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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는 왜 가로줄무늬를 가졌을까

수학으로 푸는 동물무늬의 비밀



수풀이 무성한 숲속에 홀로 서서 온 숲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포효하는 호랑이. 힘찬 기상을 상징하는 호랑이의 모습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것은 화려한 줄무늬가 아닐까 싶다. 그런데 왜 호랑이는 가로줄무늬를 갖게 됐을까. 같은 고양이과 맹수인데도 표범이나 치타는 점무늬이고 사자는 무늬가 없는 이유가 뭘까. 20세기 중반 현대 컴퓨터 이론의 아버지인 영국의 앨런 튜링은 ‘반응-확산 방정식’으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내놓았다. 최근엔 독일 연구자들이 동물 무늬에 대한 튜링의 이론을 실험으로 입증했다.



산불 났을 때 소화액 뿌리는 상황과 비슷

동물에게 무늬는 왜 생길까. 진화론자들은 동물의 무늬가 생존에 유리한 방식으로 진화하는 과정에서 생겼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예를 들면 무늬를 가진 종이 그렇지 않은 종보다 주위 환경에 몸을 효과적으로 숨길 수 있었기 때문에 더 많이 살아남았다는 얘기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직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다. 호랑이, 표범, 사자는 같은 고양이과 맹수인데 무늬가 제각각인 이유가 무엇일까. 동물의 무늬를 결정하는 법칙이라도 있는 것일까.

여기에 대한 답은 놀랍게도 현대 컴퓨터 이론의 아버지인 앨런 튜링이 처음 제시했다. 튜링은 평소 피보나치수열처럼 생명현상에서 나타나는 수학적 질서에 관심이 많았다. 동물이 가진 다양한 무늬 이면에 수학적인 질서가 숨어 있다는 발상은 ‘풀 수 있는’ 모든 수학 문제는 몇 개의 알고리즘만 있으면 답을 낼 수 있다는 현대 컴퓨터의 기본 개념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튜링은 표범이 점무늬이고, 호랑이는 줄무늬이며, 코끼리는 아예 무늬가 없다는 다소 혼란스러운 자연현상을 하나의 방정식으로 설명하고자 했다. 그는 동물의 몸속에는 털 색깔을 발현시키는 화학물질(멜라닌)이 있고, 이것을 확산하는 물질인 ‘확산제’와 억제하는 물질인 ‘억제제’가 상호작용해 피부 표면에 무늬를 만들어 낸다고 생각했다. 튜링은 두 물질의 관계를 나타내는 반응-확산 방정식을 만들어 1952년 논문으로 발표했다.

1988년 영국 옥스퍼드대의 수학자 제임스 머레이는 튜링의 이러한 발상을 구체화해 반응-확산 방정식의 해가 태아의 크기에 따라 달라지며, 그 결과 점무늬인지 줄무늬인지가 결정된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멜라닌의 확산제와 억제제가 상호작용하며 무늬를 결정하는 것은 산에 산불이 나서 헬기로 소화액을 뿌리는 상황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이 상황에서 산을 검게 태우는 산불은 멜라닌에 해당된다. 또 산불을 멀리 번지게 하는 바람은 확산제 역할을, 헬기에서 뿌리는 소화액은 억제제 역할을 한다. 산불이 진화되고 난 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면 산은 전체가 검게 그을린 것이 아니라, 띠 모양이나 점 모양으로 얼룩덜룩하게 그을려 있다. 동물의 무늬도 이와 같은 원리로 발생한다.



반응-확산 방정식의 해를 구하면 이런 무늬의 모양을 예측할 수 있다. 반응-확산 방정식은 일종의 미분 방정식인데, 구체적인 식은 다음과 같다.



줄무늬? 점무늬? 태아 크기가 관건

포유 동물의 털 색깔을 결정하는 이런 화학반응은 동물이 태아일 때 발생한다. 사람의 경우는 임신 후 약 8주까지를 태아로 보는데, 이 기간 동안 일어나는 화학반응의 결과로 멜라닌을 표출하는 세포의 위치가 결정된다. 세포들은 특정 무늬를 이루며 분포한다. 모체의 몸 밖으로 나온 뒤에는 이 세포들은 멜라닌을 배출한다. 세포가 분포하는 모양대로 털이 자라면서 무늬를 형성한다.

