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감청을 위해 가동되기 시작한 프로젝트 415.일면 에셜론.이제 전세계가 감청 대상이 되고 있다.조지 오웰의 '1984년'을 연상케 만드는 에셜론의 실체는?
민우와 용우는 부모님의 20주년 결혼기념일을 멋지게 만들기 위해서 나름대로 계획을 짰다. 암호명 ‘청와대 불꽃놀이’. 아버지와 어머니가 외식을 끝내고 집에 돌아오면 멋있는 불꽃놀이 광경과 백두산을 다녀올 수 있는 여행 선물을 준비했다. 둘 외에 아무도 모르게 하려고 치밀하게 암호까지 만들어가며 준비를 했다. 그 디데이가 오늘이다.
학교에서 선거유세가 있는 관계로 수업이 일찍 끝난 민우. 하지만 선물 등을 준비하느라 생각보다 늦게 도착한 민우는 서둘러서 계획에 맞춰 준비를 시작했다.
7시쯤 준비를 끝낸 민우는 선물 준비로 9시가 돼야 도착하는 형 용우에게 다음과 같은 휴대폰 메시지를 보냈다. ‘청와대 불꽃놀이 준비 완료, 10시 점화만 남았음, 중국행 비행기표를 잘 챙길 것’. 중국행 비행기표는 부모님의 백두산 여행을 위한 것이다.
그런데 기쁜 마음으로 여행티켓을 사서 집에 도착한 용우에게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졌다. 동생은 보이지 않았고, 기다리고 있던 이상한 아저씨들에게 연행됐기 때문이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이들이 주고받은 휴대폰 메시지가 문제였다. 국가기밀조직의 컴퓨터는 민우가 보낸 메시지를 체크해서 이들을 위험도 1급인물들로 분류했으며, 바로 체포하도록 명령했다. 컴퓨터가 ‘청와대’와 ‘불꽃’ ‘중국’, 그리고 ‘비행기’라는 단어를 조합해서 이들이 일급 테러리스트라고 판단한 것이다.
정말 우리나라에서 이런 일이 있었을까? 물론 이 이야기는 허구다. 하지만 이러한 일이 어쩌면 조만간 현실로 나타날지도 모르는 상황에 처해 있다. 최근 신문과 텔레비전에서 거론되고 있는 에셜론 시스템이 바로 이런 예견을 가능케 한다.
실제로 에셜론(echelon) 시스템에 의해 위와 유사한 감청 사례가 있었다. 미국의 어떤 학부모가 “아들이 학교 연극을 망쳐버렸다(bombed)”는 전화통화를 했다가 ‘폭발’(bombed)이란 말이 감청시스템에 검색돼 테러리스트로 분류됐다. 그리고 일급 감시 대상으로 선정돼 일거수일투족이 모두 기록되고 감시됐다고 한다. 선택적인 감청 시스템의 컴퓨터가 전화를 통해 전달되는 메시지에서 폭발이라는 단어만을 검색해서 이들을 요주의인물로 선정한 것이다. 이 이야기는 미국가안보국(NSA)에 근무했던 웨인 메드슨의 증언이다.
텔레스크린과 빅브라더
조지 오웰의 공상소설 ‘1984년’을 보면 하루종일, 그리고 개인의 침실까지 감시하는 ‘텔레스크린’이 나온다. ‘빅브라더’(Big Brother)라는 지배계층은 감시시스템을 이용해서 그 사회를 통제한다. 기술을 이용해서 소수가 다수를 감시하고 지배하는 사회. 이 소설은 과학과 기술의 발달이 가져올 수 있는 미래 사회에 대한 경고였다. 그러나 인류는 그 우려했던 상상을 이제 현실화시켰다.
공상으로 존재한 빅브라더를 가능케한 감시시스템, 그것이 현존하는 에셜론이다. 1988년 8월 영국 월간지 ‘뉴 스테이츠먼’에 ‘누군가 엿듣고 있다’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1980년부터 에셜론을 추적하기 시작한 탐사보도 전문기자 던컨 캠벨의 기사였다. 이 기사로 인해 에셜론은 전세계에 알려지게 됐으며, 그의 계속되는 탐사로 에셜론에 관한 상세 보고서가 1998년 1월 유럽의회에 발표됐다. 이 보고서는 미국이 주도하는 전세계적 통신감청시스템인 에셜론이 유럽 기업의 산업정보와 일반인까지도 감청한다는 사실을 담고 있었다.
