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2일~24일 전남 영암에서 한국 최초로 열리는 포뮬러원(F1) 코리아 그랑프리가 석 달여 앞으로 다가왔다. 서울 용산역에 실제 F1 머신(경주용 차량)과 대회 홍보 부스가 설치된 것을 보니, 이제 정말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모터스포츠를 국내에서 볼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 자동차를 좋아하는 마니아들이야 올림픽과 월드컵과 함께 ‘세계 3대 스포츠’라 불리는 F1에 대한 관심이 많았을 테지만 일반인은 다소 생소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올해부터는 한국도 18번째 F1 개최국에 포함되면서 일반인의 관심은 더욱 높아질 전망이다.
F1은 엄격한 ‘규정(Formula)’ 아래서 펼치는 최고(One)의 카레이싱 경기를 뜻한다. 경기는 직선과 급커브가 섞인 전용 서킷(카레이싱 전용 도로)에서 펼쳐진다. 5시간이 넘는 장시간 레이스인 만큼 세계 최고 수준의 레이서들이 참가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팬들의 눈길을 끄는 것은 최첨단 기술과 재료로 중무장한 F1 머신이다.
F1 머신은 철저히 레이싱을 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 차들은 긴 레이스 내내 평균시속 300km 이상의 속도로 달린다. 코스의 대부분이 구불구불한 코너로 돼 있는데도 말이다. 경차(輕車) 수준의 무게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대형 승용차의 4배에 달하는 힘을 발산한다. 그래서 F1 경주용 차량을 ‘머신(machine)’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가격은 대당 100억 원이 넘는다. F1 대회의 우승을 차지한 머신은 항상 화제 속에서 당대 ‘최고의 차’라는 칭호를 받는다. 세계적인 자동차 회사들은 이름을 걸고 머신을 제작한다. F1 대회의 꽃은 사람이 아니라 자동차인 셈이다.
화려한 컬러와 독특한 디자인으로 개성을 뽐내지만 머신들 사이에도 공통점은 있다. 낮은 차체와 커다란 바퀴, 그리고 기능을 알 수 없는 여러 개의 날개들이다. 일반 차와 비교하면 더 뚜렷하다. 이처럼 드라마틱한 디자인이 사용되는 이유는 뭘까. 우승을 결정짓는 중요한 기술인 머신의 외형 디자인에 대해 알아보자.
전복사고가 나도 부서지지 않는 운전석
F1 머신은 기본 구조에서부터 일반 차와 확연한 차이가 드러난다. 레이서 한 사람만 탑승할 수 있는 운전석에는 별도의 문이 없다. 운전자는 접었다 폈다 할 수 있는 컨버터블 형태의 지붕을 통해 탑승한다. 차체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 꼭 필요하지 않은 부분은 과히 없애고 부피를 최소화했기 때문이다. 폭이 굵고 큰 바퀴 4개는 바깥으로 돌출돼 위압감을 준다. 바퀴의 지름은 거의 차체 높이와 비슷하다. 이는 공기의 저항을 줄이기 위해 차체의 높이를 낮췄기 때문이다. 지면에서 차 바닥까지의 높이도 낮다. 고속으로 달리는 머신은 차 바닥으로 들어오는 공기로 인해 차가 흔들리거나 순간적으로 뜨는 아찔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따라서 큰 사고를 막기 위해 가능한 한 차체를 바닥에 가깝게 유지한다.
머신의 재료는 충격을 잘 흡수하고 안정된 구조라고 알려진 벌집 모양을 이룬다. 간혹 F1 경기 중에 머신이 뒤집어지거나 서로 충돌해 산산조각이 나는 일이 있다. 하지만 레서가 탑승한 운전석은 멀쩡한 모습을 보곤 한다. 이는 차체의 단단한 구조 때문. 또 구조물 위에는 단단한 탄소섬유 합판을 약 3.5mm 두께로 씌워 내부를 한 번 더 보호한다. 탄소섬유는 무게가 가벼워 쏜살처럼 달리는 차량을 만드는 데 적합하다.
우승에 시스템이 미치는 영향은 무려 70%
일반적으로 자동차의 성능을 개선하는 방법은 세 가지다. 첫째는 엔진과 변속기 같은 주요 부품의 성능을 개선하는 방법, 둘째는 가벼운 재료를 써서 차량의 무게를 줄이는 방법이다. 그리고 마지막은 자동차 외형을 공기역학적으로 만들어 공기의 저항을 줄이는 방법이다. F1 머신의 경우는 대회 규정상 엔진 배기량이 제한돼 있기 때문이 첫 번째 방법으로 스피드를 높이는 것은 그다지 실효성이 없다. 또 차체는 대부분이 탄소섬유를 사용하고 있으므로 두 번째 방법도 변별력이 떨어진다. 따라서 가장 탄력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이 공기역학을 고려한 외형이다. 공기 저항을 줄여 속도를 높이고 차체에는 안정감을 부여한다.
공기역학적인 디자인이 들어간 부품 중 대표적인 하나가 날개다. 차체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 많은 부분을 생략하지만 유독 날개는 일반 차에는 없고 F1 머신에만 있다. 차량마다 약간씩 차이는 있지만 보통 4개의 날개를 부착한다. 날개는 위치와 모양에 따라 역할과 기능이 다르다. 앞바퀴의 전면에 붙은 ‘프론트 윙’과 바퀴 뒷면에 달려 있는 ‘리어 윙’은 차체를 바닥으로 누르는 ‘다운포스(downforce)’를 만든다. F1 머신은 고속으로 달리면서 발생하는 각종 공기의 흐름을 어떻게 제어하느냐에 따라 성적은 천차만별이다. 따라서 지면에서의 높이나 날개 형태는 각 팀마다 다양한 모양을 하고 있다. 프론트 윙과 리어 윙은 비행기의 날개를 거꾸로 달아놓은 것 같은 모양이다. 양력을 받아 공중에 뜨려는 비행기의 원리를 반대로 이용하는 셈이다. 또 머신 바닥에 붙은 ‘디퓨저’와 앞바퀴에 붙은 ‘배지 보드’는 차체에 공기 소용돌이가 생기지 않도록 들어오는 공기를 빠르게 후미로 보내는 역할을 한다.
일반적으로 F1의 우승을 결정하는 요소는 드라이버의 운전 테크닉이 30~40% 정도를 차지한다. 또 차량의 시스템이 60~70%를 차지한다. 최근에는 더욱 안전하고 흥미 있는 경기를 만들기 위해 ‘국제자동차경기연맹(FIA)’에서 F1 머신의 규정을 지속적으로 개정하고 있다. 올해에는 몇 가지 항목에서 변화가 있을 예정이다. 우선 논란이 많았던 디퓨저 부분은 더블 디퓨저를 합법화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앞으로는 다양한 팀에서 고유의 디자인으로 무장한 더블 디퓨저가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또 바퀴 주변의 공기 흐름을 조절하는 역할을 했던 휠 커버는 올해부터 금지됐다. 간혹 머신끼리 부딪힐 때 휠 커버가 튕겨나가면서 사고를 유발할 수 있다고 판단됐기 때문이다.
F1 머신의 외형은 앞으로도 계속 변할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초경량화 기술과 재료가 개발되고 있는 상황에서 컴퓨터를 이용한 공기역학적인 시뮬레이션이 보편화되면서 더욱 다양하고 안전하고 멋있는 머신이 탄생할 것으로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