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에서 공자는 ‘후생가외(後生可畏)’라는 말을 남겼다. ‘뒤에 난 사람은 두려워할 만하다’는 뜻으로 나이가 젊고 의지가 강한 후배가 학문을 계속 쌓고 덕을 닦으면, 그 진보가 선배를 능가하는 경지에 이를 것이라는 의미다.
인공지능(AI)의 목표는 사람처럼 생각하는 기계를 만드는 것이었다. 2016년 ‘알파고 쇼크’ 이후 인간은 인간의 능력을 넘어서는 기계의 탄생에 막연한 두려움을 갖게 됐다. 현재의 AI는 뇌라는 무기를 가진 인간이 후생가외 해야 할 정도로 막강한 존재일까.
뇌 닮은 인공신경망
알파고 이후 ‘딥러닝(Deep learning)’이라는 단어를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딥러닝은 인간의 뇌에 영감을 받아 만든 ‘인공신경망’을 활용하는 AI의 학습법이다. 사람의 뇌가 눈, 코, 귀 등 감각 기관으로부터 얻은 정보를 종합해 복잡한 정보를 처리하듯, 인공신경망은 ‘시냅스’라 불리는 연결선과 ‘뉴런’으로 불리는 판단영역으로 정보를 처리한다.
연산처리를 위한 장치(CPU)와 메모리가 분리된 기존 컴퓨터의 형태가 아니라, 메모리와 연산처리장치가 결합 된 구조다. 인간의 뇌와 흡사한 방식이라서 ‘뇌모방 컴퓨팅(BIC·Brain Inspired Computing)’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알파고 쇼크에서 입증됐듯이 인공신경망은 이미 일부분에서 사람의 판단을 능가하는 성과를 달성했다. 단점이 있다면 아직까지는 인공신경망 구동에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알파고는 이세돌 9단을 꺾기 위해 인간보다 수만 배 많은 에너지를 소모했다.
최근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세계 곳곳에서는 에너지 효율을 기존대비 10배 이상 개선한 인공신경망 하드웨어가 구축되고 있다. 구글의 ‘텐서프로세싱유닛(TPU)’, IBM의 ‘트루노스(TrueNorth)’, 인텔의 ‘너바나(Nervana)’ 등이 여기에 속한다. 현대식 컴퓨터(폰 노이만 방식)와 인간의 에너지 효율은 약 50만 배 차이난다. 인공신경망은 아직 인간의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빠른 속도로 효율을 개선해나가고 있다.
최근 중국에서는 이 분야의 주도권을 잡을 AI 기업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수 년 만에 기업가치가 25억 달러(약 2조 7872억 원)로 성장한 캠브리콘(Cambricon)은 초당 160조 번연산하는 AI칩을 생산하는 등 대표적인 AI 기업으로 떠올랐다. 모바일 네트워크용 AI칩을 개발 중인 디파이테크(Deephi Tech)는 삼성의 투자를 유치했고, 호라이즌 로보틱스는 자율주행과 로봇 기술에 특화된 기업이다.
자전거에 ‘티엔지’ 탑재, AI 자전거
필자가 속한 칭화대 뇌모방컴퓨터연구센터(CBICR) 연구진도 ‘티엔지’ 개발로 인공신경망 개발 경쟁에 동참했다. 현재 버전2까지 개발된 티엔지는 성능과 집적도 측면에서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고 있다.
2016년 10월에는 사람이 탑승하지 않은 자전거가 스스로 균형을 잡으며 트랙 위를 달리는 모습을 공개했다. 이는 티엔지를 접목해 개발한 AI 자전거로, 일반 자전거에 라이다,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등 센서를 부착했다.
센서가 주변 환경을 포착하면, 티엔지가 이들 정보를 추론해 의사를 결정한다. AI 자전거는 핸들을 좌우로 조정하며 스스로 균형을 잡고, 전방에 장애물이 보이면 속도를 줄여 이를 부드럽게 넘어간다. 전방에 보이는 사람의 속도에 맞춰 뒤에서 주행하는 일종의 ‘페이스메이커’ 역할도 가능하다.
칭화대는 링시(Lynxi)라는 스타트업을 설립해 티엔지의 사업화를 본격 추진하고 있다. 링시의 주력 사업은 데이터 센터에 티엔지를 접목하는 것으로, 이들의 연구가 성공적으로 수행되면 다량의 데이터를 관리하는 데이터센터의 에너지 소모문제를 근본적으로 개선할 수 있다.
AI 분야 연구자로서 필자는 AI가 아직은 사람들이 두려워할 수준에 이르지는 못했다고 평가한다. 의료, 법률 분야에서 시범적으로 AI를 적용하고 있지만, 아직은 신뢰성을 대폭 높여야 하는 과제가 남았기 때문이다.
AI가 등장하는 영화나 과학자의 논문 속에서 AI는 세상만사를 해결할 수 있는 만능해결사지만, 현실은 영화나 논문보다 훨씬 복잡하다. 때문에 AI가 내린 결과를 온전히 믿고 결정하게 될 때 까지는 시간이 꽤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알고리즘과 함께 인공신경망을 구동하기 위한 하드웨어의 변화가 동반될 때에야 AI는 비로소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큰 파동을 일으킬 것이다.
후생가외를 더 정확히 해석해보면, 외(畏)는 경외심을 의미한다. 단순히 두려운 것이 아니라 존경의 뜻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뒤에 오는 후배의 뛰어남을 두려워하고 시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두렵지만 존중하고, 경계해 스스로를 더 정진하는 것이 후생가외의 참 뜻이다. 어쩌면 인간과 인공지능의 관계를 가장 잘 표현하는 단어가 아닐까 생각한다.
정홍식
연세대 물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삼성전자에서 21년간 메모리반도체 분야 연구 개발에 참여했다. 상무로 퇴직한 뒤 연구자로서의 꿈을 펼치기 위해 2016년 9월 중국으로 향했다. 현재 중국 칭화대 전자공학과 교수 및 인공지능센터 연구원으로 인공지능용 소자 연구를 하고 있다.
hongsikjeong@tsinghua.edu.c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