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보적인 군사대국인 미국 이외에 지구를 정복할 수 있는 집단이 있다면 그건 바로 GMO 기업.” 우스개 소리처럼 들릴 수 있지만 허무맹랑한 소리가 아니다. 실제로 GMO 회사들에 따르면 지금의 기술력으로도 지구상의 모든 식물을 일거에 없앨 수 있는 제초제와 그 제초제에 견딜 수 있는 GMO를 만들 수 있다. 여기에 번식이 불가능한 터미네이터 작물을 만들어 매번 종자를 사야 한다면 먹을거리를 구하기 위해 GMO 회사 앞에 인류가 줄을 서 있는 풍경을 상상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지난 수천 년간 전 지구를 거쳐 진행된 육종의 시대를 실험실에서 불과 10년 만에 끝낼 수 있는 GMO의 힘은 어디까지일까?
GMO는 악(惡)인가
- 리프킨 vs 최양도
베스트셀러 ‘엔트로피’, ‘노동의 종말’, ‘바이오테크 시대’의 저자로 유명한 제레미 리프킨 미국경제동향연구재단(FOET) 이사장은 GMO를 “인류가 건강을 놓고 벌이는 룰렛 게임”이라고 잘라 말한다. 그는 1981년 미 정부가 유전자가 조작된 유기체를 개방된 환경 속에 방출하려는 것을 허용하자 반대 소송을 제기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GMO 반대 운동의 효시다.
리프킨 이사장은 크게 두 가지의 논거를 든다. 이종교배와 유전자 확산 측면이다. 경제학과 국제관계학이 전공이지만 본인의 주장을 펼치기 위해 GMO를 과학적으로 분석한 논거가 돋보였다. 그는 “인류는 지금까지 동종교배의 원칙을 지켜왔지만 유전자조작은 어떤 유전자도 다른 유전자와 쉽게 섞을 수 있는 단계에 접어들었다”며 “이것은 생태계에 직접적인 혼란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1990년대 과학자들이 진행한 토마토와 물고기의 유전자 조합은 리프킨 이사장에게 확신을 심어줬다. 추운 대서양에 살고 있는 물고기에서 추위에 견디는 유전자를 빼내 토마토에 주입해 냉해에 잘 견디는 토마토를 만드는 실험이었다. 실제로 이 실험은 유전자 단계에서는 성공한 것으로 평가됐다.
두 번째로는 유전자 확산 문제다. GMO가 비(非)GMO 사이로 들어가면 수분(가루받이)을 통해 GMO 유전자를 계속 생산해낸다는 것이다. 처음 GMO가 등장했을 때 작물회사들은 GMO 재배지 근처에 보호막을 세웠다. 그러나 20년이 흐른 지금에는 유전자오염이 되지 않은 땅이 없기 때문에 보호막이 필요 없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리프킨 이사장은 “이것이 바로 GMO유전자가 확산되면 생태계가 되돌릴 수 없게 된다는 증거”라고 주장한다.
국가과학자이자 2002년 슈퍼벼를 개발한 최양도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학 교수는 이 같은 주장을 비과학적이라고 일축한다. GMO는 안정적으로 개발되고 통제되고 있으며, 인류가 직면한 식량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핵심 수단이라는 주장이다. 최 교수는 “우리가 먹을 수 있는 작물 대부분이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아니라 육종이라는 방법을 통해 수천 년 동안 만들어졌다”며 “육종의 한계가 도래했다는 사실을 분명히 직시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또 유전자 재조합 기술이 어떤 작물이든 조합해낼 수 있는 ‘전가의 보도’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일부에서 우려하는 이종교배는 실제 상품화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최 교수는 품종개량에 걸리는 시간을 단축시키고 해충 저항성 유전자처럼 다른 종에 있는 유전자를 옮기는 GMO기술을 육종의 대안으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1960년대 개발된 일본의 대표적 벼 품종 ‘고시히카리’의 경우 육종학자들이 50년 가까이 개량을 시도하고 있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있다. 생산량과 맛에서 절묘하게 균형을 잡고 있기 때문에 육종학의 정점이라는 것이 최 교수의 설명이다. 세계 각국에서 GMO를 강력하게 규제하고 있는 것이 오히려 연구 단계부터 GMO가 안전하게 관리될 수 있는 역할을 한다고 덧붙였다.
고시히카리 - 일본에서 재배되는 쌀 품종. 1956년 후쿠이현 농업 시험장에서 두 개의 다른 품종인 농림 1호와 농림 22호를 육종으로 결합해 만들었다. 쌀알이 맑고 투명해 일본에서 가장 인기가 있는 품종이다.