에셜론의 기원은 1947년 미국과 영국이 통신정보를 공동으로 수집하고 공유하자는 비밀 합의에서 출발한다. 냉전시대인 40년대부터 시행된 이 협약은 공산국가들에 대한 군사정보 수집용으로 계획됐다. 현재와 같이 비군사적인 목적으로 에셜론 시스템이 가동되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부터다.
에셜론은 1972년 영국과 미국이 먼저 시작한 ‘UKUSA’라는 국제 통신감청망에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3개 영어권 국가를 포함시켜 이들 회원국을 제외한 전세계 모든 종류의 통신정보를 수집, 분석, 공유하는 세계 최대규모의 통신정보감청시스템이다. 좀더 자세히 말하면 각 나라의 정보기관인 뉴질랜드의 정부통신보안국(GCSB), 영국의 정부통신본부(GCHQ), 캐나다의 통신보안국(CSE), 호주의 국방암호국(DSD), 그리고 미국의 국가안보국(NSA)이 연합된 시스템이다.
최근에 알려진 사실에 따르면 에셜론의 제 3가입국으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소속 국가들과 일본, 한국, 터키 등이 포함돼 있다. 에셜론 가입국은 모든 감청 정보를 제공받지만 제 3가입국은 이전에 가입한 5개국과 달리 정보접근에 제한적이다.
이 시스템은 일명 ‘프로젝트 415’로 불린다. 에셜론의 원래 뜻은 ‘삼각편대’. 이 시스템의 취지는 국제안보를 위해 테러리스트, 마약 거래, 정치와 외교 정보를 수집하는 게 본연의 임무이다. 그러나 80년대 이후부터 이들은 기업과 국제무역에까지 감청을 서슴지 않고 있다. 더욱이 에셜론에서 수집한 정보를 자국의 기업에게 넘겨주기까지 한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현재 에셜론은 국제적인 분쟁의 요소가 되고 있다.
그러나 이보다 더욱 문제가 되는 점이 있다. 일반적으로 도청이나 감청은 정치인이나 위험인물이라 일컬어지는 몇몇의 사람들에게만 한정된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에셜론 시스템은 불특정 다수인 일반인까지도 감청이 가능하며, 실제 감청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즉 위에서 제시한 가상시나리오의 인물처럼 무고한 우리 자신이 도청 대상이 될 수 있다.
걸프전의 승리는 에셜론 때문?
에셜론 시스템은 첩보위성 1백20여개를 이용해서 전세계 모든 종류의 통신을 감청하고 있다. 위성과 각 지역에 설치된 감청시설을 이용해서 전화와 팩스, e메일, 휴대폰, 광케이블통신 등 모든 형태의 통신내용을 시간당 최고 수십억건씩 감청할 수 있다.
감청시스템 시설은 <;그림>;에서 보듯이 미국, 영국, 호주, 캐나다와 뉴질랜드 등 5개국 11개 장소에 배치돼 있다. 이들은 지역별로 미국은 중남미, 러시아, 아시아, 중국 등의 정보수집을 담당하고 있으며, 캐나다는 옛소련의 북부지역, 영국은 유럽, 아프리카 및 러시아 서부지역, 호주는 인도차이나와 서아시아지역, 뉴질랜드는 태평양 서부지역을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옛소련을 감시하기 위해 설치되었던 일본 미사와에 있는 미공군기지와 독일의 배드 에이블링 등에도 에셜론 시설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사실을 볼 때 에셜론 시스템은 전세계 곳곳에 설치돼 운영되고 있다는 확대해석이 가능하다.
이중 영국의 멘위드힐 기지는 22개의 위성관리 시스템을 보유하고 있는데, UKUSA 네트워크에서 가장 크고 강력하다. 영국 북부에 위치해서 페르시아만과 수천km 떨어져있는데도 불구하고 1991년 걸프전의 최고 공로 기지로 상을 받았다. 작년에 있었던 코소보 전쟁에서도 정보 수집에 이 시스템이 활용됐다.
원하는 모든 것을 도청
국내의 휴대폰 가입자가 2천만명이 넘는다. 이들이 하루에 한통화씩만 해도 2천만통. 그런데 이렇게 많은 통화를 도청할 수 있을까? 그러나 이것이 일반 전화, 팩스, e메일, 그리고 중국과 같이 어마어마한 사람이 사는 나라까지 포함된다면 그 수는 엄청나게 된다. 그럼 그렇게 많은 통신이 감청될 수 있을까.
