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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mm 속에서 질병·가짜 찾아낸다


피부 밑으로 약 2mm까지 들여다볼 수 있는 영상기기가 1991년에 개발됐다. 당시 과학자들은 이 영상기기의 활용방안을 두고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X선촬영장치나 컴퓨터단층촬영(CT)장치, 자기공명영상기(MRI), 초음파 진단기 같이 몸 전체를 투과해 볼 수 있는 의료 영상기기들이 이미 여러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개발자들은 과연 2mm 깊이에서 어떤 정보를 얻을 수 있을까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 영상기기에는 다른 영상기기에서 찾을 수 없는 장점이 있었다. 먼저 근적외선에 해당하는 800~1300nm (나노미터, 1nm=10-9m) 파장의 빛을 사용하기 때문에 인체에 여러 번 사용해도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았다. 반면 CT와 X선 영상은 인체가 방사선에 노출되므로 사용 횟수와 시기에 제약이 따랐다. 실시간으로 결과를 볼 수 있는 점도 큰 장점이었다. MRI와 양전자방출단층촬영(PET)장치는 영상이 나오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이 영상기기는 대상을 관찰대에 올려놓는 순간부터 결과가 나오는 것은 물론, 원하는 횡단면을 마음대로 선택해 볼 수 있었다. 또 해상도가 초음파보다 월등히 높아서 수μm 크기의 물체도 구별해낼 수 있었다.

이처럼 기존 진단기에서 발견된 단점을 극복할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의학계가 차차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곧 첫 활용 사례가 나왔다. 활용 대상은 바로 망막이었다. 이 영상기기는 작동 원리를 이름에 붙여 ‘광간섭단층촬영(Optical Coherence Tomography, OCT)장치’라고 불렀다.

적외선 빔으로 망막 박리 질환 찾아내

광주과학기술원(GIST) 정보통신공학과 이병하 교수는 “깊이 1mm 이내의 두께를 갖고 있는 망막은 OCT로 촬영하기 더없이 좋다”고 말한다. OCT는 망막에 난 구멍이나, 망막이 주변 조직으로부터 분리되는 병인 망막박리를 확인하는 데 효과적이다. OCT로 촬영하면 망막과 주변 조직의 연결이 매끄럽지 않고 상처가 나 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이 교수가 있는 응용광학연구실에서도 2000년부터 OCT에 대한 연구를 수행해 오고 있다. 이 교수는 “OCT는 광학적으로 서로 다른 두 매질이 만났을 때 발생하는 반사 신호를 빛의 간섭현상을 이용해 검출한다”며 “위층에서 나온 신호와 아래층에서 나온 신호가 있을 때, 내가 아는 제3의 신호와의 간섭 정도를 비교해 신호가 발생한 위와 아래의 위치를 구분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이곳에서 연구하는 OCT는 ‘전역광간섭단층촬영술’이라고 해서 대부분의 OCT 시스템처럼 가로 방향으로 빛을 쏘지 않고도 샘플 내부의 횡단면 이미지를 현미경처럼 한꺼번에 얻을 수 있다.

OCT를 만들었다고 해도 실험할 생체시료가 없다면 그림의 떡일 뿐. 의사 자격을 소지하지 않으면 생체시료를 다룰 수 없다는 규정에 따라 처음엔 살아 있는 샘플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따라서 처음엔 샘플로 쓸 잠자리나 올챙이를 잡기 위해 산과 들을 헤매고 다녔다. 하지만 곧 응용광학연구실에서 OCT를 개발했다는 소문이 돌자 직접 시료를 가지고 갈 테니 공동 연구를 진행하자는 러브콜이 의료계에서 쇄도했다. 얼마 전에는 한 치대 교수가 보철기의 강도가 치아교정에 미치는 영향을 측정하고 싶다며, 사람의 턱뼈를 들고 찾아오기도 했다. 이 교수는 “OCT 덕분에 공대에서는 보기 힘든 사람 뼈를 직접 봤다”며 웃었다.


위조지폐, 가짜 진주, 손들어!

OCT가 꼭 의학에서만 사용되지는 않는다. 최우준 박사과정 연구원은 OCT로 위조지폐를 구분하는 방법을 찾아내 지난해 한국조폐공사에서 주관하는 ‘대한민국 보안기술 논문대상’에서 우수상을 받았다. 최 연구원은 “지폐가 눈으로 보기에는 매우 얇지만 OCT로 보면 여러 겹의 구조로 돼 있다”며 “종이와 잉크, 숨은 은선, 홀로그램의 위치를 깊이에 따라 OCT로 구분해서 위조지폐를 찾아냈다”고 설명했다.

OCT는 진주의 품질을 구분하는 데도 사용된다. 조개에 진주의 핵을 심어서 바닷물에서 키운 해수진주는 모양이 완벽한 구에 가까운 반면, 핵이 없이 저수지나 호수에서 키운 담수진주는 못생긴 짱구모양이 많다. 그런데 일부 양식업자들은 담수진주를 해수진주로 둔갑시키기도 하고 하급의 진주에 이물질을 코팅해 값비싸게 팔기도 한다. 연구팀은 진주감정원의 의뢰를 받아 진짜 해수진주와 가짜 해수진주를 OCT로 촬영했다. 그 결과 상급의 진짜 해수진주 횡단면에서는 층층이 균일한 모양의 나이테가 나타난 반면, 가짜 또는 하급의 해수진주에서는 일그러지고 끊어진 나이테가 나타났다. 또한 진주의 핵이 아예 없거나 불량 핵을 사용한 것도 선명히 드러났다.

이 교수는 “처음에 진주감정원에서 OCT를 사용해보고 싶다고 찾아왔을 때는 반신반의 했지만 진주의 나이테가 뚜렷하게 나타나는 것을 보고 놀랐다”며 “OCT가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될 가능성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OCT의 원리는 스파크를 내지 않는 수소연료용 광센서를 만들거나 세포의 굴절률을 비교해 암 세포를 찾아내는 진단기에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OCT의 적외선 빔이 2mm 속 세상에서 또 어떤 비밀을 밝혀낼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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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광주=김윤미 기자 | 사진 김인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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