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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증 줄이는 음식 속 도우미를 찾아라

생체방어 및 염증제어 연구실


과자를 낱개로 포장하면 위생적이지만 쓰레기가 더 나온다. 위생상 바람직하지만 어쩔 수 없는 필요악인 셈이다. 염증도 마찬가지다. 염증은 우리 몸이 침투한 병균과 열심히 싸우고 있다는 증거지만 통증도 함께 찾아온다. 게다가 적과 싸우던 백혈구는 가끔 ‘정신이 이상해지는지’ 우리 몸의 정상 세포를 위협하거나 적이 모두 사라졌는데도 공격하는 일이 있다. 암이나 류머티즘성 관절염, 당뇨병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처럼 우리 몸은 외부요인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병을 유발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우리 몸이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는 방어 행위를 면역이라고 한다. 여기에는 선천성 면역과 후천성 면역 두 가지가 있다. 백혈구 같은 대식세포가 외부의 적(항
원)을 먹어치우는 초기방어 행위를 선천성 면역, 외부의 적에 대항해 전문 요원(항체)이 나가서 싸우는 방식을 후천성 면역이라고 한다. 한동안 면역학자들은 다양한 항체의 매력에 이끌려 후천성 면역 연구에 집중했다. 그 덕분에 면역학 교재의 90%가 후천성 면역을 다루고 있다.

분위기를 뒤바꾼 계기는 염증에서 왔다. 염증이 선천성 면역 과정에서 나타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면역 기능을 강화하면서도 염증은 억제하는 백신을 만들려는 움직임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이런 분위기는 1990년대 후반 세균과 바이러스를 감지해서 염증을 유발하는 ‘톨유사수용체(toll-like receptor)’가 발견되면서 급물살을 탄다. 이 수용체는 세포 표면에 붙어 있다가 몸에 침입한 적을 인식하면 세포에게 염증 효소를 만들라는 신호를 보낸다. 만일 이 신호를 막거나 교란시키는 물질이 있다면 염증이 생기지 않는다. 면역학자들은 이 수용체를 조절하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계피와 브로콜리, 염증 만들라는 신호 차단해

광주과학기술원 생명과학과 이주영 교수도 선천성 면역을 연구하는 과학자 중 한 명이다. 특히 이 교수는 음식에서 염증을 조절하는 물질을 찾고 있다. 우리가 즐겨 먹는 음식의 재료로 사용되는 계피나 브로콜리 같은 재료가 연구 대상이다.

이 교수가 식재료를 연구하는 이유는 명료하다. 그가 처음 선천성 면역을 연구하기 시작한 2000년만 해도 오메가3, DHA, EPA가 몸에 좋다는 얘기는 많이 해도 어떻게 항암작용을 하는지, 왜 심혈관 예방에 좋은지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근거는 없었다고 한다. “염증이 있을 때 돼지고기를 먹지 말라고 하는데, 반대로 염증 조절 작용을 하는 물질도 있지 않을까 궁금해졌습니다.”

이 교수의 연구팀은 여러 식재료를 연구한 결과 2007년과 2009년 각각 계피와 브로콜리의 항염증, 항암작용을 알아냈다. 계피에 포함된 계피알데히드는 톨유사수용체가 염
증을 만들라는 신호를 방해해 염증이 생기는 것을 막는다. 브로콜리에 포함된 설포라판이라는 성분도 계피알데히드와 유사한 기능을 가졌다. 이들 연구는 그해에 각각 국제 학술지인 ‘생화학 약물학’과 ‘면역학저널’에 실렸다.

연구팀은 톨유사수용체자체에 대한 연구도 진행하고 있다. 지금까지 발견된 톨유사수용체의 종류는 13개에 이른다. 수용체마다 관련된 효소와 세포까지 더하면 꽤 많은 연구가 이뤄진 셈이다. 최근에는 톨유사수용체 외에도 바이러스가 몸에 침투하면 이를 탐지하는 새로운 종류의 면역 수용체들도 밝혀지고 있다. 역학, 부인과 질환을 비롯해 암 질환, 심혈관 질환, 자가 면역 같이 여러 질병 연구 분야에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 교수는 “초기에는 선천성 면역에 단순히 병균을 잡아먹는 작용만 있다고 생각했다”면서 “하지만 최근 연구 결과 수용체를 통해 면역 자체를 좀 더 정교하게 조절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불이 꺼지지 않는 연구실의 비밀

이 교수의 연구실에는 연구원들 말고도 또 다른 가족이 함께 산다. 바로 실험에 사용되는 쥐들이다. 연구원들은 가끔씩 쥐 사육장에 들려 쥐들이 밥은 잘 먹는지, 스트레스는 받지 않는지 일일이 확인한다. 쥐의 상태에 따라 결과도 다르게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실험은 보통 4~5일씩 걸린다. 실험 계획을 세워서 진행하고 결과를 도출하는 데까지 거의 일주일이 걸리는 셈이다. 이런 실험이 한 주에도 여러 개가 동시에 진행된다. 실험이 실패할 경우를 대비해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다. 연구원들은 실험 일정을 가급적 겹치지 않게 짜고, 실험 단계마다 실험 내용을 시간별로 꼼꼼하게 기록한다. 나중에 실험이 실패하더라도 이 실험노트는 원인을 파악하고 수정하는 데 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24시간 내내 실험실이 돌아간다니 너무 바쁜 건 아닐까. 이에 대해 이 교수는 “새로운 것을 찾아 알아가는 기쁨만 하겠냐”며 “생명과학은 몸도 바쁘고 항상 공부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지만 무언가 집중해서 원하는 결과를 찾아낼 때의 성취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사진을 찍기 위해 잠시 한자리에 모였던 연구원들도 사진을 찍자마자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 실험을 계속했다. 24시간 내내 꺼지지 않는 연구실 형광등보다 자신의 실험에 몰두하는 연구원들의 땀방울이 더 밝게 빛나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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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6월 과학동아 정보

  • 광주=김윤미 기자 l 사진 김인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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