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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통난이도 | 아무나 못하는 팩트체크

 

대한민국은 지리적으로 동아시아와 대양주(남태평양의 여러 섬)를 이동하는 철새들의 이동경로에 포함돼 있습니다. 대형 조류인 두루미와 큰고니, 큰기러기 등 겨울철새가 월동을 위해 매년 가을 우리나라를 방문합니다. 


문제는 철새가 선호하는 서식지의 조건과 항공기가 뜨고 지는 공항의 입지 조건이 일치한다는 겁니다. 바람이 많이 불고 시야가 확보된 지역에 모인 철새들이 비행기에 부딪히는 사고가 자주 발생합니다. 1년 내내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텃새도 곤경에 처한 건 마찬가지입니다. 전국에 고층건물이 빽빽하게 들어서면서 텃새가 건물과 충돌하는 사고가 늘고 있습니다. 


이를 걱정해서일까요. 8월 5일 과학동아 사이언스 보드(www.scienceboard.co.kr) 팩트체크 코너에는 다음과 같은 의뢰가 들어왔습니다. “고층 건물 외벽에 맹금류가 그려진 스티커를 붙이면 새들의 충돌을 막는 데 효과가 있을까요?”(꿈북이 님) 이번 호에선 조류의 충돌 사고와 그 대책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새는 생활사적인 측면에서 크게 철새와 텃새, 나그네새, 길잃은 새 등 네 가지 종류로 구분합니다. 


철새는 매년 반복적으로 우리나라를 찾아오는 새입니다. 도요물떼새처럼 호주에서 한반도로 날아와 여름을 보내고 시베리아까지 먼 거리를 이동하는 새가 있고, 백로처럼 여름철 북쪽에서 한반도로 내려와 번식한 다음, 동남아시아 지역으로 내려가 겨울을 나는 새도 있습니다. 


이와 달리 텃새는 한곳에 계속 머무르는 새입니다. 산새와 물새 등 서식지에 따라 구분합니다. 나그네새나 길잃은 새는 일반적인 상황에선 한국에 오지 않는 새를 말합니다. 새로운 서식지를 찾아 떠돌다 선구자적으로 한반도를 방문하거나 무리를 지어 이동하는 도중 태풍에 휩쓸려 진짜로 길을 잃은 새를 말합니다. 


9월 8일 세종국책연구단지에서 만난 이후승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 자원에너지평가실 부연구위원은 “그동안의 데이터와 수리생태학적인 예측 모델을 통해 추정해보면 한국을 방문하는 새는 1년에 최소 수천만 마리 이상”이라고 설명했습니다.

 

Q 충돌 사고가 가장 많은 새는 무엇인가요?
A “소형 산새류 충돌 사고가 전체의 68%”


조류와 인공구조물의 충돌 사고는 빈번하게 일어납니다. 해마다 약 1000만 마리의 새가 다양한 인공구조물과 충돌해 다치거나 목숨을 잃습니다. 구조되는 새는 전체의 약 0.01%뿐입니다.


이 부연구위원이 이끄는 연구팀은 이런 충돌 사고 현황을 조금 더 자세히 조사했습니다. 2014년부터 2017년까지 환경부가 운영하는 야생동물구조관리센터 11곳에서 전선이나 건물, 풍력발전기와 같은 재생에너지 관련 시설물 등 인공구조물과 조류가 충돌한 사고를 모았습니다. 이중에서 충돌 경위를 파악할 수 있는 총 8613건의 충돌 사고를 재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노랑턱멧새나 박새, 참새 등 몸무게가 300g 이하인 소형 산새류의 구조 빈도가 67.7%(약 5831건)로 가장 높았고, 1kg 이상 대형 조류의 구조 빈도는 12.2%(1050건)로 두 번째로 높았습니다. 


이 부연구위원은 “나뭇가지나 바위틈에 둥지를 트는 참새가 도심에서는 신호등 위에 둥지를 트는 경우가 많다”며 “비행에 서툰 참새 새끼는 물론 어미까지도 차량 등과 충돌하는 사고가 자주 발생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철새 중에서는 여름철새의 충돌 사고가 더 많습니다. 조사기간 내 4월부터 10월까지 보고된 여름철새의 충돌 사고는 매달 평균 300건이 넘었습니다. 5월에는 그 수가 600건으로 최대치를 기록했습니다. 겨울철새는 10월에서 이듬해 3월까지 매달 200건 이하를 유지했습니다.