이때 멜라닌을 표출하는 세포의 분포, 즉 무늬는 반응이 일어나는 시점의 태아의 크기가 결정한다(따라서 태아의 크기는 앞에서 설명한 반응-확산 방정식의 중요한 초기조건이다). 임신 기간 초반 태아의 크기가 매우 작을 때 화학반응이 일어나면 표피에는 무늬가 생기지 않는다. 사람이나 퓨마가 이 경우에 해당하며, 판다처럼 검은색과 흰색으로 대강 나뉘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그런데 태아가 조금 자랐을 때 화학반응이 일어나면 이때부터는 무늬가 생긴다. 상대적으로 태아가 작을 때 반응이 일어나면 호랑이처럼 줄무늬가 되고, 태아가 더 커서 일어나면 표범이나 재규어처럼 점무늬가 된다. 태아가 작으면 반응-확산 과정에 의해 생기는 원형 무늬 전체가 태아 속에 들어가지 못하고 그 일부만 들어가기 때문이다.

표범이 몸에는 점무늬를 가지지만 꼬리는 줄무늬인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점무늬를 가진 동물은 태아가 어느 정도 자란 뒤에 무늬를 형성하는 화학반응이 일어난다. 이때 꼬리 부분이 태아만큼 크면 똑같이 점무늬가 생기겠지만, 보통은 태아보다 작기 때문에 원형 무늬의 일부인 줄무늬가 생긴다. 반면 호랑이는 절대로 점무늬 꼬리를 가질 수 없다. 태아일 때 몸통보다 꼬리가 클 수는 없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왜 호랑이는 태아가 작을 때 무늬가 형성되고, 표범은 태아가 클 때 무늬가 형성되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50년 전 튜링 이론, 실험으로 증명되다

2006년 독일 막스플랑크 면역생물학연구소와 독일 프라이브루크대 연구원들은 쥐의 털 분포에 대해 연구하던 중, 튜링과 머레이가 예상했던 것처럼 확산제 역할을 하는 WNT 계열의 단백질과 억제제 역할을 하는 DKK 계열의 단백질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 화학물질을 튜링이 제시한 반응-확산 방정식에 적용해 털 무늬를 예상한 결과, 실제로 관찰된 쥐의 털과 일치했다. 튜링의 방정식이 최초로 실험을 통해 증명된 것이다.

연구팀은 두 가지 연구를 수행했다. 먼저 확산제와 억제제의 반응-확산 방정식을 컴퓨터 시뮬레이션해서 확산제의 양을 늘리면 점무늬가 촘촘히 생기고, 억제제의 양을 늘리면 점무늬가 드문드문 발생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연구팀은 실제 쥐를 이용해서도 이와 유사한 내용을 실험했다. 연구팀은 쥐의 수정란에 발모 억제제 단백질 DKK2를 넣어 암컷 쥐의 자궁에 착상시켰다. 이 경우 무늬는 털 색깔의 패턴 대신 털이 난 부분과 없는 부분의 분포 패턴을 뜻한다.

실험 결과 억제제 단백질이 제대로 작용하지 못한 경우에는 실제로 털이 듬성듬성 특정한 모양으로 분포하는 쥐가 태어났다. 억제제 단백질이 제대로 작용한 경우에는 털이 거의 없는 쥐가 태어났다. 이는 컴퓨터로 반응-확산 방정식을 시뮬레이션을 한 결과와도 동일했다.

태아 시절, 인간보다는 조금 늦게, 표범보다는 조금 빨리 만들어진 호랑이 줄무늬의 비밀은 이제 현대 수학으로 조금씩 밝혀지고 있다. 언젠가는 왜 하필 그 시기에 무늬가 만들어지는지도 수학으로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2010년 호랑이의 해를 맞아 수학이라는 새로운 시각으로 호랑이의 줄무늬를 바라보는 계기가 됐길 바란다.
 
박형주 교수는 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에서 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오클랜드대 수학과 교수와 고등과학원 계산과학부 교수를 지냈고, 현재 포스텍 수학과 주임교수이다. 계산대수기하학과 수리정보이론을 연구하고 있고 수학의 대중화에 관심이 많다. 대한수학회 국제교류위원장과 2014년 국제수학자대회 준비위원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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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 박형주 포스텍 수학과 교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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