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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한여름밤 혜성의 누드쇼

태양계 기원 파헤치는 딥임팩트

46억년전 현재의 태양계 자리에는 구름 같은 성운과 티끌 등 성간 물질들이 널려 있었다. 먼 미래에 지구 과학자들이 이곳을 ‘태양계 성운’이라고 부를 터였다. 태양계 성운은 우리 은하의 긴 나선팔 일부가 붕괴되면서 탄생했다.

태양계 성운이 계속 수축하고 회전이 빨라지면서 성운은 편평한 원반 같은 모습으로 변했다. 수축이 어느 정도 진행되자 원반의 중심부가 높은 밀도와 큰 질량을 갖게 됐고 온도가 높아져서 핵융합 반응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현재의 태양이 탄생한 것이다. 태양 주위를 떠돌던 가스와 먼지 입자들이 모여 태양을 도는 행성과 그 주위를 도는 위성이 됐다.

이것이 현재 태양계의 기원으로 가장 유력한 ‘태양계 성운 시나리오’다. 초대 국립천문대장이었던 민영기 박사는 “성운설의 기본 개념은 1755년 독일의 칸트가 처음 제안했으며 아직 완벽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이따금 지구를 찾는 혜성은 어디에서 왔을까. 많은 과학자들은 태양계가 만들어졌을 때 가장 외곽에 있던 얼음과 먼지 등이 뭉쳐 혜성이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 외곽에서 떠돌던 혜성은 간혹 태양의 인력에 이끌려 지구에 다가온다.

지구를 비롯해 행성들은 46억년 동안 햇빛과 태양풍을 받아 처음 모습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변했다. 그러나 멀리 떨어져 있는 혜성은 태양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아 태양계 탄생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한국천문연구원 문홍규 연구원은 “혜성은 태양계의 탄생 비화를 간직한 타임캡슐”이라고 말한다. 이것이 과학자들이 혜성의 속살을 보고 싶어하는 이유다.

태양계의 타임캡슐 열기

2005년 1월 12일(현지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케이프커내버럴 우주기지에서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로켓 하나가 발사됐다. 이 로켓에는 ‘딥임팩트’라는 이름의 우주선이 실려 있었다. 지구에서 1억3400만km 떨어져 있는 혜성 ‘템펠1’과 충돌시키기 위해 발사한 우주선이다. 6개월 뒤인 7월 4일 딥임팩트 호에서 떨어져 나온 충돌체는 템펠1 혜성과 정면 충돌하는데 성공했다.

구리로 만들어진 충돌체는 높이와 지름이 각각 1m, 무게가 370kg으로 큰북만 하다. 충돌체는 약 24시간 동안 시속 3만7000km의 속도로 날아가다 마침내 혜성에 충돌했다. 이번 충돌로 템펠1 혜성에는 지름 50~250m 크기의 축구장 만한 구멍이 생긴 것으로 분석된다.

충돌체가 혜성과 충돌하자 거대한 양의 얼음조각과 먼지, 혜성물질이 일제히 분출됐다. 특히 두 개의 분출기둥이 적어도 수천km나 치솟았다. 첫 번째 분출은 좁은 기둥 모양이었으며 몇 초 후 별 모양의 두번째 기둥이 분출했다.

NASA의 과학자들은 이를 놓고 혜성 표면과 내부가 다른 물질로 이뤄졌을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즉 템펠1 혜성의 내부는 딱딱하고 표면은 부드러운 물질로 돼 있는데 충돌체가 부드러운 표면에 먼저 충돌한 뒤 다시 내부에 부딪쳤기 때문에 두 개의 기둥이 생겼다는 것이다. 이번 충돌로 혜성에서 분출된 물질은 수만t이 넘었다.

