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는 악어나 이구아나의 모습을 떠올리기란 쉽지 않다. 동물원에서 만날 수 있는 파충류가 대부분 우두커니 멍 때리고만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건 다 파충류에게 놀 거리를 주지 않아서다. 사람들이 축구공이나 오락기를 가지고 노는 것처럼, 파충류 또한 놀 거리가 있으면 정신 못 차리고 논다.
1991년 미국 테네시대의 동물학자 고든 버가트 교수는 워싱턴동물원에서 아주 재밌는 장면을 목격했다. 호스처럼 길게 튀어나온 돼지 코 때문에 ‘피그페이스(돼지얼굴)’라는 이름이 붙은 거대한 나일자라(Trionyx triunguis)가 수조 안에서 플라스틱 공과 후프를 이리저리 밀면서 돌아다니고 있었다. 자라의 이런 행위를 처음 본 버가트 교수는 피그페이스의 담당 사육사와 만나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 결과 아주 놀라운 사실을 알아냈다. 피그페이스는 ‘놀 줄 아는’ 거북이었던 것이다.
심심해서 죽을 뻔한(?) 자라 이야기
피그페이스는 1940년에 파충류관으로 이사 온, 동물원의 굉장히 오래된 식구였다. 몸무게가 최대 90kg까지 나갈 정도로 몸집이 거대했기 때문에 같은 수조안에서 두 마리 이상을 키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동물원은 수십 년 동안 피그페이스를 혼자 독방에서 살게 했다. 오랜 시간 동안 재미없게 홀로 지내야 했던 피그페이스는 결국 스트레스가 쌓이게 됐고, 1980년대부터는 스트레스가 극심해져 발톱과 주둥이를 이용해 자신의 피부를 뜯는 자해행위를 하기 시작했다. 당황한 사육사들이 자해행위를 하지 못하게 막으려고 했지만, 자라의 고집이 워낙 세서 쉽게 막을 수가 없었다. 피부가 뜯겨나간 부위에는 세균감염이 일어났고, 40년간 건장했던 피그페이스의 건강은 급속도로 악화됐다.
결국 담당사육사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피그페이스가 자해행위가 아닌 다른 것에 관심을 돌리게 했다. 다양한 종류의 플라스틱 물체들을 수조 안에 던져주기 시작한 것이다. 아무 기대 없이 시작한 일이었지만 효과는 놀라웠다. 피그페이스는 자신의 피부를 뜯는 대신 수면 위에 떠있는 공을 쫓아다니거나 후프를 머리로 밀어내는 등 다양한 행위를 즐기기 시작했다. 결국 놀이에 정신 팔린 피그페이스는 자연스럽게 스트레스를 풀 수 있었고, 동시에 건강까지 되찾게 됐다.
사육사의 도움으로 피그페이스의 일과를 모두 기록할 수 있었던 버가트 교수는 피그페이스가 하루 활동기간 중 20.7%를 노는 데 보낸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아냈다. 거북이 생각보다 놀이에 투자하는 시간이 많다는 사실을 처음 확인한 순간이었다. 피그페이스가 재밌게 노는 모습을 담은 비디오는 1996년에 공개됐고, 이는 학계에 최초로 공식 보고된 자라의 놀이행위였다.
놀이 앞에선 순한 양, 코모도왕도마뱀
몸길이 최대 3m, 몸무게 최대 70kg까지 자라는 코모도왕도마뱀(Varanus komodoensis)은 현존하는 도마뱀 중 가장 거대하다. 이들은 아래턱에서 독성단백질을 분비한다. 지구상에서 가장 몸집이 큰 독동물인 것이다. 인도네시아의 코모도 섬에서만 서식하는 이들은 독이 섞인 침을 이용해 자신보다 몇 배나 더 무거운 사슴이나 물소를 사냥한다. 하지만 이렇게 무시무시한 괴수 도마뱀들도 놀이 앞에서는 순한 양이 된다.
피그페이스가 한때 살았던 워싱턴동물원에는 노는 것을 무척 좋아하는 암컷 코모도왕도마뱀 크라켄이 살고 있다. 크라켄은 자신의 담당사육사를 유난히 잘 따랐는데, 특히 사육사의 신발이나 옷에 달린 물건에 관심을 많이 보였다. 종종 사육사의 신발 끈을 물어 당기거나, 주머니 속에 있는 수첩이나 손수건을 물어 꺼내는 등 “야, 놀아줘”하는 반응을 보였다. 사육장을 청소하기 위해 들어온 사람들을 당황하게 만든 건 물론이다.
새로운 물건에 유난히 관심이 많은 크라켄을 위해 결국 담당사육사는 크라켄의 사육장을 새롭게 꾸며야만 했다. 단순히 바위와 소철나무, 그리고 흙으로만 채워진 보금자리에 상자, 담요, 공, 신발, 그리고 플라스틱 원반 등을 넣었다. 그 결과 크라켄은 평소보다 더 활동적이게 움직였으며, 이것들을 입으로 밀거나 살짝 무는 행위를 보였다. 크라켄의 이러한 놀이행위를 본 사람들은 “마치 파충류의 탈을 쓴 포유류 같았다”며 신기해 했다.
