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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감별사가 손 휘저으며 냄새 맡는 이유

상식을 뛰어넘는 오감의 세계

혀의 온도가 변하면 느끼는 맛이 변하고,냄새에서 벗어나야 냄새를 맡을 수 있다?말도 안되는 것 같은 이런 얘기들이 과학자들에 의해 증명되고 있다.최근 발표된 연구결과를 중심으로 인간의 상식을 뛰어넘는 오감의 신비를 파헤쳐 보자.


눈동자의 움직임에 따라 청각신호가 변하고 혀의 온도를 낮추면 단맛이 신맛으로 변한다. 최근 인간의 오감(五感)에 대한 상식을 뒤집는 새로운 연구결과들이 발표되고 있다. 이 연구들은 왜 향수 감별사들이 손을 휘저어 냄새를 맡는지, 스피커는 딴 곳에 있는데도 영화 스크린에서 목소리가 나온다고 느끼는지와 같은 오래된 의문을 해결해주기도 한다.

인간의 정보기관, 오감의 세계를 알아보자.

눈이 귀를 속이는 영화 음향

미국 다트머스대 인지신경과학센터의 제니퍼 그로 교수팀은 신경생물학 전문학술지인 ‘뉴런’ 2월호에 흥미로운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원숭이 뇌에서 청각신호를 전달하는 신경세포의 위치가 눈동자의 움직임에 따라 바뀐다는 내용이다.

그로 교수는 명령에 따라 머리는 움직이지 않은 채 눈동자만을 움직이도록 훈련받은 원숭이를 스피커 앞에 두었다. 그리고 귀로 들어온 소리를 대뇌 피질에 전달하는 한쌍의 돌기인 중뇌 하구(下丘)에 전극을 꼽아 청각신호의 변화를 측정했다.

실험 결과 그로 교수는 중뇌 하구에 있는 신경세포의 33%에서 눈동자의 움직임에 따라 청각신호를 받아들이는 위치가 바뀜을 알게 됐다. 즉 정면을 바라보고 있을 때 2시 방향의 소리를 특정 세포가 전달했다면, 눈동자가 3시 방향을 볼 때는 다른 세포에서 그 소리 신호를 전달했다는 의미다.

서울대 심리학과 이춘길 교수는 “그로 박사의 박사후연구과정 지도교수였던 스팍 교수는 1984년 하구 위쪽에 있는 돌기인 상구에서 소리의 위치를 파악하는데 눈동자의 움직임이 결정적이라는 사실을 밝힌 바 있다”면서 “그로 박사의 연구는 청각신호를 전달하는 초기단계인 하구에서도 시각의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밝힌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연세대 인지과학연구소 감기택 교수는 “눈동자는 고개를 돌리지 않고서는 뒤를 볼 수 없기 때문에 소리를 감지하는 청각이 대강의 위치를 찾는 보조 수단이 된다”며 “청각이 찾은 곳으로 눈동자를 움직이면서 청각신경세포가 시각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위치가 다른 사물은 눈의 망막에서 다른 곳에 상이 맺히며 이 신호를 처리하는 신경세포도 다르다. 반면 귀는 머리를 중심으로 양쪽 귀에 들어온 소리의 차이로만 위치를 파악하기 때문에 위치를 찾는 데는 눈이 더 뛰어나다. 인간의 대뇌 피질의 약 1010개 신경세포 중 절반이 시각을 담당하고 청각은 이보다 훨씬 적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시각이 청각보다 더 많은 정보를 처리하기 때문이다.

시각이 청각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오래 전부터 알려져 왔다. 대표적인 예가 장갑처럼 인형을 손에 끼고 움직이며 대사를 해 마치 인형이 말하는 것처럼 느끼게 하는 복화술. 인간은 인형의 입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소리가 인형에서 나온다고 믿는다. 영화 역시 마찬가지. 영화의 모든 음향은 스크린과 떨어져 있는 스피커를 통해 나오지만 사람들은 스크린 속의 인물들이 말한다고 생각한다.

거꾸로 흐르는 폭포의 비밀

한편 최근 청각이 시각에 영향을 미친다는 실험 결과도 나왔다. 미국 반더빌트대 시각연구센터의 란돌프 블레이크, 에밀리 그로스맨 교수는 청각이 시각의 잔여효과(Motion After Effect)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실험적으로 증명했다.

잔여효과란 폭포를 바라보고 있다가 다른 곳을 보게 되면 폭포가 거꾸로 위로 흐르는 것처럼 보이는 것을 말한다. 움직이는 사물에 대한 시각정보를 처리하는 부분은 쉽게 피로해진다. 그래서 움직이는 사물을 보다가 눈을 돌리게 되면 오히려 반대 방향의 움직임을 처리하는 시각정보가 강하게 작용해 눈에는 사물이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진다.

