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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달팽이가 제시한 인간 기억 메커니즘

뇌 속의 펜티엄 반도체 시냅스

과학적으로 풀지 못하고 있는 자연현상 가운데 하나가 인간의 인지 능력이다. 많은 과학자는 인간의 정신 활동으로 형성되는 마음의 정체를 과학적으로 규명하는 일이 21세기 인류의 당면 과제라고 생각하고 있다. 과연 인간의 두뇌에서 나오는 마음의 비밀을 어떻게 풀 수 있을까.

복잡한 현상 쪼개서 분석

자연현상을 탐구하는 과학적 방법에는 통합주의(synthesism)와 환원주의(reductionism)가 있다. 이 방법 중 연구하고자 하는 현상에 따라 효과적인 접근법이 결정되며, 두 방법의 상호 보완에 의해 알고자 하는 현상에 대한 이해를 더욱 고취할 수 있다.

생명현상에 대해 현재 우리가 갖고 있는 폭 넓은 이해는 분자생물학의 발달 덕분이다. 지극히 단순한 생명체라 하더라도 이 생명체를 존재하게 하는 생명현상을 이해하면 좀더 복잡한 생명체도 결국은 이해할 수 있다는 환원주의적 신념이 바탕을 이뤘던 것이다. 이런 환원적 접근으로 인지신경과학에서 가장 큰 성공을 거둔 것이 학습과 기억의 생물학적 규명이다. 여기에는 적절한 신경과학적 연구방법과 적절한 동물모델이 이용됐다.

최근에는 분자생물학의 혁신적인 발전에 힘입어 복잡한 두뇌의 기능을 어느 정도 이해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기대감이 팽배해 있다. 또한 여러 생명현상 중 신비의 영역으로 남아 있는 마음에 대한 과학적 도전의식은 신경생물학에 대한 관심을 더욱 높이고 있다.

극미한 틈새로 흐르는 정보

인간의 두뇌는 수많은 신경세포와 다양한 세포로 이뤄져 있다. 특히 신경세포(뉴런)는 서로 특수한 연결을 통해 신호를 주고받는다. 이런 연결을 통해 뇌가 작동하는데, 이 연결구조를 시냅스라 한다. 뇌에는 시냅스 연결을 통한 다양한 신경회로망이 복잡한 그물처럼 형성돼 있다. 이런 다양한 신경회로망의 패턴들에 의해 뇌의 특수한 기능이 나타난다.

시냅스는 뇌에서 전기회로의 소자와 같은 역할을 한다. 따라서 시냅스가 파괴되면 뇌의 다양한 정보가 처리되지 않으므로 더이상 기능을 못한다. 시냅스는 인간의 뇌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신경세포를 가진 모든 동물의 신경계를 구성하는 기능적 소자다.

인지기능의 핵심적 요소인 학습과 기억에 대한 그 동안의 연구 결과를 보면, 일정한 학습을 받으면 신경회로망을 구성하는 시냅스에 일정한 물질적, 구조적 변화가 일어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더 나아가 우울증과 약물중독 등 뇌 질환의 근저에는 시냅스의 변화가 깔려있다는 보고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따라서 시냅스를 중심으로 인지기능의 기본구성을 물질적으로 분석하는 연구가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학습과 기억 등 두뇌의 특수한 작용이 시냅스를 통해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먼저 시냅스의 구조부터 살펴보자. 시냅스는 두 세포가 완전히 밀착해 전류를 직접 주고받을 수 있는 전기적 시냅스와 신경전달물질을 매개로 전기 신호를 전달하는 화학적 시냅스, 두 종류로 나뉜다. 그런데 높은 차원의 정신기능은 대부분 화학적 시냅스를 통해 이뤄진다.
화학적 시냅스를 통한 신호전달은 양방향이 아니라 한방향이다. (그림1)
 

(그림1) 화학적 시냅스의 구조


이때 신호가 나오는 세포를 시냅스전 세포(presynaptic cell), 신호를 받아들이는 세포를 시냅스후 세포(postsynaptic cell)라 한다. 전기적 시냅스와 달리 화학적 시냅스에는 두 세포 사이에 20-50nm(나노미터, 1nm=${10}^{-9}$m) 정도의 틈이 있는데, 이를 시냅스 틈(synaptic cleft)이라고 한다. 이 틈으로 신경전달물질이 흘러 나와 머문다.

신경전달물질이 합성되고 보관되는 장소는 시냅스전 세포의 시냅스 말단(synaptic terminal)이다. 신경전달물질은 시냅스 말단에 존재하는 시냅스 소포에 저장된다. 시냅스 소포는 직경이 약 50nm의 공과 같이 생겼으며 표면이 지방으로 둘러쌓여 있다.

