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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명 미래 레이저를 찾아라

더 세게, 더 빠르게, 더 작게

레이저 탄생 50주년을 맞아 미래 레이저를 찾으라는 특명이 떨어졌다! 아직 산업용이나 의료용으로 상용화가 되지 않은 최신 기술의 레이저를 찾아 소개하는 것이 이번 미션의 핵심. 사실 레이저만큼 응용화와 제품화가 빠르고 종류가 많은 기술도 없지만, 다양한 분야에서 레이저 전문가들을 만나 조사한 결과, 최신 레이저 연구는 대략 세 분야로 나눌 수 있었다. 바로 출력과 스피드, 크기이다.

현재 레이저를 연구하는 물리학자들은 전 세계에서 순간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전력에 맞먹는 고출력 레이저와 100경 분의 1초의 속도로 빛을 뿜어내는 레이저, 머리카락보다 작은 레이저를 만들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대체 이런 레이저를 만들어 어디에 쓸까. 미래 레이저의 최전선에 있는 연구 현장을 들여다보자.


초기 우주의 비밀 밝혀줄 강력한 레이저

고출력 레이저라고 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곳이 광주과학기술원에 있는 고등광기술연구소(APRI)이다. 2008년 극초단 광양자빔 특수연구동을 세운 뒤, 초고출력에서부터 저출력까지 다양한 출력의 레이저광을 생산하며 응용 연구를 병행하고 있는 이곳은 국내 레이저 연구의 메카나 다름없다. 오랜만에 APRI의 이종민 소장을 만났는데, 어째서인지 이 소장이 싱글벙글 웃는다.

“2012년까지 두 개의 빔라인에서 각각 500TW(테라와트, 1TW=1012W)씩 합쳐서 1PW(페타와트, 1PW=1015W)의 고출력 레이저를 완성하는 게 당초 목표였는데, 지금 상황을 보니 한쪽에서만 1PW씩, 총 2PW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요. 목표를 초과 달성하는 셈이죠.”

2PW라면 단연 세계 최고 출력이다.


2005년에 세계에서 6번째로 100TW 고출력 레이저를 완성했는데, 이제는 세계 최고 출력이라니 연구원들의 엄청났을 노고가 쉽게 짐작이 갔다. 2PW, 즉 2000조W라는 숫자가 너무 커서 감이 안 잡힌다면 전 세계에서 순간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전력이 겨우(?) 10조W 미만이라는 사실을 참고하자. 레이저광을 더 집광시키면 그 이상의 세기를 만들 수도 있다.

이런 고출력 레이저는 어떻게 만들까. 이 소장은 “1980년대 중반에 미국 미시간대의 제라르 무루 교수가 개발한 펄스증폭기술(CPA, Chirped Pulse Amplification)이 고출력 레이저 탄생에 기여한 바가 크다”고 말했다. 펄스 레이저란 마치 맥박이 진동하듯 빠른 간격으로 빛으로 발사되는 고출력 레이저다.


레이저는 1960년 루비 레이저가 등장한 이후부터 꾸준히 출력이 증가했다. 하지만 1970년대에 접어들면서 좀처럼 출력이 늘지 않는 정체기를 맞는다. 고출력을 만들려면 단위 면적당 집속하는 파워를 높여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광학 장비들이 견디지 못하고 깨져버렸기 때문이다.

이때 광학 장비의 기술적인 한계를 일거에 극복한 아이디어가 CPA 방법이다. 무루 박사는 펄스를 최대출력을 낮춰(펄스폭을 늘려) 증폭시킨 다음, 발진시키기 직전에 증폭시킨 빛의 최대출력을 다시 높이는(펄스폭을 좁히는) 방법을 제안했다. CPA 덕분에 전 세계적으로 다시 고출력 레이저를 생산하려는 붐이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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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I는 이 고출력 레이저를 이용해 2006년 4월 국내 최초로 양성자빔을 발생시키고, 같은 해 7월에는 X선 레이저까지 성공했다. 양성자빔은 암세포를 효과적으로 파괴해 암 치료용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으며, X선 레이저는 기존의 X선과 달리 단일한 파장으로 이뤄져 있어 사진을 찍을 때 훨씬 더 선명한 영상을 얻을 수 있다.

APRI는 2008년 세계 최초로 레이저로 플라스마를 만들어 전자를 1GeV(기가전자볼트, 1GeV=109V)까지 가속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 결과는 2008년 ‘네이처 포토닉스’ 9월호에 실렸다. 현재는 전자를 1.5GeV까지 가속시킬 수 있다. 이는 포항가속기에서 만들어내는 것과 같은 수준이다.

