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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기업으로부터 ‘차세대 TV’를 디자인해 달라는 문의를 받았다. A 기업은 미래의 사용자가 TV에 거는 기대가 무엇인지 알고 싶어 했다. 회의를 진행하면서 몇 개의 가설을 도출했다. ‘미래의 사용자는 TV로 입체 영상을 시청할 것이다’, ‘멀티미디어 콘텐츠를 TV, 카메라, 휴대폰, 컴퓨터를 자유자재로 옮겨 다니며 쉽게 이용할 것이다’, ‘TV를 시청하는 동시에 인터넷 서비스도 이용할 것이다’였다.
프로젝트의 과정은 크게 네 단계로 나눠 진행하기로 했다. 사용자의 행동을 분석해서 요구를 찾는 단계, 사용자의 요구에 맞는 콘셉로 구체적인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디자인 하는 단계, 시제품을 만들어 사용성을 진단하고 부족한 부분을 수정하는 단계, 완제품을 경쟁 제품과 비교하면서 디자인의 품질을 평가하는 단계다. 사용자 인터페이스 디자인이란 사용자와 TV가 상호작용하는 방법으로 TV의 기능이나 서비스의 조작 방식, 화면 제시 방식 등을 말한다.
단계 1 무의식 행동에 숨어 있는 패턴을 찾아라향후 소비자가 원하는 TV 기능과 서비스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현재 사용자는 TV를 어떻게 이용하고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현장 방문 연구(field research)를 통해 사용자의 행태와 요구를 알아내기로 했다. 몇몇 가정을 방문해 평소에 TV를 시청하는 모습을 재현해달라고 하고 사용자의 행동 양상과 행태는 시청 환경을 관찰하고 기록했다. 특이한 행동이나 정황이 발견되면 즉시 사용자에게 이유를 물었다.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사용자들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멀티미디어 콘텐츠를 감상하기 위해 주로 이용하는 기기는 무엇인지, 인터넷의 주요 사용 목적과 TV를 통해서도 인터넷 서비스가 제공되기를 기대하는지, 3D 입체 영상을 시청한 경험이 있는지를 물었다. 수집된 자료는 목록으로 정리해 분류했다.
단순히 사용자의 행동을 관찰하고 질문을 해서 자료를 얻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신뢰성 높은 자료를 얻으려면 자료를 수집하는 방법과 결과를 해석하는 과정, 그리고 일반화의 범위를 정하는 일 모두가 일정한 기준과 근거로 이뤄져야 한다. 이를 위해 팀을 실험심리학이나 인지과학을 전공한 전문가들로 구성했다. 이들은 과학적인 방법으로 사용자의 마음과 행동의 원리를 파악하고 여기서 디자인의 아이디어나 통찰을 이끌어 낸다.
하지만 심리적인 경험을 어떻게 길이나 질량처럼 양적으로 측정할 수 있을까. 먼저 추상적 개념을 조작하거나 측정할 수 있도록 정의한다. 이를 ‘조작적 정의(operational definition)’라고 한다. 이를테면 ‘만족’의 사전적인 의미는 ‘마음에 모자람이 없이 흐뭇한 상태’다. 제품에 대해 만족한 상태를 측정하려면, 측정하려는 방법과 기준점을 다시 정의해야 한다.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사용자가 제품을 이용하는 한 시간 동안 미소를 짓는 횟수’를 만족의 기준으로 삼았다. 물론 모든 사용자가 만족감을 미소로 표현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사람이 주어진 상황에 만족할수록 미소로 긍정적인 정서 상태를 표현한다는 사실은 여러 심리학 연구에서 밝혀진 바 있다. 다만 사용자가 미소를 지었는가의 여부는 사람마다 판단 차이가 있을 수 있으므로 둘 이상의 관찰자가 함께 사용자를 관찰해 미소짓는 횟수의 평균을 구했다.
단계 2 디자인 콘셉트의 중심도 사용자 경험현장 방문 연구와 인터뷰 자료를 얻은 뒤에는 이를 기초로 제품의 콘셉트를 정했다. 그리고 자료를 구체화해서 사용자의 인터페이스 디자인을 만들어 갔다. 가장 먼저 한 일은 수집한 자료를 일종의 시나리오 형태로 만드는 일이었다. 이를 사용자 모형(user modelling)이라고 부른다. TV를 이용하는 수많은사람들의 행동 양상이나 요구는 제각각이므로 핵심적인 내용만 추려서 한두 쪽 분량의 문서로 만든다. 팀원들은 이 문서를 나눠 갖는다. 프로젝트는 이 문서에 설정된 방향을 틀로 잡아가기 때문이다. 또 문서는 여러 대안들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할 때 사용자 중심으로 의사결정을 내리도록 촉진하는 도구로 활용된다.