한국천문연구원도 충돌 당시 혜성의 사진을 찍었다. 혜성 중심부는 충돌 직후 2배, 충돌 30분 후에는 5배나 더 밝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프로젝트에 참가한 미국 브라운대 피트 스컬츠 교수는 “시속 3만7000km로 물체가 충돌했으니 거대한 플래시가 우주에서 터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천문연 문홍규 연구원은 “충돌 직후 혜성에서 빠져나온 물질이 주변으로 흩어지면서 햇빛을 반사해 더 밝아졌으며 앞으로 더 밝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딥임팩트 프로젝트의 책임자인 메릴랜드대 마이클 아헌 교수는 “충돌체가 충돌했을 때 만들어진 불투명한 깃털 모양의 구름 모양과 환하게 밝아진 빛이 가장 놀라운 현상”이라며 “혜성 표면이 활석가루같이 고운 가루로 덮여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더러운 얼음덩어리로 치부되던 혜성이 겉은 눈이 부드럽게 쌓인 형태에 더 가까운 것이라는 해석이다.이번 충돌을 살펴본 과학자들은 템펠1 혜성은 물로 만들어진 얼음보다 밀도가 낮고 구멍이 매우 많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영종도만한 템펠1 혜성이 가루가 뭉친 형태로 우주를 가로지를 수 있을까. 스컬츠 교수는 “혜성은 진공으로 된 우주 공간을 떠다니기 때문에 외부에서 힘을 받지 않는 한 방해를 받지 않아 순조로운 여행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혜성은 태양계 형성 당시 원시 지구에 떨어지면서 많은 물을 지구에 뿌렸다. 과학자들은 이 과정에서 혜성이 생명체 탄생에 필요한 유기물도 운반했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실제로 혜성의 분출물에서 탄소와 질소 입자들이 검출됐다. 혜성 안에 풍부한 유기물이 존재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탐사선이 보내온 자료를 좀더 연구하면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과정에 몇 년의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혜성은 태양계 성운이 수축해 태양과 해성이 만들어질 때 가장 외곽에 있는 물질들이 뭉쳐 탄생했다. 과학자들은 혜성을 태양계의 타임캡슐이라고 부른다.


번개로 번개를 맞추다

과학자들은 이번 혜성 충돌을 날아가는 총알을 총을 쏴서 맞춘 격이라고 비유한다. 사실 이 말은 틀리다. 템펠1 혜성의 속도는 시속 10만km가 넘는다. 총알의 속도는 시속 3500km에 불과하다. 충돌체의 속도도 시속 3만7000km에 달하니 조금 과장하면 ‘번개 같은 총알’을 ‘번개를 쏘는 총’으로 맞춘 격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연세대 천문우주학과 박상영 교수는 “딥임팩트 호에서 분리된 충돌체에는 자동항법장치가 달려 있어 혜성의 속도와 위치에 맞춰 충돌체의 방향을 수시로 교정할 수 있다”며 “자동항법장치는 1초에 1mm까지 속도를 정교하게 조절할 수 있어 충돌 실험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자동항법장치는 태양과 행성, 밝게 빛나는 별들을 기준으로 방향과 속도를 바꾼다. 충돌체는 적 기지를 정교하게 공격하는 크루즈미사일인 셈이다.

아헌 교수는 “이번 탐사의 가장 큰 목적은 혜성의 내부 물질을 조사해 태양계 형성의 비밀을 밝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탐사선이 보내온 자료를 모두 분석한다고 해도 태양계 형성의 비밀을 모두 파헤치기는 어렵다.

미국 천문학자 얀 오르트는 1950년 혜성의 고향이 태양계 외곽, 즉 태양에서 5만AU(1AU는 태양과 지구의 거리, 1억5000만km) 떨어진 지역이라고 주장했다. 스페이스스쿨 정홍철 실장은 “1조개 이상의 혜성이 존재할 것으로 여겨지는 이곳은 거대한 공모양을 이루며 오르트의 구름으로 불린다”고 말했다.

최근 이곳이 고향인 혜성은 공전주기가 200년 이상인 장주기 혜성이며, 단주기 혜성은 해왕성 바깥 지역으로 30~1000AU 떨어져 있는 ‘카이퍼 띠’가 고향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곳에서 출발한 혜성이 태양에 3AU 정도로 가까워지면 태양열에 혜성 핵에 있는 물질이 증발하면서 지름이 100만km나 되는 거대한 구름인 코마와 1억km나 되는 긴 꼬리를 만든다. 이것이 우리가 보는 혜성이다.

태양계의 기원 물질을 간직한 채 태양을 방문하는 혜성은 장주기 혜성이다. 템펠1 혜성은 단주기 혜성이다. 장주기 혜성은 궤도 예측이 어려워 탐사하기가 쉽지 않다. 단주기 혜성은 궤도 예측은 쉽지만 태양에 가까이 있고 자주 접근하다 보니 태양계 초기 물질이 햇빛에 많이 날아간 상태다.

