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어려워요
지름이 10μm(마이크로미터·1μm는 100만분의 1m)보다 작은 오염물질인 미세먼지(PM10)는 아황산가스, 납, 질소산화물 등 금속 화합물과 유기물로 이뤄져 있고, 대기에 오랜 시간 떠다니며 호흡기 질환을 일으킨다.
미세먼지를 제거하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필터로 미세먼지를 걸러내거나 정전기를 이용해 필터에 미세먼지를 붙잡아 두는 것이다. 최근에는 빛을 받으면 미세먼지를 분해하는 광촉매 기술도 등장했다.
광촉매로 주목받는 이산화타이타늄
촉매는 화학반응이 잘 일어나게 도와주는 물질로, 자신은 변하지 않고 반응속도를 증가시킨다. 광촉매는 말 그대로 빛에너지에 의해 촉매 작용을 일으키는 물질이다. 광촉매가 빛을 받으면 (‒)를 띠는 전자와 (+)를 띠는 정공(전자가 빠져나간 빈자리)이 만들어진다.
광촉매의 핵심은 바로 이 전자와 정공의 강력한 환원 및 산화력이다. 정공은 공기 중 수분과 만나 수산기(OH Radical)를 형성해 유기화합물과 결합한 뒤 수소를 방출하는 강력한 산화 반응을 일으킨다. 이때 전자는 광촉매에 흡착된 산소에 달라붙어 활성산소를 만든다. 이산화타이타늄(TiO2)은 이런 반응을 일으키는 대표적인 광촉매다.
1972년 일본의 화학자 아키라 후지시마는 이산화타이타늄과 백금을 이용해 물을 수소와 산소로 분해하는 광촉매 반응을 발견해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했다. 이후 광촉매 반응 촉진과 효율을 높이기 위한 연구가 쏟아져 나왔다.
이산화타이타늄은 전이금속과 칼코젠 원소가 만나 형성된 칼코젠 화합물이다. 전이금속은 주기율표에서 4~7주기, 3~12족에 속한 니켈(Ni), 타이타늄(Ti), 텅스텐(W) 등이며, 칼코젠 원소는 16족 비금속 원소인 산소(O), 황(S), 셀레늄(Se) 등이다.
이산화타이타늄과 같은 칼코젠 화합물에 열을 가하면 결정질과 비결정질로 빠르게 분리된다. 결정질에서는 빛의 반사율이 높지만, 비결정질 상태가 되면 빛의 흡수율이 높아진다. 칼코젠 화합물을 광촉매에 이용하려는 이유다.
이효영 나노구조물리 연구단 부연구단장은 “이산화타이타늄의 경우 산소와 반응성이 좋아 광촉매로 이용하면 물 분해 시 수소를 얻기 용이하다”면서도 “이산화타이타늄은 자외선을 쪼여야만 광촉매로 사용할 수 있어 그간 실내에서 활용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효영의 블루 이산화타이타늄
이산화타이타늄은 무색, 무취의 백색 분말이다. 자연 상태에서는 아나타제(anatase)와 루타일(rutile) 두 가지 형태의 결정으로 존재한다. 이런 단일 결정 외에 두 결정이 4대 1의 비율로 혼합된 아나타제-루타일 이산화타이타늄이 있다. 아나타제-루타일 이산화타이타늄은 자외선을 흡수해 물과 이산화탄소를 메탄, 일산화탄소, 산소로 변환하는 광촉매다. 광효율이 상대적으로 좋아 현재 상업적으로 가장 많이 이용된다.
아나타제-루타일 이산화타이타늄이 가시광선까지 흡수할 수 있다면 자외선만 흡수할 때보다 많은 에너지를 활용할 수 있어 광효율은 더욱 높아진다. 2011년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UC버클리) 연구팀은 백색의 이산화타이타늄을 검정색으로 바꿔 광촉매의 흡수율을 높인 연구결과를 공개했다. 수소를 넣은 고온, 고압 상태에서 이산화타이타늄을 빛(가시광선)을 흡수하기 좋은 비결정 상태로 만든 것이다.
그런데 비결정화가 진행되면서 가시광선의 흡수도는 증가했지만, 그 과정에서 생성된 전자와 정공의 분리도가 줄어 광촉매 효율은 전체적으로 낮아졌다. 이 부연구단장은 “광흡수를 높이는 동시에 전자가 정공으로 부터 잘 분리되는 조건을 찾으면 광촉매 효율을 최대로 끌어올릴 수 있다”며 “아나타제-루타일 이산화타이타늄의 두 개의 상 중 하나만 비결정화 시키면 가능할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론적으로 일부만 비결정 상태로 만들면 비결정상은 가시광선을 흡수하고, 남아 있는 결정상은 전자와 정공을 분리할 수 있다. 문제는 그간 50년 넘게 아나타제-루타일 이산화타이타늄을 사용해오면서도 한 상만 선택적으로 비결정화하는 방법은 알려지지 않았다.
