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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 tech] 화장품 바르다 나노 중독 될까


자외선 차단제를 사기 위해 화장품 가게에 들렀다. 두 제품이 나란히 당신을 유혹하고 있다. 한쪽엔 아무런 표시가 없지만, 다른 한쪽엔 ‘백탁 현상 없는 신제품’이라는 광고가 붙어 있다. 당신은 신제품을 집어 들곤, 잘 한 선택이라고 자부할 것이다. 제품 뒷면에 쓰인 ‘나노입자’라는 글자를 보기 전까진.


금 나노입자 태아에게 쉽게 침투해

자외선 차단제에 들어가는 산화티타늄은 보통 흰색이지만, 나노입자로 만들면 투명해진다. 차단제를 발랐을 때 얼굴이 하얗게 뜨는 ‘백탁현상’이 나타나지 않는다. 눈을 커 보이게 하는 마스카라와 아이라이너에 함유된 탄소 나노입자는, 피부에 잘 달라붙기 때문에 오래 지속되고 번지거나 뭉치지 않는다. 나노입자는 살균·멸균·항균 효과도 뛰어나 칫솔·치약·세탁기·젖병 등에도 널리 쓰이며, 폐수 정화나 자동차 신소재에도 활용된다. 미국의 싱크탱크 ‘우드로 윌슨 센터’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유통되는 나노제품은 2006년 212종에서 2013년 1628종으로 최근 7년 사이 약 7.7배 증가했다. 화장품만 보더라도 2020년에는 세계적으로 약 105t이 유통될 전망이다.

문제는 나노입자가 기존 화학물질에 비해 인체의 미세한 장벽을 통과하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점이다. 기도에서 걸러지지 않고 바로 허파세포로 들어가며, 심지어 뇌로도 들어갈 수 있다. 영국리버풀대 비비안 하워드 교수는 금 나노입자가 태반을 통해 태아에게 쉽게 전달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고하기도 했다.
 
단순히 통과하는 걸로 끝나는 게 아니다. 미국 환경청(EPA)의 벨리나 베로네시 박사는 자외선 차단제에 들어가는 산화티타늄나노입자가 뇌신경을 손상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발표했다. 미국 로체스터대 귄터 오베르되스터 교수는 프라이팬 코팅재로 흔히 쓰는 테플론(PTFE) 나노입자를 쥐가 15분 동안 마시게 했더니 4시간 만에 죽었다고 보고했다. 하워드 박사는 2003년 3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나노입자는 크기가 작아질수록 표면적이 상대적으로 커지면서 생체조직과 더 잘 반응해 독성이 생기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더 큰 문제는, 나노입자가 중금속처럼 먹이사슬을 거치며 점점 더 쌓인다는 점이다. 2002년 3월, 미국 라이스대 생물환경나노기술센터는 가공된 나노입자가 실험동물의 장기에 쌓여 세포 속으로 들어간다고 보고했다. 연구팀은 “만약 나노물질이 박테리아에 들어간다면, 결국 생태계의 먹이사슬 속으로 들어와 점점 위로 올라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나노 입자 때문에 참치 못 먹게 될 수도

생태계의 먹이사슬은 오염물질이 사람까지 전달되는 매우 주요한 경로다. 수은이나 카드뮴, 구리, 아연 같은 중금속이 먹이사슬을 따라 하위 피식자에서 상위 포식자로 전달된다. 예를 들어 우리가 좋아하는 참치나 연어는 수생태계 먹이사슬의 가장 위에 있어서 이들 물고기 안에는 중금속이 많이 농축된다. 미국 식품 의약국(FDA)과 소비자 단체가 임신부의 참치 섭취를 두고 갑론을박을 벌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필자는 최근 나노입자가 중금속처럼 먹이사슬을 따라 여러 차례 전달될 수 있다는 사실을 시각 증거로 최초로 확인해 ‘나노톡시콜로지(Nanotoxicology)’라는 학술지에 발표했다. 원생동물인 유글레나와 동물플랑크톤인 모이나물벼룩, 어류인 제브라피시로 이뤄진 3단계 먹이사슬에서 유글레나에게 먹인 형광 나노물질을 모이나물벼룩과 제브라피시의 내장 안에서 관찰했다. 제브라피시의 배설물에서도 형광이 보였는데, 이는 수생태계의 다른 생물들도 나노입자에 노출될 수 있다는 뜻이다. 머잖아 나노입자 때문에 참치 섭취를 금지하는 일이 실제로 벌어질지도 모른다.

현대의 첨단과학기술은 양날의 검과도 같다. 나노물질을 안심하고 사용하려면 기술 개발과 함께 유용성과 위해성을 함께 연구해야만 한다. 그러나 나노와 관련된 위험성 연구는 이제야 걸음마 단계다. 초미세크기의 나노물질을 환경이나 생물체 안에서 측정하는 기술조차 아직 확립돼 있지 않다. 진정한 나노강국은 나노제품이 많은 나라가 아니라 나노안전성 기술이 강한 나라다.

2014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안윤주
  • 에디터

    우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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