올 2월 ‘농업생명공학응용을 위한 국제서비스(ISAAA)’는 지난해 전 세계적으로 25개국 1400만 명의 농업인들이 1억 3400만ha(헥타르)에서 GMO를 재배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한반도의 13배 면적으로 전년 대비 7%나 증가한 것이다. GMO가 처음으로 상업화된 1996년에 비해 80배 증가한 것이다. ISAAA에 따르면 GMO를 재배한 농민의 90%가 개발도상국과 저개발국가 출신이다. 16개 개도국에서 전체의 46%가 재배됐다. 이 같은 현황은 GMO가 가난한 나라의 식량문제를 해결해주기 때문이라는 찬성 측 주장과 선진국일수록 GMO의 안전성에 대해 엄격한 기준을 적용했기 때문이라는 반대 측의 논리로 모두 사용되고 있다. 작물별로 보면 콩(대두)은 75%, 면화는 50%, 옥수수는 25%를 차지한다.
이에 대해 리프킨 이사장은 “GMO를 둘러싼 논쟁은 담배 논쟁과 비슷한 양상으로 흘러가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과거 사람들은 “왜 내가 담배를 피우면 안 되냐”는 흡연권을 주장해왔지만, 지금은 간접흡연으로도 암에 걸린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근거가 약해졌다. GMO를 둘러싼 논쟁은 ‘아직 잘 모르기 때문’이라는 것이 리프킨 이사장의 주장이다. 그는 “인간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모두 특정 성분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면서 “GMO로 만들어진 음식은 원래의 유전자 조합과 다르기 때문에 어떤 알레르기를 유발할지 모른다”고 지적한다.
최 교수의 반박도 이어진다. 최 교수는 “GMO가 가질 수 있는 위험은 완벽히 통제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GMO 개발 초기에 땅콩 유전자 조합으로 인해 땅콩 알레르기를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이 증명되면서, GMO는 더 강력한 통제를 받고 있다. 육종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GMO가 개발돼 시장에 등장하기까지는 10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된다. 그 시간 동안 수백만~수억 가지의 실험이 진행됐으며 이는 의약품 임상실험보다 더 강한 규제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GMO 얼마나 재배될까
올 2월 ‘농업생명공학응용을 위한 국제서비스(ISAAA)’는 지난해 전 세계적으로 25개국 1400만 명의 농업인들이 1억 3400만ha(헥타르)에서 GMO를 재배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한반도의 13배 면적으로 전년 대비 7%나 증가한 것이다. GMO가 처음으로 상업화된 1996년에 비해 80배 증가한 것이다. ISAAA에 따르면 GMO를 재배한 농민의 90%가 개발도상국과 저개발국가 출신이다. 16개 개도국에서 전체의 46%가 재배됐다. 이 같은 현황은 GMO가 가난한 나라의 식량문제를 해결해주기 때문이라는 찬성 측 주장과 선진국일수록 GMO의 안전성에 대해 엄격한 기준을 적용했기 때문이라는 반대 측의 논리로 모두 사용되고 있다. 작물별로 보면 콩(대두)은 75%, 면화는 50%, 옥수수는 25%를 차지한다.
