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달 이름을 밋밋하게 숫자로 부르지만, 영어 이름에는 나름대로 재미난 얘기가 숨어있다. 그 중에는 신의 이름에서 온 것도 있고,로마 권력자를 지칭하던 말이 중간에 끼어든 이름도 있다.이런 이름에서 서양 문화의 켜를 느껴보자.
지난 달, 요일 이름 이야기 첫머리에 이렇게 썼던 것을 기억하겠지요?
‘요일을 두고, 첫번째를 제1요일, 두번째를 제2요일, 세번째를 제3요일, 이렇게 부른다면 멋대가리가 도통 없겠지요?’
다행히도 우리는 제1요일, 제2요일, 이렇게 부르지 않고 음양오행에 맞춰, 월화수목금토일, 이렇게 부릅니다. 하지만 달 이름은 1월, 2월, 3월…, 멋대가리없이 이렇게 부르고 있군요. 1월(정월), 11월(동짓달), 12월(섣달)에만 뚜렷한 이름이 있을 뿐입니다.
‘정이월 다가고 삼월이라네 /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오면은 / 이 땅에도 봄이 돌아온다네…’
지금은 불리지 않지만 우리가 어렸을 때 부르던 동요입니다. 이런 동요가 불릴 당시에는 중고등학생들도 ‘정월’이라는 말을 썼어요. ‘동지섣달’은 ‘겨울’의 대명사로 쓰였고요.
마르스를 졸졸 따르는 아프로디테
우리는 1월, 2월, 3월… 이런 식으로 숫자로 부르지만 서양 사람들, 특히 라틴계통의 언어를 쓰는 나라 사람들은 우리와 다르지요. 영어권 사람들이 부르는 달 이름의 뿌리를 캐어보면 그네들이 살던 고대 문화의 켜가 잠깐 엿보입니다.
1월을 영어권에서는 ‘재뉴어리’(January)라고 하지요. 이것은 라틴어 ‘야누아리우스’(Januarius), 즉 ‘야누스(Janus)의 달’에서 온 말입니다. 야누스는 로마 신화에만 등장하는(그리스 신화에는 등장하지 않지요), 하늘의 문을 지키던 문지기 신입니다. 로마인들은 이 야누스가 성문, 가정집의 문까지도 지켜준다고 믿었답니다. 이 신은 앞에도 얼굴이 있고 뒤꼭지에도 얼굴이 있는 신입니다. 문이라고 하는 것이 그렇잖아요? 밖에서 안으로 들어갈 때 통과해야 하는 것, 안에서 밖으로 나갈 때 통과해야 하는 것이잖아요? 로마인들은 새로운 한해를 열어 베풀어주는 신이 야누스라고 믿었답니다. 그래서 1년의 관문과 같은 첫달에 그의 이름을 붙여준 것입니다. ‘야누스의 얼굴’이라는 말은 어떤 사물이 갖고 있는 서로 반대되는 두가지 성질(양면성)을 뜻합니다.
2월을 뜻하는 ‘페브루어리’(February)는 ‘페브루아리우스’(Februarius)라는 라틴어에서 온 말입니다. ‘정화의 달’이라는 뜻입니다. ‘정화하다’는 ‘씻는다’는 뜻이고요. 로마 시대에는 해마다 2월 15일이 되면 자신의 죄와 집안의 부정을 씻는 정화의 제사를 지냈다고 하는군요. 죄를 씻고 싶어도 ‘정화의 달’ 15일을 기다려야 했던 로마 사람들은 참 불편했겠어요. 그 로마 시대를 배경으로 생긴 종교가 바로 기독교입니다. 기독교인들은 번거롭게 정화의 달을 기다리지 않습니다. 주일에 교회에 나가 죄를 씻으면 되니 편리해진 거지요.
3월을 뜻하는 ‘마아치’(March)는 ‘마르스(Mars)의 달’을 뜻하는 라틴어 ‘마르티움’(Martium)에서 온 말입니다. 마르스는 전쟁의 신이지요. 그리스 이름은 ‘아레스’(Ares)입니다. 그리스인들은 이 신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리스에서 아레스 신의 대리석상을 찾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지요. 하지만 로마인들은 이 신을 꽤 좋아했던 모양입니다. 오늘날 남아 있는 마르스 상은 대부분 로마 시대에 만들어진 것들입니다.
4월을 뜻하는 ‘에이프릴’(April)은 ‘아프로디테의 달’을 뜻하는 라틴어 ‘아프릴리스’(Aprilis)에서 온 말이라는 주장도 있고 ‘열린다’는 뜻을 지닌 라틴어 ‘아프리레’(aprire)에서 온 말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4월은 메말랐던 풀과 나무들이 봄을 활짝 여는 철이니 뒤의 주장에도 일리가 있어 보입니다. 아프로디테는 사랑과 아름다움의 여신 아닌가요? 4월과 가장 어울리는 여신이지요. 게다가 아프로디테는 전쟁의 신 아레스(마르스)와의 간통 사건으로 한바탕 소란을 일으킨 적이 있는 여신입니다. 그래서 전쟁신의 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니던 ‘아프로디테’의 달을 ‘마르스의 달’ 꽁무니에 바짝 붙여놓았는지도 모르는 일이지요.
