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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찰스 주커 교수의 쓴맛 수용체 발견

‘먹기 위해 사는 게 아니라 살기 위해 먹는다’는 말도 있지만 모든 사람이 그렇게 고상한 존재는 아니다. 얼마 전 제대한 가수 토니 안이 한 TV 프로그램에 나와 입대하기 전 수년 동안 항우울제를 복용했다고 고백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이때 그는 뭘 먹어도 맛있는 줄 몰랐고 그저 배를 채우기 위해 식사를 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군대에서 고된 훈련을 마치고 밥을 먹으며 “음식이 그렇게 맛있는 줄 몰랐다”고 말해 주위 사람들에게 ‘군대체질’이라는 말을 들었다. 놀랍게도 토니 안은 입대한 뒤 수개월 만에 약을 끊었고 지금은 우울증도완전히 사라졌다고 한다. 이처럼 미각이 살아 있다는 것은 우리가 제대로 살고 있음을 뜻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맛을 느끼는 걸까.



게놈 데이터에서 쓴맛 수용체 유전자 찾아



미각이 어떤 메커니즘으로 작동하는가에 대한 해답을 어느 정도 알게 된 건  불과 지난 10년 사이의 일이다. 2000년 쓴맛을 감지하는 수용체가 처음 발견된 게 그 출발점이다. 그 뒤 단맛, 감칠맛, 짠맛, 신맛에 대한 수용체가 잇달아 발견되면서 5가지 기본 맛에 대한 지도가 그려졌다. 이 발견을 이끈 과학자가 바로 찰스 주커미국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 교수다.







주커 교수는 곰팡이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1983년 이후 동물의 감각 메커니즘을 규명하는 연구로 관심을 옮겨 그 뒤 30년 가까이 이 분야에 헌신한 생명과학자다. 그는 먼저 초파리를 대상으로 시각에 대한 연구를 했는데, 수용체가 빛 알갱이(광자, photon)를 인식해 이를 신호로 변환하는 메커니즘을 규명했다.



1992년에는 관심을 물리적 감각(청각, 균형감각, 위치감각, 촉각)으로 옮겨 많은 발견을 했다. 특히 1999년에는 물리적 자극을 감지하는 분자인 이온통로의 유전자를 찾아냈다. 이 연구 결과는 청각을 매개하는 분자를 찾는 데도 실마리가 됐다.



1999년 주커 교수는 다음 주제로 미각 연구에 뛰어들었다. 당시 미각은 감각 가운데 가장 연구가 안 된 분야였다. 주커 교수는 미국 국립보건원(NIH)의 니콜라스 리바 박사팀과 공동연구를 통해 미각에 관한 놀라운 발견을 쏟아내게 된다.



미각은 다섯 가지 기본 맛을 지각하는 감각이다. 기본맛인 단맛, 감칠맛, 쓴맛, 짠맛, 신맛은 기능에 따라 세 그룹으로 나눌 수 있다. 먼저 단맛과 감칠맛으로 음식물이 갖고 있는 영양분에 대한 실마리를 주는 맛이다. 단맛은 당 분자의 구조를, 감칠맛은 글루탐산나트륨 같은 아미노산의 구조를 인식한다.



반면 쓴맛은 음식에 독이 들어 있다는 경고의 표시다. 사람들에게 사전 정보를 주지 않고 쓴 액체를 마시게 하면 얼굴을 찡그리고 뱉을 것이다. 보약이라고 해야  ‘몸에 좋다면야…’라고 생각하며 마실 것이다.



나머지 짠맛과 신맛은 생리활성을 조절하는 성분에 대한 맛으로 나트륨 이온(짠맛)과 수소 이온(신맛)을 감지한다. 몸에 나트륨 이온이 부족해지면 짠 음식을 찾게 되고 짠 게 더 맛있게 느껴진다.



주커 교수팀과 리바 박사팀은 1999년 혀의 미뢰(맛봉오리) 세포에서 발현되는 수용체 2가지를 발견해 각각 T1R1, T1R2라고 이름을 붙였다. 연구자들은 이 수용체가 미각 수용체라고 추정했지만 어떤 맛을 담당하는지는 몰랐다. 그런데 다른 연구팀에서 PROP라는 쓴맛이 나는 물질에 둔감한 사람이 5번 염색체의 특정 위치에 돌연변이가 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그런데 T1R1과 T1R2의 유전자는 이 위치에 있지 않았다. 따라서 연구자들은 이 위치에 혹시 이들과 비슷한 구조의 또 다른 유전자가 있지 않나 조사해 보기로 했다.



약 45만 염기 길이를 분석한 컴퓨터는 비슷한 유전자가 하나 있다는 결과를 내놓았다. 강력한 쓴맛 수용체 유전자 후보를 발견한 것이다. 연구자들은 이 수용체를 T2R1이라고 명명하고 이를 바탕으로 당시까지 밝혀진 게놈 정보에서 또 다른 쓴맛 수용체 유전자를 찾았다. 그 결과 19개의 비슷한 유전자가 무더기로 발견됐다.







쓴맛은 쓴맛일 뿐인 이유



연구자들은 무슨 근거로 쓴맛 수용체가 하나 이상일 거라고 추측했고 실제로 그 추측이 맞은 것일까. 영양분인 단맛이나 감칠맛은 포도당이나 글루탐산나트륨처럼 특정한 구조만을 인식하면 되지만 쓴맛은 다양한 구조를 인식해야 한다. 몸에 독이 되는 물질이 한두 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다양한 쓴맛을 느끼지 못하고 그저 ‘쓰다’고만 느끼는 걸까.