GMO는 유일한 대안인가
옌센 vs 윤석원
그렇다면 인류 먹거리 문제는 GMO에만 달려 있는 것일까. 다른 대안은 없다는 얘기인가. ‘드림소사이어티’의 저자이자 코펜하겐 미래학연구소장을 역임한 미래학자 롤프 옌센 드림컴퍼니 대표는 “앞으로 10년간 진정한 GMO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이전의 어떤 작물보다 GMO의 확산속도가 빠르다는 것이 그가 제시한 근거다. 미국에서는 옥수수의 80%를 이미 GMO가 점령하고 있고, 제3세계에서도 그 확산속도는 놀라울 정도다. 특히 최근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독일 바스프의 GM 감자에 대해 경작을 승인한 것은 전 세계 GMO 시장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까지 유럽은 극히 일부의 옥수수에 대해서만 GMO 재배를 허용해 왔다. 그 비율은 0.1%에도 미치지 못했다. 옌센 대표는 “미국에 비해 보수적이고 변화에 대해 극도의 거부 반응을 보이는 유럽이 GMO 경작을 허용한 것은 본격적인 GMO 시대가 열렸다는 사실을 의미한다”면서도 “식용으로는 아직까지 금지돼 있다는 것은 주목해야 한다”고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실제로 유럽연합(EU)의 GMO 승인은 식량 부족이라는 전통적인 이유보다는 가축업자들이 급등하는 사료값을 감당하지 못한 것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옌센 대표는 “GMO라는 손쉬운 사료공급처를 찾은 이상 식용으로의 전환도 어떤 형태로든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며 “인간이 편리한 것을 선호하는 성향을 갖고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당분간 GMO의 확산세는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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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MO를 제대로 바라보기 위해서는 세계적인 식량 부족 현상을 우선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은 국내외 여기저기서 나온다. 국내 최고의 농경제학자로 꼽히는 윤석원 중앙대 산업경제학과 교수는 “세계 곡물재고는 5년 전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고, 최대 농산물 수출국인 미국에는 매년 5000만t 이상의 옥수수가 바이오에탄올로 감소되고 있다”며 “기후변화로 인한 수확량 감소도 심각해 국제시장에서 거래되는 곡물은 전체 생산량의 5% 수준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윤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지구상에서 생산되는 곡물을 균등하게 나누면 인류가 하루에 3000kcal씩을 섭취할 수 있다. 그는 “우선적으로 제3세계에 좋은 종자, 적절한 비료, 최고의 농약을 통해 질병 관리법을 도입하고 적절한 농경법을 전파한다면 1차적인 식량부족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특히 “GMO 문제야말로 국가별로 국민들의 인식을 감안해 접근해야 하고 안정성에 대한 인식이 높은 나라일수록 조심스런 접근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국민들의 정서와 인식을 ‘과학적인 판단’이라는 이유로 강제로 밀어붙일 경우 생길 문제도 고려해야 한다는 견해다. 윤 교수는 “GMO는 어디까지나 마지막 수단으로 남겨두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옌센 대표도 이 부분에 동의한다. 옌센 대표는 “GMO가 당분간 전성기를 누리더라도 유일하고 절대적인 대안은 아닐 것으로 본다”고 점쳤다. 그는 식량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수많은 대안 중 가장 강력한 후보이기는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유기농법이 더 경쟁력이 있다고 평가했다. 특히 GMO가 식품으로서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이야기’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잊지 않았다. 옌센 대표는 “유기농법은 그걸 먹는 사람들이 얼마나 건강해질 수 있는지, 어떤 작물이 어떻게 자라서 식탁에 오르게 되는지 스토리를 만들어 심기가 쉽다”며 “재배자나 수요자 모두에게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는 강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이에 반해 GMO는 ‘대량생산’, ‘조작’, ‘괴물’ 등의 이야기를 갖고 있는데, 식량이라는 측면에서는 최악의 이미지”라며 “빈곤과 굶주림 정도만이 겨우 그 벽을 넘어서고 있다”고 꼬집는다.
녹색혁명과 함께 등장한 GMO
1950년대 이전 세계는 개발도상국의 인구증가와 식량 부족으로 *‘멜서스의 저주’라는 위협에 시달리고 있었다.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군나르 뮈르달 교수는 “인구가 급격히 늘어가는 아시아는 가난 속에서 굶어죽게 될 것”이라는 예언을 하기도 했다. 1950년대 미국 듀폰과 록펠러재단에서 육종 연구를 진행하던 노먼 볼로그 박사(사진)는 병충해에 강하고 수확량이 많은 밀 ‘소노라’를 개발했다. 멕시코, 파키스탄, 인도 등에 보급된 소노라는 개발도상국의 식량생산량을 급속히 끌어올리며 식량 문제를 해결해 나가기 시작했다.
당시 소노라의 가격 책정을 놓고 많은 논란이 있었지만 볼로그 박사는 “식량은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사람들이 가져야 할 도덕상의 권리”라는 철학으로 무상에 가까운 공급을 주장했다. 소노라에서 시작된 생산량 증대는 벼를 비롯한 다른 작물에까지 적용되면서 인류 상당수를 먹을거리 고민에서 해방시켰다. 이것이 세계 식량 문제를 거론할 때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지목되는 ‘녹색혁명’이다. 볼로그 박사는 이 공로를 인정받아 과학자로는 드물게 1970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당시 노벨위원회는 “볼로그 박사는 10억 명의 생명을 구했다”고 평가했다.
