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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 수상자 암 치료한 차가버섯

수십 년간 나무와 한몸으로 산다

전나무에 자생하는 소나무잔나비버섯. 겨울에 눈 쌓인 모습이 이채롭다.


▒ 겨울 산을 오르다 보면 낙엽이 지고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 있는 아름드리나무 군락이 나타난다. 여름 산행에서는 나뭇잎이 우거져 아무리 찾으려 해도 꼭꼭 숨어 있던 버섯들이 서너 길이 넘는 나무둥치나 가지 위에 바가지를 엎어 놓은 듯, 쪽박을 붙여 놓은 듯 말간 하늘 아래 나타난다. 우산처럼 생긴 보통 버섯과 달리 대가 없는 모습이 신기하다.


이들은 살아있는 나무에 마치 한 몸인 양 혹처럼 매달려 있다. 마치 죽은 듯 보이지만 사실 수십 년을 그 자리에 붙어 나무와 함께 살아온 다년생버섯이다. 나무와 여러 해를 살다 보니 나무처럼 딱딱해지기도 하고 나무에서 양분을 얻어 약용 성분을 만들기도 한다. 눈 덮인 산에서 꿋꿋이 겨울을 나는 다년생버섯을 만나보자.

“…이 병원에 오는 농민 환자 중에는 암을 보기가 힘들었어요. 이것은 웬일일까…그는 조사하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이런 것을 알게 됐죠. 이 부근에 사는 농민들은 찻값을 아끼기 위해 차 대신 ‘차가’라는 것을 끓여 마시고 있다는 걸….”

러시아의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이 1968년 발표한 소설 ‘암병동’의 일부다. 여기서 차가는 러시아 민간에서 암을 치료하는 비약(秘藥)으로 전해져온 차가버섯을 말한다. ‘암병동’은 솔제니친이 차가버섯으로 자신의 위암을 치료한 실화를 바탕으로 쓴 소설인데, 차가버섯은 이 작품을 통해 전세계에 알려진 뒤 본격적으로 연구되기 시작했다.
 

2004년 11월 오대산 을숙골의 한 자작나무에서 발견된 차가버섯. 원래 시베리아 같은 한대지방에 사는 버섯으로 국내에서 발견하기 힘들다.


차가버섯은 자작나무에 기생하는 다년생버섯이다. ‘암과 같은 버섯’이란 뜻의 이름을 가진 이 버섯이 암 치료에 쓰인다니 참 놀랍다. 나이 15년 이상, 가운데 두께 10cm 이상, 수분 함량 14% 이하로 60℃ 이하에서 건조된 1등급만 약으로 쓰고 나머지는 끓여 차로 마신다. 다른 버섯에 비해 면역기능을 활성화시키는 베타글루칸이 많다.

차가버섯 외에도 뽕나무상황버섯(진흙버섯류), 소나무잔나비버섯 같은 다년생버섯에 약용 성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소나무잔나비버섯은 현재 포스텍에서 약용 물질을 발견해 그 물질의 효능을 과학적으로 밝히고 있는 중이다. 다년생버섯에 왜 약용 성분이 많을까. 나무와 함께 오래 살다 보니 나무의 리그닌이나 셀룰로오스를 분해하면서 버섯 자체에 항암 작용을 하는 기능성 물질을 축적하기 때문이다.

눈 쌓인 깊은 산속에서 나무와 겨울을 나는 다년생버섯을 찾아다니다 보면 말굽을 닮은 말굽버섯, 나무줄기에 발라놓은 진흙 같은 진흙버섯, 수평으로 퍼져 원숭이가 앉아 놀기 좋아한다는 잔나비걸상버섯 등을 만날 수 있다. 이들은 나무처럼 단단하거나 가죽처럼 질겨 고대 중국, 마야, 잉카에서 불쏘시개로 쓰였다. 냄새도 안 나고 아침에 피워 놓으면 저녁까지도 꺼지지 않아 유용했다.

다년생버섯은 나이를 먹은 만큼 ‘나이테’를 갖고 있어, 어렵지 않게 버섯이 살아온 햇수를 헤아려볼 수 있다. 보통 나무줄기에 달려 있는 말굽 모양의 버섯을 줄기에 나란하게 자르면 안쪽 위에서 바깥쪽 아래까지 물결이 퍼져 나간 것 같은 나이테가 드러난다. 나이테 하나는 ‘관공층’(管孔層)이라 불리는데, 대개 한해에 한 층씩 생긴다. 관공(管孔)은 버섯의 아랫면에 보이는 미세한 구멍이다.

관공은 버섯의 포자(씨앗)가 만들어지는 곳이다. 혹독한 겨울 추위 속에서 휴면상태로 지내던 버섯은 따뜻한 봄이 오면 깨어나고, 여름에 관공을 만든 뒤 가을까지 바람이 불고 습한 시기를 골라 아래쪽으로 나 있는 구멍을 통해 포자를 날린다. 다년생버섯은 거대한 나무가 먹을 것을 제공하는 한 계속 살아간다. 보통 20~30년을 사는 그들의 생명력이 놀랍다.
 

겨울철에도 나무에 붙어 살아가는 벌집버섯의 아랫면을 해부현미경으로 찍은 사진. 벌집처럼 뚫린 구멍 하나하나를 관공이라 부르는데, 하나의 지름은 0.5mm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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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김양섭 소장
  • 사진

    석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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