워싱턴동물원의 크라켄 외에도 놀이를 즐기는 코모도왕도마뱀은 많다. 미국 세인트어거스틴동물원의 ‘크라카토아’는 사육사와 함께 줄다리기를 즐기며, 미국 휴스턴동물원의 ‘스마우그’는 공굴리기를 좋아한다. 하지만 코모도왕도마뱀은 마음만 먹으면 사람을 쉽게 죽일 수 있는 포식동물이기 때문에 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어도 사육사들은 긴장감을 절대 놓지 않는다. 특히 이들도 우리처럼 기분이 안 좋은 날이 있는데, 그런 날에는 사육사가 사육장에 놀러 들어갔다 오히려 쫓겨나온다. 코모도왕도마뱀과의 놀이는 마치 시한폭탄과 노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꽃을 사랑하는 악어 타보셨어요?
오늘날의 파충류 중에서 가장 잘 놀 줄 아는 종류는 놀랍게도 악어다. 단순히 물체를 밀고 당기고 따라다니는 자라나 코모도왕도마뱀과 달리, 악어는 이들보다 더 다양한 놀이를 즐길 줄 안다. 2005년에 버가트 교수는 청소년기의 미국앨리게이터(Alligator mississippiensis)들이 마치 수영장에서 미끄럼틀을 타는 것처럼, 물가의 비스듬한 경사면을 타고 내려가는 행위를 반복적으로 한다는 사실을 학계에 보고했다. 앨리게이터 외에도 어린 넓은입카이만(Caiman latirostris)에게서도 미끄럼틀 타는 행위를 볼 수 있었는데, 어린 악어들이 은근히 스릴을 즐길 줄 아는 것 같다.
공놀이를 즐기는 악어도 있다. 수년간 공놀이를 즐기고 있다는 세인트어거스틴동물원의 수컷 바다악어(Crocodylus porosus) ‘막시모’는 사육사들이 던져주는 공을 물고 미는 등 다양한 행위를 보인다. 재밌는 것은 공을 던졌을 때 막시모가 코로 공기방울을 만들면서 다가간다는 것이다. 보통 이런 행위는 암컷에게 구애를 할 때 볼 수 있는 행동인데, 아마도 악어가 기분이 좋아서 하는 짓이 아닐까 추정하고 있다. 2015년 미국 테네시대 블라디미르 디네츠 교수는 동물원의 악어들이 간혹 꽃잎을 가지고 논다는 사실을 학계에 보고했다. 그는 미국 마이애미동물원에서 심심한 하루하루를 보내던 쿠바악어(Crocodylus rhombifer)를 관찰했는데, 이 악어는 수면 위로 떨어진 꽃잎을 물고, 밀고, 콧등에 올리는 등 다양한 놀이 행위를 보였다. 놀랍게도 이와 똑같은 행위가 인도 마드라스악어보호소의 한 난쟁이악어(Osteolaemus tetraspis)에게서도 확인되면서, 디네츠 교수는 악어들이 꽃잎을 장난감 삼아 가지고 논다고 결론지었다. 재밌게도 두 악어가 가지고 논 꽃잎들은 모두 분홍색을 띠고 있었는데, 그래서 디네츠 교수는 악어들이 유난히 분홍색 장난감을 선호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혼자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악어가 있는가 하면, 다른 악어들과 함께 노는 악어도 있다. 브라질에서는 어린 검정카이만(Melanosuchus niger) 두 마리가 마치 술래잡기를 하듯 빙글빙글 돌며 서로를 붙잡으려고 하는 놀이행위를 보였으며, 아프리카의 어린 나일악어(Crocodylus niloticus) 두 마리가 재미 삼아 힘겨루기를 하기도 했다. 비록 자주 보고되지는 않지만 어른 악어들이 함께 노는 모습도 짝짓기 계절 때 관찰된다. 특히 마이애미동물원의 금슬 좋은 쿠바악어 부부의 경우, 짝짓기 계절이 되면 수컷이 암컷을 업은 채 웅덩이를 빙글빙글 돈다. 악어의 무시무시한 살인미소 뒤에 놀이를 좋아하는 장난꾸러기의 마음이 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나도 놀고 싶다!’ 공룡의 절규
오늘날의 파충류들이 다양한 놀이행위를 즐겼다면, 과거에 살았던 파충류인 공룡들은 어땠을까. 6600만년 전에 살았던 티라노사우루스도 놀았을까. 화석으로만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과거에 이들이 했던 행위를 100% 재현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미국 스턴버그자연사 박물관의 브루스 로스차일드 박사는 티라노사우루스와 같은 공룡들이 과거에 놀았을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믿는다.
2014년 로스차일드 박사는 초식공룡들의 뼈에서 티라노사우루스류 공룡에 의해 만들어진 매우 얕은 이빨자국들을 발견했다. 이 얕은 이빨자국들은 살점을 뜯기 위해 깊숙하게 문 육식공룡의 이빨자국과는 달랐으며, 이런 이빨자국이 발견되는 뼈 화석은 모두 살점이 별로 붙어있지 않는 부위였다. 그래서 로스차일드 박사는 이 얕은 이빨자국들이 심심한 티라노사우루스류가 초식공룡 뼈를 주둥이로 갖고 놀다가 생긴 자국이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물론 이러한 자국만으로 티라노사우루스류의 놀이행위를 증명할 수는 없다. 하지만 오늘날의 자라와 악어도 놀 줄 아는데, 티라노사우루스라고 놀지 말라는 법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