에셜론의 무선 감청 원리는 간단하다. 우리가 라디오를 들을 때 주파수를 맞춰서 원하는 방송만을 듣는 것처럼 무선감청은 수없이 떠다니는 전파 중에서 원하는 신호만 잡아내면 된다. 이와 같은 방식을 적용하면 위성을 이용해서 해당지역의 모든 전파를 수신하면 그 지역에서 전파되는 모든 무선통신내용을 다 가로챌 수 있다.
반면 유선의 경우는 좀더 특별하다. 일반적으로 위성 시스템으로는 지상에서 유선을 통해 전달되는 수많은 통신을 감청할 수 없다. 첩보위성을 이용해서 특정 신호를 위성이 수신해낼 수도 있지만 이것은 매우 한정적이다. 따라서 유선을 감청하기 위해서는 지상에 설치된 유선감청시스템을 이용해서 수집된 감청정보를 위성으로 송신해야 한다. 위성은 이 감청정보를 수신해서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는 기지로 보내주게 된다. 인터넷이나 일반 전화 등 유선을 통해 전달되는 모든 데이터는 지상에 존재하는 감청시스템을 활용해서 위성을 통해 전송되고 감청된다.
이와 같이 위성과 자체 설치 감청시스템으로부터 들어오는 전화, 팩스, e메일, 휴대폰 등의 모든 통신내용은 에셜론 기지에 설치된 음성을 인식할 수 있는 강력한 슈퍼컴퓨터를 이용해서 분석된다. 그러나 모든 내용을 기록하고 처리하기에는 전세계 통신량이 엄청나기 때문에 에셜론의 컴퓨터는 수신되는 메시지의 패턴이나 주요단어(keyword) 검색 방법을 사용한다. 검색할 단어와 주요인물, e메일주소, 팩스 번호 등이 기록된 사전컴퓨터(Dictionary Computer)를 이용해서 감청된 자료는 체계적으로 선별된다.
검색되는 주요단어는 수백여개에 이른다. 정부, 법, FBI, 백악관, 스파이, 폭발, 핵, 대통령전용기 등이다. 또 각 나라의 주요 지도자들과 테러리스트 명단도 등록돼 있다. 컴퓨터에 의해 통신내용이 검색될 때 각 나라마다 그 나라에 맞게 설정된 주요단어 사전이 이용된다.
컴퓨터는 수많은 통신내용 중에서 사전컴퓨터가 선정한 주요단어와 주요단어의 조합이 들어간 메시지를 골라내서 이를 분류하고 저장한다. 동시에 컴퓨터는 시간과 장소 등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메시지에 설명으로 붙인다. 마지막으로 메시지 제일 끝부분에 정보분류코드인 4자리 숫자를 입력한다. 이처럼 저장된 통신내용은 다시 세밀하게 분석되고 보고된다. 이 모든 정보는 에셜론 시스템에 저장되고 각 기지에서 열람할 수 있게 된다.
미국 과학자연맹의 군사분석가인 존 파이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보기관의 감시가 얼마나 광범위하게 적용되고 있는지 모른다. 만약 당신이 국제전화를 한다면 NSA가 쉽게 도청할 것이다. 바닷속 광케이블을 거쳐도 그들은 도청한다. 위성을 이용해도 역시 도청한다. 무선 전파나 휴대폰도 도청할 수 있다. 그들은 원한다면 모든 것을 도청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도청으로부터 안전지대는 없다는 것이다.
미국 NSA는 전세계적으로 3만8천명의 인원과 1년 예산 41조원으로 운영된다. 이 비용과 인원은 FBI와 CIA를 합한 것보다 많다. 즉 정보감청을 위해 엄청난 자금과 인원이 투여되고 있다는 말이다.