연구팀은 실험대상자에게 위로 가는 점과 왼쪽으로 가는 점을 합한 영상을 모니터로 보여줬다. 모니터를 정지하면 실험대상자는 잔여효과에 의해 아래로 가는 점과 오른쪽으로 가는 점의 대각선 방향으로 점이 움직이는 것처럼 느낀다.

연구팀은 점 운동과 함께 왼쪽과 오른쪽 두 방향으로 소리를 줬을 때 각각의 잔여효과 변화를 측정했다. 그 결과 점의 운동과 소리가 같은 방향일 때 잔여효과가 더 강했다(그림).


(그림)시각의 잔여효과
(그림)시각의 잔여효과^소리의 방향에 따른 잔여효과의 변화
 

감기택 교수는 “1980년대 이후 활발해진 시각과 청각의 상호작용에 대한 연구는 로봇이 인간과 같은 인지기능을 갖도록 하는데 응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 감교수에 따르면 오늘날 로봇은 눈에 보이지 않는 사물을 확대한다든지 아주 낮은 소리를 인식하는 등의 특수한 기능에서는 인간보다 뛰어나다. 그러나 인간처럼 망막에 맺히는 2차원 시각정보를 해석해 3차원 공간을 인지하는 능력은 없다.

인간의 시각과 청각에 대한 정보는 로봇의 칩설계를 위한 알고리듬 작성에 이용될 수 있다. 국책사업인 뇌과학연구개발사업단에서 한국과학기술원 뇌과학연구센터를 중심으로 각 대학, 연구소의 전자공학자, 물리학자, 생물학자, 심리학자들이 공동연구를 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실제 생활 속에서 청각을 시각의 보조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다. 연구에 따르면 빛과 소리를 함께 주면 사람은 빛을 더 밝게 인식한다. 그래서 만약 회의 때 사용하는 레이저 포인터에 소리를 첨가하면 주의 집중이 더 잘 될 수 있다.

냄새 벗어나야 후각신호 발생해

냄새를 맡게 되는 것은 냄새 분자 속에 있을 때가 아니라 냄새에서 벗어날 때다. 미국 애리조나 주립대의 닐 비커스 교수팀은 나방을 대상으로 이와 같은 연구결과를 얻어 3월 22일자 ‘네이처’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터널 속에 나방 암컷의 성호르몬을 분비한 다음 수컷 나방을 그 속에 날렸을 때 나방의 후각신경세포에서 발생하는 전기 신호의 변화를 측정했다. 그 결과 나방의 코에 해당하는 더듬이에서 이제까지 알려진 것처럼 냄새 분자 속에 있을 때가 아니라 냄새에서 빠져나올 때 전기 신호가 발생함을 알 수 있었다.

바람이 부는 날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는 바람 방향으로 흘러가면서 중간중간 끊어지는 모양이 된다. 연구팀은 나방이 더듬이를 움직이는 것은 바람에 흩날리는 굴뚝 연기처럼 냄새와 깨끗한 공기의 불연속적인 냄새의 파동을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마찬가지로 사람도 냄새를 맡을 때 코를 킁킁거림으로써 냄새의 파동을 만든다.

향수를 감별하는 사람들은 경험으로 이 사실을 알고 있다. 감별사들은 코를 직접 대지 않고 손을 휘저어 향수를 맡는다. 감별사들에 따르면 그냥 향수를 맡으면 코가 금방 냄새에 익숙해져 더 이상 아무런 냄새를 맡지 못하지만 손으로 휘저으면 계속 냄새를 맡을 수 있다고 한다.

감정 불러일으키는 향기

프랑스의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의 대표작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는 주인공이 홍차에 적신 마들랜 과자의 냄새에 이끌려 어린 시절 고향을 찾아 시간여행을 떠나는 얘기가 나온다. 그래서 냄새가 기억을 이끌어내는 것을 ‘프루스트 현상’이라고 한다.

한 과학자가 프루스트 현상을 과학적으로 증명해냈다. 미국 모넬 화학감각연구센터의 레이첼 헤르츠 박사는 실험대상자들에게 어떤 그림을 향기와 함께 제시했다. 그 다음 향기를 준 뒤 그림을 기억하도록 한 결과 기억의 정확성에는 별차이가 없었지만 그림을 볼 때의 느낌은 훨씬 더 잘 기억해낸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반면 촉각이나 음악과 같은 청각은 그와 같은 효과가 없었다.

또 어린이들이 풀기 힘든 과제를 특정한 향기와 준 다음, 나중에 풀 수 있는 과제를 같은 향기와 함께 주면 이 향기가 실패의 신호가 돼 두번째 과제도 힘들게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헤르츠 박사는 이를 생명체의 생존본능으로 설명했다. 생명체는 냄새와 같은 화학신호로 생존을 판단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때 좋은 냄새와 좋은 감정이 거의 동일하다는 얘기다.