그렇다고 이번 실험이 단순한 미국의 독립기념일 이벤트만은 아니다. 인류는 그동안 수없이 혜성 탐사에 도전했다. 때론 성공했지만 실패한 경우도 많았다. 혜성을 감싼 구름 속 먼지입자들은 총알보다 빨라 혜성 탐사는 매우 위험했다. 단주기 혜성조차 태양에 접근할 때면 궤도가 조금씩 수시로 변하기 때문에 방향을 맞추기가 쉽지 않다.

1986년 옛 소련의 우주전 베가 1호와 2호가 핼리혜성의 핵으로 처음 접근했다. 이들은 혜성에 8889km까지 접근해 사진을 찍었지만 사진은 뿌옇기만 했다. 베가 2호는 먼지에 부딪쳐 작동이 중단됐다. 2002년에는 NASA의 혜성탐사선 콘투어가 혜성을 향해 가다 궤도를 수정하는 과정에서 폭발하기도 했다.

그러나 태양계의 기원을 알고 싶은 인류는 계속 혜성 탐사에 도전했다. 2001년에는 NASA 탐사선 딥스페이스 1호가 보렐리 혜성에 접근해 생생한 혜성의 모습을 찍었다. NASA의 스타더스트는 2004년 1월 빌트2 혜성에 230km까지 접근해 혜성에서 흘러나오는 물질을 채취하는데 성공했다. 이 탐사선은 2006년 1월 지구에 귀환할 예정이다.
 

혜성 물질을 채취하고 있는 스타더스트. 탐사선은 내년 1월 지구로 귀환해 인류에게 혜성에 대한 새로운 문을 열어줄 것이다.


혜성 착륙에 도전하는 로제타

혜성에 대한 도전은 유럽우주기구(ESA)가 2004년 3월 발사한 혜성 탐사선 로제타에서 정점을 이룬다. 로제타는 2014년 5월 혜성 67P/추류모프-게라시멘코에 접근해 착륙선을 내려보낼 계획이다. 지난해 화성에 로봇을 보내 생명체의 흔적을 조사했듯 로제타는 혜성의 표면에서 태양계의 기원을 찾을 것이다.

로제타 계획을 담당하고 있는 게르하르트 슈벰 박사는 “딥임팩트가 보내온 자료로 혜성 핵의 내부구조와 결합상태, 구성물질의 강도 등을 자세히 알게 될 것”이라며 로제타 착륙선에 이 자료를 적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로제타에서 분리될 착륙선 파일래는 지하 20cm까지 구멍을 뚫을 수 있다. 이 착륙선은 혜성에 착륙해 1년 동안 각종 광물을 수집하고 딥임팩트보다 한 단계 더 깊이 태양계의 비밀을 파헤친다. 로제타 프로젝트의 경비는 딥임팩트의 4배에 달한다.

언젠가 지구를 위협할지도 모를 혜성의 궤도를 바꾸는 것도 이번 실험으로 한 걸음 다가서게 됐다. NASA는 이번 충돌이 대형여객기에 모기 한 마리가 부딪힌 격이라 혜성의 궤도는 변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의미는 적지 않다.

경희대 천문우주학과 김상준 교수는 “아주 먼 거리에서 혜성에 충격을 주면 충격이 작아도 지구에 다가올 때 큰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며 이번 실험의 의의를 설명했다.

과거 지구에 떨어진 혜성과 소행성은 지구의 수많은 생물을 멸종으로 몰고 갔다. 혜성이 지구에 충돌하는 시나리오는 영화 ‘딥임팩트’에 잘 그려져 있다. 지름 1km인 혜성이 지구에 떨어지면 세계에 기상이변이 몰아친다.

인류는 딥임팩트를 통해 자신의 운명을 바꾸는 중요한 도전을 시작했다.
 

2014년 혜성에 착륙할 예정인 로제타의 모습을 상상한 그림. 로제타는 딥임팩트보다 훨씬 더 많은 정보를 인류에게 줄 것이다.


템펠1 혜성 |  1867년 천문학자 에른스트 빌헬름 템펠이 발견했다. 길이 14km, 폭 4km로 목성과 토성 사이를 지나며 5.5년을 주기로 공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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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08월 과학동아 정보

  • 김상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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