몸에 해로운 물질은 쓰다는 정보만 주면 충분하지(어차피 뱉어낼 것이므로) 물질마다 다른 식으로 쓰게 느낄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연구자들은 대뇌피질의 미각중추로 쓴맛의 정보를 전해주는 미뢰의 세포에서 여러 쓴맛 수용체가 동시에 발현될 것이라고 추측했다. 예를 들어 PROP라는 쓴맛 물질이 오면 세포 표면의 T2R1이 감지해 그 정보를 전달하고, 데나토늄이라는 쓴맛 물질에는 T2R4가 반응한다. 어떤 쓴맛 수용체가 반응하든지 세포는 입안에 쓴 물질이 들어 있다는 정보를 뇌로 보내면 임무 끝이다.



연구자들은 각 수용체 유전자가 발현될 때 만들어지는 전령RNA(mRNA)의 염기서열과 상보적인 DNA 단일가닥을 탐침으로 써서 위의 가설을 검증했다. 예를 들어 미뢰의 한 세포에 T2R1 유전자가 발현해 mRNA가 존재한다면 여기에 상보적인 DNA 가닥이 달라붙어 신호를 낸다. 이런 방법으로 조사한 결과 전체 미뢰 세포의 15% 정도에서 쓴맛 수용체가 발현했고, 예상대로 이런 세포에서는 여러 쓴맛 수용체 유전자가 동시에 발현했다.



연구자들은 이 발견을 생명과학 분야의 권위있는 저널인 ‘셀’에 두 편의 논문으로 나눠 실었다. 10쪽 분량의 첫 번째 논문은 새로운 미각 수용체 무리의 발견에 대한 내용이고, 이어지는 9쪽 분량의 논문은 이 수용체 무리가 쓴맛 수용체임을 입증하는 내용이다.



단맛과 감칠맛의 교묘한 지각 메커니즘



2001년 쓴맛에 이어 단맛 수용체가 밝혀졌다. 역시 주커 교수팀과 리바 박사팀의 공동연구 결과였다. 흥미롭게도 이들이 밝혀낸 단맛 수용체에는 1999년 찾은 미각 수용체 후보 둘 가운데 하나인 T1R2가 포함돼 있다. 그 실체를 아는데 이렇게 시간이 걸린 건 T1R2가 단독으로 작용하는게 아니라 T1R3(2001년 5개 연구팀에서 거의 동시에 발견)이라는 또 다른 수용체와 짝을 이뤄 단맛을 감지했기 때문이다.



2002년 공동연구팀은 감칠맛 수용체의 실체를 밝혔다. 단맛 수용체와 비슷한 방식으로 감칠맛을 감지하는데, 이번에는 T1R1과 T2R3가 짝을 이룬다. 결국 1999년에 발견한 두 수용체는 각각 단맛과 감칠맛 수용체의 일부였던 셈이다. 추가 연구결과 미뢰의 세포 가운데 약 30%에서 T1R3가 발현되고 그 중에서 일부는 T1R1이, 일부는 T1R2가 발현했다. 예상대로 한 세포에서 T1R1과 T1R2가 동시에 발현하지는 않았다. 단맛과 감칠맛 정보는 별도의 경로로 미각중추에 전달돼야 하기 때문이다.



짠맛의 경우 나트륨 이온이 통과할 수 있는 이온통로인 ENaC가 1984년 발견된 이래 많은 연구자들이 ENaC가 짠맛 수용체임을 입증하는 연구를 진행했다. 주커 교수팀과 리바 박사팀은 올해 3월 11일자 ‘네이처’에 발표한 논문에서 ENaC가 낮은 농도의 나트륨 이온, 즉 맛있다고 느껴지는 짠맛을 감지하는 데만 관여한다는 사실을 밝혔다. 높은 농도의 이온(나트륨뿐 아니라 칼슘 등 다른 이온도 포함)을 감지해 먹지 말라는 짠맛 신호를 보내는 수용체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신맛 수용체 역시 주커 교수팀과 리바 박사팀이 발견해 2006년 ‘네이처’에 발표했다. 연구자들은 신맛을 느끼는 데 관여하는 PKD2L1이라는 이온통로를 찾았다. 또 탄산음료를 마실 때 ‘탁 쏘는’ 느낌을 감지하는 수용체 Car4를 찾아 지난해 ‘사이언스’에 보고했다. Car4는 이산화탄소를 탄산이온과 수소이온으로 바꿔주는 효소로 세포막에 존재한다. 흥미롭게도 Car4와 PKD2L1는 같은 세포에 분포한다. 그러나 주커 박사팀이 찾은 PKD2L1가 진짜 신맛 수용체인가에 대해서는 아직 논란이 있다.



아무튼 지난 10여 년 동안 주커 교수는 오랜 친구인 리바 박사와 함께 미각의 신비를 밝히는 데 헌신해 왔다. 그는 “신경생물학 연구를 20여 년 수행한 지금에도, 나는 해부현미경으로 초파리의 눈을 처음 관찰했을 때 느꼈던 그런 흥분과 열정을 가져다 줄 만한 발견들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각, 청각, 미각을 거쳐 가며 주커 교수가 내놓은 놀라운 결과들은 이런 열정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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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강석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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