5월을 뜻하는 ‘메이’(May)는 ‘마이아(Maia)의 달’을 뜻하는 라틴어 ‘마이움’(Maium)에서 온 말입니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마이아’는 전령신 헤르메스의 어머니입니다. 마이아라는 그리스 말은 ‘어머니’, 혹은 ‘간호하는 이’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마이아의 달’, 할 때의 마이아는 그리스 여신이 아니고 고대 로마에서 믿어지던 봄의 여신입니다. 라틴어 마이아는 ‘키우는 이’라는 뜻입니다.
‘5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어린이 날 노래의 한 구절입니다. 마이아의 달은 키우는 것, 그리고 자라는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말입니다.
가정 수호여신이 질투의 화신으로
6월을 뜻하는 ‘준’(June)은 ‘유노(Juno)의 달’을 뜻하는 라틴어 ‘유니움’(Junium)에서 온 말입니다. 유노의 그리스 이름은 헤라(Hera)입니다. 으뜸 신 유피테르(Jupiter, 즉 제우스)의 아내인 유노는 가정과 신성한 결혼을 수호하는 여신입니다. 가정 파괴범을 절대로 그냥 두는 법이 없지요. 유노 여신이 가정과 결혼의 수호여신이 된 것은 굉장한 바람둥이였던 지아비 유피테르의 책임이 크지요. 유피테르는 여신이 됐든 인간 세상의 여성이 됐든 제 마음에만 들면 절대로 그냥 두지 않았던 신입니다. 하지만 유노가 으뜸 신인 유피테르를 벌 줄 수는 없었지요. 그래서 질투의 화신이 돼 유피테르의 애인이 되는 여신이나 인간 세상의 여성을 가정 파괴범으로 규정하고 혹독하게 복수했던 여신이 바로 유노입니다. 가정과 결혼의 달이자 유노의 달인 6월에 결혼하는 신부를 특별히 ‘준 브라이드’(June Bride), 즉 ‘6월의 신부’라고 돋워 불러 축복해주지요.
원래 7월을 뜻하던 ‘셉템버’(September)는 ‘일곱번째 달’을 뜻하는 라틴어 ‘셉템베르’(September)에서 온 말입니다. 아니라고요? 셉템버는 7월이 아니라 9월이라고요? 알고 있어요. 그러니까 끝까지 읽어보세요. 이게 원래는 일곱번째 달이라는 뜻으로 쓰였다니까요.
원래 8월을 뜻하던 ‘옥토버’(October)는 ‘여덟번째 달’을 뜻하는 라틴어 ‘옥토베르’에서 온 말입니다. 또 아니라고요? 옥토버는 8월이 아니라 10월이라고요? 이게 원래는 여덟번째 달로 쓰였어요.
원래 9월을 뜻하던 ‘노벰버’(November)는 ‘아홉번째 달’을 뜻하는 라틴어 ‘노벰브레’(Novembre)에서 온 말입니다. 9를 뜻하는 영어 나인(nine)은 라틴어 노벰(novem)에서 온 말이지요.
원래 10월을 뜻하던 ‘디셈버’(December)는 ‘열번째 달’을 뜻하는 라틴어 ‘데켐베르’에서 온 말입니다.
‘존엄하신 분’을 뜻하는 8월
원래 7, 8, 9, 10월을 뜻하던 셉템버, 옥토버, 노벰버, 디셈버가 두달씩 뒤로 밀리게 된데는 내력이 있습니다.
‘줄라이’(July)와 ‘오거스트’(August)가 껴들었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누구일까요?
7월을 뜻하는 줄라이는, 로마 시대 정치가 ‘율리우스 카에사르’(Julius Caesar)의 이름 ‘율리우스’에서 온 말입니다. 그는 고대의 달력을 고쳐 새로운 달력, 즉 ‘율리우스 달력’을 제정한 것으로 유명한 정치가이기도 합니다. 줄라이는, 정확하게 말하면 ‘율리우스가 태어난 달’이 됩니다.
8월을 뜻하는 오거스트는 로마 정치 지도자에게 붙이던, 황제를 제외하고는 최상급 존칭인 ‘아우구스투스’(Augustus), 즉 ‘존엄하신 분’에서 나온 말입니다. 처음으로 이 칭호를 얻은 이는 카에사르의 양아들 옥타비아누스입니다. 그가 ‘옥타비아누스’로 불릴 당시 로마에는 왕도 황제도 없었답니다.
로마는 오늘날의 공화국과 아주 비슷한 나라였지요. 그런데 이 양반이 카에사르의 뒤를 이어 막강한 실력자로 등장하자, 사람들은 왕이라고 부를 수도 없고 황제라고 부를 수도 없으니까‘존엄한 자’라고 부르다 나중에는 아주 황제로 옹립하게 되지요. 그러니까 그는 로마 제국의 첫 황제인 셈입니다. 이 막강한 두 정치 지도자가 껴드는 바람에 7, 8, 9, 10월의 이름이 엉뚱하게 뒤로 밀려난 것입니다. 언어는 문화의 켜를 안고 있습니다. 그 깊은 뜻을 알고 쓰면 더 좋을 텐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