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술술 읽혀요
● 더 위험한 과학책
더 위험한 과학책
랜들 먼로 지음 | 이강환 옮김
시공사 | 416쪽 | 2만2000원
‘구름 위 저 하늘 높이까지 뛰어올라 볼 수는 없을까?’
‘우사인 볼트와 술래잡기를 한다면 어떨까?’
‘이사할 때 집을 통째로 날릴 수는 없을까?’
과학적 상상력에 ‘정답’은 필수일까
친구가 옆에서 갑자기 이런 질문을 한다면 ‘웬 말도 안 되는 소리냐’고 윽박지를 것인가, 아니면 저 일들이 진짜로, 과학적으로 가능할지 종이를 꺼내 들고 물체의 무게, 중력, 속도를 추정한 뒤 계산해볼 것인가.
과학기술의 발전에서 상상력은 매우 중요한 요소다. 단, 조건이 있다. 상상력이라고 하더라도 앞에 ‘과학적’이라는 단어가 붙으면 제약이 생긴다. 계산식을 늘어놓거나 실험으로 과학적 상상력의 현실 가능성을 따져봐야 한다. 이런 계산식과 실험은 어느 누가 하더라도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만큼 탄탄하기도 해야 한다. 그래야 그 과학적 상상이 사람들의 인정을 받는 ‘답’이 된다.
반대로 누군가의 지적을 반박하지 못할 때 ‘틀림’이 되기 쉽다. 그리고 끝내 틀림을 반박하지 못하면 시간적, 경제적 손해에 맞닥뜨리게 될 수도 있다. 이렇게 틀림에서 비롯되는 두려움 때문에 과학적 상상력, 과학적 시도는 점차 문이 닫힌다.
2019년 정부의 국가연구개발(R&D) 사업 예산이 처음으로 20조 원을 넘었다. 그런데 정부의 예산을 받아 진행된 매해 5만 개 이상의 R&D 과제의 성공률이 95%를 웃돈다. 거의 모든 연구가 목표한 바를 이룬 셈이다. 국내 과학기술 R&D 수준이 높다고 해석할 수도 있지만, 달리 말하면 연구자들이 실패하지 않을 안정적인 연구만 했다는 것으로 풀이될 수도 있다. 창의적이고 도전적 연구를 장려하는 선진국의 기초과학 연구 성공률은 30% 이하다.
틀려도 괜찮다, 상상이니까
‘xkcd’.
과학 웹툰으로는 전 세계에서도 둘째가라면 서러운 유명한 작품이다. 이 웹툰의 작가는 미국항공우주국(NASA) 로봇공학자 출신인 랜들 먼로다. 웹툰의 한 달 조회수는 7000만 회 이상이고, 웹툰을 추려낸 첫 번째 책 ‘위험한 과학책’은 2014년 발간 이후 전 세계 27개국에서 100만 권 이상 판매됐다.
세계 최대 온라인 쇼핑 사이트인 아마존 30주 연속 베스트셀러, 아마존이 선정한 올해의 과학책, 타임이 선정한 최고의 논픽션, 뉴스위크가 선정한 최고의 책. 심지어 그의 이름을 딴 소행성(4942먼로)도 있다. 지난해 출간된 그의 세 번째 책 ‘더 위험한 과학책’은 출간 즉시 아마존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국내에는 올해 1월 발간됐다.
저자는 말도 안 되는 황당한 질문들을 독자에게 받고, 자신의 과학적 상상력을 총동원해 답해준다. 저자가 들이미는 온갖 숫자와 과학적 사실들은 상상이 실제 일어날법한 일로 탈바꿈시키는 마법을 부린다. 자신의 상상이 수학과 과학으로 실현되다니, 스스로 ‘이과 마인드’라 생각하는 ‘과학덕후’ 독자들이라면 진정한 환호를 보낼 만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질문 하나가 나올 때마다 멈추고 생각해봤다. 내가 이 질문을 받았다면 어떻게 대답했을까.
막막했다. 뭔가 말이 되는 근거로 논리 정연하고 그럴싸하게 설명하고 싶은데, 정말이지 어떤 설명도 떠오르지 않았다. 대부분의 질문에는 ‘못하지’ ‘여기엔 대푯값이 없는데’ ‘이렇게 하면 틀리지’라는, 답할 수 없는 이유만 잔뜩 떠올랐다. 결국 답을 내지 못하고 ‘정답지’인 저자의 답변을 들춰봤는데, 허무하리만치 황당했다.