우리의 뇌가 작동하게 되는 이유는 시냅스로 이뤄진 신경망을 통해 신호가 전달돼 정보처리가 이뤄지기 때문이다. 이때 정보처리가 이뤄지는 방식은 시냅스 틈을 마주하고 있는 두 신경세포의 ‘전기적 신호’의 변화다. 전기 신호란 대체적으로 음전하를 띠고 있던 세포내부가 양전하로 일시적으로 바뀌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를 ‘탈분극’이라고 한다. 이와 달리 음전하에서 더 큰 음전하로 바뀔 수도 있는데 이런 현상을 ‘과분극’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신경전달물질은 어떻게 분비될까. 신경신호인 활동전위가 시냅스 말단에 도달하면 시냅스 말단의 세포막에 존재하는 칼슘통로를 자극해 연다. 칼슘통로를 통해 칼슘이온(Ca2+)이 세포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면 ‘스네어’(SNARE)라는 복잡한 단백질 기구의 상호작용에 의해 시냅스 소포와 세포막이 융합을 일으킨다. 이때 방출된 신경전달물질이 시냅스후 세포의 수용체와 결합하는 것이다.(그림2)
 

(그림2) 시냅스에서 신경전달물질이 분비되는 과정



스트레스와 감동은 시냅스 흥분의 차이

시냅스후 세포로 어떤 신호가 전달될지는 방출되는 신경전달물질과 이를 받아들이는 수용체의 종류에 따라 결정된다. 즉 시냅스전 세포에서 전기가 발생하면 시냅스 말단에서 신경전달물질이 분비되고, 분비된 신경전달물질은 시냅스후 세포의 수용체를 자극해 시냅스후 세포에서 전기를 발생시킨다. 결국 시냅스라는 구조를 통해 시냅스전 세포에서 시냅스후 세포로 전기 신호가 전달되는 것이다.

시냅스후 세포로 전달되는 전기 신호에는 크게 ‘흥분’과 ‘억제’ 두가지가 있다. 흥분은 가장 대표적인 신경전달물질인 글루타메이트에 의해 이뤄진다. 글루타메이트가 시냅스로 분비되면 이를 받아들인 수용체는 양이온(Na+)을 세포 안으로 들여보낸다. 이에 따라 시냅스후 세포 내부는 양전하를 띠어 탈분극화된다. 이를 ‘흥분’이라 한다. 반면 ‘억제’는 아미노산의 일종인 가바(GABA)와 글라이신이라는 신경전달물질에 의해 유도된다. 이 물질은 음이온(Cl-)을 세포 안으로 통과시켜 세포를 ‘억제’(과분극)시킨다.

한개의 신경세포는 수천개의 신경세포와 시냅스 연결을 맺고 있다. 따라서 수천가지의 신호를 받고 있는 셈이다. 이 중 어떤 것은 흥분이고 나머지는 억제 신호일 것이다. 이때 한 세포로 전달되는 최종 신호는 흥분신호의 총합에서 억제신호의 총합을 뺀 값이다. 예를 들어 전체 신호 중 흥분신호가 억제신호보다 많으면 그 신경세포는 흥분 상태로 변하는 것이다. 즉 시냅스는 수많은 정보를 끊임없이 주고받는 두뇌 속의 초고속 반도체라 할 수 있다.

인간 뇌에는 약 1천억개의 신경세포가 있고 한 세포에는 수천개의 시냅스가 있으므로 총 시냅스의 수는 1014 -1015 개가 된다. 이런 신경회로망의 각 세포는 시시각각으로 들어오는 다양한 입력에 대응해 매번 다른 출력 값을 계산해낸다. 우리가 맛있는 음식을 바라보며 입맛을 다실 때나 과중한 스트레스에 어쩔 줄 몰라하는 순간, 베토벤의 음악을 들으며 감동하는 순간 뇌 속의 신경세포들은 그때마다 수많은 정보를 처리하고 있는 것이다.

스트레스로 고통받거나 교향곡에 감동 받는 순간의 차이점이란 단지 어떤 신경회로망의 어떤 시냅스들이 작용해 결과적으로 어떤 신경세포를 자극하느냐가 다를 뿐이다.

반복 자극 대응하는 비결


오케스트라를 들을 때 느끼는 감동은 뇌 속의 신경세포들이 수많은 정보를 적절히 처리한 결과다.


신경세포의 시냅스를 통한 정보 전달은 이처럼 복잡한 메커니즘을 통해 이뤄진다. 그 동안 많은 과학자는 시냅스의 비밀을 풀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이 중에서 가장 획기적인 성과는 학습을 받으면 시냅스에 일정한 변화가 생긴다는 사실을 알아낸 것이다. 이 사실은 바다 달팽이인 ‘군소’를 통해 이뤄졌다.

