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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는 보통 알렉산더 그레이험 벨과 엘리셔 그레이가 거의 동시에 발명해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람들은 대개 1876년 2월 14일 같은 날에 그레이가 벨보다 조금 늦게 특허신청을 했고, 이렇게 간발의 차이로 그레이는 엄청난 기회를 놓쳐버렸다는 식으로 사건을 묘사한다. 그러나 내막을 조금 들추어 보면 이런 상식과는 상당히 다른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레이는 일찍부터 전신분야에서 전문적인 발명가로 두각을 나타냈다. 1874년경 그레이는 바이올린의 음을 전기적으로 바꾸어 전달시키는 ‘바이올린 수신기’를 만들어 여러 전신관계자들 앞에서 발표했다. 그레이는 이 장치가 음악전신, 다중전신, 음성전신과 같은 곳에 이용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전신관계자들은 음악과 음성을 전달할 수 있는 이 장치에 대해 흥미는 보였지만, 단지 신기한 과학 발명품, 다시 말해 재미있는 ‘장난감’ 정도로만 여기고 실제적인 응용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평가했다. 당시 웨스턴 유니언 회사를 비롯한 주요 전신 회사들은 하나의 선으로 여러가지 모르스 신호를 보낼 수 있는 다중 전신을 발명가들이 개발해줄 것을 원했다. 그리하여 전신분야의 전문발명가인 그레이는 이런 요구에 부응해 자신의 장치를 음성을 전달하는 전화가 아니라 다중 전신기로 활용하려고 노력하게 된다.

한편 벨은 음성기관의 위치와 작용을 나타내는 음성학적 기호를 체계화해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발성법 교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벨은 아버지가 확립한 발성법으로 농아에게 발성을 가르치는 활동을 한다. 벨은 비록 전신·전기 분야의 비전문가였지만 이런 관심을 지속시켜 음성을 전기적으로 전달하게 하는 전화를 여러 사람의 도움을 통해 개발하고, 특허까지 얻게 된다.

그레이는 벨과는 독립적으로 같은 날 특허를 냈다. 물론 그레이도 특허를 얻었고, 이때 그레이의 장치는 벨의 것보다 성능이 우수했다. 하지만 그레이는 자신이 낸 장치의 실용화 가능성을 크게 생각하지 않은 반면에, 벨은 이후 계속해서 그레이나 에디슨 같은 이의 기술을 흡수해 자신의 전화를 개량시켜 나간다.

한편 전화보다는 다중 전신에 관심을 갖던 전신회사들은 벨의 특허가 아니라 그레이의 특허를 사들이고 다중전신장치를 발전시켰다. 그러나 전신회사들은 뒤늦게야 전화가 전신을 대체할 잠재력이 있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전화사업의 권한은 벨의 회사로 넘어가고, 벨은 전화산업을 주도해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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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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