가령 첫 번째 질문인 ‘성층권까지 높이 뛰는 방법’에서 저자는 성층권으로 점프하기 위해 장대높이뛰기부터 시작한다. 중력가속도와 뛰는 속도, 뛰는 사람의 신장, 신체에서 중력 중심의 위치 등을 계산해서 뛸 수 있는 최대 높이는 6.07m라고 결론을 낸다. 지상 10~50km 구간인 성층권까지는 턱없이 부족한 높이이니 미련 없이 이 방법은 접는다.
이어서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점프도 시도해본다(이론적으로). 하지만 이 방법으로도 그렇게 높이 점프하기엔 역부족이다. 결국 세 번째 방법으로 산맥의 난류를 타면 성층권까지 올라가는 데 성공할 수 있음을 찾아낸다.
다만 이 방안들을 얘기할 때 모든 수치가 완벽하지는 않다. ‘대략’ ‘약’과 같은 단어가 여러 번 등장한다. 예를 들어 장대를 이용해 뛰는 사람의 신장을 남자 장대높이뛰기 세계기록 보유자의 신장으로 계산하는 식이다.
참고로 현재 육상에서 여자 실외 장대높이뛰기 세계기록은 5.06m로 신장 174cm인 러시아의 옐레나 이신바예바가 보유하고 있고, 남자 실외 장대높이뛰기 세계기록은 6.14m로 신장 183cm인 우크라이나의 세르게이 부브카가 보유하고 있다.
이런 식이면 결괏값이 틀릴 게 뻔하다. 그런데 수치상 오차가 있다는 점만 제외하고 보면 말도 안 되는 상상을 실현해나가는 과정은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논리적이다.
여러 방안을 근사치로 빠르게 추정해본 뒤(저자는 ‘페르미 추정’이라는 대략의 답을 얻는 추정방식으로 계산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이 생각해도 아닌 것 같으면 유머러스하게 마무리 짓고 활기차게 또 다른 방안을 얘기하기 시작한다. 한 방안마다, 그 방안을 검증하는 한 단계마다 ‘틀리지 않을까’라는 강박을 갖고 시작했다면 괴롭고 고단한 상상이었을 것이다.
2014년 ‘위험한 과학책’의 원제는 ‘What If?: Serious Scientific Answers to Absurd Hypothetical Questions’으로 황당한 질문에 과학적으로 진지하게 답변해주는 형태다.
이번에 ‘더 위험한 과학책’은 이를 뒤집어 ‘How To: Absurd Scientific Advice for Common Real-World Problems’라는 제목을 달고 현실적인 질문에 황당한 과학적 조언을 한다. 틀려도 괜찮으니 과학적으로 마음껏 엉뚱하게 상상해보라면서 말이다.
저자는 서문에서도 이를 강조한다. 좋든 안 좋든, 맞든 틀리든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다양하게 생각해보라고 권한다. 설사 그 방법이 틀렸다면 다른 방법을 시도하면 된다. 왜 틀렸는지 확인까지 한다면 금상첨화다. 이후에 더 좋은 아이디어를 낼 토대가 될 것이다. 틀림의 두려움을 떨쳐내는 길. 저자가 책을 통해 직접 보여주고 있다. 독자 여러분도 같이 하자면서 말이다.
● 연구되지 않는 과학도 있다
● 고대 DNA가 던지는 인류학적 메시지
경쟁에 밀려 도태됐다고 여겨졌던 네안데르탈인이 2%의 DNA로 우리 몸속에 남아있다는 점이 유전학적으로 밝혀졌다. 현생인류와 교배했다는 반박할 수 없는 증거다. 사실 현생인류가 극한의 빙하기를 견딜 수 있었던 데는 혹한의 환경에 살았던 네안데르탈인 DNA 덕분이었다. 저자는 DNA의 역사를 통해 인간이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포용할 수 있는 단서를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고대 DNA가 우리는 모두 연결돼 있다고 말해주므로.
● 과학동아가 소개하는 해외의 책
※편집자 주. 과학동아는 ‘사이언스’ ‘네이처’ 등 유수의 국제학술지가 추천하는 해외 과학 교양서를 소개합니다. 여기에 소개된 책은 아직 국내에 번역되지 않은 경우가 많은 만큼 제목, 가격은 원서 그대로 표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