군소는 우리나라 남해와 동해 연안의 얕은 바다에서 자주 볼 수 있다. 군소는 지금까지 알려진 생명체 중에는 가장 큰 신경세포를 갖고 있다. 또한 인간 신경세포의 수가 수천억개인데 반해, 군소는 약 2만여개의 신경세포를 갖고 있다.

군소의 신경계를 이용한 학습과 기억 연구는 30여년 전부터 미국 컬럼비아대의 에릭 칸델(Eric R. Kandel) 교수에 의해 꾸준히 진행돼 왔으며, 그는 이 업적으로 2000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군소의 피부에 있는 호흡관을 자극하면 아가미가 수축한다. 이 행동은 피부에 연결된 감각 신경세포의 정보가 아가미 수축을 담당하는 운동 신경세포로 전달돼 일어나는 것이다. 그런데 군소의 꼬리나 머리에 동일한 자극을 가하면 이전보다 향상된 아가미 수축 반응을 보인다. 즉 이전의 자극으로 ‘학습’한 내용을 ‘기억’한 다음, 동일한 자극에 대해 좀더 나은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이 반응은 매우 복잡한 경로를 통해 이뤄지는데, 가장 핵심적인 과정은 반복되는 자극이 새로운 신경세포를 활성화한다는 점이다. 군소의 피부에 반복해서 자극을 주면 기존 아가미 수축 회로망의 감각 신경세포에 영향을 주는 새로운 신경세포(촉진 신경세포)가 활성화된다. 이 촉진 신경세포는 세로토닌이라는 물질을 분비해 기존 회로망의 감각 신경세포를 자극한다. 이 결과 감각 신경세포의 전기적 특성이 변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감각 신경세포에서 신경전달물질의 분비가 촉진된다. 따라서 운동 신경세포로의 신경전달이 효과적으로 일어나고 최종적으로 아가미 근육의 수축이 향상된다.

노벨 생리·의학상 최다 배출

하지만 촉진 신경세포의 발달로 인한 아가미 근육 수축의 향상은 길어야 수시간을 지탱하지 못한다. 이런 촉진은 단기 기억만 설명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일정 자극을 오랫동안 기억하는 장기 기억은 어떻게 일어날까.

학습되는 내용이 단기냐 장기냐는 학습 훈련의 강도에 달려있다고 알려져 있다. 군소에 동일한 자극을 반복적, 습관적으로 가하면 이 자극은 장기 기억화된다. 군소의 피부에 5회 이상 자극을 반복하면 이 정보는 일시적으로 촉진 신경세포를 활성화시키는 것을 넘어, 감각 신경세포의 핵 속으로까지 전달된다. 이렇게 전달된 신호는 세포 핵 속에 있는 다양한 기억 관련 유전자를 발현시킨다. 이때 생산된 장기 기억에 관여하는 단백질과 신경전달물질은 결국 감각 신경세포의 시냅스를 강화시켜 일정 자극을 장기적으로 기억하게 한다.

인간의 경우는 어떨까. 두뇌의 측두엽에 있는 해마는 인간을 비롯한 고등동물의 기억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해마의 신경회로도 군소의 경우처럼 자극에 대해 촉진 신경세포가 형성됨이 확인됐다.

또한 장기 기억에 대해서도 유사한 메커니즘이 해마에서 진행됨이 알려졌다. 시냅스 강화에 의한 장기 기억은 기존 시냅스의 유효성을 증가시키는데서 비롯될 수 있고 또 시냅스의 수를 늘리는데서 일어나기도 한다. 시냅스 수를 증가시키기 위해서는 감각 신경세포의 구조가 변해야 하는데, 반복적인 장기 학습에 의해 시냅스의 구조가 변한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있다. 시냅스가 많아지면 전체 신경세포의 부피가 증가하므로 뇌의 구조적 변화가 일어나는데, 이 현상은 원숭이 연구에서 확인됐다. 원숭이에게 특정한 학습을 반복적으로 시키면 뇌의 일정한 영역이 확장되는 것이다. 인간의 두뇌 역시 이와 비슷한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두뇌의 기능을 시냅스와 신경세포를 통해 환원적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은 에클즈와 카츠, 호지킨, 칸델 등의 여러 학자에 의해 이뤄졌다. 이들은 20세기 신경과학의 발전을 주도했는데, 모두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들이다. 실제로 노벨 생리·의학상을 보면 신경과학자들이 많으며 대부분 시냅스 연구와 관련돼 있다.

21세기에는 지금까지의 환원주의적 접근에 더해 인지 기능에 대한 통합주의적 접근이 어우러져 고도로 발달된 인간 두뇌의 비밀이 벗겨질 것으로 예상된다.

2003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 강봉균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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