본격적으로 디자인의 콘셉트를 구상하는 단계에서는 기획자, 리서치 진행자, 디자이너,개발자 등 관련된 사람들이 모두 모였다. 각자가 자신의 분야에서 생각할 때 사용자에게 가장 필요한 기능과 서비스가 무엇일지 아이디어를 냈다. 의견을 평가하고 선택된 의견을좀 더 구체화했다. 가장 우수한 아이디어가 나올 때까지 이 과정을 반복했다. 결국 최종선택된 아이디어들을 종합해 제품 콘셉트를 수립하고 사용자 인터페이스 디자인을 만들어 갔다.
이번 콘셉트에는 자료 조사팀이 현장에서 찾아낸 아이디어가 선택됐다. 현장팀은 적지 않은 사용자들이 TV에 오류가 나면 전원을 껐다가 켠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사용자들은“TV를 다시 켜면 오류가 발생하기 이전 상황으로 돌아갈 것 같아서”라고 이유를 대답했다.자료 조사팀은 사용자가 조작 오류가 발생하거나 현재 위치를 몰라서 전원 버튼을 누르면 TV가 바로 꺼지기보다, 첫 화면으로 이동하는 인터페이스 디자인을 구상할 것을 제안했다.
단계 3 몇 번이고 반복되는 시제품 평가사용자 인터페이스 디자인이 완료되자 시제품을 개발했다. 시제품은 종이에 도식이나 그림을 그려서 간단하게 만들 수도 있고, 정교한 소프트웨어나 하드웨어로 만들 수도 있다. 사용성 평가는 열 명 내외의 전문가나 사용자가 시제품을 직접 이용해 보면서 불편한 점이나 개선이 필요한 부분을 확인하는 과정이다.
주로 이용되는 방법이 사용성 테스트(usability test)이다. 실제 제품 사용 환경과 비슷하게 만들어 놓고 사용자에게 제품을 이용해 보도록 하면서 제품 이용 과정에서 문제가 없는지, 시제품이 사용자의 기대나 요구와 얼마나 일치하는지를 알아본다.
이번 평가에서는 열 명 내외의 사용자를 선정해 제품을 사용하도록 부탁했다. 모든 과정을 비디오 영상으로 촬영하고 저장했다. 사용자에게서 공통적으로 관찰되는 행동을 기록하고 그 이유를 직접 질문해 확인했다. 그외 필요한 기능과 조작 방법은 무엇인지 질문하고 기술적으로 가능한지 확인했다. 관찰한 모든 자료를 종합해 차세대 3D TV의 콘셉트와기능적 특징, 그리고 새로운 조작 방식을 도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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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평가 방법은 실험이다. 실험은 사용성 테스트보다 더 통제된 환경에서 특정한 상황과 특정한 사용자 행동 간의 인과 관계를 밝히려고 할 때 주로 이용된다.
연구팀은 영화 ‘아바타’의 관람객들 중 일부가 영화를 보면서 어지러움과 두통을 느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화면에 표현된 사물들 간의 상대적인 깊이가 다소 과장되게 표현됐기 때문이었다. 영화는 생생한 입체감을 주기 위해 어떤 장면은 물체가 손을 뻗으면 잡힐 듯 가깝게 표현했지만 배경을 비롯한 나머지 물체는 뒤로 쑥 들어가게 만들었다. 하지만 사람마다 물체의 깊이를 지각하는 정도가 다르다. 또 과장된 입체영상을 계속해서 보면 눈의 피로도가 급격히 높아진다. 연구팀은 시청자의 안전을 위해 화면에 표현할 수 있는 영상의 깊이를 규정하려는 움직임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완벽하진 않지만 연구팀은 이 규정들을 현재 진행하고 있는 TV에 도입했다. 그리고 시각적 피로감을 감소시킬수 있는 일부 요인들을 자체 실험을 통해 밝혀냈다. 이 결과는 차세대 TV의 완제품을 만드는 단계에 적용됐다.
단계 4 제품 후 평가도 디자인의 영역거의 완제품 형태로 만든 차세대 TV를 글로벌 리서치 팀 및 해외 파트너와 함께 품질 평가를 실시했다. 경험 디자인에서 디자인 개발은
완제품을 만든다고 해서 끝나지 않는다. 제품을 사용할 때의 느낌과 경험도 디자인의 범주에 들어가기 때문에 사용자의 사후 평가도 매우 중요하다.
품질 평가단은 아시아, 유럽, 미주 사용자로 선정했다. 차세대 TV의 기능, 정보 디자인,사용자 인터페이스 측면에서 다른 경쟁 제품과 비교해 더 좋은 점은 무엇인지, 사용하기에 불편한 점은 없는지, 조작법은 쉬운지를 확인했다.
평가단은 기능과 서비스, 그리고 사용 인터페이스 전반에서 우리가 만든 TV가 경쟁 제품과 비교해 매우 뛰어난 것으로 평가했다. 사용자의 행태를 조사한다며 현장을 뛰어다니고, 디자인의 콘셉트를 정하기 위해 회의를 거듭하던 1년간의 고생이 순식간에 보상받는느낌이었다. 몸은 비록 힘들었지만 경험 디자인을 통해 사용자가 정말로 필요로 하는 TV를 만드는 데 도움을 준 것 같아 보람 있고 즐거운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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