이 같은 결과는 거대한 입자가속기가 앞으로는 고출력 레이저를 사용하는 탁상용 크기만 한 소형 가속기로 탈바꿈할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준다. 마이크로파를 사용하는 기존 선형 가속기는 낮은 전압으로 전자를 제대로 가속하기 위해 수km에 달하는 시설이 필요하지만, 레이저를 플라스마에 쏴서 발생시킨 초강력 전기장에서는 1mm 정도의 아주 짧은 거리에서도 전자를 충분히 가속할 수 있다. 또 고출력 레이저는 우주 탄생의 기원을 연구하는 실험에도 활용될 전망이다. 고출력 레이저광이 만든 강한 전기장 안에서 원자가 전자, 중성자, 양성자 등으로 분리되는 현상에서 초기 우주의 모습을 유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레이저의 출력을 1018W/cm2까지 높이면 플라스마 안에서 전자의 움직임이 빛의 속도에 가까울 정도로 빨라지고, 1023W/cm2가 되면 레이저가 만든 전자기장에 의해 전자는 물론 양성자도 빛의 속도에 가깝게 가속되며, 1027W/cm2가 되면 아무것도 없는 상태, 즉 진공에서 갑자기 양전자와 전자가 쌍으로 나타날 것으로 보고 있다. 물리학자들은 이때가 우주 초기와 비슷하지 않을까 추측하고 있다. 현재의 기술은 1022W/cm2 정도의 레이저 세기를 구현하는 수준이다. 유럽에서는 현재의 기술 수준을 넘어 1023W/cm2 이상의 세기를 가지는 전자기장을 구현하기 위해 2015년까지 레이저의 출력을 10PW로 높이고 이후에는 엑사와트(EW, 1EW=1018W)까지 끌어올려 우주 초기 연구를 진행하겠다는 ‘ELI(Extreme Light Infrastructure)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



미시세계 파헤치는 초스피드 레이저

현재 APRI에서 만드는 고출력 레이저는 펄스 레이저다. 펄스가 반짝하는 시간, 즉 펄스폭이 30fs(펨토초, 1fs=10-15초)에 불과하다. 국내 대학 연구실이나 연구단에서도 자체 제작한 테라와트 이상의 레이저로 수십 펨토초급 펄스 레이저를 만들고 있다. 하지만 원자를 연구하는 물리학자들에게는 이마저도 느리다. 원자 내에서 전자는 아토초(as, 1as=10-18s)의 단위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수소 원자에서 전자가 핵 주위를 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은 150as. 따라서 펨토초 펄스 레이저로는 이 현상을 볼 수 없다.

분광학자들이 이처럼 빠른 펄스 레이저를 개발하려는 이유는 펄스 레이저가 연속적으로 사진을 찍는 카메라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매우 빠르게 움직이는 자동차를 카메라로 찍는다면 셔터 스피드를 짧게 하고 조리개를 활짝 열어 연속촬영하면 된다. 하지만 셔터가 열리고 닫히는 시간보다 더 빨리 자동차가 움직인다면? 셔터는 열어두고 짧고 빠른 빛을 연속적으로 보내 자동차가 움직이는 순간을 포착해야 한다. 이 짧고 빠른 연속적인 빛이 극초단 펄스 레이저에 해당한다. 펄스 레이저가 물체에 부딪힌 뒤 튀어나오는 신호를 이용해 순간을 포착하는 것이 관측 원리다.

레이저의 펄스를 극초단으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은 뭘까. 마침 APRI에서 안식년을 보내고 있는 국내 극초단 펄스 레이저 전문가인 KAIST 물리학과 남창희 교수를 만났다. 그가 이끌고 있는 ‘결맞는 X선 연구단’은 펨토초 고출력 적외선 영역에서 3.7fs라는 가장 짧은 펄스 기록을 가지고 있다. 남 교수는 “펄스폭을 줄이는 가장 효과적인 방식은 고차조화파 레이저광을 활용하는 방식”라고 손꼽았다. 이는 고출력 펨토초 레이저 펄스를 아르곤, 네온, 헬륨과 같은 기체 원자에 쏘면 레이저의 강한 전기장 때문에 전자가 원자에서 이온화되면서 빛이 나오는 현상을 이용한다.

한 개의 펄스마다 전기장의 방향이 여러 번 바뀌므로 이에 맞게 전자도 원자에서 이온화되고 재결합하는 과정이 반복된다. 이때 방출되는 빛, 즉 고차조화파 레이저광은 원래의 펄스 레이저광보다 주파수가 높고 펄스폭도 훨씬 짧다. 남 교수는 “기체에 쪼여주는 펄스 레이저광이 고출력일수록, 펄스폭이 더 짧을수록, 더 짧은 펄스폭의 레이저가 만들어진다”고 설명했다.