냄새는 배우자 선택에서도 중요한 요소가 된다. 과학자들은 여성은 남성이 분비하는 항체의 냄새를 맡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항체가 많이 분비되면 질병을 이길 확률이 높기 때문에 여성들은 항체 냄새가 강한 남성에 끌린다.

항체 냄새가 아니라도 여성에게 있어 향기는 중요한 판단 기준이다. 실제 영국의 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조사대상자인 영국 여성 7백89명 중 71%가 ‘남성의 향기에서 성적 매력을 느낀다’고 답했다고 한다. 반면 옷차림새는 17%, 머리모양은 8%에 그쳤다. 또 응답자중 70%의 여성들은 남성들이 스킨로션과 같이 향기가 나는 화장품을 사용할 때 섹시함을 느낀다고 답변했다.
냄새가 감정과 연결돼 있다는 것은 해부학적으로도 알 수 있다. 생명체에서 후각시스템은 대뇌 변연계와 직접 맞닿아 있다. 이 대뇌 변연계는 감정을 다스리는 중추인 소뇌 편도선과 기억 중추인 해마질과 연결돼 있다.


향기는 배우자 선택에 있어 중요한 판단기준이 된다. 조사에 따르면 여 성은 남성의 향기에서 성적 매력을 느낀다고 한다.


달콤한 디저트도 얼리면 신맛

아무리 예민한 미식가의 혀도 온도에 따라 전혀 다른 맛을 느낄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미국 예일대의 베리 그린 교수팀은 단맛을 느끼는 부분인 혀끝을 차갑게 하면 단맛이 약하게 느껴진다는 연구결과를 ‘네이처’ 2월 24일자에 발표했다. 실험결과 혀의 온도를 15℃ 낮추면 신맛이 느껴지며 25℃ 낮추면 짠맛을 느꼈다. 그린 교수팀은 온도에 따라 맛을 느끼는 것을 ‘열 미각’(thermal taste)이라 이름 붙였다.

실험 결과 3명 중 2명 정도가 열 미각을 느꼈는데, 온도변화로 단맛이 가장 흔하게 나타났으며 짠맛을 가장 드물게 느꼈다.

그린 교수는 “일반적으로는 강한 맛이 열 미각을 압도하기 때문에 열 미각이 음식이나 음료의 맛에 영향을 주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면서도 “얼린 디저트를 먹을 때처럼 온도 변화가 갑자기 일어날 때는 신맛이나 짠맛을 느낄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한편 미국 마이애미대의 카이세도 교수와 로퍼 교수는 같은 쓴맛이라도 혀에서는 물질에 따라 다른 세포가 반응한다는 연구결과를 2월 23일자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가장 흔한 다섯가지 쓴맛을 내는 분자를 실험용 쥐의 혀에 차례차례 댄 뒤 반응도를 조사했다. 그 결과 쓴맛을 느끼는 미각세포의 65%는 단 한종류의 쓴맛만을 감지해냈으며, 26%는 두종류를 알아냈다. 두종류 이상을 감지해낸 세포는 7%에 불과했다.

로퍼 교수는 이를 두고 “쓴맛을 느끼는 미각세포들은 각각 다른 종류의 쓴맛 분자를 감지하도록 발달한 것”으로 해석했다.

가려움 신경 따로 있다

가려움의 괴로움은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그런데 최근 가려움을 느끼는 신경이 발견돼 관심을 끌고 있다.

미국 배로우 신경연구소 데이빗 앤드류 박사는 ‘네이처 뉴로사이언스’ 1월호에 마취된 고양이의 척추에 전극을 꽂아 히스타민에만 반응하는 신경을 찾아냈다고 발표했다. 히스타민은 가려움을 일으키는 물질로 혈관을 확장시키는 작용이 있다. 알레르기로 인한 가려움도 히스타민 과잉 분비에 따른 것이다.

연구결과 히스타민에 반응하는 신경은 척추에서 뇌의 감각전달 기관인 시상까지 걸쳐져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앤드류 박사는 “이 신경은 척추 전체 신경의 5% 정도를 차지할 뿐이어서 지금까지 그 존재를 알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연구자들은 가려움 전달 신경을 연구하면 피부염, 신장질환, 간질환 등에 따른 만성 가려움증의 치료에 새로운 돌파구가 열릴 것으로 예상했다. 앤드류 박사는“이 세포에서만 발현되는 유전자를 찾아 그 작용을 중단시키는 약물을 설계하면 가려움에서 해방될 것” 이라며“이제 만성 가려움을 치료하는데 적합한 약이 나올 희망이 생겼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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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06월 과학동아 정보

  • 이영완 기자
  • 진행

    김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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