흥분하는 유럽
이와 같이 정보 수집에서 우위를 확보한 미국은 에셜론을 이용해서 이익을 챙겼다. 대표적 사례로 1995년 사우디아라비아 항공기 판매에서 미국의 보잉사와 유럽의 에어버스사가 경쟁이 붙었는데, 에어버스사의 입찰가격이 에셜론에 도청당해 보잉사가 60억 달러의 계약을 성사시켰다. 1994년에는 브라질의 레이더망사업에서 프랑스 톰슨사가 미국측에 빼앗겼다. 미국은 이밖에도 95년 일본산 고급차 수입협상, 93년 프랑스와의 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협상 등에도 에셜론을 이용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에 유럽측은 에셜론의 스파이 활동 실태 조사에 나서는 한편 새로운 암호체계 확립 등 대책마련을 서두르고 있다. 에셜론의 최대 피해국인 프랑스 정부는 각종 정보를 새로운 암호코드로 바꾸는 작업에 착수하는 한편 기업체에도 암호코드를 사용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더욱이 제 3가입국인 우리나라도 정보감청 대상에서 예외는 아니다. 캐나다 정보기관 CSE의 암호해독 요원인 제인쇼튼은 한국을 도청했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1991년 한국정부와 캐나다가 60억원 상당의 캐나다형 캔두 원전 3기 건설문제로 협상할 때 한국 외무부장관의 전화를 도청한 적이 있다.”
하지만 미국은 에셜론을 통한 민간 경제정보 첩보활동을 강력히 부인하고 있다. 제임스 루빈 미 국무부 대변인은 “미국 정보기관들은 민간기업들을 돕기 위해 산업무역정보를 빼내지는 않는다”고 반박했다.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도 “그런 일들은 엄격한 규정에 의해 통제되고 있다”고 부인했다. 그러나 NSA 활동을 감독하는 미하원 정보위원회의 포터 고스 위원장은 “NSA는 일반인의 통화를 포함한 어떠한 전화통화도 감청할 수 있으며, 내 전화까지도 들을 수 있다”고 시인했다.
심지어 이들은 자국의 감청을 상대국에 요청하는 방식으로 자국법을 교묘히 피해가면서까지 정보를 수집해왔다. 다시 말해 에셜론 시스템의 동의하에 영국 스파이가 미국을, 미국 스파이가 영국의 시민을 대상으로 감청하고 이 정보를 서로 교환했다. 실질적으로 이것은 합법적이다. 그러나 실제는 국민을 보호한다는 법의 정신을 위반하는 행위이다.
서울만 감청한다면…
에셜론 외에도 많은 나라들이 국제적인 감청망을 가동하고 있다. ‘도청능력 2000’이라는 유럽의회 보고서에서도 나타났듯이 에셜론 참여국 외에도 프랑스, 러시아, 중국, 독일, 이탈리아와 일부 동구국가들, 이스라엘, 인도, 파키스탄 등 적어도 30여개 국가들이 나름대로의 도감청 시스템을 가동하고 있다. 이들 국가는 국가안보 분야의 정보는 물론 민간기업의 정보까지 가로채 이를 자국의 이익확대에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지적됐다.
그러나 통신 데이터가 암호화돼 있으면 에셜론이 감청을 시도해도 이를 해독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되기 때문에 안심을 해도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특히 디지털의 경우 암호화 기술이 발달되고 있기 때문에 이를 해독하는데 엄청난 시간과 비용이 들 수 있다. 즉 암호화된 데이터는 이의 암호를 풀어내지 못하면 감청 자체가 이루어지기 힘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안전문업체 스파이존의 이원업 부장은 “디지털 휴대폰의 경우 도감청이 불가능하다고 하는데, 외국은 이미 휴대폰 암호해독기가 활용되고 있을 정도로 암호해독기술이 뛰어나다. 우리나라도 국가적인 정보전을 위해 암호해독기를 활용한 정보감청에 신경을 써야한다”고 말한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서울에 모든 통신이 집중되어 있는 경우 서울만 감청한다면 중요한 정보가 쉽게 새어나갈 수 있다.
범죄자를 잡기 위해 길거리에서 검문검색을 하듯, 국가정보기관은 통신을 통해 전달되는 범죄자와 범죄가능성이 농후한 사람들의 내용을 잡아내기 위해 통신을 감청한다. 테러리스트나 범죄단으로부터 국민의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 검열과 감청은 필요악인가.
컴퓨터 기술의 발달로 이제 모든 정보가 하나로 통합되는 상황이다. 즉 정보의 집적화가 이루어지는 만큼 정보의 대량 유출이 가능한 사회가 되고 있다. 과학과 기술을 발전시키는 것 못지않게 이를 어떻게 관리하고 활용해야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의 필요성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