이 부연구위원은 “번식을 위해 찾아와 새끼를 키우기 위해 무수한 비행을 하는 여름철새가 월동 안식처를 찾아오는 겨울철새보다 피해가 크다”고 설명했습니다. 조사 결과는 2019년 발행된 ‘인공구조물과의 조류충돌 현황과 충돌 저감 및 환경영향평가 강화방안 연구’ 보고서에 잘 정리돼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ISSN 2287-3414

 

 

Q 충돌 사고를 막을 방법이 없을까요?
A “적정 간격으로 외벽에 무늬 넣어야”


새들의 충돌 사고를 막기 위해 건물 외벽이나 방음벽에 맹금류 스티커를 붙여놓은 걸 본 적이 있을 겁니다. 농촌에서 밭이나 논으로 날아드는 새를 막기 위해 맹금류 연을 바람에 흩날리게 설치하는 것을 건물에 적용한 것인데요. 이는 영국과 미국, 일본 등 다른 나라에서도 권장하는 보편적인 충돌 사고 예방법입니다. 


문제는 이런 맹금류 스티커를 붙이는 적정 간격이나 크기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국내에 아직 없다는 점입니다. 이런 경우 오히려 새들에게 혼란을 줄 수 있습니다. 맹금류 스티커가 붙지 않은 공간은 날아서 지나갈 수 있는 공간으로 착각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이 부연구위원은 “건물 외벽을 스티커로 도배하지 않는 이상 그 효과는 미미할 것”이라며 “미관상 스티커를 두드러지게 붙일 수도 없는 실정”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부연구위원은 그보다는 점 모양의 스티커를 이른바 ‘5×10 패턴’으로 촘촘하게 붙이는 방법을 제안했습니다. 이는 날아가는 새의 모양에서 착안했습니다. 가장 작은 크기에 속하는 참새가 빠른 속도로 날개를 펼치고 날아갈 때 상하 폭이 약 5cm, 좌우 폭은 약 10cm 내외로 몸의 상하 폭은 응축되고 좌우 폭은 넓어집니다. 이런 이유로 새들은 상하 폭이 5cm, 좌우 폭이 10cm보다 좁은 공간은 통과하지 않는 습성이 있습니다.


이 부연구위원은 “5×10 패턴을 입혀 새가 자신이 지나갈 수 없는 곳임을 자각하게 만드는 것”이라며 “건물이 높아질수록 사람이 패턴을 인식할 확률도 낮기 때문에 미관상의 문제도 최소화 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한편 외벽이 유리로 된 건물은 명도나 반사율을 낮춘 유리 소재를 쓰면 하늘이 유리에 반사돼 새들이 충돌할 확률을 낮출 수 있습니다. 또 건물 최상층에 위치한 유리 벽면을 20~40도 기울이면 유리에 하늘 대신 땅이 비쳐 새의 충돌을 막을 수 있습니다. 

 

 

Q 공항 인근 항공기와 조류의 충돌을 막으려면?
A “반경 13km 이내 지역 관리해야”


공항 인근에서는 항공기와 조류의 충돌이 자주 발생합니다. 이 부연구위원팀이 2020년 작성한 ‘항공기-조류 충돌 위험성 관리 현황 및 제도 개선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19년까지 조류와 항공기의 충돌 사고는 총 776건이 발생했고, 이중 75.3%(584건)가 공항으로부터 600m에서 13km 떨어진 거리에서 발생했습니다. ISSN 2288-3414


국제적으로 공항 인근 반경 13km 이내는 ‘버드 스트라이크 존(bird strike zone)’으로 지정돼 양돈장이나 과수원처럼 조류를 유인하는 시설을 지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인천국제공항, 김포국제공항, 김해국제공항 등 우리나라의 대표 공항 세 곳은 조류충돌에 대한 고민이 덜했던 시기에 완공돼 이런 기준을 지키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현재 국토교통부의 행정규칙 ‘조류 및 야생동물 충돌위험감소에 관한 기준’에 따르면 공항 주변 공간관리 구역은 반경 약 8km 이내로 한정돼 있습니다. 


이런 기준을 정할 때 일부 건설업계 관계자들은 높이 날지 않는 소형 조류종은 고층건물이나 항공기와 충돌할 가능성이 없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이 부연구위원은 “사람이 걷다가도 필요할 땐 뛰는 것처럼 소형 조류종도 필요할 경우 충분히 높이 난다”며 “전체 조류의 관점에서 위험성을 평가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2020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 김진호 기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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