오래전부터 연구되던 GMO가 10년 사이에 급격히 주목받고 있는 것도 녹색혁명과 맞닿아 있다. 바로 ‘녹색혁명의 종말’ 논란이다. GMO를 개발하는 초거대 기업들인 듀폰, 몬산토, 바스프는 “육종을 기반으로 한 녹색혁명은 땅의 생산량 저하와 재배기간 단축, 인구 폭증 등의 이유로 수명이 다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GMO를 도입해 재배하는 농장주들 역시 수확량 감소와 병충해, 가뭄 문제를 고민하다 GMO 종자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일각에서는 볼로그의 녹색혁명이 ‘일시적인 유예’였다고 보는 시각까지 등장했다.
단순히 생산량을 늘린 녹색혁명은 곳곳에서 부작용을 낳고 있다. 대규모 경작을 위해 지나치게 물을 끌어다 쓰면서 상수원이 말라붙거나 화학비료로 인해 땅은 황폐해지고 있다. 지난해 타계한 볼로그 박사는 생전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녹색혁명이 한계에 다다른 것을 느낀다. 유기농법이나 순환식 재배로는 거대한 식량 수요를 감당하기에 역부족”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는 또 “과학자의 한 사람으로서 GMO가 ‘제2의 녹색혁명’의 충분한 대안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맬서스의 저주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 인류는 이른바 ‘맬서스의 덫’에서 허우적대고 있었다. 1800년 이전만 해도 인류의 소득과 식량 증가는 인구 증가에 번번이 가로막혔다. 부의 축적 부분에서 사실상 석기 시대나 크게 다를 바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산업혁명은 맬서스의 저주를 단번에 풀어 버렸다.
GMO,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산하 바이오안전성정보센터가 지난해 11월 전국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람의 상당수가 GMO에확신을 갖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약 77%가 GMO에 대해 인지하고 있지만 자세히는 알고 있지 못하다고 답했다. 특히 “GMO는 인체에 해로운 영향을 미칠 것인가”, “GMO는 환경에 해로운 영향을 미칠 것인가”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49%, 45%가 각각 “그렇다”고 답변했다. 이와 함께 응답자의 80%는 GMO의 연구개발과 수입, 취급, 보관, 유통, 표시 과정에서 엄격한 관리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지난해 말 현재 국내에 수입 승인된 GMO는 총 7종 67개 품목으로, 총 740만t이 수입된 것으로 조사됐다. 이 가운데 콩은 4억 2000만 달러(90만t)어치가 수입돼 식용유 제조에 사용됐으며, 사료용 옥수수의 경우는 전체 수입량의 99%가 GMO다.
불안감 어떻게 떨쳐낼 것인가
리프킨 vs 박지영 vs 윤석원 vs 유영숙
특히 GMO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은 쉽게 떨쳐지지 않는다. 심지어 GMO에 대한 특별한 입장을 갖고 있지 않은 경우도 그렇다. 이에 대해 리프킨 이사장은 명석한 분석을 던진다. 그는 “GMO의 공포는 보이지 않는 것에서 비롯된다”고 강조한다. GMO가 기존 작물과 똑같이 보이는 만큼 공포가 더 커진다는 얘기다.
리프킨 이사장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GMO를 최대한 제한적으로 도입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유전자표식에 의한 선발(MAS·Marker Assisted Selection)’ 방식이 그것이다. MAS는 생명공학 기술을 전통 육종기술과 결합한 종자 선별 방식이다. MAS가 도입되면 육종을 할 때 유전자 표식을 거쳐 우수한 유전자를 갖고 있는 개체를 고르게 된다. 열매가 크거나, 가뭄에 좀 더 잘 견디거나, 수확량이 많은 좋은 종자를 유전자로 찾는 것이다. 리프킨 이사장은 “GMO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거대 GMO기업을 제외하고 상당수 과학자들도 이 방법에 찬성하고 있다”며 “유전자 변형이 없고 최첨단이고 개방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거대기업의 횡포나 독점을 막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한다.
박지영 한국과학기술 기획평가원(KISTEP) 연구위원은 GMO는 물론 기술 발전이 언제나 긍정적인 측면만 줄 수는 없다고 지적한다. GMO가 갖고 있는 부정적인 측면이 GMO 확산에 잠재적 불안요소로 작용하고 있다는 뜻이다. 박 위원은 “수많은 생명을 질병으로부터 구한 항생제도 남용과 부작용 문제로 우리를 공포에 떨게 했다”며 “이는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것”이라고 말한다. 화석연료의 등장 역시 지구온난화를 낳을지 처음부터 누가 알았겠는가.
