시 모노폴을 부정하진 않는다. 다만 급팽창 시기에 모노폴이 우리가 닿을 수 없는 우주 먼 곳으로 방출돼 버렸다고 한다. 그러니 해저면, 달 암석, 우주 상공을 뒤진다고 해도 모노폴이 나오지 않는 것이다.



자신의 생애에 모노폴을 발견하길 고대했던 디랙은 이렇게 매번 추적자들의 도전이 실패하자 크게 실망했다. 디랙은 모노폴이 자연에서 발견될 것 같지 않다고 결론을 지었다고 한다. 그는 1984년 숨을 거뒀다.



하지만 물리학자들은 모노폴 추적을 포기하지 않았다. 자연에서 발견되지 않을 것 같다면 아예 만들어내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기 시작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모노폴과 연관이 없어보이던 곳에서 돌파구가 등장했다. 그건 바로 ‘스핀 아이스’ 라고 불리는 특별한 고체에서였다.



스핀 아이스, 모노폴이 숨어있는 수상한 고체



과학자들은 1997년 스핀 아이스라는 이상한 종류의 고체를 인공적으로 만들었다. 당시 스핀 아이스는 모노폴과 연관이 없었다. 물리학자들은 이 물체가 갖는 특별한 자기 현상에 주목하고 있었다.



물체의 자기적 성질은 원자의 고유한 성질인 스핀이라는 것으로부터 생겨난다. 스핀이 뭔지를 엄밀하게 설명하는 건 너무 어렵고 복잡하다. 쉽게 말하면 원자의 전자가 팽이처럼 회전해 작은 자석처럼 자성을 띠는 현상을 스핀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보통 물질을 이루는 원자의 스핀은 방향이 제각각이다. 그러나 자성을 띠는 물질의 스핀은 한 방향을 향한다. 물질을 이루는 원자의 스핀이 한 방향으로 정렬돼 N극과 S극이 나타난 게 바로 자석이다.


 



그런데 스핀 아이스라는 고체는 좀 특별하다. 이 고체 안의 스핀은 한 줄로 나란히 서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 스핀 아이스인 티탄산염홀뮴(Ho2Ti2O7)을 예로 들어보자. 이 물질은 4면체 구조를 이루고 있는데 4면체의 꼭짓점에 홀뮴 이온이 위치한다. 물질을 이루는 원자가 가장 안정한 상태인 극저온에서는 네 원자의 스핀 가운데 둘은 4면체의 안쪽(중심)으로 향하고 둘은 바깥쪽을 향한다. 이 같은 스핀의 정렬은 얼음 결정에서 물 분자의 수소 원자 배치와 비슷하다. 이런 종류의 물질을 ‘스핀 아이스’라고 부르는 이유다.



2008년 1월 과학저널 ‘네이처’에는 영국과 독일, 미국의 공동연구팀이 발표한 흥미로운 논문이 실렸다. 연구팀은 극저온에 있는 스핀 아이스의 온도를 조금 올릴 경우 열에너지가 홀뮴 이온 하나의 스핀을 뒤집어놓는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 결과 그 홀뮴 이온을 꼭짓점에 공유하고 있는 두 사면체 가운데 하나는 3개의 N극과 1개의 S극이 안쪽을 향하고 다른 하나는 1개의 N극과 3개의 S극이 안쪽을 향하는 일이 벌어진다. 따라서 사면체를 한 단위로 보면 앞의 것은 N극, 뒤에 것은 S극을 띠게 된다.



여기에서 외부 자기장을 정교하게 걸어줬다. 그러자 스핀이 뒤집어지는 게 마치 도미노처럼 옆으로 전달되는 일이 벌어졌다. 열과 행을 지어 서 있는 사람들이 빨간 볼링공과 파란 볼링공을 각자 전후좌우 가운데 한 사람에게 임의로 전달하는 모습을 그리면 된다. 그 결과 처음에 바로 옆에 있던 N극과 S극이 서로 떨어져 따로 움직이게 됐다. 바로 모노폴의 모습이다.



지난해 10월 ‘사이언스’에는 프랑스와 독일 두 연구팀이 각각 스핀 아이스 속 모노폴을 직접 관측한 연구논문을 발표했다. 두 연구팀은 중성자를 이용해 스핀 아이스에서 나타나는 모노폴 현상을 확인했다. ‘사이언스’는 이 발견을 2009년 10대 과학성과로 선정했다. 디랙이 그렇게 기다리던 모노폴이 스핀 아이스에 숨어있었던 셈이다.



그러나 이 모노폴은 물리학자들이 그동안 찾아 헤매던 그 모노폴은 아니다. 서로 독립적으로 움직이지만 여전히 한 결정 안에 N극과 S극이 쌍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아직 모노폴 추적은 끝나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제는 어디에서 진짜 모노폴을 찾아야 할까. 물리학자들은 우주 어딘가에 있을지 짐작도 하기 어려운 모노폴을 찾는 대신 이를 직접 만들어보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바로 빅뱅을 재현해서 말이다.



세계 최대 가속기인 유럽입자물리연구소의 거대강입자가속기(LHC)는 빅뱅을 재현하기 위해 탄생했다. 이를 통해 물리학자들은 물리학의 여러 난제들이 해결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모노폴도 그 중 하나다. LHC에는 여러 입자 검출기가 있는데, 이 가운데 MoEDAL이라는 검출기가 모노폴을 추적하고 있다. 어쩌면 조만간 진짜 모노폴을 보았다는 과학자가 등장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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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 노벨상 예약한 수상한 물질 삼형제
Part1. 초고체_원자 따로 노는 '구름' 결정
Part2. 다강체_물질계의 엄친아
Part3. 모노폴_극이 하나뿐인 자석


 

2011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 박미용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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