남 교수는 2007년 200as의 X선 펄스 레이저를 만든 데 이어 지난해에는 60as 레이저까지 만드는 데 성공했다. 펄스폭이 아토초보다 더 빨라지면? 젭토초(zs, 1zs=10-21s), 욥토초(ys, 1ys=10-24s)가 된다. 욥토는 원자의 길이와 중량을 표시하는 데 쓰이는 단위. 욥토초 펄스 레이저가 개발되면 원자핵 크기만 한 구조를 조사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단 펄스폭이 짧아질수록 펄스당 에너지가 급격히 작아지므로 출력을 높일 돌파구가 마련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광컴퓨터 구현하는 초미니 레이저

크기가 큰 레이저라고 효율도 높을까. 물론 그렇지 않다. 일반적으로 공진기 안에서 빛을 증폭시키려면 또 다른 레이저광으로 기체나 고체 원자를 들뜨게 해야 한다. 레이저가 레이저를 만드는 셈이다. 레이저광을 만드는 에너지 효율은 휘발유로 자동차를 굴릴 때 효율보다 높다고 하지만 그래도 중간 과정에서 손실되는 양을 무시할 수는 없는 수준이다.그래서 최근에는 효율 높은 소형 레이저를 개발하려는 움직임이 눈에 띈다.

크기는 μm(마이크로미터, 1μm=10-6m) 단위 수준. 목표는 전류로 증폭되는 레이저를 만드는 것이다. 작게 만들면 소형 가전제품에 들어갈 수 있고 더 작으면 전자회로가 아닌 광자를 쓰는 광컴퓨터의 중요 광원으로 활용될 수 있다. 현재 가장 작은 레이저는 지름 300μm의 다이오드 레이저인데, 고정밀 전자회로에 신호를 전달하는 광원으로 쓰기에는 너무 크다. 이 때문에 새로운 시각에서 광원을 만들려는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서강대 물리학과 김칠민 교수도 μm 크기의 초소형 레이저를 제작하려는 연구자 중 하나다. 김 교수는 여러 방향으로 방출되는 빛을 어떻게 하면 가지런히 한 방향으로 모을지 연구하고 있다. 원형, 스타디움(일그러진 타원형), 나선형, 삼각형 등 다양한 모양에서 레이저 발진 모드를 살핀 결과, 모서리를 둥글게 만든 삼각형 공진기에서 방향성이 좋아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마이크로 디스크 레이저는 빛을 증폭시키는 공명기로 작용해 광원으로 사용할 수 있다. 현재 개발된 레이저 크기는 10μm 수준인데, 앞으로 3~5μm 크기로 줄일 계획이다.

고려대 물리학과 박홍규 교수는 광결정과 나노선을 사용해 레이저를 만든다. 나노선은 머리카락을 1만 분의 1로 쪼갠 수준인 수nm(나노미터, 1nm=10-9m) 굵기의 가느다란 전선인데, 반도체 물질로 이뤄져 있어 전류를 흘리면 빛을 낸다. 빛을 이동시키는 전선이 곧 광원이 되는 셈이다. 또 광결정은 특정 빛을 100% 반사하는 성질이 있어 내부에 반사된 빛을 가두고 증폭시킬 수 있다. 이 공간에 구멍을 뚫고 길을 내면 광집적회로가
되고, 이 빛을 한쪽으로 유도하면 레이저가 된다. 박 교수는 100nm~200nm 크기의 미세한 기둥을 세운 광결정에 빛을 발생시키고 증폭시키는 실험에 성공해 1μm의 ‘초미니 레이저’를 세계 최초로 만들었다.


그런데 최근 공명기의 크기가 레이저광의 파장보다 작아질 수 없다는 고전적 진리(?)가 깨졌다. 스위스 연방공과대 연구팀이 길이가 30μm, 높이가 8μm인 마이크로 크기의 레이저(공명기)에서 파장이 200μm인 빛을 만든 것. 올해 ‘사이언스’ 3월호에 발표된 이 연구는 공명기 대신에 인덕터와 2개의 축전지로 이뤄진 전기적 공진기 회로를 만들어 빛이 이 안에서 전기적으로 펌핑되도록 했다. 이는 공진기의 크기가 더 이상 빛의 파장을 제한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또 얼마든지 원하는 크기만큼 레이저 크기를 줄일 수 있다.

셀 수도 없이 많은 분야에서 다양한 종류의 레이저가 연구되고 만들어지고 있는 요즘, 레이저를 연구하는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발전의 정도를 가늠하는 기준이 과거엔 전자였다면 이제는 광학, 그중에서도 레이저가 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더 빠르고 간편한 소형 제품이 탄생하기 위해서는 전자보다는 빛이 움직이는 시스템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또 가장 센, 가장 빠른, 가장 작은 레이저처럼 레이저 자체를 연구하는 광학 분야가 발전해야 결국 생물학이나 화학 같은, 레이저의 기술에 힘입어 발전하는 과학도 함께 성장할 수 있을 거라고 조언했다. 지금처럼 앞으로도 레이저의 이용률이 높고 활용되는 속도가 빠르다면 레이저가 만들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KAIST 남창희 교수가 한 말이 답이 될지도 모르겠다.

“레이저는 10년 전, 5년 전의 모습을 현재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여전히 지금도 빠르게 발전하고 있습니다. 항상 레이저는 우리의 상상을 훨씬 뛰어넘으며 발전해왔죠. 우리의 상상력이 발휘되는 한 레이저는 계속 발전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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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5월 과학동아 정보

  • 김윤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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