온도를 높이지 않고 25도의 상온에서 특정 결정만 선택적으로 비결정 상태로 만들어 광촉매 효율을 높일 수는 없을까. 이 부단장은 박사과정 당시 실험했던 ‘버치 환원 반응(birch reduction reaction)’을 떠올렸다.
버치 환원 반응은 액체 암모니아 등에 소듐(Na)이나 리튬(Li)을 사용해서 벤젠고리를 환원시키는, 매우 고전적인 화학반응이다. 액체암모니아에 소듐을 녹이면 푸른색으로 변하는데, 이는 소듐이 암모니아에 전자를 제공해 강력한 환원성을 갖는 용액이 된다는 뜻이다.
2016년 이 부연구단장은 버치 환원 반응 조건을 변형시켜서 상온에서 리튬에틸렌디아민(Li-Ethylenediamine)에 아나타제, 루타일, 아나타제-루타일 등 3가지 상태의 이산화타이타늄 광촉매를 각각 넣어 실험했다.
그 결과 루타일 결정의 이산화타이타늄만 검정색으로 변했고, 아나타제-루타일 이산화타이타늄에서도 루타일 결정만 환원됐다. 가시광선에서도 작동하는 광촉매인 아나타제-비결정루타일 이산화타이타늄 제조에 성공한 것이다. 이 내용은 2016년 국제학술지 ‘에너지 및 환경과학’에 실렸다. doi: 10.1039/C5EE03100A
이 부연구단장은 후속 연구를 통해 2019년 아나타제 결정만 비결정화시켜 ‘비결정아나타제-결정루타일 이산화타이타늄’ 제조에도 성공했다. 두 개가 혼합된 결정상에서 각각 한쪽 상만 선택적으로 비결정화 시킨 것은 세계 최초였다. 이 내용은 국제학술지 ‘ACS 어플라이드 머티리얼스 & 인터페이스’ 2019년 9월 10일자에 발표했다.doi: 10.1021/acsami.9b10837
그는 이 물질의 탄생을 기념하기 위해 자신의 이름과 푸른빛을 띠는 두 물질의 성질을 합쳐 ‘이효영의 블루 이산화타이타늄(hyoyoung lee’s blue titanium dioxide)’으로 명명했다.
이 부연구단장은 “자외선뿐만 아니라 가시광선까지 흡수해 광효율을 대폭 높혔다”며 “기존 연구는 고온고압의 기체를 다뤄 위험성이 컸지만, 상온 상압의 액체상태에서 광촉매를 대량으로 제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다양한 연구와 산업에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병균도 제거하는 하이브리드 광촉매
이 부연구단장은 이효영의 블루 이산화타이타늄을 이용해 응용 연구도 진행했다. 이효영의 블루 이산화타이타늄을 광촉매로 써서 이산화탄소(CO2)와 물을 산소와 일산화탄소(CO)로 변환시키는 인공광합성을 고안했다. 이를 이용하면 대기 중 이산화탄소의 양을 줄일 뿐만 아니라 일산화탄소가 생산돼 산업적으로 유용한 화합물 제조가 가능해진다.
이 부연구단장은 이효영의 블루 이산화타이타늄에 부산물은 거의 남지 않고 산소와 일산화탄소 발생률만 높일 수 있도록 다른 물질을 도핑해 불균일한 구조를 만들었다. 이렇게 하면 전하 생성이 증가하고, 그 결과 광효율이 향상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는 은(Ag)을 포함한 후보물질 3가지로 실험을 진행한 끝에 이효영의 블루 이산화타이타늄과 삼산화텅스텐(WO3) 화합물에 은(Ag)을 도핑한 새로운 하이브리드 광촉매를 개발해 국제학술지 ‘머티리얼스 투데이’ 2020년 1월 3일자에 게재했다. doi: 10.1016/j.mattod.2019.11.005
새로 개발한 하이브리드 광촉매는 흡수된 빛의 34.8%를 촉매 변환에 사용해 기존 광촉매보다 광효율이 3배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 또 촉매 변환 과정에서 메탄(CH4) 없이 일산화탄소만 100% 발생시켜 경제성도 뛰어난 것으로 평가됐다. 일산화탄소 발생량은 기존 이산화타이타늄 촉매의 200배로 그간 학계에 보고된 가장 우수한 촉매보다 15배 많았다.
이 부연구단장은 “이산화탄소 감축 효과에 더해 유용한 화합물 합성에 중간체 역할을 하는 일산화탄소를 다른 부산물 없이 얻어 경제성을 높였다”며 “촉매 반응 중간에 발생한 일산화탄소를 유용한 화합물로 제조하는 연구뿐만 아니라 가시광선 촉매 관련 업체들에 기술을 이전해 미세먼지와 병균 등을 제거하는 공기정화 시스템을 개발 중”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