특히 박 위원은 “과학자들이 사전에 부작용을 알았다 하더라도 과연 기술 개발을 멈췄을지는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기술의 발전을 멈추기보다는 부정적인 영향을 조금이라도 줄이는 방향으로 발전했을 것이고, 이는 GMO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GMO는 의약품처럼 특정 집단에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인류 전체의 삶과 직결되는 ‘식량’에 관한 문제다. 휴대전화나 프로그램의 ‘버그’처럼 사후에 고칠 수 없다는 의미다. 연구자들이 아무리 철저한 사전검증과 실험을 하더라도 단 한 명에게 부작용이 나타나고, 거기에 GMO가 결정적인 문제를 일으켰다는 증거가 있다면 GMO는 곧바로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다.
박 위원은 “GMO는 시장 규모를 예측할 수는 있지만 인류의 삶이라는 시스템과 연관돼 있기 때문에 그 이면의 효과에 대해서는 평가나 예측이 불가능한 소재”라며 “GMO의 불안 요소는 과학자들이 줄이는 것 외에도 다양한 해결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윤석원 교수는 이미 유통되고 있는 GMO에 대해서는 ‘GM 표시제’를 도입하는 것이 바람직할 수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다만 ‘철저한 이력 추적이 가능한 경우’, 또 ‘가격 차이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을 경우’라는 단서를 달았다. 그는 “일본을 포함해 일부 국가에서 도입된 GM 표시제의 경우 극히 제한적이고 가격 차이가 많아 소비자들 사이에 위화감이 조성된다는 부작용이 드러난 바 있다”며 “꼭 GMO를 도입해야 한다면 소비자들의 알 권리와 추후 생길 수 있는 안정성 논란을 감안해 확실한 이력추적 시스템과 표시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GMO를 연구하는 과학자에게 쏟아지는 항간의 비난에 관해 생명공학 전문가인 유영숙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연구부원장은 “GMO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단순히 앞만 보고 달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기술이 쓰이도록 하기 위해서는 위험성을 제거하는 연구가 병행돼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유 부원장은 “지금은 과거처럼 특정 과학자가 위험한 연구를 혼자 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고, 시장에 나오기 위해서도 수많은 실험을 거쳐야 한다”며 “과학자들의 이 같은 노력을 일반인에게 어떻게 알리느냐가 관건”이라고 강조한다. ‘완벽한 GMO’나 ‘완벽한 육종’이 아닌 적절한 합의점을 찾는다면 인류의 미래를 책임질 밝은 등불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GMO 장밋빛 미래 될까
최양도 vs 리프킨
리프킨 이사장은 “GMO는 어디까지나 한계가 정해져 있는 편법이자 결국은 사라질 존재”라는 주장을 꺾지 않았다. 그는 “현재 우리는 사람이 먹을 곡물을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소나 바이오연료용 곡물을 생산하기 위해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며 “사료용 곡물을 줄이고, 식용 곡물을 늘리면 GMO의 존재가치는 사라질 것”이라고 밝혔다. 세계적으로 채식주의자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자동차를 운전하는 사람이 휘발유를 살 때 세금을 내는 것처럼 육식을 하는 사람들도 소가 배출하는 가스와 소를 키우기 위한 곡물가를 부담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GMO가 만들어낼 미래상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리프킨 이사장은 “가령 바나나에 특정 질병의 백신 기능을 하는 유전자를 집어넣는 실험을 진행하면서 바나나와 백신을 분리하고 투약량을 맞추는 것이 과연 쉽겠냐”며 “실험실에서 벌어지는 일과 실제로 벌어질 일을 동일시하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라고 경고했다. 반면 최양도 교수는 “GMO가 보여주고 있는 가능성이 궁극적으로 우리의 미래를 풍요롭게 할 것이라는 굳은 믿음이 있다”며 전혀 반대 견해를 피력했다. 1세대 GMO가 제초제 및 해충 저항성 품종처럼 단순히 생산량을 늘리는 데 초점을 맞췄다면 현재 개발되고 있는 2세대 GMO는 영양소 강화 같은 기능성을 강조한다.
최 교수는 “3세대 GMO는 식용 백신, 항암 성분, 혈압강하제 같은 의약용 성분이 강화된 건강기능성 식품으로 부가가치를 높이는 한편, 산업에서 사용되는 각종 소재와 재료도 GMO에서 얻는 시대가 머지않았다”고 내다봤다. 그는 이어 “무엇보다 세계 각국이 방향성을 갖고 연구를 진행해나가고 있는 상황에서 기술개발을 멈추고 가만히 있다면 우리는 식량 후진국의 위치를 영원히 벗어나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